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문학의 바이블로 불리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그 명성만큼이나 다양한 미디어에서 존재감을 뽐내왔다. 이를 기반으로 한 대부분 작품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혹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오리지널 캐릭터를 만들어 또 다른 이야기를 그려냈다.

데달릭 엔터테인먼트는 반지의 제왕 속 수많은 캐릭터 가운데 진(眞)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골룸에 주목했다. "마이 프레셔스"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남긴 골룸만큼 이야기 전체에 걸처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골룸을 메인으로 내세운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비호감다운 외모와 더불어 결국은 악당에 가까운 포지션, 이야기의 감초 역할에 더 어울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데달릭 엔터테인먼트가 골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임을 개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감보단 의아함이 더 앞섰었다. 게임 캐릭터로 활용하기에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았음에도 골룸의 일대기를 다룬 이유는 무엇일까.

한 차례 출시가 연기되면서 이렇다 할 소식이 없던 차에 미디어를 대상으로 게임 플레이 모습을 세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과연, 데달릭 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일 골룸 게임은 어떤 모습일지 개발자의 나레이션과 함께 진행된 플레이 영상을 보며 느낀 점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원작 속 골룸의 특징 살렸다
움직임부터 두 개의 인격까지 누가 봐도 골룸


먼저, '반지의 제왕: 골룸'은 J.R.R. 톨킨의 책 3부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시간대는 반지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주요 배경으로 모르도르와 미르크우드 등이 등장한다. 골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큼 화려한 전투 액션보단 잠입 플레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발사는 반지의 제왕 영화를 따라 하지 않고 새롭게 해석했기 때문에 전에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골룸은 일반적인 호빗과 달리 오랜 세월을 지하 동굴에서 살면서 기형적인 신체 구조를 얻게 됐는데 양손과 발을 이용해 걷고 달리며, 암벽 등반은 물론이고 기어 다니면서 기척을 최대한 숨기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 시연 영상에서도 원작 속 골룸의 특징을 잘 살펴볼 수 있었다. 거의 벗겨진 머리카락과 얼굴 크기에 맞지 않게 비대해진 눈동자, 사족 보행 등 외형에서 세밀하게 만든 디테일을 살펴볼 수 있었다. 영화 버전의 골룸과 비교한다면 얼굴이 동글 해지면서 어딘가 귀여워진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디테일을 살리다 보니 비호감이었던 외모가 더욱 빛을 발하는 느낌인데 어쨌든 골룸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게임 속 골룸 역시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게임은 골룸의 외형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내면도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원작 속 골룸은 본래 인격인 스미골과 절대 반지의 영향을 받아 타락해버린 골룸 두 개의 인격을 갖고 있다. 이중인격과는 조금 다른 설정인데 비교적 선한 마음을 가진 스미골과 악한 마음을 가진 골룸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이 꽤 자주 언급될 정도다.


게임 속 골룸 역시 이러한 설정을 반영해 스미골과 골룸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이는 원작을 아는 사람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는 한편, 게임 가이드의 역할도 맡고 있다. 하지만, 골룸의 조언이 언제나 플레이어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원작에서 골룸의 말대로 행동했다가 쓴맛을 본 적이 있듯 게임에서도 이러한 변수가 마련되어 있다.

특정 분기에 다다르면 흘러가는 대화가 아닌 두 인격의 상황을 대변하는 선택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플레이어는 스미골과 골룸의 입장을 헤아려 둘 중 하나의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가령, 눈앞에 나타난 풍뎅이를 보고 가만히 둘지 혹은 잡아먹을지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가만히 둔다면 스미골의 인격이 강화되는 것이고 잡아먹는다면 골룸의 인격이 강화된다.

시연 영상에서는 풍뎅이를 따라다니는 선택지를 골랐는데 이후 풍뎅이를 구경하다가 펠 비스트를 타고 나타난 나즈굴에게 갑작스럽게 쫓기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보통 선택지로 특정 분기를 나누는 게임은 멀티 엔딩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개발사는 '반지의 제왕: 골룸'이 원작 이야기를 바탕으로 둔 만큼 중간계에서 벌어진 전반적인 사건을 바꿀 수는 없다. 따라서 두 가지의 결말이 존재하지만 결국 엔딩 자체는 하나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했다.


자연스러운 파크루 액션
실제 골룸이 있다면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골룸의 움직임을 아주 잘 볼 수 있는 장면은 시연 영상의 첫 번째 지역으로 등장했던 시리스 웅골 탐험이었다. 시리스 웅골은 굉장히 험한 산맥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동하기 위해선 절벽을 타고 올라가거나 혹은 바위틈 사이에 매달려서 반대 지역으로 넘어가야 했다.

