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아크의 신규 대륙 '엘가시아' 반응이 뜨겁다. 정말 방대한 분량의 스토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벌써 연출이 유명한 '베른 남부' 지역을 뛰어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많은 컷씬과 텍스트, 디테일 등은 엘가시아에 많은 공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3년 동안 로스트아크를 즐겨왔던 모험가라면 반가울 법한 장면이 여럿 있다. 스킵하지 않고 스토리 전체를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 엘가시아 메인 퀘스트와 향후 로스트아크에 대한 중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메인 퀘스트를 진행중이라면 주의 부탁드립니다.


▣ '역대급'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메인 스토리

이번 로스트아크의 신대륙 '엘가시아'의 메인 퀘스트 라인은 로스트아크 스토리 중에서도 역대급이라는 평이 벌써 나오고 있다. 기존에 좋은 평가를 받았던 메인 퀘스트인 '페이튼', '베른 남부'보다도 볼륨, 연출 면에서 많은 공이 들어간 것이 보이며, 분량도 스킵 플레이 시 3시간 내외, 제대로 감상 시 4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로 방대하다.

3년간 쌓아온 로스트아크의 스토리를 '마무리하는' 구간의 스토리로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는 평이다. 엘가시아 대륙의 스토리 라인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아크라시아의 비밀과 이를 둘러싼 신과 피조물의 대립, 질서와 혼돈, 운명의 선택 등 큰 주제를 잘 담아냈으며, 중간중간 전투 장면을 적절히 투입, 긴 플레이 시간에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는 평이 많다.

이번 스토리는 특히나 연출에 공을 들여 역대 대륙 중 가장 많은 수의 컷씬이 들어가 있으며, 구도나 장면 등도 신경을 쓴 듯한 부분이 많다. 아만을 클로즈업하며 페트라니아의 과거로 넘어가는 장면이나, 신의 비밀을 이야기하는 카마인의 클로즈업 연출 등은 기존 스토리 연출에서는 보기 힘든 구도, 연출로 엔진이나 시스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한 흔적이 보였다.

로스트아크의 팬이라면 전율을 느낄만한 장면이 많은 것도 장점이다. 오픈 베타부터 3년여간 이어져 온 '아크를 찾아서' 퀘스트가 완료되는 장면이나, 역시 3년 만에 모험가와 대면하는 아만, 로스트아크 로고로 시작해 '로스트아크'로 마무리되는 연출, '표류 소녀 엠마'까지 수많은 NPC 모이는 장면 등 베른 남부 이상으로 '치트키'에 가까운 연출이 다수 등장한다. 로스트아크의 팬이라면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러모로 개발사의 '진심'이 들어간 연출이라는 평가가 많다.


▲ '로스트아크' 로고로 시작해 '로스트아크'로 끝나는 연출도 의미심장하다

▲ 음악과 구도, 연출 모두 훌륭했던 엘가시아 후반부

▲ 인상적인 연출이 돋보인 아만의 회상 장면


4시간가량의 분량이 충분한 만큼 스토리텔링 면에서도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악역 '라우리엘'의 행동 이유나 각종 인물들의 갈등, 선택의 무게와 '신탁'이 라제니스들에게 가지는 의미 등이 공감이 갈 수 있도록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로웬' 스토리가 스토리 외부적으로는 당위성이 있었지만, 인물들에게 몰입할 충분한 스토리가 없었기에 '다르시'나 '오스피어'의 행동이 돌발 행동처럼 느껴진 것과 달리, '니나브'의 각성이나 희생을 자처한 악역 라우리엘의 계획은 모두 설득력이 있게 다가왔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후반 부분의 대사 싱크 문제나, 각종 버그, 엔진 한계로 느껴지는 아쉬운 모션 등은 이전부터 있었던 문제다. 그러나 엘가시아처럼 이야기의 스케일 커지고 컷씬이 다양해지면서 점점 큰 단점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편, 긴 스토리 분량으로 다양한 연출과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한 것은 좋지만, 스토리를 스킵하는 모험가나 많은 서브 캐릭터를 카양겔까지 올려야 하는 입장에서는 3시간에 달하는 스토리가 부담된다는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 사실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는 평이 많다. '기막힌 반전'은 분명 존재했지만, 전조 퀘스트에서 카단이 말한 것처럼 '진실'을 모두 보여주진 않았다. 스토리의 진정한 결말은 '어둠 군단장 카멘'에 가서야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두 명의 군단장과 '플레체'를 포함한 수많은 스토리 대륙이 남은 만큼, 엘가시아의 스토리는 '베른 남부'처럼 후반 지역을 위한 가교 구실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 이상할정도로 표정이 풍부한 카마인

