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게임에 눈길이 간 건 정교한 그래픽 때문이었다. 실사급의 그래픽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아이소매트릭 뷰의 도트 그래픽. 인디 게임계에선 흔하다면 흔한 스타일이다. 그러나 플레이엑스포 현장에서 만난 '림: 영혼의 항아리'는 흔할지언정 그래픽마저 흔한 게임은 아니었다. 어딘지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3D배경에 2D캐릭터들이란 조합은 자칫 잘못하면 어색하게 느껴졌을 법도 하건만 어색한 데 하나 없이 잘 녹아든 모습이었다.

그래픽이 시선을 잡아끌었다면 게임 플레이는 일종의 확신을 안겨줬다. 올려오는 적들을 다양한 스킬로 호쾌하게 쓸어버리는 모습에 이 부스를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 대박이 날지 모를 인디 게임계에서 이 게임이 왠지 그런 게임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이프문의 형제 대표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 형제는 어떻게 게임 개발의 업을 짊어지게 됐을까.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프문 문종호 프로그래머, 문종식 아티스트 (좌측부터)


Q. 졸업작품에서 시작한 팀, 스타트업 개발사 등은 자주 만났는데 친형제 팀은 처음 본 것 같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문종호 : 이프문의 메인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문종호라고 한다. 이프문은 알다시피 친형제로 구성된 팀이다. 그래서 팀명도 성씨인 문(Moon)에서 따와서 지었다. 형제끼리 하다 보니 누가 대표라고 할 건 없고 둘 다 대표로서 열심히 하고 있다. 다만, 잘하는 영역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내가 메인 프로그래머이며, 동생은 메인 아티스트로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게임의 완성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Q. 형제끼리 "우리 함께 좋은 게임을 만들어보자!" 하고 마음을 모아서 팀을 만든 건가.

문종호 : 아니다(웃음). 나는 원래 게임 업계가 아닌 평범한 회사의 프로그래머였다. 7~8년 정도 일해왔고 동생은 예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스스로 만들기보다는 아티스트로서 외주 작업을 주로 해왔었다. 둘 다 게임은 좋아했지만, 우리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동생이 게임을 만들겠다고 한 게 계기였다. 처음에는 동생 혼자서 만들었는데 알다시피 프로그래밍이란 게 모르면 진짜 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지 않나.

그래서 동생이 나한테 물어보거나 하는 게 많았다. 이건 어떻게 만드는지 이건 어떤 기능인지 그런 걸 조언해주고 도와주고 하다 보니까 게임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됐고 어느 순간 기획에도 참여하게 됐더라. 그러다 보니 단순히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나도 함께하고 싶어져서 회사를 퇴사하고 둘이서 이프문 법인을 설립하고 첫 번째 게임인 '림: 영혼의 항아리'를 만들게 됐다.



Q. 잘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게임을 만든다는 것에 부담은 없었나.

문종호 : 왜 없었겠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는 거여서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워낙에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고 좀 더 늦으면 이런 시도도 못 할 것 같아서 내 인생 마지막 도전이라는 느낌으로 시도하게 됐다.

근데 아무래도 부모님은 좀 안 좋게 보신 것 같다. 농담이지만, 동생한테 형을 나쁜 길에 빠지게 했다고 뭐라 하시더라(웃음). 처음에는 그러셨는데 우리 게임이 스마일게이트멤버십에 선정됐을 뿐 아니라 작년에는 경기게임오디션에서 탑10 안에 들고 무대에서 발표하는 등 하나둘 대외적인 성과를 내고 활동하는 걸 보시더니 지금은 이왕 하는 거 잘 해보라고 응원해주시고 있다.


Q. '림: 영혼의 항아리'를 개발한 계기는 뭔가.

문종호 : 둘 다 '디아블로2'를 엄청 즐겼다. 지금도 중세 판타지를 배경으로 악마가 나오는 그런 류의 핵앤슬래시 장르가 취향이다. 디아블로 외에도 그런 풍의 게임을 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획도 우리의 취향이 반영하는 쪽으로 가게 됐다. 처음에는 PC 게임이 목표였는데 2명이서는 한계가 명확해서 대신에 우리가 좋아하는 핵앤슬래시의 속도감, 호쾌한 타격감 등을 느낄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을 만들자고 결론을 내리고 여기에 로그라이트 요소를 넣어서 '림: 영혼의 항아리'를 개발하게 됐다.



