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보다 내장이 더 잘생긴 게임이 있다?



2005년 첫 출시 이후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 온 리벨리온의 슈팅 게임 '스나이퍼 엘리트'시리즈의 다섯 번째 정규 시리즈가 출시되었습니다. 멀찍이서 스코프를 통해 정조준한 적을 일격에 처치하는 매력의 '저격'은 일단 슈팅 게임이라면 어떻게든 우겨넣는 요소이지만, 이 '저격'에 집요하게 집중한 게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스나이퍼: 고스트 워리어'시리즈, 그리고 오늘 말할 '스나이퍼 엘리트' 시리즈 정도지요.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정점을 꼽자면 단언컨대 '스나이퍼 엘리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거리와 풍향에 따라 달라지는 탄도, '저격'이라는 소재가 100% 살아날 수 있는 넓고도 굴곡진 전장. 그리고 발사된 총탄을 따라가는 독특한 체이스캠과 타격 부위에 따라 달라지는 엑스레이 캠은 그 어떤 슈터 게임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독보적인 손맛을 자랑합니다.

물론, 이 시리즈가 유명한 이유는 아마 현존하는 AAA급 게임 중 거의 유일하게 시스템적으로 '고환 파괴'를 만들어두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유명한 '원 샷 8킬'을 비롯한 각종 영상 덕분에 스나이퍼 엘리트 시리즈는 '자세히는 몰라도 어디선가 본 게임'정도의 위치가 되었고,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세상 가장 잔인한 슈팅 게임으로 통하곤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몸이 다 조각나는것보다 이게 더 무섭습니다.

이번 작품 또한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수많은 나찌들이 칼 페어번의 잔혹한 심판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 두 배에 해당하는 수의 고환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까기의 가능 여부가 '좋은 게임'의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이 독특한 요소를 제외하고도 '스나이퍼 엘리트5'가 좋은 게임인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 본 리뷰에는 다소 잔인한 이미지 및 유혈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명: 스나이퍼 엘리트5 (Sniper Elite5)
장르명: 슈팅
출시일: 2022. 5. 26.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Rebellion
서비스: Rebellion
플랫폼: PS4/5, XBOX One, XSX/S, PC
플레이: PC(MS Store)

관련 링크: 'Sniper Elite5' 오픈크리틱 페이지 / 메타크리틱 페이지


나쁘게 말하면 똑같고, 좋게 말하면 핵심이 살아있고

'스나이퍼 엘리트5'는 그대로입니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큰 틀에서 바뀐 점이 없습니다. 굳이 나쁘게 말하자면 '변화가 없이 똑같다'이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습니다. 대중적인 장르에서 변화 없는 후속작은 혹평의 철퇴를 맞기 딱 좋지만, 이미 시리즈 자체로 독보적인 게임성을 구축한 상황이라면 사실 '그대로'라기보단 '시리즈의 핵심'을 잘 유지한 것에 가깝죠. 그리고, 스나이퍼 엘리트5는 명백히 후자의 경우입니다.

게임은 여전히 적당히 넓은 오픈 필드를 무대로 합니다. 하나의 맵이 하나의 스테이지가 되는 형태이며, 총 9개의 맵(DLC포함 시 10개)이 준비되어 있죠. 맵 하나하나는 그리 넓진 않습니다. 약 1제곱키로미터 정도의 너비. 작정하고 맵의 중앙 고지에 오른다면, 적당한 조준경만 있을 시 모든 적이 사정권에 들어오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모든 맵에 복잡한 구조의 건물과 지하 방공호, 참호들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곳에 올라가서 다 쏴버리는 플레이는 원천적으로 봉쇄됩니다.

▲ 여전한 시리즈 특유의 킬 캠

때문에 게이머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저격과 잠입, 암습과 적절한 수준의 근접 전투를 병행해 플레이하게 됩니다. 스나이퍼 엘리트5의 각 스테이지는 단순히 적과 목표 외에도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환경 수단과 수집 요소, 숨겨진 정보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해안포 진지를 무력화하는 미션이라면, 모든 적을 사살하고 가방 폭탄으로 포대를 날려 버릴 수도 있지만, 포대 엔진룸에 진입해 엔진을 고장내거나 장교 사살, 금고 개봉으로 비밀번호를 획득한 후 자폭 장치를 가동할 수도 있습니다.

▲ 미안해...!

물론, 판정도 넉넉합니다. 어떤 장교 머리 위로 샹들리에를 떨어뜨려야 하는 상황에서 굳이 숨어서 장교가 지나가길 기다릴 필요 없이 죄다 사살하고 장교만 기절시킨 후 샹들리에 위에 살포시 눕혀 놔도 됩니다. 시멘트에 빠트려 처치하는 미션도 굳이 유도할 필요 없이 비살상탄으로 기절시켜 시멘트에 집어 던져도 됩니다. 어떤 형태로 게임을 풀어갈지는 플레이어의 몫이라는 뜻이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전과 똑같습니다. 다양한 해결 방안이 존재하는 미션과 사살 타겟이 존재하는 스테이지. 큰 틀에서 성공만 한다면 방법이나 진행 순서는 마음대로 조율할 수 있는 게임 디자인. '히트맨'시리즈 여러 부분을 공유하는 게임성 자체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부족해지는 '변화'를 개발진은 소소한 디테일을 통해 끌어올렸습니다.

