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 시리즈'에서는 급변하는 세태와 외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철학에 의거하여 우직하게 외길을 걷는 국내외 게임 개발사들을 만나봅니다.

이번에도 '동인 게임'의 하위 분류로 구분되며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일본의 인디 업계를 조명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나본 일본의 인디 개발자는 지극히 평범한 사슴의 이야기를 다룬 게임 '사아아아아슴 시뮬레이터'로 전세계의 인디 게임 팬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 지비에 게임즈(GibierGames)의 'NASPAPA' 아베 케이스케 대표입니다. 지금도 사슴 게임의 차기작을 준비하며 '사슴 외길(?)'을 걷고 있는 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전세계의 게이머에게 부담 없는 재미와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Q. 반갑습니다. 먼저 한국의 게임 유저들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개인 게임 개발자 'NASPAPA'라고 합니다. 대학생 때 유니티 모바일 게임 앱 개발을 독학으로 시작한 뒤, 퍼즐 게임 등 간단한 미니 게임을 만들며 개발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무작정 '사슴'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임인 '사아아아아슴 시뮬레이터(DEEER Simulator, 이하 사슴 시뮬레이터)'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고, 여기서 좋은 성과를 거둬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 지비에 게임즈의 대표이자 1인 개발자, 'NASPAPA' 아베 케이스케


Q. '지비에 게임즈'에서는 현재 어떤 게임을 만들고 있나요?

- 지비에 게임즈는 직원이 저 하나뿐인 개인 회사입니다. 예전엔 스마트폰 앱을 주로 개발했지만, 최근엔 사슴 시뮬레이터와 관련 콘텐츠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누구나 플레이할 수 있고,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서 실황 중계하기 쉬운 캐주얼한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Q. 1인 회사라면 개발자 이름을 내세워도 좋았을 것 같은데, '지비에 게임즈(Gibier Games)'라는 이름을 선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 회사를 차린 것은 주로 세금 문제로 법인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슴'이 나오는 게임을 계기로 만들게 된 회사니까, 사슴과 관련된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Gibier'는 사냥감을 뜻하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유래가 사슴고기에서 나왔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또 영어권에서는 Gibier라는 단어가 '게임'이라고도 불린다고 해서, 이 둘을 나열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이러한 사명을 만들게 됐습니다.


Q. 지금의 지비에 게임즈를 있게 해준 대표작, '사슴 시뮬레이터' 속 목이 늘어나는 사슴의 이미지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요?

- 처음에는 기린의 목을 뻗는 퍼즐 게임을 생각했습니다. 길이가 다른 나뭇조각을 옮기는 퍼즐의 변형으로 기린 버전을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이를 위해 기린의 3D 모델을 찾기 시작했는데, 귀여운 기린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사슴'으로 대용한 것이 사슴 시뮬레이터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사슴 모델의 에셋을 개조해서 목을 뻗을 수 있게 하면 마치 로프 액션처럼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이어졌고, 지금의 형태에 이르게 됩니다.



Q. 같은 장르의 비슷한 예시로 '염소 시뮬레이터'가 있죠. 해당 작품과 차별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 개발 당시에도 해당 부분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예를 들어 '염소 시뮬레이터' 속 염소는 항상 무적인데요. 사슴 시뮬레이터에서는 '체력' 개념을 추가하여 게임 오버가 발생할 수 있도록 하고, 더 극적인 연출을 위해 '보스전'을 넣는 등 시뮬레이션 게임보다 액션게임에 더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사슴이 거리를 엉망으로 만들면 경찰이 출동하고, 경찰을 포함하여 플레이어와 대적하는 적들이 모두 동물인 점도 차별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액션 게임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조된 '사슴 시뮬레이터'


Q. '사슴 시뮬레이터'는 크라우드 펀딩에서 크게 성공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당시 게임을 알리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특별한 '펀딩 성공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 트위터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트위터를 통해 개발 중인 게임의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어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하기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팔로워들이 많이 모여주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은 초반에 알려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므로 어느 정도 팔로워가 모여있는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목표를 달성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사슴 시뮬레이터의 경우 일본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캠프파이어(CAMPFIRE)'를 통해 진행했는데, 어느 정도 페이지를 완성한 단계에서 운영자에게 문의를 드렸더니, 매우 꼼꼼하게 여러 가지 조언을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 자신의 첫 번째 크라우드 펀딩 도전이라면, 모르는 것을 운영자에게 모두 문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할 때도 트위터에서의 홍보를 이어갔다

