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3일, 첫 번째 군단장 '발탄' 출시 직후 이야기다. 당시에는 아직 3~4월 본격적인 로스트아크 붐이 오기 전인 상황으로, 첫 군단장 발탄으로 게임에 대한 반응이 점차 뜨거워지던 시기다. 금강선 디렉터와 스마일게이트는 정말 오랜만에 5개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승낙, 스마일게이트 RPG 본사에서 발탄 레이드와 관련한 짧은 인터뷰를 가질 수 있었다.

직접 만난 금강선 디렉터는 과거와 달리 상당히 노련한 인물이었다. 당시 큰 논란거리였던 발탄 하드 하향에 관한 질문을 정면으로 반박하거나, 일부 질문에서는 역질문을 던져 기자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분위기 자체는 화기애애했지만, 속으로는 진땀을 빼는 인터뷰가 끝난 후, 잠시 사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금찬호(?)의 투머치토크를 이때 겪을 수 있었는데, 에피소드 카단으로 시작해서 당시 개발 중이던 비아키스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정도였나면 2021년 1월 당시 업데이트까지 한참 남은 에피소드 카단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들을 수 있었고, 동석했던 유준수 기자가 화제를 돌리지 않았다면 카단의 정체 등 더 많은 이야기를 스포일러 당할 뻔했다.

눈을 반짝이며 스토리에 관해 이야기하던 디렉터를 보며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큰 인상은 바로 '진심'이었다. 이 사람은 진심으로 자신의 게임을 생각하고 있구나, 이런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 2021년 1월 23일 인터뷰 당시 금강선 디렉터
지면 문제로 기사에 사용하지 않은 사진이다

2022년 5월 13일, 금강선 전 총괄 디렉터가 디렉터 자리를 내려놓고 사임을 선언했다. 건강상의 문제다. 그가 그간 로드맵 발표나 인터뷰, 각종 대외 행사에서 로스트아크의 '얼굴'을 책임져온 만큼 갑작스러운 사임에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다.

그는 '엘가시아'를 포함해 로스트아크의 많은 부분을 직접 개발했고, 게임의 여러 위기 상황에서 솔직한 소통 능력으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과오는 있을망정 현재의 로스트아크를 만드는 데 그의 업적이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이용자와 개발사 간의 갈등이 '트럭 시위' 같은 이슈로 나타났던 2021년, 다양한 소통을 통해 유저들이 원하는 디렉터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그의 큰 업적이다.


■ 시즌1 : 클로즈 베타부터 오픈까지...어딘가 괴짜스러운 면모가 있는 디렉터

"저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저희는 로스트아크에 돈을 써야만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가 존재한다는 것을 싫어합니다.

로스트아크 오픈 당시 금강선의 이미지는 현재와는 달랐다. 당시에는 과감한 발언이나 칼럼니스트 출신 이력 등이 더 화제가 됐다. 신규 캐릭터 기공사의 '천하섬멸옥' 스킬을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아, 그거 드래곤볼의 원기옥이에요'라고 대답한다거나. 현재의 진솔한 이미지와는 비슷하면서도 거리가 있었다.

2018년 4월 20일 진행했던 인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게임에 대한 디렉터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에피소드 2 욘 이전, 시즌 1의 로스트아크는 스마일게이트 RPG 개발진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었던 시기다. 그는 게임에 추가되는 BM 모델, 이른바 'PAY TO WIN' 등에 강경한 모습을 보였고, "모든 분들께 의미가 있는 게임이 되길 바라고 있다"고 로스트아크를 소개했다.

당시에는 '초보 디렉터'였음에도 답변은 깔끔했고, 섬의 마음이나 생활, 카드 배틀 등 게임 구석구석 여러 기획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에 대한 열정 하나는 엄청나구나, 단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에도 '투머치토커' 금찬호의 모습은 가지고 있었는데, BGM 질문 도중에 나온 플래티넘 게임즈의 '니어:오토마타' 이야기를 한참 하는 바람에 인터뷰 진행에 차질이 생길 뻔했다.


▲ 2018년 인터뷰 당시 금강선 디렉터


하지만, 당시 로스트아크는 현재와 다르게 '소통'이 큰 단점인 게임이었다. 오픈 베타부터 정식 오픈 이전까지 특별한 소통이라는 것이 없었고, 업데이트 내역에는 현재와 같은 개발자 노트도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 오픈 베타 기간에 관계자와 인터뷰 자리도 딱히 없었기에 소통이라고는 로드맵을 소개해주는 '리샤의 편지'가 전부였다.