▲ 근거리 전투도 생각보다 자주 하게 되는 편



소소한 변화로 끌어올린 완성도

일단, 전반적으로 그래픽 수준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스나이퍼 엘리트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그래픽이 썩 좋은 게임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전히 타 AAA급 게임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수준이지만, 이젠 어디 가서 부끄럽지 않을 수준은 되었습니다.

다만, 환경 이펙트나 광원 등은 전부 다 개선된 점이 보임에도 인물 렌더링은 여전히 옛날 게임 느낌이 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거죽은 나아진 점을 찾을 수 없지만 총탄이 파고들 때 재생되는 장기와 뼈대, 근육의 그래픽은 전작 대비 확실히 높아졌습니다. 오죽하면 얼굴보다 내장이 더 예쁩니다.

▲ 장기 및 근육 묘사는 모탈컴뱃 수준으로 올라왔다

또한, 총기의 갯수는 줄어들었지만 총기의 커스터마이징 폭이 굉장히 넓어져 오히려 전작보다 더 자신에게 알맞는 총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소음기 종류도 늘어남에 따라 소총으로도 게임 내내 들키지 않고 유령처럼 플레이할 수도 있죠.

메인 무기인 소총이 아닌, 다른 무기를 사용할 때도 특유의 킬캠이 작동하게 된 것 또한 유의미한 변화입니다. 수류탄이나 기관단총, 권총을 쏠 때도 저격과 같은 형태의 킬캠이 연출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상하이 조 컨셉플레이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의 주 무대인 프랑스에는 백병원이 없습니다.

▲ 전작 대비 확연히 넓어진 총기 개조 폭

'스나이퍼 엘리트5'는 확실히 전보다 더 나아진 게임입니다. 전편에 존재하던 부분을 없애거나 무리한 변화를 주지 않았고, 그저 이전에 미흡했던 부분을 조금씩 다듬어 새로운 무대와 함께 내놓았습니다. 변화의 폭을 말하자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전작에서도, 그리고 그 전작에서도 이와 같은 흐름은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스나이퍼 엘리트 시리즈는 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개선'의 방법이 장점의 극대화와 단점의 최소화라는 두 갈래로 나눠진다는 걸 생각하면, 이미 장점이 뚜렷한 게임 시리즈의 발전 양상으로는 매우 모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소소한 변화가 확실히 게임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지에 대한 여부인데, 적어도 이번 작품은 꽤 성공적이라 할 수 있죠.

▲ 미션 클리어 시 MBTI 성적표도 받을 수 있다. 뿌듯



손맛 가성비의 끝판왕

처음으로 돌아와 '스나이퍼 엘리트5'가 좋은 게임인지에 대해 말해 봅시다. 앞서 게임의 좋은 부분들을 여럿 말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스나이퍼 엘리트5도 소소한 단점들은 존재합니다. 지형 극복 애니메이션이 영 어색하고 지형 판정이 보는 것과 다른게 많아 무릎 높이의 담장도 빙 돌아가기 일쑤고 다크 소울 시리즈의 '암령'과 비슷한 신 시스템 '추축군 침투'는 재미보다 스트레스가 더 강합니다.

저격 근본 게임임에도 100미터 이상의 장거리 저격을 할 상황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나, 북아프리카, 이탈리아를 지나 프랑스로 무대가 바뀌었음에도 배경의 특색이 드러나지 않고 서사 구조 또한 있건 없건 별 차이 없는 수준이라는 점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싱글 플레이가 주된 게임이다 보니 멀티플레이에 사람이 없는 건 어쩔수 없는 부분이지만요.

▲ 주인공이 활약하고 악당이 화나는 서사

하지만, 이 단점들을 안고 간다 해도 스나이퍼 엘리트5는 '좋은 게임'이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좋은 게임의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중 하나가 볼륨 대비 게임 가격인데, 이 게임은 무려 엑스박스 게임 패스로 플레이가 가능하거든요. AAA급 게임임에도 훨씬 낮은 가격으로 플레이 가능하다는 건 그 자체로 메리트가 됩니다. 하물며, 그 게임이 중간 이상은 가는 게임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죠.

결론을 말하자면, '스나이퍼 엘리트5'는 평범히 좋은 게임입니다. 전작까지 이어진 시리즈 특유의 게임성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소소하게나마 개선과 변화를 줌으로서 확장팩이 아닌 후속작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제대로 한 판 하는데 90분~120분 가까이 걸리는 미션이 9개나 존재하며, 반복 플레이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도 매력적인 포인트죠. 그리고, 여기서 게임 가격을 고려하게 되면 평범히 좋은 게임에서 상당히 좋은 게임까지는 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 가격에 이 정도 손맛 느낄 수 있는 게임은 찾기 어려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