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한 관심 환기, 뜻은 참 좋았다



최근 스팀을 통해 '긴팔원숭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신작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 공개됐습니다. 게임 속에서 고릴라나 침팬지, 원숭이 캐릭터는 쉽게 볼 수 있지만, '긴팔원숭이'가 등장하는 것은 정말 생소한 편입니다. 게임 타이틀은 '기번: 비욘드 더 트리즈(Gibbon: Beyond the Trees)'로, 타이틀의 '기번'은 긴팔원숭이를 부르는 영어 이름입니다. 말그대로 '긴팔원숭이 게임'인 셈이죠.

출시에 앞서 공개된 트레일러 영상에는 나무와 풀, 덩굴이 우거진 숲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긴팔원숭이 가족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빠르게 움직이는 긴팔원숭이의 모습을 보며, 생각보다 조작이 복잡하고 액션성이 있는 독특한 게임이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품었는데요. 실제로 정식 출시된 게임을 플레이해본 뒤 느낀 솔직한 소감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게임명: 기번 (Gibbon: Beyond the Trees)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2.05.19.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Broken Rules
서비스: Broken Rules
플랫폼: 스팀, 애플 아케이드, 닌텐도 스위치
플레이: PC

관련 링크: 'Gibbon: Beyond the Trees' 오픈크리틱 페이지





버튼 세 개로 끝, 쉽게 배울 수 있으면서도 상쾌한 '나무타기 액션'을 담다


다소 복잡할 것 같았던 처음의 예상과 달리, 기번: 비욘드 더 트리즈(이하 기번)는 간단한 조작으로도 긴팔원숭이 특유의 움직임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아주 직관적인 게임이었습니다. 키보드 조작 기준으로 C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나뭇가지나 덩굴을 붙잡아 이동하고, X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두 발로 서서 달릴 수 있으며, 누르고 있던 버튼을 떼면 점프합니다. 단 두 개의 버튼만으로 장애물이 가득한 밀림 속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죠.

C 버튼을 누르고 있다 떼기를 반복하며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고, 필요할 때는 미끄러지거나 걸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기번'의 기본적인 플레이 방식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나무를 놓으면 더 멀리 도약할 수 있으므로, 나뭇가지가 무성한 숲 속에서는 마치 리듬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박자감을 느끼며 나무 타기를 할 수 있습니다. 단 한 번의 타이밍도 놓치지 않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부드럽게 넘나들며 이동하고 있자면, 마치 나 자신이 긴팔원숭이라도 된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이외에도 플레이어는 방향키 버튼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점프 중 '←' 방향 버튼을 누르면 공중에서 '백플립'을 할 수 있고, '↓' 버튼을 누르면 아래 칸으로 내려올 수 있죠. 백플립은 곡예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공중회전 트릭 기술로, 안전하게 성공하면 순간적으로 가속이 붙습니다. 내려가기는 특정 행동을 빠르게 취소할 수 있는 '캔슬' 기능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심화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조작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스토리 진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더 빠르고 경쾌한 나무타기 액션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초반 구간의 플레이 경험은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전반적으로 원 버튼 게임을 하는 것처럼 C 버튼을 눌렀다 떼었다 할 뿐이지만, 버튼을 떼는 타이밍에 따라 나무 타기 속도에 가속이 붙거나, 제동이 걸리므로, 그저 화면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직접 조작을 하고 있다는 피드백이 분명하게 전해졌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 조작감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면, 기번의 나무 타기에서도 분명히 만족스러운 조작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레이어가 기본적인 조작법에 익숙해질 즈음, 몇 가지 장애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절벽과 절벽 사이의 끝이 보이지 않는 천 길 낭떠러지나, 거대한 폭포, 혹은 불타는 숲 속의 꺼지지 않은 불길 위를 뛰어넘어야 하는 식이죠.

야생 긴팔원숭이의 시선으로 보면 무엇하나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난관들이겠지만, 초반 구간에서 게임의 기본적인 점프 매커니즘을 충분히 숙지했다면 누구나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쉬운 난이도로 설계됐습니다. 장애물이 등장하지 않았던 초반 구간과 플레이 스타일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혹여 실수로 뒤쳐지거나 땅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큰 페널티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저 계속해서 바뀌는 배경과 주변 환경을 감상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 총을 쏘며 쫓아오는 밀렵꾼에게 쫓기는 구간도 존재하지만, 플레이 스타일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보여지는 것에 비해 부족한 뒷심, 아쉬운 콘텐츠 구성

후반부에 다다르면 게임은 조금씩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별도의 오브젝트를 건드려 막힌 길을 뚫거나, 퍼즐을 풀고, 앞을 가로막는 적을 해치우는 등 '변주'를 줄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긴팔원숭이는 말없이 앞으로 나아갈 뿐이거든요. 한 번씩 '백플립'으로 기교를 부리면서 말이죠.

조작이 간단하고 장애물들이 쉬운 난이도로 구성되어 있어서 위기감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 없다시피 하다 보니, 50분 즈음에 다다랐을 때는 '언제 끝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겨우겨우 엔딩을 보고 메인타이틀 화면으로 돌아와 플레이 시간을 보니, 60분이 막 지난 참이었습니다.