▲ 현재는 고쳐졌지만 대머리 아저씨(?)가 등장하는 버그도 있었다

▲ 로스트아크의 팬이라면 누구나 전율할 퀘스트 완료 장면

▲ 아만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도 벌써 3년 만이다

▲ 표류 소녀 엠마도 챙겨주는 등 서비스도 확실하다



▣ 후기 : 엘가시아 스토리의 의미는? '운명에 저항하는 영웅의 이야기'

이번 엘가시아 스토리는 로스트아크의 전체적인 세계관과 주신 '루페온'의 의도, 그리고 모험가의 앞에 펼쳐진 운명에 대한 단서 등 다양한 의문들이 해소되었고, 또 새로운 '떡밥'이 대거 추가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로스트아크의 스토리는 '선'에 해당하는 질서 '악'에 해당하는 혼돈의 대립으로 그려지고 있었지만, 엘가시아 스토리의 추가로 해당 내용이 반쯤 부정되었으며, 주신 루페온에 대한 다양한 의문이 생겼다.

아래 내용은 엘가시아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추측이며, 공식적인 내용은 아니니 주의 바란다. 스토리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규율 '루페온'

'언어란 생각의 감옥이다'라는 말은 제법 유명한 이야기다. 미국인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와 그의 제자 벤저민 리워프가 주장한 '사피어·워프 가설'이다. 엘가시아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쪽지 내용에는 실제 사피어가 주장했던 무지개에 대한 예시가 등장한다. 코니로 바뀌긴 했지만, '사람들은 무지개를 보고 일곱 개의 색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일곱 개의 색이 있기 때문에 무지개의 색을 알게 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무지개로 색을 파악하기 이전에, 언어라는 체계가 먼저 작용해 무지개를 일곱 개의 색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사고를 제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명예의 신 프로키온이 신의 벌을 받아 '언어'를 잃었다는 부분은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카키오스에 따르면, 프로키온과 그의 언어는 본질(루페온)을 가리는 쓸모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재밌게도 이야기의 화자인 '아카키오스'는 신학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함께 존재할 수 없으며 신성 아니면 인성, 둘 중 하나만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친 인물이기도 하다.

아카키오스의 이런 생각은 라제니스와 꿈꾸지 않는 자들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낙원'이란, 루페온의 규율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는 루페온의 신탁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라제니스와 엘가시아의 비유이기도 하지만, 대우주 오르페우스와 아크라시아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크의 계승자가 운명(새장)에 순응하는 한, 아크라시아 세계는 안전한 낙원이다. 시즌2의 제목 '꿈꾸지 않는 자들의 낙원'이란, 운명에 순응하여 루페온의 권능 아래 움직이는 대우주 오르페우스의 법칙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 라제니스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명예란 무엇인가' 쪽지

▲ 프로키온 신은 아크 찬탈의 책임을 지고 '언어'를 잃어버리는 벌을 받는다


-희망이자 희생인 아크, 혼돈, 질서를 모두 손에 넣으려 하는 루페온

'꿈꾸지 않는 자들'의 모습은 엘가시아 곳곳에서 발견된다. 루페온의 신탁을 믿으며 일상을 계속하는 라제니스들의 모습과, 현재 질서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라제니스의 검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엘가시아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들이 굳게 믿었던 '본질'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전조 퀘스트에서 카단이 했던 대사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처럼, 희망을 의미했던 아크는 '희생'으로, 라제니스들의 '낙원'은 새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라제니스들이 굳게 믿고 있던 루페온 신의 신탁은 모두 거짓이었으며, "신은 거기에 없었다"

