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남짓한 이 게임이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



세상에 있는 수 많은 게이머들 중엔 특정 게임을 더욱 재밌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콘텐츠를 추가하는 모더(Modder)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이따금씩 특출난 재능을 뽐내며 느슨해진 게임업계에 긴장감을 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고는 하죠. ARMA3 배틀로얄 모드 개발자로 시작해 지금은 국민 게임 PUBG로 유명해진 플레이어언노운(PlayerUnknown) 브렌든 그린 또한 이런 모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늘 이야기할 '더 포가튼 시티' 또한 어느 특출난 재능을 가진 한 모더의 작업물에서 시작했습니다. 2015년 스카이림의 모드로 처음 선보인 동명의 대형 퀘스트 모드는 약 4백만 명 이상이 다운로드해 즐길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었고, 이듬해에 모드 역사상 최초로 AWGIE 어워드(Australian Writers Guild Award, 호주 작가 조합상) "인터렉티브 미디어" 부문에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두 사례 모두 모드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며, 그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장한다는 방증이기도 한 셈입니다.

이 모드를 만든 주인공, 닉 피어스(Nick Pearce)는 그 이후, 자신이 2012년부터 사용해 온 모더 이름인 '모던 스토리텔러'와 동일한 이름의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프로그래머와 아티스트를 기용해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호평 받은 스카이림 모드를 기반으로 한 독립적인 스탠드얼론 버전 '더 포가튼 시티'를 말이죠.

스탠드얼론 버전의 게임은 원작인 모드와 마찬가지로 '내러티브의 수작'이라 불리며 게이머는 물론 해외 매체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다만, 출시 당시에는 한국어 지원이 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죠. 대체,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에 모드 퀘스트로 시작해 하나의 온전한 게임이 될 수 있었을까요? 한국어 정식 지원으로 언어의 장벽도 사라진 지금이 '더 포가튼 시티'를 즐길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명: 더 포가튼 시티(The Forgotten City)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2.05.13.
리뷰판: 1.000.005
개발사: Modern Storyteller
서비스: Plug In Digital
플랫폼: PC, PS4, PS5
플레이: PS5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잊혀진 도시'에서 펼쳐지는 탐정 어드벤쳐

게임에 대해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더 포가튼 시티'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간략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스토리가 거의 전부인 게임이기 때문에 크게 스포일러가 되지 않은 선에서만 언급하고자 하나, 혹시라도 걱정이 되시는 분이 있다면 지금 뒤로가기를 눌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게임은 어느 '잊혀진 도시'를 배경으로 합니다. 현대 시대를 살던 주인공은 모종의 이유로 이탈리아의 한 고대 유적 인근에서 눈을 뜨게 되고,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유적을 살펴보던 중 나타난 정체불명의 포탈을 타고 과거 로마 시대의 한 마을로 가게 되죠. 현대 시대에 있던 유적만큼이나 외딴 곳에 지어진 마을에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이 한결같이 말하길 이 마을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후 주인공은 마을에서 치안 판사를 맡고 있는 센티우스라는 사람으로부터, 현대에 있던 주인공을 이곳으로 소환한 것이 자신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곳의 모두를 위협하는 인물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죠. 이방인에게 부탁하기엔 어딘지 이상한 요청이었지만, 이 곳의 문제를 해결하면 알아서 현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센티우스의 이야기에 주인공은 설득당하고 맙니다. 이후 플레이어는 주인공이 되어 마을을 직접 둘러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곳에서 나와 현대로 돌아가기 위해, 그리고 마을을 위협하는 인물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을 이어가게 됩니다.

▲ 치안 판사 센티우스가 우리를 소환해 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제 막 낯선 세상에 도착한 주인공은 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만큼이나 주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치안 판사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 마을은 '황금률'이라는 법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고, 누군가가 이를 위반해 마을의 평화를 위협할 것이라는 것 뿐이죠. 이곳에 전해지는 황금률이란 "한 명의 잘못으로 모두가 고통에 빠진다"는 아주 단순한 규칙인데요, 이런 규칙을 정한 것이 누구인지, 또 여기서 말하는 잘못은 무엇인지, 처음에는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더 포가튼 시티'의 게임플레이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스무 명 남짓한 이들과 일면식을 트고, 이야기를 통해 출신, 종교, 성향을 파악하고, 최종적으로는 마을을 위협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사정이 있고, 그들로부터 의미 있는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잔심부름도 마다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마을의 위협을 빠르게 찾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해지는 긴박한 상황에서 스무 명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기에는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 그리고 우리는 왜 하필 과거 로마에 떨어지게 된 것일까요?
'더 포가튼 시티'는 여러 의문과 함께 시작합니다


타임 루프, 그리고 '황금률'이 빚어낸 절제된 자유도

▲ 전투가 있긴 하지만, 특정 구간에 한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서부터 볼 수 있는 안내와 마찬가지로, '더 포가튼 시티'는 주변을 수색하고, NPC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미스테리를 파헤쳐 나가는 데 집중한 어드벤쳐 게임입니다. 전투와 액션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최대한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또 원작이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의 모드였기 때문일까요? 특유의 게임플레이 매커니즘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오픈월드 게임이었던 스카이림의 특징 상 누군가를 죽이거나, 물건을 훔치는 등의 자유도는 매우 흔한 일이지만, 이 수상한 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황금률'은 플레이어의 행동에 어느 정도 제약을 거는 요소로서 작용합니다.

