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골리뷰 : 사골까지 빨아먹은 다음에 쓰는 리뷰


나의 바이블 첫 페이지에는
리그오브레전드, 도타, 워크래프트, 오버워치, 스타크래프트, 킹오브파이터즈


나는 경쟁적인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 즉각적인 성취감과 우월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경쟁 게임들과 일평생 같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대방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한 명을 상대하는 격투 게임보단 다섯 명 이상의 AOS나 FPS를 더 선호하고, 그것보다 많은 적이 있으면 더 좋다. 아군과 적군이 섞여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릴 때가 재미있다. 그러다 운 좋게 연속해서 적을 쓰러뜨릴 때는 고양감을 감출 수 없다.

많은 적, 경쟁 게임이라는 태그는 항상 스팀에서 빼놓지는 않지만, 그것만 있다고 좋아하진 않는다. 게임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경쟁 게임에서의 완성도는 그 게임을 쭉 오래 할 수 있는 매력과 같은 의미다. 메인 콘텐츠의 단단함, 제법 재미있는 서브 콘텐츠와 함께 아예 머리를 비우고 할 수 있는 것들도 필요하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경쟁 게임들은 리그 오브 레전드, 워크래프트3, 도타2, 오버워치 같은 게임이다. 완성도가 높은 경쟁 게임. 또는 고티로 거론되는 그런 게임들로 내 게임 인생을 채워왔었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내가 푹 빠져버린 게임은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배틀 그라운드같은 월드 클래스가 아니다. 게임을 같이 해왔던 지인들에게 소개와 동시에 변명 비스무리한 구차한 설명을 곁들여야 하는 녀석이다. "그 게임 왜 해?" 물어볼 때마다 "그냥, 할 만해"라고 말한 게 수 십 번. 게임에 받았던 솔직한 감상도 괜찮다, 그냥 무난하게 재밌다. 정도를 1년, 2년. 어느새 나는 이 '컨커러스 블레이드'라는 게임을 몇천 시간 한 사람이 됐다.

안다. 어떤 게임인지 모르는 사람이 반일 것이고, 대충 중국 게임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그 반의반. 이름은 들어 봤지만 할 생각은 없는 사람은 그 반의 반일 것이다. 나는 이 기행기로 컨커러스 블레이드가 얼마나 재밌는 게임이며, 여러분도 해보라고 얘기하고 싶진 않다. 일명 '갓겜'들로 주위를 가득 채웠던 내가 약간은 쿰쿰한 냄새가 나는 이 게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말해보려 한다.



판타지와 리얼리티 중간 어딘가,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아서 좋아

▲ 2020년 4월, '상회와 용병' 도금 시즌부터 게임을 시작

컨커러스 블레이드를 제작한 회사는 중국의 게임 개발사 부밍 게임즈(Booming Games)다. 컨커러스 블레이드 전의 대표작은 없다. 2019년에 발매 직후에 플레이하진 않았고, 2020년 4월에 46개 국가에 정식 런칭과 무료화를 진행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스팀 평가는 좋지 않았으나, 마운트 앤 블레이드 온라인 같은 느낌이라는 얘기는 마우스를 찍어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게임을 설치하면서 예상했던 대부분의 기대와 우려가 모두 있었다. 제법 대규모 전쟁의 느낌이 났다. 내가 병력을 명령하면서 플레이어와 같이 싸울 수 있었다. 보병, 궁병, 기병 등 병종은 다양했다. 플레이어가 전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도 마음에 들었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불을 뿜는 무쌍 스타일과 현실적인 전투 위주인 마운트 앤 블레이드 스타일의 중간 지점을 잘 잡았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15대15로 진행된다. 전장은 보통 동, 서양의 성들이다. 게임 시작 전 내가 편성하고 싶은 부대를 통솔력이라는 코스트 내에서 편성할 수 있다. 고급 병종들의 코스트는 높은 대신 당연히 강력한 편이고, 하급 병종들은 낮은 코스트 대신 개체 수가 많다. 내가 어떤 지점에서 어떤 병력으로 싸울 것인지 전략을 세운 후에 병사를 선택해 게임을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내가 다룰 수 있는 병력은 하나다. 장수 하나에 병사 한 부대로 전투를 진행한다.

▲ 병사를 키워서


▲ 통솔력(코스트)에 맞춰서 편성하면 끝


▲ 최근에 추가된 신규 전장인 '오를랑 대교'


▲ 공격팀은 성을 공격하고, 수비팀은 수비하고 심플한 규칙



병사의 수는 종류와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기간병이 되는 보병, 창병은 평균 20~30명이 편성된다. 30명의 플레이어의 전투가 벌어지면 700명 이상의 병사가 뒤엉켜 싸우는 장관이 펼쳐진다. 꽤 볼만하다. 병사들의 AI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플레이어들은 병사 하나하나의 디테일한 컨트롤은 할 수 없으나, 부대별로 이동과 공격, 스킬 사용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병사 뿐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장수)들도 중요하다. 장수들은 12개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무기들과 그에 맞는 갑옷 유형을 입고 전투에 임한다. 내가 다루는 병사와 무기의 숙련도를 합친 것이 그 플레이어의 실력이 된다. 게임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 장수와 병사가 뒤엉켜 싸우고, 병사가 모두 전사하면 미리 편성했던 다른 병사들을 인솔해 다시 전장으로 향하면 된다.

