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자랑하고 싶은 '조선 사이버펑크'의 초석



'산나비'가 드디어 출시됐습니다.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라는 세계관에 한국적인 색을 더해,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게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작품입니다. 언제 출시되는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보니 지난 2021년 초에 네오위즈와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전한 뒤 아직 1년 밖에 지나지 않았더라고요. 그간 공개된 여러 빌드를 체험하며 계속 기대감을 키웠더니, 그 어떤 게임들보다 더 오래 기다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팀에서 산나비를 구매할 수 있게 됐지만, 출시 버전은 아직 얼리억세스 빌드입니다. 엔딩까지의 1회차 콘텐츠가 완성된 상태는 아니었고, 볼륨은 어려움 난이도 기준으로 약 3시간 정도에 달했습니다. 결코 만족스러운 분량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으나 3시간의 볼륨이 모두 알찬 플레이 경험으로 채워진, 그야말로 정식 출시를 위해 농축시킨 빌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현재 공개된 분량을 플레이한 뒤 이 게임의 매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추후 공개될 '정식 출시' 빌드에서 꼭 채워졌으면 하는 아쉬운 포인트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게임명: 산나비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2. 06. 21
리뷰판: 1.0.9
개발사: 원더포션
서비스: 네오위즈
플랫폼: PC
플레이: P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K-사이버펑크"

▲ 얼리억세스를 통해 추가된 야옹이 대원, 게임을 구매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산나비 얼리억세스 빌드는 게임의 배경이 되는 마고시의 가장 외각 부분을 지나 첫 번째 보스전인 기계 지렁이 '집행명령'과의 전투 이후, 마고시 중심에 자리 잡은 마고전자에 진입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 2차 CBT 빌드 이후 크게 더해진 부분은 두 번째 보스전과 챕터3에 해당하는 마고전자 공장 파트 뿐이지만, 이곳에 다다르기까지의 여정 역시 추후 공개될 정식 버전으로 이어질 것을 고려하여 추가 담금질이 진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산나비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에 한국적인 색을 담아내려고 여러모로 노력한 부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게임 속에 녹아있는 여러 한국적인 요소들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기존에 다른 사이버펑크를 소재로 다룬 게임이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할 땐 맛볼 수 없었던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이버펑크를 이야기할 때 묘사되는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인 하얀 분장의 '게이샤' 대신 연지곤지를 찍어 바른 젊은 신부의 광고가 등장한다든지, 한국어가 적힌 간판이 도시를 빼곡히 덮은 모습이나, 조선 시대의 의복과 군장을 갖춘 캐릭터가 등장하는 식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한국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요소들이 단순히 보여주기 식에 그치지 않고, 작은 곳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적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똑같은 내용의 간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 내용 역시 다채로웠죠. 한국 개발자들의 손길이 아니라면 절대 그려내지 못했을 비주얼이랄까요.

▲ 터널 같은 구간을 지나 상업지구로 들어서는 순간의 연출은 참 각별하다

▲ 디스토피아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 '이게 바로 조선의 사이버펑크다!'

보통 게임 속 한국의 이미지는 미국 한인 타운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어색한 한국어 글귀와 촌스러운 폰트로 마감된 간판 몇 개로 대충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진심이 가득 담긴 한국적 요소들로 가득 채워진 산나비를 보면 한국인 게이머로서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조선 사이버펑크'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을 정도죠.

이처럼 게임 속 한국적인 부분을 몇 번이고 강조해서 소개하는 이유는, 이러한 요소들이 플레이어를 게임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외산 게임에서 가끔 만나볼 수 있는 반가운 한국어 더빙도 이러한 맥락에서 활용되는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보통 게임 속에 자주 등장하는 중세 판타지나 미래 세상은 아무리 멋지고 화려하게 그려지더라도 막연한 상상 속의 이미지에 그칠 수밖에 없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산나비에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게임 플레이 전반에 걸쳐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상상 속 미래도시인 '마고시'와 그곳을 탐험하는 주인공의 상황에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산나비라는 게임에서 한국인 게이머만 누릴 수 있는 강점이기도 합니다.

