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따르면, 정말 살 수 있는 겁니까?"

블랙앵커 스튜디오의 '비포 더 던'은 SRPG에 생존과 성향 등 다양한 변수가 접목된 게임이다. 게임의 배경은 끝나지 않는 일식으로 인해 태양이 사라져버린 중세다. 단, 일반적인 일식과는 다르다. 끝나지 않는 일식만으로도 큰 문제건만, 뒤이어 발생한 역병은 세상을 지옥으로 바꿔버렸다.


드라마 '킹덤'에서 죽은 자들을 되살리고, 산 사람을 공격하게 만들던 생사역처럼 '비포 더 던'에서의 역병 또한 죽은 자들을 산 사람의 살점을 탐하는 괴물로 되살린다. 그로 인해 게임 속 세상은 지옥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생존자끼리 힘을 모아서 괴물에 맞서도 모자란 상황임에도 생존자들은 얼마 안 남은 식량을 두고 서로 반목한다. 이러한 암울한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신성한 유물을 성지로 운반하는 역할을 맡은 기사로 본격적인 세상을 구하기 위한 일말의 희망을 품고 여정에 나서게 된다.

▲ 동료들은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유일한 희망을 품고 성지로 향한다

'비포 더 던'은 전략(Strategy), 생존, 그리고 성향.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SRPG를 표방하는 게임은 많지만, 실상 전략이 극대화된 SRPG는 적다. 다소 무리하게 플레이해도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포 더 던'은 다르다. 게임 속 캐릭터들은 약하다. 그리고 그들의 여정을 가로막는 역귀들은 대부분 위협적이며, 수도 많다. 무턱대고 돌진하고 일점사하는 방식으로 플레이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플레이 내내 역귀의 시선을 확인하고 매 턴, 매 순간을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한다.

▲ 장애물을 세워서 역귀를 못 오게 한 후 안전하게 공격할 수도 있다

무턱대고 조작했다가 역귀에게 들키게 되면 역귀는 곧장 다가오는데 이때 유닛과 이웃하게 되면 '붙잡힘' 상태가 된다. 이때 조심해야 할 건 붙잡힌 아군을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움직이면 역귀에게 공격을 받기 때문에 일단 대상이 된 역귀를 처치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역귀의 수가 많아질 경우다. 정면에서 공격하면 명중률이 떨어지기에 옆이나 뒤에서 공격하는 게 유리한데, 역귀가 많으면 너도나도 붙잡힐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무의미한 소모전으로 치닫게 되기에 플레이어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다행인 점은 하나같이 위협적인 대신 역귀들은 짐승에 가깝다는 점이다. 아군 캐릭터가 눈에 띄지 않으면 주변을 어슬렁거릴 뿐 아니라 돌멩이를 던지면 그 소리를 듣고 몰려온다. 이를 통해 역귀를 아군 쪽으로 유인한다거나 안전하게 멀리 떼어놓을 수도 있다.

▲ 역귀에게 붙잡히면 해당 역귀와 붉은 선으로 연결된다

플레이어가 유리한 상황으로 전투를 이끄는 것 외에도 전략적인 요소는 또 있다. 바로 무기 내구도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비포 더 던'에서의 아이템은 유한한 것뿐이다. 활은 쏠 때마다 화살이 들며, 무기는 쓸 때마다 내구도가 단다. 그렇기에 무작정 모든 적을 처치하기보다는 효율적으로 게임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수리도구로 내구도를 다시 올릴 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얼마 없기에 무기를 바꿔가면서 전투를 최소화한 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적은 경험치요 돈인 다른 게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 상황에 따라 다양한 장비를 바꿔가며 쓰도록 하자

물론, 그렇다고 전투를 무작정 피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모여든 역귀들로 인해 입구가 막힐 수도 있다. 이때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했다간 오히려 피로나 허기 같은 안 좋은 디버프를 얻을 수도 있는 만큼, 전투할지 말지를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전투가 끝나고 안심할 순 없다. '비포 더 던'은 전투가 끝난다고 체력이 회복된다거나 하지 않는다. 힘든 전투를 끝내고 캠프에 돌아왔다면 다음을 대비해야 한다. 이전 전투에서 맵을 돌아다니면서 모은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고 배식하는 한편, 내구도가 떨어진 장비를 고치거나 더 좋은 장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 과정 역시 순탄치만은 않다. 재료는 한없이 부족한데 반해, 동료들이 원하는 건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가뜩이나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과가 먹고 싶다거나 빵밖에 없는데 죽이 먹고 싶다는 등 욕망을 가감 없이 표출한다. 원하는 음식을 주지 못하면 허기는 해결할지언정 만족도가 떨어져 향후 악영향을 끼친다.

▲ 동료들의 멘탈을 관리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그래도 그나마 음식을 줄 수 있다면 나은 편이다. 음식을 주지 못하면 허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 결과, 캐릭터의 능력치가 저하된다. 이번 턴에 적을 죽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향후 전투의 향방이 결정되는 '비포 더 던'에 있어서 이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플레이어를 시험하는 다양한 선택지는 '비포 더 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선택을 마주한다. 누군가를 도울지 혹은 돕지 않을지. 약이 필요한 NPC를 위해 약을 구할지 아니면 마찬가지로 약이 필요한 아군을 위해 쓸지. 단순하지만 쉽게 할 수 없는 이러한 선택에 따라 아군의 반응은 저마다 달라진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기에 돕지 말자고 하는 동료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그래도 약자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하는 동료도 있다. 문제는 둘 모두가 만족하는 선택은 없다는 것이다. 캐릭터마다 성향이 다르기에 사실상 모든 캐릭터의 만족도를 100%로 관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회복 아이템을 써야 할까? 쓰지 말아야 할까? 선택은 플레이어에게 달렸다

보통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만, 계속 그러다 보면 소수 인원의 불만은 쌓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명령을 듣지 않는다거나 광분 상태에 빠져 아군을 공격하는 돌발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모두의 만족도를 100%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아군의 만족도를 높은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 상태가 안 좋으면 적의 공격에 이른바 '멘붕'에 빠지기도 한다

플레이엑스포 현장에서 체험해본 '비포 더 던'은 여러모로 독창적인 SRPG라고 할 만했다. 전략과 생존, 그리고 선택에 따른 동료들 간의 갈등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각기 떼어놓고 봐도 제법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을 뿐 아니라 이를 '비포 더 던'이라는 이름 아래 깔끔하게 하나로 엮었다. 따로 떼어놓기보다는 함께 했을 때 더욱 매력적인 요소들로 말이다. 실제로 데모 버전을 하면서 매 턴, 매 순간 누구를 얼마나 이동할지 어떤 무기를 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정도다.

▲ 적이 멀리 있다면 투척무기를 써보자

물론, 호불호가 갈린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착실히 동료들의 관계를 신경 쓰고 조심스럽게 진행했는데 전략적인 판단 실수로 아끼던 동료가 죽거나 그대로 게임오버가 된다면 제아무리 취향인 게이머라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결론을 내리자면 '비포 더 던'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취향인 게이머라면 푹 빠질만한 게임이다. 아직 하지 못한 게이머가 있다면 플레이엑스포 현장에서 블랙앵커 스튜디오 부스에서 한번 체험해보길 바란다. 매력적인 픽셀 아트와 더욱 매력적인 시스템이 반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