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로 조금씩 능력치를 올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성장.
조금씩의 성장을 위한 지독한 그라인딩(반복 플레이).
그리고 그라인딩을 가볍게 만들 수도,
혹은 여러 시도에도 그리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는 과금 시스템.

디아블로 이모탈의 과금 문법은 전 세계적으로 오늘날 모바일 F2P 게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가 됐다. 유저는 물론이고 F2P(Free-to-play) 모바일 게임을 주로 다루지 않던 비디오 게임 매체들도 성토의 장을 열었다.

게임 플레이와 투자에 대해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의 서투름. 그럴듯하게 보일 꾸미기의 정도는 다를 수 있었겠지만, 디아블로 이모탈은 그간 시장에 나온 F2P 게임의 공식을 잘 따랐다. 그래서 디아블로 이모탈이 이 모든 비난의 목소리를 혼자 받아내고 있는 모습은 퍽 신기하다. 비판의 화살을 디아블로 이모탈 뒤에서 피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도 분명히 보인다.


이쯤 돼서 그동안 파편적으로 이야기했던 문제. 게임의 과금 논리온전한 게임 가격의 고리를 이어보고자 한다.




디아블로 이모탈의 수익 모델은 디아블로 프랜차이즈 전체를 보면 불만을 가질 만하다. 초반 성장은 기존 디아블로처럼 플레이에서의 그라인딩이지만, 장비가 갖춰지면 그 성장의 폭은 점점 좁아진다. 새로운 장비 획득이 주는 쾌감은 줄어들고 장비 획득은 약간의 전투력 상승에 그친다. 성장 중에 얻었던 장비 획득의 큰 즐거움은 게임 중후반부터 무작위로 얻는 전설 보석이 대신한다. 플레이어는 인앱 결제를 통해 스스로 전설 보석 획득의 기회를 빠르게, 여러 번 늘릴 수 있다. 100% 필요한 무언가를 사는 게 아니라 큰 즐거움을 얻을 기회를 사는 셈이다.

그런데 확률에 기반해 무언가를 획득할 기회를 사고파는 방식의 수익 모델은 지금 새로운 것으로 지목하기에는 얼굴이 다 붉어질 정도로 뻔한, 널리 퍼진 방식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L 빠진 플레이(Play -> Pay)를 디아블로 이모탈이 구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블리자드는 굉장히 늦게서야 이러한 수익 모델을 도입했다.

결국, 블리자드가 보였던 행보와 강력한 팬덤이 반했던 '디아블로'라는 IP가 오늘의 평가에 일정 부분 기인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디아블로가, 블리자드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화제 역시 없었을 터다. 비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많은 게임이 이미 비슷한 문법으로, 서비스에 타격을 입지 않을 정도의 L 빠진 플레이로 운영되고 있다.


널리 퍼진 수익 모델을 도입한 후 거센 비판을 받은 프랜차이즈는 또 있다. 바로 엘더 스크롤이다. 베데스다는 2019년 화면을 스와이프하며 공격하는 1인칭 액션 엘더 스크롤: 블레이드로 세계관을 모바일로 옮겨냈다. F2P로 얼리 액세스를 시작한 게임은 기본적으로 보상을 제공하는 박스는 무료로 주지만, 개봉 후 수 시간이 지나야 내용물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인앱 결제를 통해 박스를 바로 열거나 추가 박스를 살 수도 있다.

얼리 액세스 공개 이후 서구권 시장을 중심으로 베데스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얼리 액세스 버전이라지만, 가장 큰 아쉬움은 단연 게임 플레이였다. 게임의 핵심 요소인 전투와 그걸 구현한 얼리 액세스 당시의 액션은 전투 부분에서 아쉬움을 산 기존 엘더 스크롤보다 나을 게 없었다. 하지만 비판의 화살은 게임의 만듦새보다 수익 모델에 집중됐다.

