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게임과 관련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것으로 '밥상 뒤집기'라는 게 있다. 개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음에도 재미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예 처음부터 다시 개발하는 그런 걸 의미한다. 개발자로서는 눈물이 날 정도로 화가 날 수도 있는 일이건만, 닌텐도에서 밥상 뒤집기를 당한 게임들은 이런 개발자들의 불만이 무색하게도 이른바 명작, 마스터피스가 되곤 했다.

갑자기 닌텐도의 밥상 뒤집기를 말하는 이유로는 '비포 더 던' 역시 비슷했기 때문이다. 무려 3번이나 밥상 뒤집기를 단행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없어서. 그리고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스럽게 이번 네 번째 빌드는 그들이 목표한 대로 제대로 만들어진 것 같다. 순조롭게 개발이 이어졌고 올해 플레이엑스포 현장에 출품 가능한 빌드까지 나왔다.

만족할만 하건만 블랙앵커 스튜디오의 정극민 대표가 보기엔 '비포 더 던'은 여전히 아쉬운 점투성이인 것 같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뻐한다 건만 그는 '비포 더 던'은 현재 6.5점짜리 게임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물론, 그의 냉정한 평가는 어찌 보면 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시장은 냉정하다. 개발자인 그가 판단한 것보다 더 냉정하게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자신이 보기에 8점에서 9점은 되어야 출시할만하다고 말하는 정극민 대표다.

그렇다면 '비포 더 던'이 9점짜리 게임이 되기 위해선 앞으로 어떤 점들을 해결해야 할까. 플레이엑스포 현장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블랙앵커 스튜디오 정극민 대표


Q. 작년에 플레이엑스포가 부득이하게 취소되지 않았나. 오랜만에 오프라인 행사인 만큼, 반가울 것 같다.

정말 좋다. 아무래도 우리끼리 개발할 때는 즐겁긴 한데 뭐라고 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도 있었다. 제대로 만들고 있는 걸까? 유저들도 정말 재미있어하는 걸까? 이런 걸 알 방도가 없었다. 온라인에서 피드백을 주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좋은 말들을 해주시는 편이고 해서 좀 더 생생한 반응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행사장에 부스를 내니 그런 부분들이 정말 좋다. 직접 피드백을 전달하지 않아도 뒤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부분이 미흡했구나, 우리가 생각한 대로 즐겨주시는구나 이런 식으로 파악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고 있다.


Q. 그러고 보니 작년에 네 번째 빌드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 빌드는 이제 더 엎을 걱정은 없는 건가.

아마 그렇지 않을까. 나부터도 더이상 안 엎었으면 좋겠다(웃음). 나라고 좋아서 엎는 건 아니다. 어떻게 해야 더 재미있는 게임이 될까 고민하다 보니 시스템 단에서 싹 뜯어고쳐야 하는 그런 경우가 있어서 세 차례나 프로젝트를 엎게 됐다. 일단 이번 네 번째 빌드는 지금까지의 빌드 중에서도 가장 만족스러워서 더이상 안 엎길 바라고 있다.



Q. 가장 만족스럽다는 건 이대로만 개발하면 10점 만점의 게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건가.

그게 목표지만, 지금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우리끼리 정말 냉정하게 봐서 현재 '비포 더 던'은 재미로 치자면 10점 만점에 6.5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적어도 8점, 목표로는 9점 이상의 게임이 되는 거지만, 이게 참 어렵다.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 게임이 4점짜리라고 해보자. 이걸 6점으로 만드는 건 사실 쉽다. 4점이라는 건 사실 근본적인 부분에서 시스템이나 이런 게 잘 갖춰지지 않았다는 얘기여서 기본만 해도 6점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6점에서 8점이 되는 건 같은 2점이지만, 차원이 다르다. 인디 게임은 그 2점을 올리기가 정말 어렵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히려 AAA급 게임들은 쉬운 편이라고 생각한다. 뭐라고 해야 할까. 평범한데 그래픽이나 연출로 그런 걸 커버하는 식이다. 그런데 인디 게임은 연출로 그런 걸 커버할 수 없지 않나. 게임 본연의 재미를 살릴 수밖에 없다. 그래야 인디 게임임에도 유저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포 더 던'도 마찬가지다. 아까 우리가 정말 냉정하게 평가했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유저들의 평가는 더 냉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 기준으로 9점은 되어야 유저 입장에서 8점짜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해야 2점을 더 올릴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Q. 2점을 더 올리기 위해선 본연의 재미를 살릴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비포 더 던'은 어떻게 그 재미를 살릴 생각인가.

