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귀엽고 여전히 매콤한 90년대 느낌 그대로


무녀 캐릭터라고 하면 어떤 캐릭터가 떠오르시나요. 이거다 싶은 캐릭터를 꼽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굳이 골라야 한다면 아마 대부분은 동방 프로젝트의 주인공 하쿠레이 레이무를 꼽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적을 날리면서 요괴를 퇴치하는, 어떻게 보면 스탠다드한 무녀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하쿠레이 레이무에 앞서 90년대 게이머들에게 무녀라는 캐릭터를 각인시킨 캐릭터가 있습니다. 당시 게임 좀 해봤다 하는 게이머라면 다들 그 캐릭터를 알 겁니다. 에잇! 에잇! 거리는 기합과 함께 부적을 던지고 불제봉을 휘둘러 요괴를 때리고, 때로는 동료를 던져서 무기로 쓰는 무녀 사요(小夜)입니다.

▲ 게임으로 만난 최초의 무녀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기괴계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90년대 게임 속 무녀 캐릭터라고 하면 바로 그 캐릭터라고 할 정도로 유명했죠. 그만큼 시리즈 역시 많은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특히 슈퍼 패미컴으로 나온 '기기괴계 수수께끼의 검은 망토'는 그래픽은 물론이고 전투 시스템 등 사실상 시리즈를 정립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게임의 인기와는 별개로 이후 기기괴계 시리즈는 1994년 '기기괴계 월야초자'를 끝으로 아쉽게도 막을 내립니다. 원작의 개발사인 타이토가 PS2로 '기기괴계2'를 개발 중이었으나 스퀘어에닉스와의 합병과 타이토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정신없던 상황에서 결국 빛을 보지 못하고 개발이 중단되고 말았죠. 이제 와 하는 이야기지만, 여러모로 기존의 시리즈와는 다른 모습이었기에 과연 출시됐어도 흥행이 됐을까 싶기는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기기괴계 시리즈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잊혀갔습니다. 무녀 캐릭터의 아이콘 역시 사요에서 하쿠레이 레이무로 넘어갔죠. 그러던 기기괴계 시리즈가 지난 2020년, 무려 26년 만에 부활을 알렸습니다. '기기괴계 월야초자'를 개발한 나츠메아타리가 직접 신작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의 개발 소식을 알린 거죠. 그리고 2년이 지나서 지난 4월 21일, 마침내 정식 출시됐습니다. 개발 중단된 '기기괴계2'와 달리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원작의 테이스트를 그대로 살린 레트로 그래픽이 특징입니다. 비주얼과 시스템 전반에 걸쳐서 원작 시리즈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져온 모습이죠.

달라진 게 있다면 그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의 나이입니다. 90년대 코흘리개였던 게이머들은 이제 30대의 게이머가 됐습니다. 눈을 간지럽히는 화려한 그래픽과 영화를 방불케 하는 연출에 익숙한 게이머들이죠. 과연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추억의 게임에 불과한 걸까요. 아니면 기기괴계 시리즈의 새로운 미래를 그릴만한 게임일까요. 이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게임명: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
장르명: 액션
출시일: 2022.04.21.
리뷰판: 1.0.0
개발사: 나츠메아타리
서비스: 나츠메아타리
플랫폼: PS4, 닌텐도 스위치
플레이: 닌텐도 스위치