▲ 무료로 제공되는 박스지만, 유료 재화를 써서 빠르게 해금할 수 있고 ▲ 소지 한도가 적은 가방은 돈으로 확장 ▲ 강력한 아이템을 판매한다는 팝업 광고 ▲ 사망 시 마을이 아니라 죽은 장소에서 바로 부활할 수 있는 유료 아이템 등이 비판받았다.

기존 비디오 게임 프랜차이즈의 F2P 게임화에 대한 서구권의 반감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 게임의 얼리 액세스 시기는 2019년이다. F2P 게임이 시장에 겨우 몇몇 모습을 드러낸 시기가 아니다. 무료로 제공되는 박스를 빠르게 열거나 가방의 한도를 늘리는 정도의 수익 모델은 이미 서구권에서도 유행하던, 수익 상위권의 게임에 더러 있던 요소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이 정도 수익 모델이 '착한 과금'의 일부로 불리기도 한다.

2022년 디아블로 이모탈의 출시와 함께 비난 받은 수익모델 역시 2022년이 아니라 그 이전에 훨씬 유행해왔던 것들의 반복이었다.


많은 게임 전문지가 디아블로 이모탈의 이런 수익 모델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논란은 포브스 선임 기자 폴 타시의 칼럼 이후 더 빠르게 퍼졌다. 평소 게임의 세부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는 국내외 많은 매체가 폴 타시의 칼럼 내용을 인용했다.

폴 타시는 그간 과도한 과금 유도 수익 모델을 비판해왔고 디아블로 이모탈이 가진 요소도 조목조목 이유를 들며 분석했다. 그는 아시아 시장에서의 권력 유도형 수익 모델의 수효가 있다지만 20년의 프랜차이즈 경험을 P2W(Pay-to-Win) 시스템이 주도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리고 그 수익 모델을 대조할 대상을 원신으로 삼았다.

특정 캐릭터 없이도 플레이할 수 있는 콘텐츠의 자유도, 플레이로도 충분히 제공되는 프리미엄 재화, 핵심 최고 등급 캐릭터를 가챠 풀 안에 넣을 수 있는 픽업 시스템 등이 원신의 수익 모델이 디아블로 이모탈보다 낫다는 근거로 쓰였다.

그의 말대로 원신의 수익 모델은 F2P 게임 시장에서 덜 경쟁적 디자인을 가진 게임으로 꼽히기도 한다. 게임에는 특정 캐릭터 없이 모든 콘텐츠를 수행할 방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특정 캐릭터의 콘텐츠 수행력은 저마다 차이가 있고, 똑같은 캐릭터를 반복해서 강화하는 시스템 방식이 중복 카드를 소모시킬 해결법으로 쓰였다.

과도한 수익 모델에 대한 반박을 위해 B2P(Buy-to-play)가 아니라 덜 경쟁적이라고 평가 받는 F2P 게임이 대상에 오른 셈이다. 그리고 비판의 방향, 강도와는 관계없이 높은 수익 실현 가능성을 품고 있는 F2P가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디아블로 이모탈에 대한 거센 반발은 국내는 물론 미국 커뮤니티에서 들끓었지만, 매출은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특히 미국이 43%, 한국이 23%로 전체 매출 2/3가 두 나라에서 나왔다. 시장 규모 대비 디아블로 프랜차이즈 인기가 낮은 일본 역시 8%로 세 번째로 높은 매출 비중을 차지했다. F2P에 대한 반발과는 별개로 시장 규모가 큰 국가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갑작스러운 연기에 여러 추측이 오가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 출시에 매출 상승세를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 조사 업체 뉴주가 2022년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시장의 모바일 게임 매출은 2021년 150억 달러(한화 약 19.5조 원)였다. 중국은 320억 달러, 일본은 137억 달러였는데 전체 모바일 시장에서 932억 달러가 창출됐음을 보면 약 65%가 이 3개 국가에서 나오는 셈이다.