당시 배웠던 노하우로는 최상단의 소개 이미지에 문자를 넣는 것, 검색을 의식한 타이틀로 할 것, 그리고 펀딩 개시 시간은 가능하다면 월말, 20시에서 22시 사이로 할 것 등이 있습니다. 문자를 넣는 이유는 펀딩 페이지 내에 아무리 예쁜 이미지를 많이 넣었어도 최상단의 이미지만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시간을 특정하는 이유는 직장인 게이머들의 소비 심리가 느슨해지기 쉬운 월급날에 진입하기 위해서입니다.

개인적으로 신경을 많이 쓴 것은 '가격 설정' 부분입니다. 여유 있는 가격 설정을 하지 않으면 쉽게 적자가 되어버리므로, 스프레드 시트를 노려보며 후원자들이 아슬아슬하게 구매해줄 수 있을 법한 가격설정을 계속 검토했습니다. 이외에도 제가 크라우드 펀딩 당시에 했던 모든 과정과 노하우를 노트 사이트에 정리해두었으니, 현재 크라우드 펀딩을 준비하고 있다면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Q. '사슴 시뮬레이터'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다양한 패러디 요소가 삽입된 점이죠. 본인이 생각하기에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하는 게임 속 포인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 스포일러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저는 트루먼쇼라는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게임의 마지막 장면에 해당 영화 속 명장면의 패러디를 넣었습니다. 아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걸요?

▲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머독방송' 사슴 시뮬레이터 플레이 영상


Q.'1인 개발자'로서 자신의 게임을 정식으로 출시하기까지 어려운 일이 많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과 방법이 궁금합니다.

-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물리연산 관련 버그에 대응하는 과정이었죠. 저는 게임회사에 취직해본 적도 없는 초보 개발자였기에, 사슴의 움직임은 유니티 엔진의 에셋을 조합해서 개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버그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판명하기까지 항상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특히 물리연산과 관련된 버그는 그 정도가 심해서, 벽이 빠지거나 바닥이 뚫리는 일이 많았어요. 전세계의 유저들로부터 버그 리포트가 쏟아져 들어오는데, 관련 버그는 딱히 해석이 없어도 무슨 문제를 토로하고 있는지 알겠더라고요(쓴웃음). 다행인 것은 사슴 시뮬레이터가 원래부터 '병맛게임'으로 알려져서 그런 버그들로 크게 욕을 먹지는 않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만약 진지한 게임이었다면 정말 마음이 꺾일 정도로 상처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Q. 최근엔 한국의 리듬 게임 개발사 '케세라 게임즈'와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죠. 해당 콜라보는 어떻게 성사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해당 콜라보는 케세라 게임즈 측으로부터 요청이 와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유저분들 역시 만우절 농담으로 재미있게 즐겨주신 것 같아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물리연산 배틀 게임 '파이트 크랩'이나 , '아이 엠 브레드' 등 다른 게임들과도 콜라보를 진행해왔습니다.



Q. 올해 비트서밋, TGS 등 오프라인 게임 전시 행사에 참여할 계획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발표 내용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사슴 시뮬레이터의 퍼블리셔인 'Playism'에서 부스를 낸다면 그곳에서 '사슴 게임'을 만나보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새롭게 공개할 내용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Q. PS4와 닌텐도 스위치 버전 발매, 그리고 DLC인 'The Final Evolution of DEEER'까지 모두 발매를 마친 상황입니다. 평범한 사슴의 이야기는 이제 모두 끝난 건가요?

-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속 할 예정이 있어요. 이번엔 추가 DLC가 아닌, 차기작 형태로 발표할 계획입니다. 이번에도 이상한 동물들이 잔뜩 등장하는 게임으로 곧 공개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합니다!

▲ 사슴과 이상한 동물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예정



■ 현직 인디 개발자가 말하는 '일본 인디 게임 시장'의 현주소

Q. 한국에서 일본의 인디 게임은 '동인 게임'의 일종으로 분류되어 영향력이 크지 않은 모습입니다. 일본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는 한 명의 개발자로서, 일본 인디 시장은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시나요?