팀원들과 함께 고민 중인 부분인데 일단 비용적인 걸 생각 안 한다면 방법은 많다. 예를 들자면 팀원들도 다들 좋아하고 우리 게임과 흡사한 게임으로 '엑스컴'을 들 수 있는데 '엑스컴'을 보면 외계인을 상대로 다양한 전략을 펼칠 수 있지 않나. 그런 걸 우리 콘셉트에 맞춰서 변형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렇게 해도 8점이 한계일 것 같다. 9점을 목표로 한다면 +1점이 더 필요한데 성향 시스템으로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 D&D 기반의 CRPG를 보면 선택지가 다양했는데 최근 SRPG를 보면 그런 다양한 선택지를 녹여낸 게임이 적어졌다. 그래서 '비포 더 던'이 과거 CRPG에서의 선택지가 가진 그 감성을 가져올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우리 게임에 어울리도록 만들어야 해서 고민 중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전략성을 높이는 것과 선택지에 따른 내러티브의 가치를 높이는 것. 이 둘이 '비포 더 던'이 가진 재미의 핵심이 될 것 같은데, 가끔은 전략성과 내러티브가 충돌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이 둘을 잘 만드는 한편, 충돌하지 않도록 해결법만 찾으면 9점짜리 게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선택지의 경우 정답이 뻔한 그런 건 넣지 않을 생각이다. 예를 들어서 습격을 당하는 생존자를 구할지 말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엄청 약한 역귀가 나온다면 전부 다 구하는 선택을 하지 않겠나. 그래서 '비포 더 던'에서는 위험을 감내하는 선택이라고 하면 정말 위험하면서도 스토리에 위화감이 들지 않는 그런 형태가 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Q. 그러고 보니 새로운 요소로 유물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예전에는 좀 더 리얼한 걸 추구하지 않았나.

맞다. 그래서 원래는 안 넣으려고 했는데 플레이어가 정말 이 유물이 귀한 거라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냥 아무 능력도 없는 아이템이어서야 그런 걸 못 느끼지 않나. 그래서 약간의 변화를 줬다. 단, 지금의 유물 시스템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다. 일단 임시로 그렇게 만든 거여서 발동조건이라거나 효과, 성능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생각해야 할 게 많다.


Q. 전투 시스템의 경우 완성된 느낌인 반면, 캠프 시스템은 아직 미완성인 느낌이었다.

정확하게 파악했다. 전투는 어느 정도 우리가 의도한 형태대로 만들어졌는데 캠프 시스템은 아직 다듬어야 할 게 많다. 생존이라는 요소와 관련해서 지금은 좀 투박한 형태다. 앞으로 추가할 요소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캠프에서의 역할이 구분될 예정이다. 예를 들어 제작의 경우 사냥꾼은 활 같은 원거리 무기를, 대장장이는 금속 장비를 잘 다룬다거나 사냥꾼은 사냥을 보내서 음식이나 재료를 채집하게 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더 보강할 계획이다. 배식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뭔가 음식 그 자체가 귀한 상황인데도 투정을 부리지 않나. 약간 세계관이랑 안 맞는 느낌이어서 이 부분에서도 생존 요소를 더 리얼하게 녹여낼 생각이다.



Q. 배식에서 생존 요소를 더 리얼하게 녹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게임 내 배경이 사순절인데 그때는 금식해야 한다. 그런데 배고프면 싸울 수 없지 않나. 수녀와 수사는 독실해서 최대한 고기를 안 먹으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면 허기는 가시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안 좋은 영향을 받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리고 새로 추가될 캐릭터로 영주가 있는데 영주라는 점에서 예상했듯이 오만하고 배식할 때도 고기만 찾는다거나 해서 혈압을 상승시키는 그런 요소가 있다.