흔히 말하는 패키지 게임. 더 정확히는 온라인이든 로컬 기반 게임이든 처음 게임 비용을 지불(구매)하고 이후 추가 비용 없이 게임을 즐기는 고전적인 방식의 B2P의 수익성이 F2P만큼의 성공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사전적인 의미의 온전한 게임 가격. 혹은 기본적인 시장 최고 판매가쯤으로도 볼 수 있는 풀 프라이스(Full-Price)의 추이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많은 개발비와 투자가 이루어지는 고밸류 게임, 이른바 AAA 게임은 보통 풀 프라이스로 시장에 출시된다. 게임의 가치를 평가할 때 물가나 환차, 개인 선호도 등 여러 기준이 있을 테지만, 대개 AAA 게임을 최고 가치를 매겨놓고 그걸 기준으로 가격을 설정하는 식이다.

일찌감치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닌텐도는 1980년대 5,500엔대, 북미에서는 60달러 선에서 게임을 판매했다. 하지만 당대 RPG를 대표하던 드래곤 퀘스트를 의식해 제작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출시 이후 서로 조금씩 가격을 높여 판매됐다. 특히 패미컴 시기 출시된 두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드래곤 퀘스트4가 8,500엔, 파이널 판타지3가 8,000엔에 각각 판매됐다. 슈퍼 패미콤 황혼기에는 카트리지 가격 하나에 11,400엔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격 상승의 원인은 서로 입을 맞춘 게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칩 가격 탓이었다. 당대 AAA 게임에 적용된 고성능 사운드 효과, 그래픽 연출은 콘솔뿐만 아니라 게임 카트리지에 추가 칩셋을 통해 처리했다. 이 칩셋이 추가된 카트리지 생산 비용이 게임 가격에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 게임 가격에 제작비가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었던 카트리지 시기

실제로 1994년 플레이스테이션을 선보인 소니는 생산 비용이 저렴한 광학 매체 CD를 게임 매체로 사용하며 판매 게임 기준을 당대 60달러에서 50달러 수준으로 낮췄다. 이러한 회사별 가격 기준은 글로벌 시장 경쟁이 강화된 2005년 즈음부터 풀 프라이스라는 표현으로 본격적으로 사용됐고 PS3, Xbox360의 자사 퍼스트 게임 가격이 60달러로 오르며 표준처럼 10년 이상 이어졌다.

60달러를 기준으로 최근 원신이 기록한 전 세계 누적 매출 30억 달러를 올리기 위해서는 타이틀 5,000만 장을 판매해야 한다. 현재 단일 타이틀 5,000만 장 이상을 판매한 게임은 마인크래프트, GTA5, Wii 스포츠, 플레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마리오 카트8 & 디럭스 정도다. 그마저도 일부 타이틀은 풀 프라이스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됐다.

십수 년째 이어진 풀 프라이스 기준 가격 인상도 그래서 나왔다. 테이크 투가 NBA 2K21을 시작으로 차세대 버전 스탠다드 게임 가격을 70달러로 올렸고 소니, 액티비전 등도 풀 프라이스를 인상했다.

풀 프라이스는 그대로였던 시기, 한없이 높아진 개발비가 이유로 꼽혔다. Xbox360 출시와 함께 결정된 가격 60달러에 1년 늦게 PS3를 출시한 소니 역시 이를 동일하게 맞췄다. 하지만 이 60달러가 유지되는 동안 소비자 물가는 높아졌고 개발자 임금도 상승했다.

2019년 소니를 떠난 숀 레이든 전 SIE 대표는 AAA 게임을 개발하는 데 8,000만 달러에서 1.5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숀 레이든은 업계에 뛰어든 후부터 회사를 떠날 때까지 풀 프라이스 가격은 60달러로 동일했지만, 그 사이 개발비용은 10배로 뛰었다고 밝혔다.

재임 당시를 기준으로 설명했으니 개발비는 더 커졌을 터. 최고 수준의 개발비가 들었던 GTA5는 2.65억 달러의 개발비가 들었는데 인플레이션까지 고려하면 약 3.3억 달러, 약 4,300억 원 정도가 개발비로 쓰였다. 아울러 게임 출시 이후에도 추가적인 개발 비용과 마케팅 비용, 게임 지원 등이 계속 이루어진다.

