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단둘이 살게 된 그날
낡고 작은 집으로 가는 배 위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웃었다
매일 슬픈 표정만 짓던 엄마가 웃는 게 너무나도 좋아서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물고기처럼 바닥에 배를 대고 맘껏 헤엄쳤다
엄마는 나를 보고 웃었고 나도 행복했다
게임명: 메모어 블루(A Memoir Blue) | 개발사: Cloisters Interact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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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링크: '메모어 블루' 오픈크리틱 페이지
메달을 들고 어색하게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
저렇게나 싫은 표정을 내도 되는가 싶지만
뭐 어때 저런 메달 따위를 원한 건 아니었는데
회고록이라는 이름처럼 게임은 수영 챔피언인 미리암이 과거 엄마와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는 듯 구성됐다. 연출이 비교적 자유로운 게임이라는 특징을 살려 메모어 블루는 현실의 주인공이 과거의 나 자신과 엄마와의 일을 직접 마주하는 듯 그리고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몽환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분위기. 그런 흐름을 유지하는 연출은 사실 게임에서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기법이다.
게임은 영화 같은 실사 미디어가 하기 어려운 모습을 쉽게 풀어낼 수 있기에 오히려 영화 연출가들이 게임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펼치기도 하니 말이다. 잇 테이크 투로 유명한 요제프 파레스 역시 일부러 허술하게 그려진 내용으로 B급 감성의 코미디를 제대로 선보인 깝스의 감독이기도 하다.
아빠와 엄마가 언제 마지막으로 함께 웃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함께 있으면 소리 지르는게 일상이었고
어느 날엔가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단둘이 먼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맘먹고 플레이하면 1시간을 겨우 채울까 말까 한 분량. 그리고 플레이에서 흔히 말에 게임적 요소로 만족감을 채우기란 쉽지 않은 구성이다.
물 속에서 미리암의 어릴 적 이야기가 신문, TV, 혹은 벽 위에 그림처럼 그려지며 환상 속을 거닐듯 초현실적인 일들로 계속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퍼즐을 풀어야 이야기가 진행된다지만, 화면에 들어온 불을 켜고 마우스 포인트가 바뀌는 부분을 잘 클릭하면 막힌 길이 열리는 정도다. 또 어린 시절부터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도 별다른 선택지 없이 곧장 눈에 들어온다.
엄마와 단둘이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신 났다
아무 걱정 없이 포근한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울 수 있는 것도 좋았고
창 밖에 풍경은 엄마와 함께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았다
플레이적 요소가 적다는 건 쉽게 말해 보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한 듯 보인다. 그리고 많은 미디어 전문가가 이렇게 보는 게임을 영화로 비유하며 플레이 경험의 가치를 낮추곤 한다.
하지만 메모어 블루를 그저 영화와도 같은 게임이라고 단정해 말하긴 어렵다. 사실 게임은 똑같이 주어진 이야기를 따라간다는 개념 자체의 공통점은 있을지언정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선택 권한의 독립성, 그리고 그걸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
메모어 블루의 많은 요소는 얼핏 보면 게임으로서의 요소가 적어 보일 수 있지만, 플레이어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의 여지를 굉장히 다양하게 남겨두었다.
엄마와 같이 살 섬에 첫발을 디딘 그날
새로운 곳에서 살게 된다는 두려움보다도
행복한 웃음을 띤 엄마와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주인공 미리암에 대한 설명은 게임 소개. 그리고 출시 전 진행된 인터뷰나 프로모션 영상을 통해 나오긴 했지만, 사실 아무 정보도 없이 게임을 진행한다면 그녀의 이름도, 직업도 정확히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메모어 블루에는 플레이어가 직접 들을 수 있는 대사 한 마디, 수많은 언어를 가져와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문자 한글자 나오지 않는다. 아주 가끔 나오는 말은 벙긋거리는 입 모양만 나올 뿐 소리로 전달되지 않는다.
두루뭉술한 표현. 그리고 이건 단순히 글과 소리가 아니라 이야기에서도 이어진다. 앞서 적었듯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명확히 존재하지 않는 초현실적인 상황이 이어지기에 이야기의 큰 구조만 보일뿐 상세한 내용은 그저 플레이어가 추측하는 데 그칠 뿐이다.
엄마는 나를 보며 항상 웃으려 하셨다
하지만 혼자 어린 나를 키우기 힘들어하셨고
때때로 나 몰래 한숨을 쉬곤 하셨던 거 같다
결국 주인공과 엄마의 관계 역시 명확한 갈등 구조보다는 추정의 과정으로 얼핏 이해할 뿐이다. 엄마와 함께 살게된 미리암이 왜 엄마와 멀어지는지. 또 정확히 어떤 말과 행동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 그걸 해결했는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달렸다.
그래서 정확한 관계의 이해. 능동적으로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플레이를 원하는 이들에게 메모어 블루의 이야기는 정적이고 미흡하다.
그렇게 엄마는 우리 집의 가장이 됐다
엄마는 집에도 일거리를 가져와 처리하기 바빴고
엄마 대신 작은 라디오가 친구가 되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 자체가 그저 플레이어에게 모든 걸 떠넘기는 무책임한 형태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수중 세계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미리암의 과거를 훑어나가는 과정은 수많은 상징으로 가득하다. 미리암과 엄마의 관계를 뜻하는 엄마 물고기와 새끼 물고기는 미리암의 여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닫혀버린 미리암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금고처럼 퍼즐에서도 이런 상징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이런 상징과 불분명한 이야기의 구조는 그저 이야기를 쉽게 만드는 편의적 이유가 아니라 디렉터 셸리 첸이 의도적으로 구성한 방식이다.
