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국제적인 팬데믹으로 게이머들을 갈 곳을 잃었었다. 게임사와 게이머들의 소통은 온라인으로 한정되었고, 게이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놀 수 있는 자리조차 변변하게 마련되지 못했다. 개발자들도 답답했고, 게이머들도 답답했다. 어떻게든 온라인을 통해서 소통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현장의 열기'라는 말 자체를 지난 몇 년간 쓸 수 없을 정도였다.

점차 방역 체계가 일상 속에 잡히고 흐름이 바뀌면서 조금씩, '현장'이 살아났다. 몇 차례의 시범적인 행사들이 진행됐고 나름대로 적절한 성과를 거뒀다. 전환점은 지난해 지스타였다. 지스타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이전보다는 적지만 확실히 관람객을 모집할 수 있었고, 그렇게 방역 속에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무리해 확실한 결과를 냈다.

그리고 어느새 반 년이 흘렀다. 성공적인 행사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모두들 조심스러웠기에 행사는 없었고, 여전히 답답해하는 게이머들도 많았다. 그런 와중에도 e스포츠 오프라인 관람을 비롯하여 조금씩 조금씩 유저들이 모이는 행사들이 마련되곤 하는 움직임은 있었다.


플레이엑스포는 지난해 뼈아픈 타격을 입은 행사였다. 오프라인 행사 준비를 열심히 진행했지만 개최 하루 전 날 온라인으로 전환해야만 했고, 그 이전 행사는 취소라는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절치부심한 2년이란 세월이 있었기에 이번 2022 플레이엑스포에 더 크게 목을 매고 부활을 알려야만 했다.

3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왔지만 시작부터 행보가 썩 성공적이지 못했다. 5월 12일 시작하는 행사의 결정은 4월 초에 이뤄졌다. 사실상 참가사들의 준비 기간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참가를 고려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부스의 디자인, 행사, 이벤트, 인력을 모두 다 챙기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망설일 수밖에 없었고 급하게 시연 빌드를 만들 여유도 크게 부족했다.

그래도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라고 했던가? 주최 측은 3년 만에 진행하는 오프라인 행사인 만큼 적극적인 구애를 보냈다. 대형 게임사와 중소 개발사, 인디 게임 개발팀 모두에게 가리지 않고 콜을 보냈고, B2C 참가가 어렵다면 B2B라도 참가를 할 것을 독려했다. 그래도 적극적인 구애가 효과를 발휘해 적절한 기업들이 참가를 결정했다. 그렇게 3년 만에 복귀하는 플레이엑스포가 열렸다. 누가 봐도 급하게 준비한 모습이 팍팍 티가 났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었다. 결국 부스 조감도는 행사 일주일 전에야 간신히 공개되었고 관련 프로그램도 행사를 2주가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씩 오픈됐다. 설상가상으로 국제적인 대형 e스포츠 행사, 서브 컬처 행사가 오프라인으로 개최되고 기간도 겹치기에 관람객의 분산은 기정사실화된 것과 다름없는 악조건이었다.

▲ 행사장에 119 대원들이 자리잡고 교육을 하는 건 정말 신선했다.

그런 우려는 외부적인 시선 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래서 참가 업체의 상황과 다른 행사를 비교하면서 확실히 경쟁력을 갖추려는 시도를 하려는 것 같았다. 우선 플레이엑스포는 '한국형 가족게임센터'라는 아케이드존 단장을 진행했다. 아케이드 게임존도 플레이엑스포 특유의 즐길 거리였지만, 기기 배치에 신경 쓰면서 관람객들의 시연 환경을 한층 더 쾌적하게 제공했다. 특히나 팬데믹으로 가장 크게 타격받은 아케이드 시장에서, 팬데믹이 끝나고 아케이드 시장이 엔터테인먼트 공간이라는 활로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시범 무대라고도 볼 수 있고,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전통적인 신작 게임 시연과 개발자-유저의 만남 공간, 그리고 e스포츠 이벤트와 잠시 쉬어가며 들을 수 있는 강연, 휴식 공간 등 구성의 규모는 둘째치더라도 행사의 구성 요소들 자체는 적절한 밸런스로 알차게 맞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안전에 대한 대비다. 많은 인원들이 몰리는 행사 특성상 의료 공간은 필수다. 그런 의료 공간을 넘어 119 대원들이 직접 현장에 상주하고 안전 교육을 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의료 공간이 외부에 있는 것과, 현장에서 즉시 대처를 할 수 있는 구급요원들이 '부스'로 행사장 내에 상주해있다는 점은 관람객들에게 크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비록 놀 거리는 아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온 학부모들이나 가족단위 관람객에게 있어서는 결코 지나치기 쉽지 않은 공간이라는 매력도 있었다. 그렇게 준비한 플레이엑스포다.

