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대전 격투 게임 매니아에게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메이저급의 신작 시리즈뿐만 아니라 격투 게임이 아닌 IP를 활용한 격투 게임, 맥이 오래도록 끊겼다가 신작을 출시한 시리즈까지 다양한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지난 3월 15일 출시된 팬텀 브레이커: 옴니아였다. 팬텀 브레이커는 슈타인즈 게이트로 유명한 MAGES(구 5pb)가 Xbox 360으로 출시한 '팬텀 브레이커'부터 시작된 대전 격투 시리즈로, 2013년 아케이드판 및 확장판 '팬텀 브레이커: 엑스트라' 이후 2014년 PS VITA용 2D 횡스크롤 액션 '팬텀 브레이커: 배틀그라운드'와 이를 PS4로 이식한 '팬텀 브레이커: 배틀그라운드 오버드라이브'까지 출시된 이후 약 7년 동안 맥이 끊긴 시리즈다.

▲ 이실직고하자면, 크리스 때문에 알게 됐다. 슈타게에 꿰여서 박하...아니 밍고스 팬이 된지 어언 10년도 넘은 1인

슈타인즈 게이트의 마키세 크리스가 게스트 캐릭터로 참전하면서 서브컬쳐 팬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배틀그라운드 오버드라이브만 한국어판으로 정식 출시되고 당시 기준으로도 엉성해보이는 그래픽으로 국내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시리즈로 남아있었다.

개인적으로 마키세 크리스에 혹해서 어찌저찌 구해보긴 했지만, 군대 전역 후 콘솔과 타이틀이 다 처분이 되어있어 얼마 즐기지 못하고 떠나보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나, 한국어는 미지원하지만 어쨌든 한국 스토어에 DL판으로 등재가 된 '팬텀 브레이커: 옴니아'가 눈에 보였다. 그때 플레이는 아주 흐릿하게 남아있긴 하지만, 어쨌든 몇 년만에 시리즈가 새로 나오니 애캐에 대한 애정(?)으로 바로 지를 수밖에 없다고 할까. 또 그간 얼마나 발전했나 또 최근 격투게임의 홍수에서 살아남을 여지가 있나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게임명: 팬텀 브레이커: 옴니아
장르명: 대전 격투 액션
출시일: 2022. 3. 15.
개발사: MAGES
서비스: 로켓 판다 게임즈
플랫폼: PC, PS, Switch

관련 링크: '팬텀 브레이커: 옴니아' 오픈크리틱 페이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게임은 격투 게임 초보에게는 절대로 권장하지 않는다. 아마 10년도 전에 전작 팬텀 브레이커가 출시됐을 무렵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지금은 업계에서 사활을 걸고 있는 '쉬운 콤보'를 출시 초부터 깔고 들어갔던 시리즈였기 때문이다.

최근 격투 게임하면 으레 떠오르는 승룡권식 커맨드나 붕권식 커맨드, 모으기식 커맨드 등 복잡다단한 커맨드는 싹 빼고 방향키와 특수키 하나만으로 기술이 나가도록 변경한 사례들이 엿보이는데, 팬텀 브레이커는 시작부터 이를 도입했다. 그래서 커맨드 입력하다 손이 꼬여서 콤보를 실패하거나 기술을 몰라서 당하는 일은 없었다.

▲ 기술 몰라도 일단은 6+SP만 틈을 봐서 잘 누르면 중간은 간다

▲ 조작법이 간단해서 초보도 개틀링 이후 바로 콤보 연결 자체는 쉬운 편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어지간한 작품에서 도입하는 쉬운 개틀링 콤비네이션도 처음부터 도입한 작품이기도 하다. 동일한 키를 세 번 연달아 누르면 적당한 콤보가 시작되고, 거기에 필살기를 섞고 캔슬 개념만 더해줘도 그럴싸한 콤보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흐름은 이번 작품에서도 동일했다.

2010년대는 그래도 매니악한 격투 게임들이 출시되던 시대였으니 그것만으로는 격투 게임팬들의 눈에 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팬텀 브레이커는 그 문제를 각 캐릭터마다 모드에 따라 바뀌는 플레이스타일로 해결했다. 옴니아에서도 빠르게 콤보를 이어나갈 수 있는 퀵, 한 발 한 발 대미지가 세서 일발 역전이 가능한 하드, 고른 능력치에 다른 모드에 없는 복잡한 시스템을 갖춰서 의외의 플레이가 가능한 옴니아 세 가지 모드로 동일한 캐릭터도 모드에 따라 다르게 공략해나가는 재미를 선보였다.