1회차 엔딩을 보고난 뒤, 스토리 구성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된말로 '뇌절'에 이르지 않고 딱 적당한 타이밍에 끊어줬다는 느낌이 컸죠. 하지만 이왕 이렇게 공들인 구성과 비주얼을 만들었으니, 조금만 더 볼륨을 키우고 더 즐길 수 있을만한 콘텐츠를 고민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 게임의 비주얼은 전체적으로 아름답고, 계속 바뀌는 배경을 보는 것은 동화책 삽화를 보는 것처럼 즐겁다

▲ 하지만 보이는 것에 비해, 즐길 수 있는 것은 정말 한정적이다

1회차 엔딩 이후에는 새끼 긴팔원숭이였던 라일락이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이후의 2회차 게임은 '성장한 라일락'으로 플레이하게 되는데, 별다른 스토리 연계 없이 '무한 모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러닝 게임이나 레이싱 게임에서 주된 경쟁 요소가 되고, 1회차 이후의 파고들기 요소가 되어주는 그 모드가 맞습니다. 딱히 경신할 만한 시간 기록이나 스코어 개념은 등장하지 않지만 말이죠.

2회차에서는 우리에 갇혀 있는 총 10종류의 야생동물들을 풀어준다는, 1회차의 스토리와는 사뭇 다른 목표를 두고 게임이 진행됩니다. 메인 스토리 속 불길이나 절벽 등의 장애물들이 다시 등장하지만, 무작위로 배경이 바뀌기만 할 뿐,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단조로운 플레이가 계속 이어집니다.

아쉬운 마음에 도전과제라도 달성해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플레이하며 놓친 요소가 있는지 찾다보니, 이전에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모바일 게임 '알토의 모험(Alto's Adventure)'이 떠올랐습니다. 알토 시리즈는 지난 2015년에 처음 공개된 모바일 러닝 게임으로, 높은 산에서 스키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터치 하나로 다양한 트릭 연출할 수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기번'과도 상당히 닮은 모습의 게임이었고요.

이미 모바일 플랫폼으로, 지금으로부터 7년도 더 전에 무료로 출시된 이 게임에서 '백플립'은 플레이어가 시전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트릭으로 등장합니다. 이외에도 그라인드, 틈 점프, 바운싱, 램프 키커, 윙 슈트 등 여러 기술이 등장하고, 심지어 공중에서 네 바퀴를 도는 '쿼드로플 백플립'까지 가능합니다. 이런 게임들을 먼저 접해봤다면, '기번'의 나무 타기 일변도의 액션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정해진 길이의 코스를 얼마나 더 빨리 주파하는지 겨루는 리더보드와 스코어링 모드가 있다면 어떘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러닝 액션 자체만 보면 너무나도 우수한 '선례'들이 많다



멸종위기종인 '긴팔원숭이'가 당면한 문제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담아내다


완성도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이 게임은 다른 측면에서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번'이라는 작품이 단순히 재미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닌, 특별한 목적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게임을 처음 실행하면, '이 게임이 실제 세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각 문제를 정확히 다루기 위해 현지의 주민들 및 전문가들과 협업했다'는 내용의 안내 문구가 먼저 등장합니다. 이 게임이 사회 고발적인 성격을 담고 있고, 계도를 위해 만들어진 타이틀이라는 것을 미리 플레이어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기번'은 현존하는 동물들 중 가장 취약하고,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종 중 하나인 긴팔원숭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팜유 농장 설립을 위해 긴팔원숭이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으며, 새끼 긴팔원숭이를 관광지로 데려가기 위해 나머지 가족들을 몰살시키는 일 역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문제를 게임의 스토리를 통해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게임 속에는 나레이션 몇 줄을 제외하면 변변찮은 대사 한 줄 나오지 않지만, 유저가 스토리를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라고 자각하게 합니다. 해당 문제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던 이들에게조차 말이죠. 물론 그저 그런 감성팔이의 일종으로 받아들일 이들도 분명히 있겠으나, 단순히 '게임 속 이야기'로 치부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게끔 하는 데에는 성공한 셈입니다.


▲ 게이머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는 여러 연출이 포함됐다

물론 게임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래서 게임이 재미있는가?'가 맞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게임 그 자체가 재미없다면, 그 아무리 소중하고 중요한 사실을 전달하려 했다 해도 의미 자체가 퇴색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게임이 아닌 다른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 어땠을까'라는 후회의 마음이 들게 될 정도로 말이죠.

기번은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야기가 극으로 치닫는 그 순간, 그리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마지막의 그 순간마저도 플레이어의 개입이 없는 컷씬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이야기 전체에서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 요소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간까지 이동하는 나무 타기 뿐이거든요. 현재의 콘텐츠로만 보면, 굳이 게임이 아니어도 됐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아름다운 비주얼을 살린 동화, 애니메이션이라는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긴팔원숭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기본 설정은 신선한 매력으로 게이머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습니다. 전 세계의 긴팔원숭이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 속 문제를 조명하려는 개발자의 뜻 역시 박수를 쳐주기에 마땅하고요. 하지만 기발한 기획과 숭고한 뜻이 '게임'이라는 형태 속에 잘 녹여들었느냐라고 묻는다면 물음표가 먼저 떠오릅니다. 2022년도에 정식 발매된 PC 게임을 플레이하며, 7년 전에 출시된 모바일 게임의 게임성을 떠올리고 그리워하게 될 정도였으니, 적어도 '게임으로서의 재미' 부문에서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무시할 수 없는 강점들도 존재합니다. 챕터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게임 속 배경들, 여기에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바뀌는 환경 표현을 보고 있자면 감탄이 터져 나옵니다. 실제로 긴팔원숭이들과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죠.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는 나무 타기 조작은 깔끔하고, 조작의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바뀌는 배경과 BGM을 즐기며, 마치 리듬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처럼 플레이한다면, 한 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진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보듯,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