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사무라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이들을 베어넘기며 살아왔다.
남자의 칼에는 그들의 원한 어린 피가 덮이고, 그가 짊어진 죽음이라는 죄는 점점 쌓였다.
하지만 남자는 정작 그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트랙 투 요미, '황천으로의 여정'. 황천의 끝을 향해 가는 한 사무라이의 여정을 그려낸 게임이다. 묵직한 흑백의 영상과 소름 끼치는 음악, 차분한 성우의 연기가 더해지며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한 편의 사무라이 드라마가 완성됐다.

게임명: 트랙 투 요미
장르명: 액션 / 어드벤처
출시일: 2022. 5. 5.
리뷰판: 리뷰 빌드
개발사: Leonard Menchiari, 플라잉 와일드 호그
서비스: 디볼버 디지털
플랫폼: PC / XBOX / PS
플레이: PC

관련 링크: '트랙 투 요미' 오픈크리틱 페이지


흑과 백으로 그려낸 묵직함


트랙 투 요미는 게임의 시작부터 그 마지막까지, 고전 흑백 영화의 감성을 완벽하게 살려냈다. 영화와 같은 게임이 아니라, 정말 영화를 게임 속으로 끌어온 느낌이 강하다. 가끔 노이즈가 너무 심하게 들어가서 암부가 잘 보이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할 때도 있지만 흑백 영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정말 잘 표현해냈다.

엄밀히 말해서 게임의 그래픽 퀄리티 자체가 매우 좋다고는 빈말로도 할 수 없다. 클로즈업 장면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의 텍스쳐는 투박하며, 세밀하고 섬세한 실사와 같은 그래픽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명암의 활용, 모든 이동과 전투, 컷신이 하나로 이어지는 카메라 워크, 적절히 뿌려낸 노이즈로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버렸다.


특히 트랙 투 요미는 흑백이라는 색조를 참 잘 사용했다. 아니, 그냥 잘 사용한 게 아니라 뛰어나게 활용했다. 사실 흑백은 특유의 묵직하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있지만 정작 그 분위기를 표현해내는 것은 어렵다.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 있고, 또 자칫하면 단순해질 수 있으며, 또 자칫하다가는 그저 낡아 보일 수 있어서다.

색이 없기에 빛으로 많은 것을 그려내야 하고, 설명해야 한다. 오로지 명과 암의 경계와 그 움직임을 통해 시각적인 만족도를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트랙 투 요미는 빛과 시야, 텍스쳐 등을 활용한 여러 시각적 연출을 통해 섬세하면서도 고전적이지만 세련된 흑백의 세계를 표현해냈다. 불이 일렁이는 실내에서 창 너머로 비치는 그림자를 통해 전투를 보여준다거나, 배경이나 구조물에 떨어지는 빛을 캐릭터의 시점에 따라 아주 부드럽게 이동시킨다.


특히 명암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해 분명 흑과 백으로만 칠해져 있는 모든 배경의 분위기를 완전히 다르게 표현해냈다. 그레이스케일임에도 색이 보인달까.

불에 타는 마을은 생생하게, 울창하지만 거대한 숲은 짙게, 황천으로 가는 길에 마주한 역병의 공간은 검고 눅진하게, 황천의 공간은 진정한 흑과 백의 느낌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게임을 끝내고 나면 그 모든 공간이 흑백이었음에도 색을 입었던 것처럼 떠오른다.




진짜 영화적인 '시야'의 연출

보통 게임에서의 영화적 연출이라 하면 대부분 컷신의 완성도, 게임과 컷신의 자연스러운 연결 등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플레이어블 구간에서는 어쨌든 '게임'인 만큼 조작의 재미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트랙 투 요미는 조금 다르다. 모든 시야적 연출을 마치 영화처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카메라 워크다. 영화적 연출을 위해서 카메라워크 하나하나에 엄청나게 신경을 쓴 점이 게임을 하다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달까.


가장 큰 건 시야의 움직임이다. 캐릭터를 중심으로 시야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배경의 움직임이 다르다. 즉,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주변 배경을 확인하는 게 아니다. 이미 그려져 있는 배경을 중심으로 그 안에 캐릭터가 들어가서 움직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분명 3인칭 시점의 게임을 진행한다는 느낌보다는 완전히 제3자의 입장에서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감상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고 모든 시야가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캐릭터의 이동에 따라 배경의 각도가 또 따로 움직이는 경우도 꽤 많다. 하나의 장면이 있고, 그 장면 안에서 캐릭터가 움직이며, 그 장면이 종료되면 캐릭터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의 카메라 워크,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시야의 움직임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반드시 사이드뷰로 진행되는 전투 상황의 시야 역시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다르게 그려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은 건 시야를 길게 빼서 마치 롱테이크샷처럼 한 번의 긴 호흡 동안 전투의 이어짐을 보여주는 연출이다. 장면 장면이 분할되어 보이는 중에 등장하는 긴 롱테이크샷은 게임임에도 정말 강한 임팩트로 다가온다.

