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콘텐츠를 한 번이라도 접해본 이들이라면, 혹은 VR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속 오아시스나, 일본 인기 라이트 노벨 '소드 아트 온라인' 속 너브기어를 활용한 풀다이브처럼 '완전한 가상 세계로의 몰입'을 꿈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VR 게임이 정말 영화나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실사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면, 게임 시장의 판도는 한순간에 180도 바뀔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종일 키보드 마우스나 컨트롤러를 붙잡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것과 '내가 직접 그 세계로 들어가서 플레이하는 것'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실제로 이러한 기술이 구현된 세상을 그리는 소설이나 영화 작품 속에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VR 세상에 푹 빠져서 지내는 모습들도 심심치 않게 그려진다. 정말 이러한 세상이 온다면 지금 내로라하는 게임 콘솔 관련 시장은 크게 쇠퇴하고, PC로 게임을 하는 이들은 과거의 민속놀이를 추억하는 레트로 게이머 취급을 받으며, 그나마 다른 파이를 차지하는 휴대용 게임 시장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게 되지는 않을까?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지금 공개되어 있는 VR 콘텐츠를 몇 개만 접해보면 이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SF 영화, 소설 속 이야기에 그치는 것인지 뼈저리게 자각할 수 있다.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생생한 VR 체험을 구현하는 것은 모든 VR 개발자들이 꿈꾸는 이상향이라 할 수 있으나, 사실 그 정도로 발달한 VR 기술은 정말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혹시 올해에는?'이라는 기대를 품어보게 되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큘러스의 설립자인 팔머 럭키(Palmer Luckey)가 자신의 SNS를 통해 오큘러스의 10주년을 맞이하여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팔머 럭키는 지난 15일, 자신의 SNS를 통해 현재는 메타에 인수되어 자회사가 된 오큘러스의 10주년을 돌아보는 회고문을 게시했다. 회고문에는 그가 오큘러스를 설립하게 된 배경부터 설립 이후의 행보, 그리고 오큘러스에 재직하고 있던 당시와 퇴직 이후에 그가 얻은 교훈 등이 소개되어 있다.

팔머 럭키가 오큘러스를 떠난 후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오큘러스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현재 대표로 재직 중인 앤듀릴 인더스트리즈도 있을 수 있었다며, 현재까지도 꺼지지 않는 VR에 대한 열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외에도 꽤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주목할만한 내용은 딱 한문장이었다. 바로 '새로운 VR 기술'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팔머 럭키는 아직도 오큘러스에 관해 공유할 내용이 많이 남아있다며, '다양한 이유 탓에 여태껏 공개하지 못했던, 새로운 VR 기술이 세상에 공개될 수 있는 적기가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사업을 성공시킨 VR 업계의 원로 중 한 사람이자, 현재도 관련 업계에서 평가액 4조 원을 넘는 유니콘 기업의 대표로 재직 중인 그의 발언이기에 여러 VR 업계 관계자들과 팬들의 이목이 쏠린 상황이다.

그의 발언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보여준 과거의 행적과도 연관이 있다. 그는 지난 1월, "현재의 제한을 넘을 수 있게 된다면, '소드 아트 온라인' 속 너브 기어와 같은 HMD의 개발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어 3월에는 일본에서 개최된 VR 행사에 참여하여 "광학 프로젝터를 활용하여 시각 데이터를 사용자의 눈에 직접 보내는 방식으로 '너브 기어'를 구현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방식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회고문에 이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가 '현실판 소드 아트 온라인'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예상해보게 되는 배경은 여기에 있다. 그는 '여태껏 VR 기술이 진짜 설득력이 있을 만큼 충분히 발전한 적이 없었으며, 훌륭한 기술을 보여주는 VR HMD는 일반 사용자들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며, 오늘날에는 우수하고 강력하며, 빠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의 회고문을 읽고 난 뒤 나름의 '행복 회로'를 돌리다 보니, 올해가 2022년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지난 2009년에 처음으로 공개된 라이트 노벨 '소드 아트 온라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가까운 미래, 그리고 작중에서 VR MMORPG인 '소드 아트 온라인'이 정식 서비스를 개시한 시기가 바로 2022년이었다. 더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날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에 '미래의 모습'를 떠올리며 그렸던 여러 VR 기술들이 현실로 구현되기에 올해만큼 최적의 시기가 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도 피어올랐다. 당장은 막연한 기대에 불과하지만, 그가 이야기한 '새로운 VR 기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지, 곧 다가올지도 모르는 '큰 것'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데스게임 사건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작중의 비극까지 현실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겠지만 말이다.

▲ '소드 아트 온라인' 속 너브 기어는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