Q. 현재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인가.

60% 정도 완성된 상태다. 지금은 남은 40%를 어떻게 완성할지 고민 중인 단계다. 되돌아보니 딱 2년을 했더라. 그렇다는 건 앞으로 40%인 1.5년 정도만 더 열심히 하면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단순 계산이지만 개인적으로도 1년 반 이상을 더 개발하고 싶진 않다. 살짝 한두 달 더 개발할지도 모르지만, 넘겨도 2년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다.


Q.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면 펀딩으로 자금을 충당하는 한편, 게임을 알리는 창구로 쓰면 좋을 것 같은데.

작년에는 펀딩을 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아예 생각하지 않았는데, 질문한 대로 지금은 어느 정도 개발이 궤도에 오른 만큼 슬슬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좀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펀딩을 하고 몇 년이 넘도록 개발해서 펀딩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게임들이 있지 않나. 그래서 요즘은 펀딩을 하는데 조심스러운 분들도 많고 해서 일단 적어도 우리 게임은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여서 믿을만하다는 걸 보여줄 만한 빌드를 보여드릴 수 있어야 펀딩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 정도 수준이 됐다면 그때에는 펀딩을 할만하지 않을까 싶다. 대략적으로는 올해 3분기에서 4분기에는 펀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Q. 아까 유저들이 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피드백이 된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던가.

예를 들자면 우리가 생각하기엔 난도가 낮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유저분들이 하기엔 그렇지 않다던가 하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예의상 좋다고 하는 것과 정말 좋아하는 건 실제로 보면 어느 정도 알지 않나. 그런데 체험한 분들 가운데서는 정말 진심으로 좋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스타일의 게임이다 보니 그런 점에서 응원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모든 취향의 유저를 만족하게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게임이 취향인 유저분들에게는 최고의 게임이 되는 게 목표다.


Q. 인디 게임 중에서는 플레이타임 짧아서 아쉬운 게임들이 있던데 '비포 더 던'의 플레이타임은 어느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나.

현장에서 유저분들이 하는 걸 보는데 여관맵을 클리어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분들도 있더라. 뒤로 갈수록 난도가 높아지는 걸 고려하면 대체적으로 스테이지 하나를 클리어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계산하면 정식 출시 버전에는 16개의 스테이지를 넣는 게 목표인 만큼, 적어도 16시간, 길게는 20시간 정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Q. 여관맵이라고 하니 삽을 들면 무덤을 팔 수 있더라. 이런 상호작용 요소가 더 있나.

더 추가할 예정이다. 단, 그냥 마구잡이로 넣는 건 아니고 내러티브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넣으려고 한다. 예전 버전에서는 사다리가 있는데 역귀는 사다리를 타지 못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위에서 활을 쏜다거나 하는 식의 전략도 가능했다. 이런 걸 이번 행사가 끝나면 더 다듬어서 다음에 보여줄 생각이다.


Q. 아까 새로운 직업으로 영주가 추가됐다고 했는데 그 외에 새로운 직업이 더 있나.

플레이어블 캐릭터로는 영주랑 도둑이 추가됐고 그 외에 적으로 광신도 집단이 추가됐다. 일단 플레이어블 캐릭터 추가는 여기서 멈추고 NPC랑 적을 추가하는데 당분간은 더 집중할 생각이다.



Q. '비포 더 던'의 완성까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면.

첫 번째는 우리가 보기에 9점짜리 게임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략성과 내러티브 각각을 잘 만드는 한편,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우리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방법을 더 다듬어야 한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일단은 첫 번째 목표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튜토리얼이나 설명 이런 부분에 소홀했는데 이번에 시연하는 걸 보니 그런 부분이 미흡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두 가지를 달성했다면 나머지는 게임을 알리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때가 되면 펀딩이든 뭐든 다양한 방법을 통해 '비포 더 던'을 알릴 계획이다. 이번 행사가 끝나면, 피드백을 바탕으로 당분간은 게임을 더 다듬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호불호가 갈릴지도 모르지만, 취향이 맞는 유저분들에게는 최고의 게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많은 관심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