'황금률'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아주 간단한 법이지만, 동시에 그 잘못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아주 모호한 법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를 둘러싼 의견 대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누군가는 센티우스가 폭정을 휘두르기 위해 만들어 낸 터무니 없는 소리가 여기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는 탐탁치는 않으나 지켜서 나쁠 건 없으니 따른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 주인공은 황금률을 어기면 어떤 일이 벌어나는지 직접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게임에서 주인공을 포함한 누군가가 이 황금률을 어기면,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치안 판사 센티우스를 따라 성소에 가면 포탈을 이용해 마을에 도착한 시점으로 시간을 거스를 수 있죠. 이 때는 전 시간대에서 얻은 아이템과 단서를 모두 갖추고 새로운 날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를 반복하며 마을 속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게임은 마을의 미스테리를 푸는 데 부족한 '시간'을 우리의 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타임 루프라는 장치를 절묘하게 활용합니다. 타임 루프를 반복하면 어떤 행동이 황금률 아래에서 '잘못'으로 규정되는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고, 수사를 진전시키기 위해 이런 행동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시간대에서는 저번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게 되고, 점점 더 해답에 가까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도덕 관념이란 존재하는가"는 이 게임이 던지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그냥 대화만 하는데도 손에 땀이 날 수 있다니

▲ 단서 대부분은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에 숨어있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황금률과 타임 루프라는 두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더 포가튼 시티'의 긴장감을 엔딩까지 이끄는 것은 NPC들과의 대화를 주축으로 한 내러티브 전달에 있습니다. 처음부터 의문 투성이였던 이 마을과 시간 역행의 미스테리는 쉽사리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를 나눌수록, 그리고 조사를 이어갈수록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는 대부분 여러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식으로 진행되며, 어떤 선택지를 고르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호감을 살 수도 있고, 반대로 미움을 얻기도 합니다.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황금률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 시대인 만큼 말 한마디로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죠.

이처럼 '더 포가튼 시티'의 대화는 베데스다 스타일의 오픈월드 RPG, 즉 엘더 스크롤이나 폴아웃 시리즈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정 스탯이 높다고 설득이 더 잘 되거나 하는 형식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RPG 요소가 배제되었기에 실제로 '설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욱 잘 전달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성향과 종교, 철학,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입장 등이 모두 다릅니다. 이들을 말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증거를 수집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타임 루프를 직접 일으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 화살 맞기 싫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답을 해야 됩니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과 주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언급하지 않았으나, 스탠드 얼론 버전의 '더 포가튼 시티'의 내용은 원작인 스카이림 모드와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원작 모드에서는 스카이림의 세계관에 맞게 엘더 스크롤 세계관 속 드웨머 종족의 오래된 법도로 이야기가 꾸며져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게임을 처음 접한 이들에게도 익숙하도록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이집트 신화 등이 그 배경이 되었습니다.

일종의 연대 책임을 묻는 규칙인 황금률을 바탕으로 한 현대와 과거의 의견 대립, 출신과 종교에 따라 다른 해석, 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문명 등의 주제의식이 녹아있는 대사들은 취향만 맞는다면 몰입해서 읽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출되었고, 모든 미스테리가 풀리는 진 엔딩까지 향하는 과정에도 흥미를 잃지 않도록 많이 신경쓴 모습입니다. 신화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게이머라면 '더 포가튼 시티'가 제공하는 밀도 높은 대사들에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찍이 한국어가 지원되기 이전부터 내러티브 수작이라 호평받아 온 '더 포가튼 시티'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텔링만으로도 눈을 떼지 못하는 흡입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아주 좋은 사례입니다. 수준 높은 각본과 이야기의 전개는 마을을 탐험하는 과정에서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게 하며, 타임 루프가 반복되면서 조사에 빠른 흐름을 타게 만드는 연출 또한 상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시스템적으로도 저장과 불러오기를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느 정도 사건에 대한 감을 찾게 된 중반 이후부터 술술 풀리는 게임의 특성상 네 개의 엔딩을 모두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결과보다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더욱 집중한 게임인 만큼, '더 포가튼 시티'가 선보이는 모든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도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다만, 원작이 특정 게임의 모드이기 때문에 나오는 한계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캐릭터들의 애니메이션은 스카이림의 그것과 흡사한 수준이며, 스카이림 속 주인공이 있기에 이야기가 시작하는 단계에서 주인공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설정할 필요도 없었을테니까요. 등장인물들의 표현 처리나 애니메이션 등 연출이 미흡한 편이며, 초반 주인공의 직업과 성별을 결정하는 요소가 있으나 초반에 얻게 되는 작은 특전 외에는 크게 다른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 점 또한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완성된 게임으로서는 처음 내보이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개발사 모던 스토리텔러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에 대해서는 이견을 내기 힘든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BAFTA(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 2021 시상식에 GOTY로 노미네이트 될 정도니, 앞으로의 작품 또한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