Q.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어딘지 '뱀파이어 서바이버즈'와 유사한 느낌이다.

문종호 : 안 그래도 '뱀파이어 서바이버즈'와 비슷하다는 얘기를 현장에서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로그라이트에서 레벨업을 할 때 선택지를 주고 성장하는 게임은 많다. 예를 들어 '궁수의 전설'도 레벨업을 하면 스킬을 선택하고 원하는 특정 스킬을 강화하는 식이지 않나. '림: 영혼의 항아리'도 그런 로그라이트 요소를 넣은 건데 '뱀파이어 서바이버즈'가 대박이 터트려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이런 시스템을 보시면 자연스럽게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를 떠올리시는 것 같다.

다만, 우리 게임은 이런 레벨업할 때 스킬을 선택하는 것 외에도 스킬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아이템이 있어서 아이템을 파밍함에 따라서 더 많은 조합이 나오는 등의 차별점이 있다.

아무튼 좀 당혹스럽긴 하지만, 사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란 게 없지 않나.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진 않고 있다.

▲ 스킬과 아이템에 의한 다양한 조합과 변수가 '림: 영혼의 항아리'의 핵심이다


Q. 작업기를 보니 2019년경에는 횡스크롤 액션 방식이었는데 왜 바꾸게 됐나.

문종식 : 그때는 아직 형이 본격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혼자서 개발했을 때여서 많이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일종의 과도기적 단계나 프로토타입이랄까. 형이 참여하고 본격적으로 함께 기획하면서 횡스크롤은 핵앤슬래시의 시원하고 호쾌한 느낌을 살리기 힘들다고 결론이 나와서 아이소매트릭 시점인 지금의 형태가 됐다.

▲ 초창기 버전의 '림: 영혼의 항아리'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이었다


Q. 정확히 언제부터 개발한 건가.

문종식 : 세계관 자체는 2017년도부터 짜놨다. 근데 이건 진짜 말 그대로 구상만 그렇고. 본격적으로 컨셉아트를 시작으로 개발하게 된 건 2019년도부터다. 혼자서 시작했는데 그해 8월부터 형이 참여해서 본격적으로 개발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Q. 그러고 보니 부스에 걸린 그림들이 김범 아티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문종식 : 아트를 전공했는데 롤모델이 바로 김범 아티스트였다. 그래서 롤모델로 삼고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닮게 되더라. 근데 최근에는 게임을 개발하면서 도트 위주로 작업하고 형을 도와서 프로그래밍을 하다 보니 요 3년 정도는 제대로 그림을 그리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도 최근에 플레이엑스포 전시를 준비하면서 다시 그려봤는데 여전히 재미있더라. 그래서 당장 게임에 필요한 작업들이 끝나면 그다음에는 캐릭터들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그런 그림들을 그리고 싶다.




Q. 워낙 아트 실력이 좋아서 그런지 다른 스타일이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픽셀 아트 스타일로 만든 이유가 있나.

문종식 : 처음에는 혼자서 간단한 게임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픽셀 아트를 선택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고 도트를 찍는 실력도 늘어나더라. 그러다 형이 함께하게 됐는데 인디 게임들을 보면 트렌드라고 해야 할까. 도트 감성이 담긴 게임이 꽤 많았다. 평도 좋았고. 그래서 한창 익숙해지기도 했던 상황이어서 픽셀 아트를 선택하게 됐다.


Q. 아티스트라고 하면 고집이란 게 있지 않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다른 픽셀 아트와 다른 '림: 영혼의 항아리'만의 외적인 차이가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나.

문종식 : 보통 픽셀 아트라고 하면 배경이랑 캐릭터가 2D로 통일된 형태인데 '림: 영혼의 항아리'는 배경은 3D지만, 캐릭터들은 전부 2D다. 잘못하면 어색할 수도 있는데 이 둘의 간극을 최소화해서 어색하지 않도록 녹여낸 것. 그게 '림: 영혼의 항아리'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Q. 배경에 그려진 캐릭터들은 NPC인가? 나름 중요한 캐릭터들 같은데.