▲ 이런 인파를 보인 행사가 얼마만이던가?

막상 행사가 열리니, 목이 말랐던 것은 우물을 판 사람 혼자가 아니었던 모양새다. 평일인 첫날부터 생각보다 많은 인원들이 행사장을 방문했다. 평일 이른 오후에도 교복을 입고 관람을 오는 학생을 포함해 가족 단위 관람객, 개인 관람객이 적지 않았다. 냉정히 말해서 플레이엑스포에서 '초대형 기대작'은 매우 적었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게임을 해볼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제공됐지만, 모두가 목 빼고 기다리는 신작 자체는 국제적으로도 매우 드문 시기였으니 당연히 매력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결국 관람객들은 '게이머들이 모이는 장소'를 바랬던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열리지 않은 게임쇼로 인해 게임쇼라는 행사 자체를 방문해 볼 기회조차 없었다. 게이머들의 호기심과 갈증을 채울 곳은 거의 없었기에, 모두가 플레이엑스포를 찾았다. 목요일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몰렸다면, 금요일은 놀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참가사들도 당황할 정도로, 평일에도 이례적으로 많은 인원이 몰렸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이 대 성황이었다. 가족 단위 관람객들은 행사를 즐겼고, 게이머들은 개발자들을 만나고 신작을 즐겨보고 행사를 관람했다. 개인 코스프레는 거의 그동안 뽐낼 무대를 못 찾아서 서러운 한을 풀었다고 할 정도로 많았다.

물론 아쉬움이 없던 건 아니다. 몇몇 소규모 대회는 결국 메인 무대를 사용할 수 없기에 다소 불편한 환경에서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를 위한 다른 무대나 환경을 마련해주면 더 좋은 수요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인기 부스/행사의 배치가 아쉬워서 행사장을 모세의 기적처럼 가로지르는 거대한 줄이 이어지기도 했다. 관람객들의 동선 유도가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게 보고 됐다. 돌아보면 이는 수요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상황에서 흐름을 제대로 유도하지 못해 발생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었다. 그만큼 게이머들도 게임 관련 이벤트와 행사에 갈증을 호소하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엑스포는, 급하게 판 우물이었지만 걱정이 현실화되었다기보다는 성공적이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 사례가 될 수 있었다. 이 정도로 인원이 몰릴 줄 몰랐기에 미참가 결정에 다소 아쉬움을 토로하는 업체들도 적지 않았다. e스포츠 이벤트, 강연, 가족형 게임센터, 고전 게임장, 그리고 레트로 장터, 보드게임과 신작을 포함한 게임들의 이벤트 및 시연 등등 관람객이 즐기고 쉴 수도 있는 여건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행사의 정체성을 갖췄다.

한 해 대한민국의 하반기에는 게임 행사가 '지스타'로 대표된다면, '플레이엑스포'는 이제 상반기를 대표할 수 있는 기반과 수요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2022년은 3년 만에 성공적으로 복귀한 플레이엑스포가 도약을 위해 한 번 더 좋은 경험을 쌓는 기회였다. 목마른 자가 급하게 판 우물은, 적절하게 갈증을 잘 달래줬다. 2023년은 '급하게' 진행할 필요가 없는 만큼,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게이머들이 부담 없이 찾을 행사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