이렇다 보니 로스트아크는 오픈 베타에 쏠린 엄청난 관심이 무색하게 많은 유저들이 빠져나갔고, 당시 인벤에는 수요일만 되면 '이번 패치에 로스트아크에 존망이 달렸다'는 글로 게시판이 도배 되곤 했다. 흑야의 요호부터 칼엘리고스까지, 딱히 할 만한 콘텐츠가 없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터진 루테란 '왕의 무덤' 사태나 '즉시 완료권'과 같은 굵직한 이슈로 인해 개발사의 해명, 소통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욘'이 등장했다. 2019년 6월 19일 업데이트된 에피소드 2 '욘'은 사실상의 하드 리셋이자, 아크라시움 중심에 무료 레벨업 체계를 현금 재화가 필요한 '재련'으로 변경하는 기존 개발 철학이 정면으로 뒤집힌 패치였다. 현재의 시즌2 변화만큼이나 큰 변화로 메인 콘텐츠였던 '가디언 토벌'은 서브 콘텐츠로 변했으며, 주력 메인 콘텐츠가 반복성 파밍 던전인 '안타레스의 악몽'과 '몽환의 미궁'이었다. 기존 시스템에 익숙했던 많은 유저들이 게임에서 이탈했을 정도다. 게임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 소통의 시작 : 루테란 신년 감사제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죠. 같이 잘 만들어보자는 부분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첫 번째 소통 무대인 '루테란 신년 감사제'가 2020년 1월 11일 열렸다. 소통이 필요했던 당시 스마일게이트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야만 했었던 행사인 셈이다. 루테란 신년 감사제는 로스트아크의 정기행사인 '로아온'의 전신인 오프라인 이벤트로, 230명의 모험가를 추첨을 통해 선발해 포시즌스 호텔에서 로드맵 발표회를 가졌다.

어떤 내용이 나올까 기대하며 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로아온과 다르게, 당시 루테란 신년 감사제는 "어디 디렉터 얼굴이나 보자"하고 화를 내며 찾아간 사람도 있었다. 무대에 금강선 디렉터가 처음 했던 대사도 "위험한 자리죠. 얼굴(이다 보니) 제가 행사에서 도망갈 수는 없잖아요?" 였을 정도다.

당시 느낀 솔직한 심정으로 행사 진행은 좋다고 보긴 어려웠다. 발표 내용만 3시간이 넘는데, 앞서 연주회나 PVP 대회 등이 끼어 전체 일정이 크게 딜레이되는 느낌을 받았다. 로드맵 구성도 크고 작은 콘텐츠가 모두 들어가 있어 '군단장 레이드' 같은 대형 발표가 묻힌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행사는 대성공이었다. 디렉터의 진솔한 태도와 과감한 수용, 그리고 분명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 컸다. 불리한 내용을 거의 모두 다뤘고, 분명한 개선 의지를 보여주었다. 즉시 완료권 이슈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욘 업데이트에 대해서는 '판단 미스'를 인정했다.

위기 상황에서 변명이 아닌 정면 돌파를 선택한 셈이다. 유저들의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감사제에서 약속된 내용은 1년에 걸쳐 대부분 완료되었다.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렇게 루테란 신년 감사제를 기점으로 유저와 개발사 간의 '신뢰'가 처음으로 형성된다. "저희 게임에 프라이드를 가지실 수 있도록, 꼭 그렇게 해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디렉터의 진심이 통한 순간이었다.


▲ 리샤의 편지에 공개된 로아온 약속 리스트


이후 금강선 디렉터를 중심으로 한 로스트아크 발표회는 일종의 정기행사로 로스트아크식 소통의 상징 같은 위치를 가지게 된다. 게임이 본격적으로 흥한 것은 2020년 8월 12일, 시즌 2 이후부터지만 로스트아크 흥행의 신호탄은 이때 쏘아 올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런 소통 방식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발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PPT 준비에만 몇 주가 소모되며, 완성된 발표 자료는 극히 일부 직원만 검수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일정 조율이나 프로젝트 측면에서 실무자도 모르는 목표가 추가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누가 봐도 압도될만한, 그런 발표라는 것은 사실 발표회 기간 전후로 업데이트나 소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중요한 이슈나 밸런스 문제를 즉시 대응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사건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 소통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악영향을 끼치기도 할 수 있다. 긴 시간 동안 '원기옥'을 모아 소통하는 셈이다.


■ 소통하는 게임, 대답해주는 게임 로스트아크

"매출 17%를 포기하겠습니다...(중략)... 이게 로스트아크식 재투자입니다."

금강선의 소통 행보가 크게 흥행하며, 로스트아크에 점차 '소통하는 게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특히, 2021년을 강타했던 '트럭 시위' 열풍이 로스트아크의 소통 행보와 대비되며 반사 이익을 얻게 된다. 이전에도 소통하는 디렉터, 소통하는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디렉터가 긍정적으로 상징이 되는 게임은 드물었다.