문종호 : 다른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다. 캐릭터별로 특징이 다르다. 예를 들어 소환에 특화된 캐릭터의 경우 소환 스킬을 처음부터 갖고 있다든가 똑같은 소환 스킬이지만, 좀 더 강화된 소환수를 부린다든가 하는 식의 차이가 있다. 비슷한 예로 총을 든 캐릭터는 원거리 투사 스킬을 강화하는 식이다.

▲ 향후 다양한 직업의 캐릭터들이 추가될 예정이다


Q. 현재 얼마나 개발한 상태인가.

문종호 : 항상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70% 정도 완성된 상태라고 한다. 근데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어느 정도 데모 빌드가 나온 상태여서 대부분 여쭤보면 60~70% 정도 완성된 상태라고들 답하시더라. 그리고 우리가 처음이다 보니까 명확한 수치를 답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렇게 알아주시면 좋겠고 올해 말 출시가 목표다.


Q. 비슷한 스타일의 로그라이트와 비교해서 차별점은 뭔가.

문종호 : 다양한 아이템으로 인한 조합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림: 영혼의 항아리'에서 아이템은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다. 스킬과 조합하는 핵심 요소다. 그래서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그리고 어떤 스킬을 강화했는지를 고려하고 아이템을 파밍하고 조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평타 스타일이 좋다면 근접전에 유리한 스킬과 공속을 빠르게 하는 아이템, 가시 피해라고 해서 내가 대미지를 입으면 적도 대미지를 입는 아이템이나 피흡 아이템 위주로 파밍하는 식이다.

근데 이런 것도 어느 정도 기준이 있어야 결정하기 편하지 않나. 그래서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마을에서 아이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는 랜덤으로 이를 통해 매번 새로운 재미와 조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Q. 로그라이트라고 하면 그래도 남는 게 있을 텐데 어떤 건가.

문종호 : 최종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그때까지 올린 레벨과 얻은 아이템, 스킬 레벨을 정산해서 특수한 재화인 영혼을 얻게 되는데 이렇게 얻은 영혼은 로비인 마을에서 각종 요소를 해금하는 데 쓰인다. 해금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스킬 해금으로 스킬을 해금하면 레벨업을 할 때 선택하는 스킬에 새로운 스킬이 추가된다. 두 번째는 영구 성장 요소로 공격력이나 방어력 같은 1차원적인 스탯과 달리 소환수의 능력을 원거리로 바꾼다든가 하는 등의 성장 요소를 해금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캐릭터 해금이다. 지금은 캐릭터가 하나뿐인데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여러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중 일부는 영혼으로 해금할 수 있다.



Q. 스테이지는 몇 개 정도나 되나?

문종호 : 출시 단계에서는 5~6개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후 패치나 업데이트를 통해서 더 추가할 예정이다.


Q.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떻던가.

문종호 : 대부분 재미있게 즐겨주셔서 다행인 것 같다. 재미없다면 그냥 잠깐 하고 가실 텐데, 보스까지 다 잡고 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아, 근데 앞서 말한 것처럼 '뱀파이어 서바이버즈'가 떠오른다는 분들도 있었다. 특히 퍼블리셔 관계자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아무래도 몰려오는 성장 요소나 몰려오는 적을 처치한다거나 그런 부분이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Q. 아이템과 스킬은 총 몇 개가 들어갈 예정인가.

문종호 : 현재 스킬은 20개 정도 되고 아이템은 6~70개 정도다. 세트 아이템도 있는데 대부분 2~3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세트 아이템은 단일 아이템으로는 성능이 낮지만, 세트를 갖추게 되면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Q. 끝으로 플레이엑스포에 온 소감을 듣고 싶다.

문종호 : 이런 행사에 부스를 낸 게 처음이다. 그래서 다른 부스를 보면 이벤트도 많이 준비하고 그랬는데 우리는 좀 미흡한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와서 다른 분들이 플레이하는 걸 보니까 어떻게 개발하고 수정해야 할지 그런 부분이 보이는 것 같다. 플레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피드백이 된달까. 그리고 인터뷰도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하게 돼서 신선하다. 그런 점에서 보람찬 행사가 될 것 같다. 이번 행사에서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더욱 게임의 완성도를 올리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