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파로 플레이하는 게임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뇌파로 직접 캐릭터를 조작하는 게임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찌보면 90년대 후반 게임판타지의 태동기부터 그런 이미지가 쭉 이어져왔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러다보니 뇌파로 플레이하는 게임은 아직 시기상조거나, 혹은 먼미래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러나 플레이엑스포 현장에서 참가한 BCI 게임, '튜로'는 좀 달랐습니다. 뇌파를 활용하는 게임인데,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뇌파로 캐릭터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컨트롤을 보조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었죠. 캐릭터 자체는 키보드와 마우스로 움직이되, 그 움직임을 더 다양하게 하기 위해서 집중력으로 게이지를 올리는, 말 그대로 '두뇌'를 보조로 쓰는 그런 게임이었습니다.

일단 게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물을 무서워해서 다른 거북이에게 따돌림 당하는 거북이 '튜로'의 이야기를 다룬 게임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 튜로가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다양한 세션으로 나누어서 그려낸 작품이죠.

게임플레이 방식은 전형적인 3D 플랫포머로 진행됩니다. WASD로 움직이고, 스페이스바로 점프, 마우스 좌클릭으로 공격을 하는 아주 간단한 플레이 방식이죠.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뇌파 장비를 장착하고 이마쪽에 달린 센서를 통해 전두엽에서 나오는 뇌파 신호를 감지, 유저의 집중력을 게임에 반영한다는 점이죠.

▲ '뇌파'라 하니 머리만 쓰는 게임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기본 컨트롤은 여타 플랫포머와 동일합니다

▲ "훗, 간단해보이잖아?"라고 생각했지만...잠시 후에 공개됩니다

유저의 집중력 척도는 화면 좌측 하단에 있는 게이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게이지가 50% 이상이어야 '튜로'가 점프나 달리기, 공격을 할 때 소모하는 '액션 포인트'가 충전됩니다. 액션 포인트가 0이 되면 걷는 것 외에 어떤 행동도 불가능하고, 수치가 낮으면 점프력이 낮아지죠. 반대로 액션 포인트 수치가 높으면 더 높이 뛰거나 빠르게 달릴 수도 있죠.

얼핏 설명만 들으면 정말 간단한 게임이지만, 막상 게임을 해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다보면 당혹스럽습니다. 나는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캐릭터를 컨트롤하고 있는데, 실제로 하다보면 집중력 수치가 쭉쭉 내려가기 때문이죠. 그래도 별 일 없이 평화로운 오솔길이 이어져서 안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버들이 나타나서 훅훅 스윙을 내지를 때마다 마치 공포 게임을 할 때처럼 비명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 뜨...아니 비버들의 베이비 베이비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지다니, 야잇 왜 공격이 안 되는 거야

▲ 아니 나는 분명 집중하고 있는데 왜 게이지가 안 올라가는 건가요

"아 왜 공격 안 돼! 아! 아! 집중! 집중!" 소리를 내지르긴 하지만, 당황해서 내지르는 비명으로는 집중력을 채우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죠. 일반 게임이었다면 현란하게 피했을 느릿느릿한 스윙에 쓰러져가는 거북이의 모습을 보노라면 분노와 짜증, 좌절감이 솟구칩니다. "내가 이렇게 집중을 못했나"하고 말이죠.

원래대로였다면 그냥 키를 누르고 마우스를 클릭하면 그만이고, 그랬다면 그냥 단순한 아동용 캐주얼 플랫포머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러나 '뇌파'와 '집중력'이라는 것이 들어간 순간, 그 과정 하나하나가 과장을 보태서 소울류 못지 않은 스릴 넘치는 액션으로 변합니다. 소울류는 적의 까다로운 패턴을 피하고 틈틈이 딜을 넣기 위해서 집중하는 거고, 이 게임은 어떤 동작 하나를 하기 위해서 정신을 날카롭게 세워야 한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속칭 빡집중을 하지 않고서는 아차 하는 순간에 바로 죽기 십상이었기 때문이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액션 포인트'는 어느 정도 축적을 해둘 수 있어서 한 단계를 클리어할 때까지 그 집중력을 무조건 풀로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잠시 쉬어가는 코너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뒤, 포인트를 최대한 충전한 상태에서 적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것이 가능했거든요.

