덤벙이 소녀, 테라의 만담기가 좋았던 작품


나는 어렸을 때, 거대로봇물을 보면서 자랐다. 물론...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았지만, 거대로봇물 덕분에 SF물을 접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그렇게 SF물을 좋아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당시에 본 거대로봇물이라면 손에 꼽을만한 작품들이 있다. '로봇수사대 K캅스'나 '무적캡틴 사우루스'는 과거에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정도고, '마징카이저'나 '기동무투전 G건담'은 좀 기억난다. 그중에서도 '건담 G의 레콘기스타'는 최근에 본 거대로봇물이다.

그렇기에 손이 간 것인가, 이전에 다른 기자분이 작성한 체험기를 봐서 그런 것인가. 궁금해서 손에 집어본 '리레이어 (Relayer)'. 카도카와 게임즈가 개발한 SRPG, 거대로봇물이다. 솔직히 거대로봇물이나 SF가 취향일 순 있어도 SRPG는 내 취향이 아니다. 그렇기에 '슈퍼로봇대전'이라는 IP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SF 게임은 '13기병방위권' 정도가 좋다. 내가 리레이어에게 기대했던 건 딱 13기병방위권 정도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생각은 적중했다. 리레이어는 SRPG로 치루는 전투보단 '인물들과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이야기에 힘을 쏟은 작품이다. 그렇다고 SRPG가 허름하냐고 하면 딱 기본은 챙긴 정도다. 최소한의 완성도를 지켰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카도카와 게임즈가 제작한 게임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느꼈다. 하지만 제목에서 봤듯이, 본작은 SRPG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메카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작품이다.

게임명: 리레이어
장르명: SRPG
출시일: 2022. 3. 24.
개발사: 카도카와 게임즈
서비스: 클라우디드 레오파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PS5, PS4


우선 본작의 SRPG 시스템에 관해서는 크게 언급하진 않겠다. 궁금한 사람들은 '리레이어 체험기' 기사를 보고와도 좋다. 직접 체험해본바, 클래스 시스템과 상성이 있고 가끔 난이도가 있는 적을 조우했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전투 연출에 나름 힘을 주었고 연출 면에선 다른 SRPG 작품이 배울 만 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게임만의 특색을 느끼진 못했다. 그나마 '오토 모드'와 '연출 스킵 기능'이 있어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전투가 싫진 않았으나, 즐겁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난이도가 있는 편이니 그냥저냥 즐길 수 있는 SRPG라고 생각한다.

▲ 연출에 공을 들여서 보는 맛이 있는 편

그걸 제작진도 염두에 두었는지, 오히려 전투의 수보다 스토리의 수가 훨씬 많다. 기본적인 메인 스토리의 전개 방식이 『스토리 -> 전투 -> 스토리』로 이어진다. 즉, 양쪽에 스토리가 끼워져 있기에 전투를 제대로 맛보기도 힘든데, 스토리의 길이마저 길기 때문에 스토리에 몰입하지 못하면 게임으로서의 매력도 함께 떨어진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부분은 오히려 스토리라는 셈이 된다.

사실 체험기에도 적혀있었지만, 기체 디자인이 매력적이진 못하다. 여기서부터 거대로봇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점 포인트다. 특히 디자인이 너무나도 '기동전사 건담'과 흡사한 면을 볼 수 있겠다. 작중 내 키포인트 중 하나인 '오리지널 원'의 기체 또한 샤아 아즈나블이 타고 다니던 '사자비'와 닮았으며, 시종일관 주인공 일행을 방해하는 것 또한 똑같다. 주인공, 테라가 타는 기체 '아스트라이어'의 디자인도 아무로 레이가 타는 뉴 건담과 흡사하다. 심지어 스토리에서까지 건담의 향이 나는 것을 보면, 일부러 이렇게 구성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캐릭터의 수가 매우 많고, 구성된 팀과 조직도 다양하다. 고대의 은하 문명 기술이 담겨 있는 병기, '오리지널 원'을 둘러싼 각자의 목적과 주인공, 테라가 기억을 잃은 이유, 그리고 루나와 대립하게 된 원인 등등. 작중 내에서도 복선과 구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적군이라 하면 '리레이어'로 우주 소멸을 꾀하고 있기에 지구 연합이 무조건 힘을 합칠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정작 내부에서도 각자 원하는 목적이 있기에 주인공 일행을 무조건 지원해주진 않는다. 반대로 평소에는 적에 위치에 있는 루나가 갑작스레 주인공 일행을 커버해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또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 스토리는 시리어스 파트가 많은 편이며, 3장부터는 스토리가 가속된다

인물과 고유명사, 그리고 키워드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한 번에 쏟아져 내리는 설정에 지칠 수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평소에 SF 작품을 즐겨보았거나, 그리스 신화, 우주 과학, 일본 특유의 말장난을 이해하면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다. 예를 들어서 테라와 루나 같은 스타 차일드의 이름은 전부 '행성'에서 따왔고, 군인인 '호시노 오우지'는 이름 자체가 별의 왕자라고 해석될 여지를 주는 이름이다. 물론 전체의 흐름을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단순히 주인공 일행과 테라의 행적에만 집중하면 편해진다. 리레이어가 스토리를 통해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지만, 주인공인 테라의 행적만큼 중요하진 않다.

그리고 테라와 그녀의 어시스트 로봇인 '요다카'의 만담과 일상 에피소드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몰입하게 해준다. 테라라는 소녀에게는 비밀이 많지만, 진중해 보이는 과거사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꽤 덜렁대고 기행을 보여줄 때도 많다. 특이하지만 소소한 웃음을 줄만큼의 재미를 주기에 테라라는 주인공의 매력을 더욱 증가시켜준다. 물론 다른 일상 파트도 충분히 즐겁고, 각자의 신념과 이상이 부딪히는 순간도 볼만하다. 전체적으로 '군상극'이라는 부분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그래도 제일 재밌는 부분은 일상 파트가 아닐까. 둘의 케미가 참 좋다

리레이어는 스토리 파트의 연출이나 전투 파트의 그래픽 등, 둘 다 원가절감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으며, SRPG로서의 기본은 챙겼지만 부족한 점도 많다. 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돌려 리레이어를 비주얼 노벨 장르로 바라본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예 SF와 로봇물에 중점을 둔 비주얼 노벨이라 생각하면 편해진다. 반면, SRPG로서의 리레이어를 바란 것이라면 미묘한 선택일 수도 있다. 특히 스토리에 비중이 좀 더 많은 본작을 생각하면 더더욱.

기자가 보기엔 리레이어는 마케팅의 방향성을 조금 다르게 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껏 본 마케팅으론 로봇과 시스템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의 특색과 매력은 전부 캐릭터 메이킹과 인간군상을 다룬 스토리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리레이어는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기분으로 플레이해야 안성맞춤일 것이다. 자신이 SF물과 로봇,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리레이어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전투의 비중이 큰 SRPG를 원하는 것이라면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 이런 장면이 주가 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리레이어를 한 장면으로 표현하자면 이 사진이 적당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