차세대 콘솔 시장을 중심으로 상승한 풀 프라이스 70달러를 향한 비판은 거세다. 게임 개발 비용의 증가만큼이나 게임 유통의 편의성, 온라인 게임 판매의 보편화, 시장 규모 확대 등으로 전보다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에 개발 비용 증가에 따른 가격 상승의 불합리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온라인 판매의 경우 플랫폼사를 통한 라이선스는 그대로이고 스팀, MS스토어, PS스토어 등 온라인 유통 채널에서 챙기는 수수료 역시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 비용, 개발 비용을 소비자물가지수를 기반으로한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 물가 상승을 고려한 게임 가격, 출시 후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더 싸게 파는 셈이다(출처: 인플레이션스테이션)

2017년 1차 출시된 닌텐도 스위치의 미국 가격은 299.99달러고 현재까지 그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노동통계국의 정보를 바탕으로 오늘날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348달러가 된다. 실제 게임기 가격은 그대로이기에 실제로는 약 50달러 저렴하게 판매되는 셈이다. 만약 닌텐도 스위치가 채소나 계란이었다면 물가 상승률에 의해 소비자 가격도 덩달아 올랐어야 하는 셈이다.

2005년의 풀 프라이스 가격인 60달러는 오늘날 인플레이션에 맞게 조정한다면 92달러로 매길 수 있다. 70달러로 올려도 오히려 당시보다 더 낮은 가치로 게임을 판매하는 셈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물가 상승에 맞춰 게임을 판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21년 콘진원이 발간한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설문 내용에 따르면 2020년 6월부터 2021년 4월까지 PC 게임이용자의 평균 지출 금액은 3.3만 원, 모바일 게임 내 이용 비용은 3.1만 원, 콘솔 타이틀 비용은 11.9만 원이었다.

작은 볼륨, 혹은 적은 인력 투자 개발된 2만 원의 인디 게임에겐 3만 원을 게임에 투자하는 이용자도 고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PC 및 콘솔로 출시되는 70달러 타이틀의 경우 구매할 의사가 분명히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결국 게임 가격을 물가 상승에 맞춰 올리는 것만큼 소비자가 지갑을 열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게임의 초기 비용이 없는 F2P의 경우 이러한 문턱은 더 낮아진다. 선진입 비용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고, 세밀하게 나눠진 여러 가격대의 상품은 이용자가 스스로 구매 가능 한도에 맞춰 결제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이렇게 낮아진 게임 시작 문턱은 게임 시장 규모의 확대를 불러왔다. 매년 성장하는 전체 게임 시장 규모 중 상당 부분이 물가에 맞춰 높아지는 풀 프라이스를 감당할 의지가 낮은 이용자. 즉 기존에는 게임 비 이용자였던 유저라는 뜻이다.


F2P 게임은 70달러 게임을 구매하지 않는 이용자 역시 소비자가 되지만, 반대로 소비자 1명에게 기댈 수 있는 수익에는 제한이 없다. 같은 게임을 여러 플랫폼에서 구매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B2P 게임은 한 번 구매하는 데서 끝나지만, 인앱 결제로는 100달러, 1,000달러 이상 투자하는 유저 역시 존재하니 말이다.

이에 많은 AAA 게임 개발사와 퍼블리셔는 B2P 게임이 게임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으로 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인앱 결제로 눈을 돌렸다.

1.5억 장을 판매하며 테이크 투의 핵심 매출원으로 오랜 기간 자리매김한 GTA5는 온라인 서비스로 작품의 수명(과 수익)을 연장하고 있다. 테이크 투는 또다른 주력 타이틀인 NBA2K22에는 자신만의 선수 성장인 마이 커리어와 인앱 결제로 구매 가능한 프리미엄 화폐 VC를 연동해 그라인딩과 인앱 결제가 모두 가능한 F2P식 성장을 정착시켰다.