▲ 사이버펑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아이콘인 네온 간판, 요소마다 공들인 흔적이 보인다

▲ 국적을 초월하여 게이머라면 누구나 웃을 수 있는 요소들도 찾아볼 수 있다



'산나비'의 정수, 사슬 팔을 활용한 와이어 액션


여타 2D 액션 어드벤처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산나비' 속 또 하나의 특징은 주인공의 사슬 팔을 활용한 와이어 액션에 있습니다. 사슬 팔은 게임 속 플랫포머 지형들을 빠르게 넘나들 수 있도록 돕는 더없이 확실한 이동 수단이자, 대부분의 적을 일격 필살로 해치울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도 합니다. 사슬 팔을 활용한 전투와 이동 조작은 게임에 속도감을 더해주고,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러한 와이어 액션 대부분을 마우스 하나로 조작할 수 있는 것 역시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리억세스 빌드에서는 지형에 연결한 사슬 팔을 빠르게 감아 벽에 밀착하는 '사슬 감기' 조작이 새롭게 추가됐습니다. 새로운 조작을 통해 다양한 장애물과 복잡한 지형들이 등장하는 플랫포머 파트에서의 조작감이 더해진 셈입니다. 처음엔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조작법 자체가 워낙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금방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 새로운 조작법을 위한 튜토리얼도 확실히 갖춰져 있다. 딸은 여기를 어떻게 올라갔을까?

사슬 팔 조작이 영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플랫포머 액션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포함하여 누구나 산나비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쉬움부터 매우 어려움까지 네 개 단계로 세분된 난이도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쉬움 난이도에서는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는 무적 치트나 다름없는 편안한 게임을, 매우 어려움에서는 단 한 번만 피해를 입어도 죽는 하드코어 그 자체인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죠.

산나비의 개발사 원더포션은 지난 1차 테스트부터 얼리억세스에 이르기까지 게임의 난이도 세분화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이는 액션 파트와 양분되어 게임의 또 하나의 매력이 되어주고 있는 '스토리'를 누구나 끝까지 따라가며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얼리억세스 빌드에서 적용된 난이도 구분은 개발자의 의도대로, 누구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데 충분히 일조하고 있습니다.

▲ '산나비'에서는 액션이 어려워서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일은 없다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산나비의 와이어 액션에 충분히 적응했다면, 다음엔 보스전을 통해 자신의 사슬 팔 조작 능력을 시험해볼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적으로부터 계속 도망치는 것으로 빠른 기동 능력을 확인하는 형태가 대표적이고, 이외에도 부분적으로 노출되는 적의 약점을 타겟팅하는, 정확도를 요구하는 식의 보스전도 등장합니다. 사용하는 무기는 사슬 팔 하나 뿐이지만, 저마다 다른 방식의 공략법을 요구하므로 숙련도를 판단하기에 좋은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엔 2회차 전용 모드라고 할 수 있는 '스피드런'을 통해 사슬 팔 조작 능력의 극한에 도전해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결국 개발사 원더포션은 여타 2D 플랫포머 게임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와이어 액션을 게임 속에 녹여낸 것은 물론, 누구나 이것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풀어서 담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매번 버튼 연타로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방식의 뻔한 액션 게임이 지겨워진 참이라면, '산나비'를 통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신선한 액션과 조작의 재미를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산나비, K 사이버펑크의 '완성'까지 한 걸음 더


개발사가 한국식으로 해석한 사이버펑크의 비주얼이나 독특한 사슬 팔 액션까지, 산나비는 만족스러운 부분이 넘쳐나는 게임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들도 몇몇 존재합니다. 그중 첫 번째는 몇몇 존재 의미가 불분명한 버튼 액션입니다.

산나비에서는 보스전에서 적을 마무리하는 순간에 QTE 연출이 등장합니다. 일반적인 사슬 팔 액션으로 그려내지 못하는 극적인 장면을 표현하고, 플레이어가 이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 QTE를 삽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현재 빌드에서는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역동적인 카메라 연출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으로 극적인 분위기를 전하려고 하지만, 적과의 사투 끝에 겨우겨우 마무리 일격을 넣는다는 느낌이 다소 부족합니다. 요구하는 버튼 입력이 단순하고, 플레이어가 열심히 버튼을 연타해도 이에 주인공 캐릭터의 움직임이 반영된다는 느낌이 적으며, 무엇보다도 실패에 대한 페널티가 없어 긴장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챕터2의 보스인 저스티스 전에서의 QTE입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반격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적에게 QTE를 하는 것은 '티배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죠. 억지로 QTE를 넣기보다 상황에 맞는 컷신으로 대체하고, 최소한 '집행명령' 보스전에서 그렸던 것처럼 상대가 거칠게 저항하는 그림이라도 넣어야 플레이어가 상황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집행명령' 보스전에서는 화려한 도트 연출로 그나마 구색을 맞췄지만,