▲ "가자가자 토마토 나무 버섯 물 오오 집중력 좋아 잘 되고 있..." 방심하는 순간 게이지가 확 내려가니 주의

▲ 아까는 집중하는 법을 몰라서 졌지만 이번엔 다르다! "덤벼 덤벼 알랄라라라르랄라라랄" <- 실제로 한 말

물론 적을 처리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이 '튜로'는 플랫포머라 튜로의 앞길을 막는 갖가지 장애물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달리고 점프하는 것도 액션 포인트를 소모하니, 이동하는 거 하나하나도 집중력을 어느 정도 유지해서 가야만 하죠.

더군다나 '튜로'는 물을 무서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질겁을 하는 거북이입니다. 물에 조금 닿는다고 별 일 없겠지라고 생각했다가 어느 새 쓰러져서 저 먼 체크포인트에서 다시 그 지점까지 와야 하니, 한시라도 방심할 수 없죠. 그외에도 길을 가로막은 돌을 다 치우고 진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돌이 다 옮겨질 때까지 집중력 수치를 유지하는 등, 여러 가지 기믹들도 이번 시연 단계에서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으아닛차 개발자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물 좀 묻었다고 죽다니!!!

▲ 두 번은 안 속는다 집중력 최대로! 짜잇! 신뢰의 도약!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집중력을 안 올리면 뛰질 못하는 걸

사실 일반적인 플랫포머 측면에서 보면 '튜로'는 지극히 단순한 기본기만 갖춘 게임입니다. 적의 공격도 단순하고, 점프점프로 넘어가는 구간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니까요. 오브젝트나 기믹도 그렇고요. 그런데 그 동작 하나하나를 하기 위해 '집중력'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고, 그걸 '뇌파'로 측정을 하니 이야기가 전혀 달라졌습니다.

앞서 소울류로 비유하긴 했는데, 그보다는 아마 항아리 게임이라 불리는 베넷 포디의 게팅 오버 잇에 좀 더 적합하지 않나 싶습니다. 게임 방식은 정말 간단한데 조금이라도 까딱 실수하면 처음부터 가야 하고, 또 자기가 집중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끈을 놓치면 쭉 미끄러져서 좀 오랫동안 숨을 고른 다음에 다시 플레이해야 했으니까요.

▲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이코키네시스다 "아랴랴랴랴랴랴랴랴랴랴랴랴랼랴랼"...다시 들으니 넘나 부끄러운 것

물론 체크포인트나 액션 포인트 등, 스트레스를 경감하기 위한 수단은 있지만 그간 게임하면서 써왔던 '손'이 아닌, 여태까지 제대로 쓴 적이 없던 '뇌파'를 쓰는 것이다보니 상당히 피로하긴 합니다. 거기다가 나는 집중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집중력 수치가 계속 낮게 나오면 허무하기도 하죠. 내가 이렇게 집중력이 안 좋았나 싶어서 잡념의 굴레에 빠지는 건 덤입니다.

그렇지만 그걸 넘어서, 자신이 집중하는 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게임이 확실히 달라집니다. 항아리 게임을 쭉쭉 올라갈 때 같은 그런 쾌감이 있다고 할까요?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집중을 할 수 있나도, 어느 정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기도 합니다. 집중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경우에 따라 좀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이 간단한 게임 하나로 그만큼 몰입하는 경험을 줬다는 점은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아무래도 뇌파 센서가 필요한 게임이다보니, 현 단계에서 일반 유저들이 접하기엔 다소 낯선 게임이긴 합니다. 개발사에서도 BCI가 소형화되고 상용화됐지만, 아직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다보니 기존에 뇌파 센서를 사용하는 치매 센터 등에 먼저 보급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고요.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B2C, 즉 일반 유저들도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고 또 유저들이 집중력 수치를 경쟁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도 고려하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서로 컨트롤이 아닌 집중력을 두고 경쟁을 벌일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치열한 접전에서 이긴 뒤 "너 집중력은 이 정도밖에 안 돼?"라고 티배깅하는 건 덤이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