▲ 캐릭터마다 퀵-하드-옴니아 각기 다른 세 가지 스타일로 즐길 수 있다

각 캐릭터별 커맨드와 콤보는 단순하게 하고, 모드로 플레이스타일을 바꿔나간 선택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팬텀 브레이커는 여타 격투 게임 시리즈와 다르게 공격이 서로 상쇄되면서 캔슬이 발생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은 독특한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경쟁작보다 모션이 엉성해서 느릿느릿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막상 플레이에 들어가게 되면 공격이 상쇄되고 난 이후에 가드-가드 캔슬에서 심리전 공방이 짧은 사이에 여러 차례 일어난다.

심지어 가드 후 대시 캔슬이나 백 대시 캔슬까지 있으니, 어설프게 공격했다가 딜캐 당하고 두드려맞을 수 있어 더더욱 치열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생각보다 빠른 템포에 당황하지만 점점 익숙해질수록 검도나 펜싱마냥 상대의 공격을 상쇄한 뒤에 반격할 수단을 찾는 묘미가 있다.

▲ 동작은 엉성해보이는데 가드 캔슬, 상쇄 등이 빈번해서 템포가 생각보다 빠르다

하지만 이런 재미는 격투 게임을 어느 정도 접해보지 않으면 느끼기 어렵다. 콤보는 몰라도 용어 정도만 어디서 귓동냥으로 듣고 몇 번 보기만 했다고 쳐도 알아챌 수 있는 재미이긴 하지만, 그거만 안다고 쳐도 생초보는 아니지 않나. 그냥 옛날에 오락실에서 몇 번 끄적거리고 얍삽이만 해본 정도로 안다고 하기엔 최근의 격투 게임은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최근에 각 게임사들이 기를 쓰고 초보들이 안착할 수 있게 여러 가이드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팬텀 브레이커: 옴니아는 그런 게 없다. 앞서 말했던 특장점은 전작에서부터 이어진 장점들이고, 이를 한층 더 다듬은 것뿐이다. 흔히 생각하는 튜토리얼은 트레이닝 모드가 아니라 레퍼런스 항목에 글로만 서술되어있어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개념부터 익히기 어렵다. 콤보에 대한 센스뿐만 아니라 각 모드마다 지원되는 기능을 얼마나 잘 쓰느냐도 승패를 좌우하는 게임인데, 이와 관련된 내용을 따로 설명서마냥 분리해둔 터라 접근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즉 쉬운 콤보에 콤보 연습, 심지어 고수가 등록한 콤보 커맨드를 불러와서 연습할 수 있게끔 한 최근 격투 게임의 트렌드와는 천양지차다. 이제 1인자를 넘보고 있는 개발사의 행보라고 변호해주고 싶어도, 멜티블러드처럼 동인 마인드로 나가던 시리즈조차도 채택한 튜토리얼이나 가이드 기능이 없으니 변명할 여지는 없다. 초보자에 대한 배려가 타 게임에 비해 굉장히 떨어진다고 할 수밖에.

▲ 뭔가 허전한 트레이닝 모드

▲ 알고 보니 레퍼런스 모드에다가 글로 적어놨을 줄이야

그리고 미소녀 캐릭터의 일러스트에 혹해서 들어왔다고 쳐도, 아마 인게임 캐릭터의 모습을 보면 2022년에 나올 작품인지 의문이 들 것이다. 전작을 안 했던 유저라면 서투른 마감 처리에 뻣뻣한 움직임을 과도한 블러 효과로 때우려는 모습을 보자마자 손을 떼고 싶은 욕구가 기어나올 테니 말이다. 그나마 그걸 참고 몇 판 플레이하면 나름 내실 있는 시스템에 놀라긴 하지만,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 좋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멀티플레이로 들어가면 더욱 암울하다. 랭크제를 도입하긴 했지만 최근 트렌드인 티어제가 아니라 레벨식이라 플레이가 누적될수록 실력과 관계 없이 고인물과 마주할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승패에 따라 경험치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마이너스는 없고 플러스만 있으니 그렇게 될 여지가 더 많은 셈이다. 더군다나 게임 특성상 1프레임 단위로 갈리는 싸움이 꽤 많은 탓에 롤백 넷코드를 적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네트워크 대전 환경이 썩 좋지 않다. 그나마 일본 게이머들이 많이 하다보니 그쪽과 매칭이 됐을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다른 서버 유저와 대전하게 되면 끊기거나 오류가 나는 일도 꽤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최근 이슈가 되는 '랜뽑'과 관련한 페널티 항목은 프로필 카드에 기재해놓은 건 천만 다행이었다.