엄마가 바빠지며 동네에 새로 생긴 수영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물속에서는 아무것도 나를 막는 것이 없었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열심히 수영하는 게 진짜 좋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메모어 블루의 이야기는 디렉터 셸리 첸이 어릴 적 기억들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털어놓으며 시작됐다. 그녀는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한 기억들을 즐겁게 이야기했다. 어린 미리암처럼 엄마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나거나 하하 호호 웃으며 함께 지낸 작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셸리의 어머니가 기억하는 당시의 모습은 달랐다.
셸리의 어머니는 대만에 있을 때 날마다 힘들게 일하며 셸리를 키웠다. 그리고 셸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를 미국으로 보냈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고 셸리 역시 별다른 물건이 집에 없었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수영 대회에서 1등을 하면 엄마는 바쁜 시간을 쪼개 나를 찾아왔다
그게 날마다 바쁘게 보내는 엄마의 웃음을 보는
얼마 안 되는 순간이란 걸 어린 나이에도 알았다
그게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내 행복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바쁜 시간에 쫓겨 먼저 자리를 떠나곤 했다
함께 살던 똑같은 시기. 하지만 셸리의 어머니는 그 시절 힘든 기억과 그러면서도 잘 자라준 아이에 대한 오늘날의 기억을 더 크게 여겼다. 셸리는 같은 세상을 아이와 어른이 다르게 바라보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게임 역시 많은 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야기, 서로 다른 각자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길 원했다.
그래서 게임의 이야기는 명확하지 않다. 아니, 명확하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바빠진 엄마를 사람들 속에서 찾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를 기다리는 것도 이제는 지쳤어
독특한 향과 맛을 내는 유명한 음식점의 요리는 맛을 본 모두가 똑같은 가게를 떠올린다. 하지만 심심한 간에 누구나 집에서 먹어봤을 법한 흰 쌀밥과 찌개는 오히려 저마다 다른 곳을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는 엄마가 해준 집밥. 다른 누군가는 어릴 적 시골집에서 먹었던 할머니의 저녁상을 떠올린다.
메모어 블루의 이야기는 엄마와 딸의 성장과 갈등, 그리고 그 해소라는 이야기를 그리지만, 특유의 불분명한 이야기로 색을 흐릿하게 냈다. 그래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가 주변 환경과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로 해석하게 된다.
책장과 책상에 있는 물건을 모조리 던져버렸다
집을 떠나는 그날 나는 엄마가 없을 때 엄마를 대신한
작은 라디오만은 던져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품에 안은 라디오와 함께 문을 나섰다
그래서 메모어 블루의 의도적인 불명확함은 단순하고 정적이라고만 표현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플레이어 자신의 경험에 따라 다른 이야기로 이해하는 능동적인 콘텐츠가 되고 또 그렇게 의도됐다.
셸리 첸의 뜻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듯 플레이하지만, 그 안에 서로 다른 각자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기숙사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방에 조용히 앉아 엄마를 대신할 라디오를 듣거나
수영 연습을 하는 게 전부였다
때로는 이게 내가 맞는 길을 가는지 몰라 눈앞이 캄캄해지기도 했다
플레이어가 이걸 마치 영화처럼 받아들이도록 느끼는 또 하나의 요소는 음악이다. 메모어 블루의 음악은 단순히 게임 음악의 형태에 맞추지 않고 영화 음악의 형태를 따랐다. 별다른 이야기 요소가 없는 게임에서 음악은 단순히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로 쓰였다.
그래서 때로는 게임 음악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듯한, 마치 영화 속 OST를 듣는다는 분위기를 더 살리고 있다. 다만 미리 정해진 구간, 연출 시간이 정해진 영화와 달리 게임 속 음악은 플레이어의 선택이 있기 전까지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헤일로 인피니트, 고로고아 속 음악을 작곡한 조엘 코렐리츠는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나는 영화 음악과 반복되는 구조의 게임 음악의 중간점을 찾고자 노력했다. 실제로 음악은 비교적 자유로운 내러티브 구조를 가진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감정을 북돋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
그렇게 많은 대회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하지만 마땅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얻는 트로피는 그저 나를 가두는 모래 산 같았다
독특한 아트 연출은 감성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역할도 하지만 미리암의 감정을 상징하는 요소기도 하다. 과거의 기억을 되짚는 지금의 미리암과 과거의 나는 같은 공간에서도 전혀 다른 그림체로 그려진다. 그것은 현실 위에서, 과거를 억지로 잊으려는 미리암의 오늘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내 모든 갈등을 털어놓고 미리암도 새로운 자신. 아니, 과거의 자신을 찾는다.
어쩌면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다른 이의 플레이 영상으로 게임을 대체할 수도 있다. 또 흔히 넣는 스포일러 주의 문구가 없는 것도 꽤 화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게임의 이야기는 디렉터 셸리 첸이 구현한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음악과 아트, 그리고 퍼즐과 추상적 요소들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걸 자신의 것으로 재해석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가 나를 찾아오든 그렇지 않든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어린 네가 행복했으면 했어
그리고 언제나 품에 안을 수 있는 엄마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지금 이 순간처럼 영원히 행복하길
하지만 엄마는 어린 나만을 사랑한 건 아니었다
언제나 나를 위해 말했다
내가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
...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네가 행복했으면 했어
그리고 언제나 품에 안을 수 있는 엄마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 그 품에서 떠나지 않고 영원히 엄마를 안아주길 바랐어
나는 어린 네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행복하길 바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