오히려 루페온 신은 아크의 한계를 깨닫고 아크라시아를 떠나 있는 상태였으며, 카마인에 따르면 그는 '혼돈, 질서 모든 힘을 손에 넣으려 한' 악으로까지 묘사된다. 실제로 루페온 신의 부재로 인해 아크라시아는 혼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라제니스의 지도자 라우리엘을 굳게 믿고 끝까지 그를 따라 모험가의 앞을 가로막은 '티엔'은 마지막의 순간 절망하고 만다. 그가 평생을 믿어왔던 신탁과 라제니스의 구원이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티엔은 망설인다. 신탁은 곧 빛이며, 본질이어야 하는데 그 본질이 '텅 비어 있다'. 그는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선택'을 내리지 못한다. 이는 라우리엘이 본 수많은 미래에서 라제니스가 배반자로 찍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티엔은 자신의 운명을 '라우리엘'에게 의탁했다. 라제니스는 창조주 프로키온을 버리고 종족의 운명을 루페온의 신탁에 의존했다. 티엔이 마지막 순간까지 움직이지 못했던 것은 '꿈꾸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인 셈이다.


▲ 주시자 베아트리스 또한 어떤 선택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선택 : 신에게 반기를 들다

그런 의미에서 '선택'은 엘가시아 스토리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개인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선택이며, 선택은 인간이 가진 유일한 권리 중 하나다. 지금까지는 '아크'를 쫓아 맹목적인 여행을 해왔던 모험가도, 카단의 앞에서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며 자신의 선택을 내린다. 선택을 통해 새장에 갇힌 존재들이 '루페온의 규율'을 깬다.

엘가시아 스토리에서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다. '라우리엘'은 종족의 미래를 위해 라제니스 전체를 속이고 엘가시아를 (겉으로는)멸망시킬 계획을 꾸민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선택은 라제니스의 창조주 '프로키온'을 개입시키기 위함이었다. 라우리엘 자신은 소멸하지만, 이 선택으로 프로키온이 주신을 거역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며, 엘가시아 또한 존속하게 된다. 본질을 흐릴 뿐인 '명예'의 신 프로키온이, 아이러니하게도 라제니스가 그토록 바란 구원을 이륙한 셈이다.

니나브의 선택도 이와 비슷하다. 무적에 가까운 힘을 얻은 라우리엘을 상대하기 위해, 라제니스 종족을 지키기 위해 활을 빼 든다. 니나브는 주인공 모험가와 비슷하게 '모두를 지키겠다'며 스스로의 선택을 내린다. 이 결정과 함께 날개가 솟아오르는 듯한 연출이 보여지는데, 스스로 내린 '선택'으로 인해 라제니스의 운명이 변화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엘가시아의 주요 인물들은 '선택'을 내리며 변화를 만들어 낸다. 주인공 모험가 또한 '모두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며 스스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선택'은 루페온이 예정해둔 우주의 법칙도 거스를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모험가는 에버그레이스에게 '운명을 개척했다'며 지금까지의 모험으로 존재의 증명을 받는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아크의 계승자인 모험가는 아직 마지막 선택을 내리지 않았다. '희생'이라는 아크의 힘, 그리고 아크를 모을 마지막 열쇠 '로스트아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루페온과 질서가 결코 선하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 밝혀진 지금, 주인공이 아크의 힘을 이용해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남은 스토리에 달렸다. 엘가시아 이후가 주목되는 이유다.


▲ '티엔'과 달리 니나브는 선택을 내린다

▲ 라우리엘은 자신의 선택으로 라제니스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