이는 흑백의 색조와 어우러져 정말 '극적'인 시각적 연출을 이끌어낸다. 단순히 컷신이 영화와 같은 게임이 아니라 정말 영화적인 연출 속에 게임 요소가 포함된 느낌이랄까.


물론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너무 장면별 카메라 워크에 집착하다보니 정작 이동이라는 게임의 기본적인 조작이 방해받는 경우도 다수 있고, 롱테이크로 이어지는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전투 시 시점이 너무 과도하게 줌아웃 되는 경우도 있다.

가끔 캐릭터가 어디 있는지 찾기 힘들거나 길이 어디인지도 헷갈릴 정도다. 뭐랄까 장면 연출에 너무 심혈을 기울인 것이 오히려 게임의 기본적인 흐름을 방해하는 결과도 어느 정도 가져왔다고 보면 될 듯하다.

본격적으로 요미를 향하는 순간부터 게임은 참 기괴한 분위기를 흘린다. 분명 복수를 위해 달려가는 사무라이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것이, 묘하게 일본식 공포물의 느낌을 함께 준달까. 소름 끼치는 효과음과 등골을 쭈뼛하게 만드는 배경음악, 여기에 '흑백'이라는 요소가 합쳐진 결과다.




영상미에 비해 평범한 게임 요소

다만 트랙 투 요미는 분명 액션 게임이다. 아무리 영상미가, 연출이 뛰어나더라도 액션이라는 요소가 그 이상으로 살아나야 한다. 얼마나 전투를 다이나믹하게, 혹은 어렵게, 혹은 강렬하게 잘 조합해냈느냐가 참 중요하다.

전투 자체는 꽤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했다. 당장 공격 및 방어 콤보, 보조무기처럼 여러 조작 요소가 준비되어 있으며, 전투 시 소모되는 기력이 존재하기에 칼을 꺼내는 순간부터 다시 검집에 넣기까지를 마치 하나의 턴처럼 활용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기력은 전투를 조금 덜 단조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기력이 넉넉한 편은 아니기에 그냥 무작정 방어와 공격을 반복하기보다는 치고 빠지기식으로 전투를 진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적이 하나라면 그냥 적당히 달려가서 막고 공격하면 되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한 호흡에 달려드는 적이 많아지기에 체력과 기력 관리를 꽤 긴장해서 해야 한다.


아쉬운 건 이런저런 콤보 조작이 정말 많지만 정작 전투 상황에서 모두 사용하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내 공격이 빠른 만큼 적의 공격도 아주 빠르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워낙 전투 자체의 호흡이 급박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공격 조작 위주로 사용하게 된달까.

적을 기절시키지 않는 이상 공격을 한두 번 하고 나면 거리를 벌려 다시 공격할 틈을 찾는 식으로 전투를 진행해야 한다. 또한 후반부로 가면 양쪽에서 다수의 적이 몰려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일단 피격당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대부분의 기력이 방어적인 부분에 소모되곤 한다.

즉, 공격이 참 다양하게 있음에도 그 모든 콤보를 사용해보기에는 전투 자체가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고 보면 된다. 결국 상황에 따라 콤보보다는 그때그때 공격 및 방어 조작들을 섞어 쓰는 것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그 다양함을 실질적으로 막 느끼긴 힘든 편이다.


또한 분명 전투가 후반으로 갈수록 어려워지긴 어려워지는데, 이게 좀 애매하다. 적들의 공격적 난이도가 높아져서가 아니라 단순히 한 호흡에 등장하는 적의 수가 많아지고 바로 발견할 수 있던 체크포인트 역할의 신사는 점점 등장 주기가 길어지기에 오는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반복적인 전투 흐름만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당황스럽지만, 콤보나 조작의 다양성을 느끼고자 한다면 오히려 난이도를 낮춰서 진행하는 게 더 낫다. 가장 낮은 난이도에서는 몇 번 정도는 맞더라도 체력적 부담이 크게 없기에 좀 더 공격적인 측면에 집중할 수 있어서다. 반대로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적의 공격은 참 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에 맞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결국 방어나 회피에 집중하다 보면 공격 콤보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물론 한 명의 적과 긴 호흡의 전투를 진행하는 보스전의 경우는 다른 이야기다. 적의 패턴을 파악해야 하며, 특히 몇몇 보스는 쳐내기나 막기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기에 구르기를 통한 회피를 본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야말로 적의 공격과 공격 사이 틈을 캐치해 빠르게 치고 빠져야 한달까.