▲ 12개의 장수 무기, 모두 개성있다고는 못하겠다

컨커러스 블레이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모든 스킬들이 굉장히 직관적이라는 것이다. 스킬 하나에 효과 하나가 보통이다. 요즘 게임들은 너무 어렵다. 캐릭터의 성능을 100% 발휘하려면 어떤 걸 미리 써야 하고, 표식을 쌓아야 하니 어쩌니, 벽에 밀어 넣어야 하니 저쩌니. 몇 줄이나 되는 스킬 설명을 읽지 않으면 내 캐릭터는 '똥캐'가 되고, 나는 '허접'이 된다. 컨커러스 블레이드는 아재 게이머들 또는 게임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한 편이다.



시즌별로 진행되는 게임, 빠른 업데이트 템포


나는 게임이 멈춰있는 걸 견딜 수가 없다. 아무리 갓겜이라고 해도 업데이트가 느리거나 신규 챔피언이 나오지 않으면 수명이 끝난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든다. 컨커러스 블레이드는 시즌 업데이트와 주간 업데이트의 사이클이 존재한다. 시즌은 2~3개월 단위다. 하나의 시즌에 2~4개의 새로운 병사, 장수와 병사에 장착할 수 있는 특수 장비, 신규 전장 등이 추가된다. 병사들의 밸런스나 버그 수정 등의 자잘한 것들은 매주 진행된다.

한 시즌이 끝나면 바로 다음 시즌이 시작된다. 시즌 사이의 프리 시즌은 매우 짧은 편이다. 시즌은 전쟁사에서 중요한 시기 또는 장소가 메인 콘셉트가 된다. 첫 번째 시즌은 몽골 시즌이라 검 기병과 활 기병을 해금할 수 있었고, 일곱 번째 시즌인 발할라에선 바이킹 광전사를 얻을 수 있는 식이다. 시즌 도전만 천천히 해간다면 무료로 모든 시즌 병사들을 얻을 수 있다. 시즌은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어, 나에게 필요한 시즌 병사만 얻고 다른 시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시즌을 따라가다 보면 다음 업데이트가 될 때까지 시즌 병종을 다 얻고, 숙련도를 쌓을 시간이 모자라기도 할 정도다. 바로 다음 해야 할 목표가 내 눈앞으로 다가온다. 컨커러스 블레이드의 일 년은 바쁘다.



▲ 해금은 어렵진 않은데, 과금하면 더 쉽고



메인 콘텐츠 영토전, 취향에 맞다면

▲ 우리 가문, 연맹, 동맹의 땅을 넓히고 세력을 크게 만드는 것이 목표

컨커러스 블레이드의 메인 콘텐츠는 화요일과 토요일 밤 9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영토전이다. 개인이 모인 가문(House) 단위로 각 지역의 마을, 관문, 성들을 공격하고 수비하며 가문의 영토를 늘려나간다. 가문이 모인 연맹, 연맹이 모인 동맹이 항상 존재하며, 서로의 이득을 위해 협력하고 때론 배신한다. 게임 초반에는 같은 국적의 유저들이 모인 집단이 주로 존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국적 보다는 같은 목적을 모인 가문이 함께하는 경향이 생겼다. 스팀 서비스 이후로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서버마다 엄청나게 복잡한 관계가 생겼다. 서로 보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사람도 있고, 나라와 가문은 다르지만 친해진 친구들도 있다.

컨커러스 블레이드는 가문원간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영토전 때 마다 백 명 이상의 인원들이 함께 움직이다 보니까, 서브파티 음성 채팅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나는 사람들이랑 맞춰가며 플레이하기 싫은 사람들도 괜찮다. 영토전은 필수 콘텐츠가 아니니까. 아예 가문 소속이 아닌 NPC측 진영인 진국군으로도 한 시즌을 보낼 수 있다.



단점? 당연히 있다. 많다.

▲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의 폭도 넓지 않아

단점이 없는 게임은 없다. 단점이 적다면 갓겜이겠고. 컨커러스 블레이드는 분명 단점이 많은 게임이다. 첫 번째로 내가 1인분을 하려면 사전 작업이 꽤 필요하다는 것이다. 3개 이상의 메타 병종은 필수다. 맵에 따라 기병이나 원거리 병종을 적절히 섞으려면 5개 병종은 키워놔야 한다. 고인물들이야 병사 성장에 필요한 경험치가 넘치기 때문에 시즌 병종이 나올 때마다 만렙을 금방 달성하지만, 초보자는 쉽지 않다. 장수가 장착해야 하는 갑옷들과 무기 또한 제작해야 한다. 캐릭터 성장에 과금이 미치는 요소가 아주 적기 때문에 시간을 써야 한다.

어색한 번역과 원문과 틀린 설명은 2년 전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픽은 그저 그렇다. 최적화는 좋지 않다. 인터페이스와 UI는 촌스럽다. 병사나 장수들의 스킬 계수, 세부 능력치는 직접 실험해서 알아봐야 한다. 시즌별 스토리는 없느니만 못하다. 기본 핑이 90ms 정도라서 더 쾌적하게 즐기려면 VPN같은 외부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 e스포츠 리그 또한 정비가 많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계속하게 되는 게임이다. 메타크리틱 평점이 높거나 지인들의 평가가 좋은 갓겜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왔던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 가장 잘 만든 게임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준 고마운 게임이기도 하다. 아마 올해도 꾸준히 할 것 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