- 이것이 일본 한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인디 게임을 개발할 때 '팀을 이루는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물고, 대부분 오랜 시간에 걸쳐 개인이 모든 개발 작업을 다 수행하는 패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게임을 출시하더라도 홍보하는 것까지는 신경 쓰지 못하는 이들이 많고, 게임 개발만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매출보다 개인 취향, 재미를 추구하는 개발자가 많다는 인상이죠.

게임 개발로 생활을 유지하려는 개발자들은 주로 무료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여 광고 수입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인디게임 개발자'라고 부르지 않는 경향이 있죠. 일본에서는 스팀 같은 플랫폼, 혹은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개성적인 게임을 '인디 게임'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Q. 꽤 엄격한 구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인디 게임'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 일본에는 유튜버나 버튜버 등 게임 실황을 하는 이들이 많기에, 실황 방송에 적합한 게임이 확산이 빠르고, 잘 팔린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Getting Over it' 같은 게임이죠. 스트리머가 실패하는 순간이면 게임을 하는 이도, 보는 이도 누구나 함께 소리치게 되거든요(웃음). 사슴 게임도 실황하기 쉬운 게임을 목표로 개발했죠.

이외에도 '애니메이션의 나라'로 불리는 만큼, 캐릭터성이 살아있는 게임이 일본에서 성공하기 쉬울지도 모릅니다. 인디 개발사 에델바이스에서 제작한 '천수의 사쿠나히메'는 매력적인 캐릭터성과 쌀을 키운다는, 그야말로 인디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SNS에서 큰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 "방송 최적화 게임, 혹은 캐릭터가 매력적인 게임이 일본에서의 인디 성공 공식"


Q. 그렇다면 '한국의 인디 게임 시장'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한국의 인디 게임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주세요.

- 대부분 지인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는 인디 게임 개발이라고 하더라도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매니저의 3인 구성으로 팀을 이루는 곳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일본보다 더 비즈니스 성향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생각했죠. 이 이야기를 들은 것도 어느새 4년도 더 전이라, 혹시 틀렸다면 죄송합니다.

알고 있는 한국의 인디 게임이 많지는 않은데, '어비스리움'은 모바일 게임 수익화의 본보기를 보여준 작품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일본의 앱 개발자들 모두가 참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어비스리움'은 일본의 인디 개발자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Q. 인디 게임을 대충 만든 간단한 게임, 나아가 '쿠소게(クソゲー)'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죠. 이런 평가와 인식을 넘어 '명작'으로 기억되는 인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 해마다 재미있는 게임들이 계속 늘어나기만 하기 때문에, 더이상 보통 재미있는 게임으로는 누군가의 기억에 남기 어렵습니다. 정말 어려운 환경이죠. '명작'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게임들은 어느 부분에서도 특별한 결점이 없는 훌륭한 게임들뿐이므로, 소규모 인디 개발 환경에서 '명작'을 목표로 하는 것은 사실상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결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웃돌 수 있을 정도의 큰 매력을 최대한 담아낸다면, '인디 게임'으로서는 개인적으로 만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점을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말이죠. 이렇게 다른 게임들이 쫓아올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매력을 강조한 게임을 만든다면, 적어도 '쿠소게'라고 불릴 일은 없을 거에요. 스스로 말해놓고도 너무 뻔한 이야기라, 괜히 귀가 아파지는 이야기네요.


Q. 끝으로 한국의 인디 게임 개발자, 그리고 유저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한국의 인디 게임 개발자분들께. 항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인디 게임 개발 환경은 대부분 소규모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게임을 선보일 기회가 정말 적습니다. 하지만 유저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정말 중요하므로, 주변의 누군가에게 억지로라도 작품을 보여주고, 반응을 보는게 좋습니다. 저는 게임에 전혀 흥미가 없다고 말했던 한 지인의 의견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의 게이머 분들께는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인디 게임은 AAA급 게임보다 부족한 점이 많을 수 있지만 그 작품들 역시 적은 인원으로 최대한 노력해서 만든 작품일 터이니, 조금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