개발사도 이를 인지했는지 2021년 말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아쉽게도 성사되지 못했던 '커피 트럭'에 대한 인사부터 2021년 12월에 진행된 디렉터의 인게임 메시지, 신년 인사 등은 금강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신선한 느낌을 주는 데 성공했다. '보상'이나 '정보'를 얻는 목적보다 디렉터와의 소통 그 자체를 즐기는 유저들이 생겨난 것이다. 대답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유저들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 때문도 있겠지만, 2022년부터는 디렉터의 개인 방송이 늘어났다. 이슈에 대응하기도 조금 더 빠르고, 형식도 간편했기에 2022년 세 차례에 걸쳐 개인 방송을 진행하며, 로아온 이전 메인 소통 창구로 활용이 되는 듯했다. '로아온 개인 방송'이라고 불릴 만큼 나름 알찬 정보를 제공했고, 북미 개발자들이 자주 진행하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AMA)' 코너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실시간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2022년 개인 방송 소통은 5월 사임 선언 방송까지 이어졌다.

디렉터의 적극적인 소통 행보는 게임이 흥행하며 자연스럽게 시너지를 일으켰다. 스마일게이트 RPG는 2019년 처음으로 흑자를 전환, 2020년에는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2021년도에는 영업이익 4,419% 증가했다는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로스트아크 정식 오픈 이후 금강선 디렉터의 소통 행보

2020년 01월 11일 - 루테란 신년 감사제
2020년 12월 19일 - 로아온
2021년 1월 23일 - 발탄 출시 언론 인터뷰
2021년 3월 13일 - 커피 트럭에 대한 디렉터의 편지
2021년 6월 19일 - 로아온 미니
2021년 12월 18일 - 로아온 윈터
2021년 12월 24일 - 기부 행렬에 대한 디렉터의 메시지(인게임)
2022년 1월 1일 - 디렉터의 신년 인사(인게임)
2022년 1월 28일 - 판교역 메시지 관련 개인 방송
2022년 3월 11일 - 북미 런칭 기념 개인 방송
2022년 5월 13일 - 디렉터 사임 개인 방송



▲ 인게임 메시지, 편지 등 더 다양한 수단으로 소통하는 금 디렉터

▲ 좋은 반응을 얻었던 3번의 개인 방송



■ 앞으로의 로스트아크

금강선 디렉터가 현재의 로스트아크를 만든 큰 업적이 있는 인물인 것에는 부정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런 소통을 '신격화'를 통한 이미지 메이킹, 실속 없는 소통, '쇼'에 가깝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게임의 근본적인 문제는 방치하면서 수많은 약속으로 그것을 넘긴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쇼'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심이 없으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반대로 진심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허황된 약속을 하더라도 '한 번 믿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2021년 1월 23일 인터뷰 자리에서 침을 튀겨가며 '카단'과 '카마인'의 대결을 설명하던 금강선 디렉터에게 받은 인상은 그랬다. 그는 항상 정면 돌파를 택하는 사람이다. '즉시 완료권'이나 '욘' 때도 그랬으며, 흉흉했던 루테란 감사제 자리에서도 '같이 게임을 만들어보자'라며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소통은 '진심'이 있었기에 통한 것이라 믿고 있다.


▲ 마지막 라이브 방송에서 수척해진 금강선 디렉터의 모습


"항상 건강하시고 , 꿈 꾸시고. 멋진 삶이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결국, 금강선 디렉터가 사임한다는 이야기다. 개인 방송에서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건강이 너무 악화되어서 더 이상 업무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정소림' 캐스터가 방송에서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로아온 당시 병원에서 나와 진통제를 먹으면서 진행했으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앰뷸런스도 대기 중이었다고 한다.

금강선 디렉터는 마지막 방송에서 그만두게 되어서 '억울'한 마음이라며 심정을 전했다. 또한 건강이 다소 악화되었더라도 지난 여정이 후회되지는 않는다며, 지금의 로스트아크가 이만큼 사랑받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가 여러 번 강조했듯 게임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닌, 다양한 사람의 재능이 모인 '종합 예술'이다. 디렉터가 없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로스트아크가 망하거나 할 일은 없다. 금강선 디렉터의 여정은 끝이 났을지언정, 로스트아크와 아크라시아는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 다만, 그가 남긴 '진심'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로스트아크를 통해)제가 지금까지 재밌게 즐겼던 게임으로 느낀 즐거움을 고스란히 돌려 드리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인생 게임이 되는 것은 모든 개발자의 목표지만, 시대의 흐름에 잘 맞춰진 게임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거든요. 많은 분이 인정하는 게임을 보면서 '내가 과연 저런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느껴요. 일종의 자괴감이죠." - 2018년 04월 20일 인벤 인터뷰에서

게임이라는 단어는 여러분들에게 항상 설레고 재밌게 해줄 수 있는 단어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계속 게임이라는 걸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저는 떳떳합니다. 저는 이 게임이라는 단어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게임이라는 것들을 충분히 여러분들한테 의미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해왔던 것 같고 그것들이 후회되지 않아요. - 2022년 5월 13일 디렉터 은퇴 방송의 마지막 멘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