▲ 매칭 안 잡혀서 대전 상대 조건을 풀었더니 설마 이런 상대랑 만날 줄이야

▲ 어떻게 캐치해서 반격하려 해도 고인물한테는 다 읽히기 마련. 랭크는 지옥이다

▲ 그나마 룸 매치는 나름 초보도 있고 해서 괜찮은데

▲ 좀 해보려고 하면 이렇게 에러가 나서야 원

대신 싱글플레이는 부실한 튜토리얼과 트레이닝 모드만 제외하면 꽤나 건실한 편이다. 미즈키 나나 등 유명 성우의 풀더빙으로 즐길 수 있는 스토리 모드에, 전세계 유저와 클리어 스코어를 겨루는 '스코어 모드'와 일종의 서바이벌 모드인 '엔드리스 배틀' 등 꽤나 다양한 모드를 갖췄다. 스토리 모드는 팬텀 브레이커라는 시리즈를 못 들어본 유저를 위해서 전작의 스토리를 요약해둔 데다가, 이번 스토리가 후속작이 아닌 전작에서 캐릭터 라인업이 확장된 확장판 개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전작을 몰라도 이번 작품만으로 그 흐름을 이해하기엔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싱글플레이의 점수는 서버에 업로드해서 전세계 유저와 순위를 겨룰 수도 있다. 즉 멀티플레이는 차마 엄두를 못 내도, 싱글플레이에서 랭킹을 올리면서 수련하는 그런 묘미는 있다.

▲ 갑자기 왜 똑같이 생긴 애가 나타나서 칼부림하나 싶겠지만

▲ 그 대략의 맥락은 스토리 모드 시작하기 전에 미리 확인할 수 있다

▲ 싱글플레이는 모드도 나름 다양하고

▲ 모드별로 플레이 결과를 월드랭킹 등록, 전세계 유저와 기록을 경쟁할 수도 있다

그렇게 훑어본 팬텀 브레이커: 옴니아는 그 옛날 10년 전 덕겜의 스멜을 고스란히 지금 시대에 들고 온 유물 같은 존재다. 작중에 등장하는 주요 떡밥인 '팬텀'이나 '적정자', 'F.A' 등에 대한 이야기는 유저가 직접 발로 뛰면서 알아가야 하고, 플레이 방식 자체는 간단하지만 자기가 알아서 파고들 방법을 찾아야만 안착할 수 있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혹은 제각각의 이유로 무기를 들고 싸운다는 심플한 설정이니 이해하는 것 자체는 어렵진 않지만 비주얼 노벨식 스토리에 익숙하지 않다면 눈에 잘 들어오진 않는다. 어느 정도 일반인에게도 문이 열려서 점차 외연을 확장하려하는 최근의 덕겜에 익숙한 유저라면 낯설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전형적이지만 확실하게 덕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림체의 일러스트와 달리, 인게임 그래픽이나 애니메이션은 엉성하다. 모션뿐만 아니라 월 바운드를 시킬 때 마치 톰과 제리에서 나온 것마냥 엉성하게 날아가는 꼴이나 중력을 잠시 거스른 듯 멈칫거리다가 느리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완성도 자체에 의문을 가질 법하다.

▲ 보다보면 익숙해지면서 그건 또 아니기도 하고...묘하다

▲ 어쨌든 미래 가젯 5호기 맛 좀 봐라

그런데 그 진입장벽을 넘어서 조금 더 플레이하다보면, 왜 그런 식으로 만들었는지는 이해가 간다. 독특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공방을 펼치는 나름의 재미도 뚜렷하다. 이것만으로 험난한 격투 게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자신만의 정체성은 각인시킬 여지는 있다고 할까. 다만 앞으로 시리즈를 확장해나가기 위해서는 갈 길이 좀 멀어보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