골룸은 양손과 발을 사용해 걷거나 뛰어다녔으며, 점프와 매달리는 행동에서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선보였다.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빨라서 좋았지만, 기어 다니는 골룸에 맞춰 낮게 설정된 시야 각도는 어딘가 답답함을 유발했다. 그래도 게임 플레이에 크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고 보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한편, 암벽 등반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골룸이지만 모든 절벽에 매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덩굴이 자란 벽에만 매달릴 수 있었으며, 양손과 발을 사용해 매달리는 벽에서는 스태미나 소모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반면, 양손만 매달려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일 때는 스태미나 빠르게 소모됐으며, 스태미나가 모두 소모되면 움직일 수 없는 제약이 생겼다. 이는 게임의 핵심 콘텐츠 중 하나인 파크루 퍼즐에서 난이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플레이어는 제한된 스태미나 안에서 목표로 향하기 위해 실제 암벽 등반을 하듯 사전에 루트를 확인하고 움직여야 한다.

이러한 난이도 조절 장치는 스태미나 소모 외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절벽에 매달리면 떨어지던 힘으로 일정 거리를 쭉 미끄러진다거나 매달려야 하는 벽 자체가 이동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은신과 잠입의 귀재
골룸의 특별한 스킬 '골룸 센서'


골룸은 작고 깡마른 체구 때문에 전투 능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1:1 전투는 프로도 배긴스에게도 져버리는 수준이니 전면전보단 기습과 잠입에 의존해야 한다.

시연 영상에서는 모르도르를 장악한 오크들 사이에 몰래 숨어서 이동하는 골룸을 보여줬다. 오크와 같은 적들은 각자 경계 영역이 있고 시야와 소음 등을 통해 적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 골룸은 이를 피하고자 낮은 보폭으로 엎드려서 이동하거나 혹은 수풀에 몸을 숨겨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시연 중에 공개한 '골룸 센서'는 이러한 잠입 플레이에서 큰 빛을 발한다. 골룸 센서을 활성화하면 적은 빨간색으로 표시되고 안전한 지역은 초록색으로 표시된다. 만약, 센서를 켠 상태에서 적이 움직인다면 움직인 동선이 빨간색 선으로 남아 전체적인 상황을 빠르고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곳에 보초를 서는 적처럼 전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기습으로 적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다만, 기습에 성공하기 위해선 적에게 들키지 않고 몰래 접근해야 했으며, 적 혼자 있는 상황이어야만 했다. 또한, 기습 중에는 스태미나가 계속 소모되고 큰 소음을 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기습보단 몰래 숨어서 이동하는 편이 좋아 보였다.

만약, 기습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돌맹이처럼 특정 물건을 활용해서 위기를 넘길 수 있다. 게임 플레이 중 다리 위에서 보초를 서는 오크가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어 기습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는데 주변에 떨어진 돌멩이를 주워 오크의 신경을 분산시키고 용암에 빠트리는 장면이 등장했다.

적에게 들켜 잡히면 그대로 게임 끝이므로 잡히기 전에 빠르게 도망을 쳐야 한다. 개발자는 적들이 골룸을 발견하는 순간 잡기 위해 달려드는데 이때 멀리 거리를 두거나 빠르게 숨으면 적의 관심이 줄어들고 안전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반지의 제왕 팬들의 만족 얻을 수 있을까
혹은 반지의 제왕을 몰라도 재미있는 게임이 될 수 있을까

약 20분 분량의 시연 영상을 통해 살펴본 '반지의 제왕: 골룸'은 원작의 디테일한 설정을 게임에 반영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게임이었다. 원작 팬이라면 반가워할 지역 설정과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인물뿐만 아니라 쉡롭과 같은 크리처에서도 신경을 썼다.

골룸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외형과 내면에서 원작과 흡사하게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고 게임 플레이에 이를 잘 녹여내려는 시도가 엿보였다. 다만, 이번 시연 연상은 초입부와 중반부를 살짝씩 보여주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추후 잠입 플레이에서 어떤 식의 레벨 디자인을 보여줄 것인지는 나중을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지의 제왕: 골룸'은 2022년 9월 1일 PC, PS5, PS4, Xbox One, Xbox Series X/S 플랫폼에서 정식 출시될 예정이며, Nintendo Switch 출시일은 아직 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