관련 링크: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 오픈크리틱 페이지



리메이크 관점에서의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1992년 슈퍼 패미컴으로 출시된 '기기괴계 수수께끼의 검은 망토'를 리메이크한 정식 후속작입니다. 즉, 이 게임은 리메이크라는 관점에서 한 번, 그리고 후속작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총 두 번에 걸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리메이크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죠. 리메이크라고 하지만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기본적인 콘셉트는 유지하되 게임의 시스템을 새롭게 뜯어고치는 그런 리메이크와는 궤가 다릅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래픽 리메이크에 가까운 모습이죠. 원작의 시스템은 물론이고 그래픽까지. 원작 특유의 분위기를 최대한 유지하되 최신 게임에 어울리도록 개선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최신 게임에 어울리도록 개선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얼핏 보면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28년이란 세월의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게임입니다. '기기괴계 수수께끼의 검은 망토', '기기괴계 월야초자'랑 붙여놓으면 약간의 텀을 두고 출시한 신작으로만 보일 뿐이죠. 세 게임 모두 픽셀 아트라고 불리는, 16비트 그래픽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 1992년 출시된 원작의 테이스트를 최대한 유지한 게 특징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게임의 그래픽이 구식이라거나 발전이 없다는 그런 의미인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경우는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에게 있어선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죠. 이 게임은 28년 만의 신작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그래픽이 아예 달랐다면 어땠을까요. 최신 2D 게임처럼 부드러운 그래픽이었다면 말이죠. 대부분은 아예 다른 게임으로 여겼을지 모릅니다. 원작을 아는 게이머들이었다면 '이건 기기괴계가 아니야!' 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다소 투박하게 보이는 픽셀 아트를 선택한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습니다. 시리즈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걸 그래픽을 통해 보여준 거죠.

더욱이 큰 발전이 없어 보이는 그래픽이지만, 세세하게 보면 발전한 부분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다소 예스럽고 투박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한층 부드러워진 애니메이션 덕분에 전체적인 디테일은 향상된 게 대표적이죠.

▲ 정적인 컷신이지만, 이마저도 어딘가 정취가 느껴집니다

이는 전체적인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픽의 경우 원작의 픽셀 아트 스타일을 유지하는 한편, 전체적으로 다듬어진 느낌이라고 한 것처럼 게임 시스템 역시 원작의 요소를 최대한 유지하고자 한 모습입니다. 슬라이딩부터 탄막을 튕겨내는 휘두르기, 그리고 휘두르기 버튼을 모아서 발동시키는 제령 모으기까지.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물론, 앞서 그래픽에 대해서 얘기한 것처럼 아예 변화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도 했죠. 공격승화, 그리고 녹색의 새로운 파워업 구슬의 추가 등이 대표적입니다.

원작과 비교해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적들이 전체적으로 공격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런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게이머들에게도 새로운 무기가 추가된 셈이죠. 공격 버튼을 연타해서 발동하는 공격승화는 일종의 특수능력으로, 캐릭터마다 달라서 색다른 재미를 안겨줍니다.



예를 들어 사요의 경우 자신의 공격을 적에게 튕기는 거울을 소환해 원래라면 적과 직선으로 마주 봐야 했던 것에서 좀 더 다양한 각도로 적을 공격할 수 있으며, 마누케는 부하들을 소환해 특정 위치로 방향을 고정하면서 자유롭게, 그리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파워업 구슬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속성이 추가된 것에 더해 한계돌파가 추가된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최대 파워업 상태에서 동일 속성의 구슬을 또 먹으면 일정 시간 한계돌파 상태가 되는데, 이때에는 한층 강렬한 손맛을 안겨줍니다.


정리하자면, 리메이크 관점에서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전체적으로 원작을 존중하되 다방면으로 발전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 역시 투박하게 보이는 픽셀 아트임에도 섬세하게 다듬어진 부분이 있으며, 전투 시스템 역시 한층 깊어진 느낌이죠.



후속작 관점에서의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


그렇다면 후속작 관점에서 볼 때는 어떨까요. 리메이크이면서 후속작이란 게 얼핏 이상하기도 하지만,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닙니다. 실제로 스토리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게임의 스토리는 원작이자 전작인 '기기괴계 수수께끼의 검은 망토'의 바로 직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요괴들이 붙잡아간 칠복신을 구하고 흑막이었던 검은 망토를 사요가 쓰러뜨린 이후를 말이죠.

