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Irony)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았다.

요 근래 일어난 국제적 사건들의 중심에 놓인 워게이밍의 상황은 그저 헛웃음만 나올 정도로 난감해 보였다. 벨라루스에서 시작해 러시아에서 대흥행한 게임을 만들었고, 우크라이나에도 큰 오피스를 둔 게임사. 벨라루스의 민스크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에 모두 오피스를 두고 유기적으로 개발을 이어오던 회사인데, 하필 그 세 국가가 전쟁 당사국이다. 그것도 서로 적국이다.

게다가 하필 기업명까지 '워'게이밍이다. 누가 봐도 2차 대전기에나 볼법한 전쟁범죄들이 버젓이 벌어지는 지금이 믿기지 않을 정도니 워게이밍 또한 기업명을 지을때 진짜 전쟁이 날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게임사에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또 있을까. 워게이밍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저 운이 없어도 더럽게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러한 워게이밍의 미묘한 위치는 일개 게임 기자인 내가 전쟁을 느낀 계기도 되었다. 예정되어 있던 인터뷰는 날짜 지정 직후 전쟁이 터지면서 기약 없이 밀려버렸고, 새로운 콘텐츠를 소개해야 할 인터뷰가 오히려 업데이트 후일담이 되어버렸다. 3주의 지연 끝에 그 후일담이라도 쓰려고 방문한 한국 워게이밍 오피스의 직원들 또한 현 사태에 황망해하고 있었다. 그들이라고 이런 현실을 예상했을까? 그리고 3월의 마지막 날, 마침내 워게이밍이 결단을 내렸다.


워게이밍은 10년도 더 전, 월드오브탱크의 러시아 서비스를 위해 레스타 스튜디오를 인수했고, 바로 얼마 전까지 레스타 스튜디오는 워게이밍의 자회사로 작동했다. 그리고, 3월 31일을 기점으로 워게이밍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모든 서비스를 레스타 스튜디오로 이관하고, 레스타 스튜디오와의 제휴를 끝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완전히 관계를 끊어 버렸다.

정리하면, 앞으로도 레스타 스튜디오가 계속 운영을 한다면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워게이밍의 게임들을 플레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플레이할 수 있을 뿐, 어떤 사후 지원이나 업데이트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워게이밍이 가져가는 이득은 단 하나도 없다. 과거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중국의 현지 규정 문제로 수년 간 업데이트되지 않았던 시절처럼,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서비스되는 빌드들은 현재 빌드 그대로 굳어버리는 거다.

레스타 스튜디오가 자체적으로 개발을 통해 업데이트를 한다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다. 게임 자체의 저작권은 워게이밍에게 있으니까. 이와 관련해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크게 중요하진 않다. 중요한 건, 앞으로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워게이밍은 단 1의 소득도 거두지 못할 것이며, 자회사였던 레스타 스튜디오와 워게이밍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것이다.

워게이밍의 고향인 벨라루스, 그리고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러시아 시장이다. 워게이밍이 더이상 동유럽에 종속되지 않는 글로벌 기업이며, 러시아 시장 매출 의존도가 초기에 비해 많이 낮아졌고, 우크라이나의 매출 비율이 높아졌다 해도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국가 간 전쟁이라는 대사건이 기반에 있었다 해도,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한없이 가까운 현대 기업인들이라면 끝까지 망설였을 결정이다.

▲ 워게이밍 상트 페테르부르크 스튜디오(2018년)

'기업의 목적은 이익 창출'이라는 명제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때때로 가혹하거나 비인도적으로 느껴지는 행위마저 정당화한다. 표면적으로 반대 성명을 내면서 러시아 시장과 작은 연결고리를 남겨두는 정도로 마무리했어도 다들 이해했을 거다. 평화주의 심볼을 그린 깃발이나 위장을 팔고, 수익 일부를 기부한다 말하며 매출을 올리고자 했어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거다. 임직원의 생계가 달려 있기에 매출을 지향해야 한다는 대다수 기업의 핑계는 꽤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워게이밍의 출혈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미 알려진 바이지만, 워게이밍은 전쟁 직후 키이우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임직원 수백명과 그 가족들의 피난을 위해 천문학적인 지출을 감행했다.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급작스러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재정적 여유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이 정도 규모라면 이름이 알려진 글로벌 대기업이라 해도 여유롭게 감당하기 어려운 지출이었을 거다.

워게이밍의 행보가 보다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 때문일 거다. 기업임에도 기업의 본능인 이익 창출 중 큰 부분을 포기했고, 임금을 통한 생계 지원을 넘어 '생명'을 지키기 위해 큰 지출을 이뤄냈다. 비공개 기업이기에 가능한 결정이었겠지만, 그렇다 해도 워게이밍 정도의 덩치면 대표가 혼자 이 정도로 과감한 행동을 결정하긴 어렵다. 실제로 어땠을지는 몰라도 지금의 결정이 옳다는 사내 합의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옳고 그름은 다소 미묘한 선에 걸쳐져 있지만 때때로 명백하다. 그리고 그러한 명백함을 마주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옳음을 향해 나아가지만, 이 선행으로 자신이 피해를 입게 된다면 한 번쯤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수많은 이들의 삶이 달려 있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더 쉽지 않을 거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당연히 저희에게도 여파야 있겠지만, 이게 옳은 거고 덕분에 게임을 계속 서비스할 수 있다면 감수해야죠"

한 직원이 말했다. 모든 직원이 그렇진 않겠지만, 대다수의 직원들은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공감대가 기업 문화로, 그리고 워게이밍이란 게임사의 정체성이 되어 다시 그들의 자부심이 되어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을 이름으로 삼았지만 '반전(反戰)'을 원하며, 다국적 대기업이지만 옳음을 위해 기업의 최우선 목표를 포기하는 '반전(反轉)'을 보일 수 있는 게임사'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