일반 전투와 보스전의 흐름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반 전투가 너무나 단조롭고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데 비해, 보스전은 다양한 공격 및 방어 콤보를 모두 활용하며 흥미로운 전투를 진행할 수 있다. 아쉬운 건 보스전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게임의 속도감은 아주 시원시원하다. 일단 전투 자체가 정말 한 호흡에 쭉 진행된다고 해도 될 정도로 빠른 편이다. 한 장면에서 적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그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다음 장면이 이어지며, 이후에는 또다시 전투가 진행된다.

심지어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조차 빠르다. 로딩이 없기에 그냥 죽으면 다시 달려들어 가서 적을 난도질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죽는 게 그닥 두렵지 않다. 게임의 이름이 왜 황천으로의 여정인지 알 것 같달까. 열심히 막고 휘두르고 공격하다 죽으면 다시 뛰어들어가면 그만이다. 마치 죽음이라는 불을 향해 뛰어들어가는 불나방 같다.

여튼, 트랙 투 요미는 플레이타임 내내 장면의 전환과 함께 전투가 이어지고, 스토리가 진행되고, 전투가 이어지고, 시점이 변경되는 등 매우 빠르게 게임이 진행되는 편이다.


문제는 이 빠른 속도감이 잦은 전투와 함께 게임의 피로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분명 엔딩까지 필요한 시간이 크게 길지는 않은데, 워낙 전투가 잦고 그 호흡이 빠르다 보니 단시간 플레이만으로도 몇 배를 잡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게임을 한 번에 몇 시간씩 할 필요는 없기에 단점이라고 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다. 다만 배경 전체에 깔려있는 노이즈, 지속적으로 변경되는 시야, 연달아 이어지는 전투 등이 게임을 오래 붙잡고 있기 힘들게 만든다. 특히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맞지 않는' 전투에 점점 더 신경을 써야 하다 보니 더욱 그런 편이다.


타격감은 정말 영상미와 더불어 이 게임의 특장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을 휘둘러서 적을 벤다는 느낌이 패드 너머로 느껴질 정도로 매우 뛰어나다. 적의 공격을 쳐내거나 막는 것 역시 칼과 칼이 맞닿는 쇠붙이의 날 선 소리를 통해 차지게 잘 표현했다.

반복되는 조작의 전투가 크게 지겹다고 느껴지지 않는 건 바로 이 뛰어난 타격감 덕분이다. 잘 갈아진 날카로운 칼이 뭔가를 베고 찌르는 것을 강렬한 사운드 효과를 통해 각각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보조 무기들 또한 활, 수리검, 대통까지 그 특징을 나름 잘 살려낸 편이다. 가장 빠르게 쏠 수 있으며 공격을 막아내는 수리검, 적당한 속도와 적당한 대미지의 활, 준비 과정과 공격 후 딜레이가 길지만 한 방이 강력한 대통 등 각 장단점이 확실하게 있다.


하지만 영화적 연출을 강조한 영상미에 모든 걸 쏟아부어서일까, 트랙 투 요미의 게임 요소는 너무나 평범하고 단순하다. 빠른 호흡의 전투는 그 자체론 흥미롭지만 큰 변화 없이 반복되며, 수집의 매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때문에 분명 스토리의 분기가 있음에도 반복 플레이를 하고자하는 욕구를 크게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중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퍼즐 요소는 그저 단순히 글자 맞추기 정도에 그치고, 탐험은 그저 수집품을 숨겨놓기 위해 겉핥기식으로 들어가 있을 뿐이다.




이 게임은 분명 참 잔인하다. 적을 베든 내가 베이든 한 번의 맞섬마다 피가 튀어 오르고, 적의 목을 베어버리거나 찌르는 등 칼의 움직임에는 자비가 없다. 마을에는 시체와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온 곳에는 그들의 피가 뿌려져 있다.

하지만 색이 없기에, 흑백이라는 색조를 활용했기에 전혀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은 고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묵직하게 다가올 뿐이다. 복수를 위해 수라의 길을 걸어가는 사무라이의 이야기라니 스토리마저 참 고전적이다.

트랙 투 요미는 그 어떤 색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멋들어진 영상미를 게임 속에 그려냈다. 비록 영상미만큼의 다양한 게임적 즐거움을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그 영상미만으로도 한 번쯤 플레이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평소 흑백 영화 혹은 괴이하고 고전적인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