그럼에도 처음에는 단순 리메이크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2스테이지까지는 원작인 '기기괴계 수수께끼의 검은 망토'와 똑같은 것도 사실이니까요. 스테이지의 배경, 레벨 디자인, 어떤 적들이 등장하는지와 보스에 이르기까지. 단순 리메이크로만 보입니다. 물론, 이런 느낌은 3스테이지부터 사라지지만요. 게임의 스토리는 3스테이지로 접어들면서 단숨에 바뀌게 됩니다. 분명 쓰러뜨렸을 검은 망토가 재등장하고 본격적인 오리지널 스토리가 펼쳐지죠.


이후 스토리에서는 스테이지에 따라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바뀌면서 진행됩니다. 주로 사요로 진행되지만, 간간이 마누케나 아마노우즈메, 그리고 호타루 고젠에 이르기까지. 개성적인 캐릭터들로 바뀌면서 진행되어 지루할 틈을 주질 않습니다. 여기에 더해 후속작인 만큼, 색다른 시도를 한 점 역시 눈에 띄고 말이죠. 캐릭터와 관련한 색다른 시도로는 호타루 고젠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후속작이라고 하면 전작의 특징을 유지하는 한편, 전작과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특징이 있어야 하죠.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그러한 시도로 새로운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그중에서도 호타루 고젠은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독특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죠. 바로, 근거리 위주의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뭔가를 날리던 기존 캐릭터들과 달리 호타루 고젠의 기본 공격은 창으로 찌르는 게 전부입니다. 파워업을 해도 범위가 조금 더 늘어날 뿐이기에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기 쉽지 않죠. 공격승화를 쓰면 활을 쏘기도 하지만 다소 불편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처럼 얼핏 보기엔 단점만 가득한 캐릭터로 보이지만, 대신 휘두르기 성능이 압도적으로 강력한 게 특징입니다. 다른 캐릭터보다 더 넓은 범위를 커버하기에 적의 공격을 한결 편하게 튕겨낼 수 있죠.


다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작과 차별화된 큰 변화라고 하기엔 다소 부실하기 때문이죠. 슈퍼 패미컴 시절 후속작이었던 '기기괴계 월야초자'랑 비교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체력 시스템에 큰 변화가 생겼을 뿐 아니라 상점 시스템과 동료를 집어 던져서 무기로 쓰는 독창적인 시스템 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리메이크 요소가 발목을 잡은 것 같습니다. 스토리의 경우 전작과 이어지는 새로운 스토리이기에 확실히 후속작이란 걸 알 수 있으니 시스템의 경우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고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기도 했으나 소소한 변화에 그친 모습이죠.

▲ 좋게 말하면 익숙하고, 나쁘게 말하면 큰 변화가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정리할 시간이 왔습니다.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리메이크 관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한 게임입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작이자 전작이랄 수 있는 '기기괴계 수수께끼의 검은 망토'는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에 출시된 게임입니다. 그러한 원작의 테이스트를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고루하지 않도록 픽셀 아트 그래픽부터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다듬었습니다. 몇몇 실망스러운 리마스터, 리메이크와 달리 그저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기만 한 그런 게임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후속작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다소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리메이크이자 후속작. 이 양립하기 어려운 요소로 인해 일종의 제한이 걸린 모습입니다.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기도 했으나 시스템적인 발전이 적기에 큰 변화를 느끼기 어려운 것이죠. 후속작인 만큼, 전작과 차별화된 시스템을 선보여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겁니다.

물론, 마냥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개발사가 취한 최선의 선택이지 않나 싶기도 하기 때문이죠. 게임의 통일성은 중요합니다. 더욱이 시리즈 게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죠. 그럴진대 28년 만의 후속작이라면 말할 것도 없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이나 시스템 전반에 걸쳐서 말이죠.

결론을 내리자면 '기기괴계 검은 망토의 수수께끼'는 다소 아쉬운 점도 있지만, 원작 시리즈를 즐겼던 게이머들에게 있어선 선물 같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자는 물론이고 친구나 가족과 즐기기도 좋은 만큼, 레트로 게임에 관심이 있는 게이머라면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