▲ '저스티스'전에서의 QTE는 티배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갈수록 단조롭게 느껴지는 전투 파트입니다. 산나비의 주인공은 앞서 소개했던 것처럼, 오직 '사슬 팔' 하나만 가지고 싸웁니다. 세 개의 챕터에 걸쳐 이를 응용하는 여러 방식이 등장하고 있으나, 사실 플랫포머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전투 파트는 후반부로 갈수록 똑같은 잡기 액션의 반복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잡기 액션'역시 충분히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두 번째 챕터에서 등장하는 '처치할 수 없는 적을 함정으로 던지는 전투'는 어떤 적이든 일격필살로 해치웠던 이전까지의 전투와는 다른 방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세 번째 챕터에서의 전투가 또 어떤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을지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일반적인 잡기로 파괴할 수 없는 적을 함정으로 밀어넣는 전투는 신선했다

세 번째 아쉬운 점은 BGM 활용입니다. 현재의 산나비는 최소한의 리소스를 다방면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평화로움', '보통', '긴급'의 서로 다른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세 개 음악이 계속 반복되는 것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최근 출시되는 몇몇 인디 게임들이 맵 하나하나에 전부 다른 곡을 삽입하며 오리지널 BGM의 개수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것과는 분명히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물론 좋은 BGM을 상황에 맞게 배치하여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곡의 수가 적은 것 자체는 단점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산나비의 현재 빌드에서는 BGM 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자주 노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플랫포머 액션 파트'와 '스토리 파트'가 완전히 구분되어 진행되고, 이러한 구분점이 게임 내내 꽤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강력한 적에게 쫓길 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계속되다가, 추격을 따돌린 순간 BGM이 확 꺼져버리는 것이죠. 이런 경험이 반복될 때마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템포가 뚝뚝 끊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게임 속에는 뚝하고 꺼져버리는 것 같은 급격한 BGM 전환이 스토리 전달을 위한 연출로 영리하게 활용되는 부분도 자주 등장합니다. 이처럼 꼭 필요한 부분에서는 활용하되, 화면 전환 중 게임의 템포가 끊기는 것처럼 느끼지 않게 할 수 있는 BGM 활용법을 더 고민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과거 회상에서 한순간에 깨어나는 연출. BGM 전환이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이외에도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마우스와 키보드로 플레이하는 것에 최적화 되어있다'는 안내와 달리 버튼 활용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대사를 넘길 때죠.

QTE 연출에서는 마우스, 스페이스바, E까지 모든 조작이 가능하지만, 게임에서 대사를 넘길 때는 마우스 클릭, 스페이스바는 안되고 무조건 E 버튼만 인식합니다. 한편, 메뉴 화면에서 항목을 선택할 때는 마우스 커서가 크로스헤어처럼 표시되지만 정작 클릭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여기선 E 혹은 스페이스 버튼으로 선택해야하죠. 이렇게 퍼즐처럼 상황에 따라 꼬여있다보니, 오히려 패드로 플레이하는 편이 더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본적인 조작에서 플레이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버튼 활용 부분에서도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대사 넘기기도 마우스 클릭이 인식되면 참 완벽할텐데…

▲ '키보드와 마우스로 플레이하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안내 문구가 얄궂다





기사에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최대한 언급을 줄였습니다만, '산나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에 있습니다. 사고로 딸을 잃고 복수귀가 되어버린 주인공과 그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녀 금마리의 이야기가 마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2편이 나오지 않는다는 세기의 명작, '라스트 오브 어스'를 플레이할 때와 비슷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세계관과 스토리 전반에 한국적인 요소가 깔렸다 보니 몰입하기도 쉽고, 오히려 더 깊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죠. 얼리억세스 빌드를 플레이하는 동안에도 단 한 순간의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얼른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앞에서 아쉬운 점으로 언급한 몇 가지 요소들이 단순히 얼리억세스이기 때문에 남아있는 불안 요소에 그칠지, 아니면 향후 공개될 산나비의 정식 출시 버전에서도 그대로 아쉬운 점으로 언급될 문제들일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물론 지금도 정식 버전이 출시되는 그때까지 꼭 기억해두고 끝까지 플레이하고 싶은 '스토리 맛집' 게임임이 분명하나,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을 모두 보완하여 세계 어디에 내놓더라도 'K-사이버펑크 갓겜'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탄탄한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기를 응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