EA의 피파 시리즈 역시 FIFA 얼티밋 팀(FUT)이 매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실제로 회계연도 2021년 재무성과 발표에 따르면 FUT는 한해 16.2억 달러의 순수익을 올렸는데 이는 2021년 EA 전체 순수익의 28.9%에 달했다.

게임 수명 연장과 추가 수익을 내기 위해 쓰였던 DLC는 B2P 게임과 동일하게 두 번 이상 구매할 필요가 없고 구매 대상 역시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기에 1회성으로 완성되지 않는 요소, 이야기처럼 무언가를 알아야 할 필요 없이 가능한 인앱 결제 콘텐츠는 결국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은 성장과 이어지게 된다. 더 빠른 레벨업과 장비 획득, 강화에 필요한 재료, 중요한 캐릭터 획득과 카드 한계 돌파를 위한 반복 결재까지. 그간 많은 인앱 결제 콘텐츠에 관한 논의가 오갔지만, 대개는 가장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성장으로 방향이 맞춰진다.

다만, 끝이 있는 게임에서는 이 성장에 한계가 있다. 엔딩을 보든, 중요 보스를 잡든, 콘텐츠를 클리어하기 위한 기준이 있고 무한대의 대미지나 원히트 클리어 같은 파고들기가 아니고서야 이 이상 성장하는 데 큰 가치가 없다. 오히려 액션 게임은 적정 레벨 미만에서 적을 처치하는 것에 더 도전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도록 만들기도 한다.

성장이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 콘텐츠의 방향 역시 제한된 성장이 아니라 끊임없는 성장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높은 성장 한계선을 그려도 결제로 그 속도를 앞당길 수 있으니 예상보다 이른 시기 성장 한계를 맞기도 한다. 그래서 업데이트의 방향이 성장에 방점이 찍히는 형태로 구현되어야 한다. 신규 콘텐츠가 유저에게 새로운 재미를 준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돈을 벌기 위한 새로운 수익 모델 추가의 쇼케이스 역할을 해야 한다.

B2P 위쳐4의 개발사가 출시된 게임의 수익을 당장 늘리기 위해서는 위쳐4의 확장팩을 출시하거나 치장형 DLC, 혹은 오래 걸리는 후속작 준비에 미리 돌입해야 한다.

반면, F2P 위쳐4의 개발진은 새로운 던전 콘텐츠를 만들고 콘텐츠 클리어에 적합한 신규 캐릭터, 액세서리, 새로운 장비 등급을 더해야 한다. 물론 이런 캐릭터와 장비는 던전을 클리어하며 매번 조금씩 조각으로 얻을 수 있지만, 인앱 결제를 통해 확률적으로 더 빠르게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둘 중 무엇이 더 제작하기 어렵고, 오래 걸리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꼭 오래 만들고, 개발 비용이 많이 투자된 형태의 게임이 더 많이 팔리리라고는 확답할 수 없는 게 오늘날의 상황이다.


길게 설명했지만 결국 게임의 단순한 가격 상승이 F2P, 나아가 B2P 프리미엄 게임의 과도한 인앱 결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럼 이쯤에서 관(官)에 공을 돌려보자. 도박법을 근거로 다양한 게임의 수정을 요구하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에는 게임의 서비스가 불발되기도 한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출시 직전 두 국가를 서비스 국가에서 제외했고 아마존이 해외 서비스를 맡는 로스트아크 역시 현지 법률 및 규정을 이유로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출시되지 못했다. 글로벌 서비스가 당연시되는 시대에서 특정 국가를 위한 서비스 수정, 더군다나 그것이 핵심 수익 모델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서비스를 포기하는 게 더 이득이다.

그렇다고 유저들의 합리적 소비로 시장이 중심을 찾아가리라는 기대를 하기도 어렵다. 영국 상원의원 주장이나 대학을 통해 연구 결과를 낸 루트 박스와 도박의 유사성 보고서를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게임에 돈을 쓸 수 있는 여유, 소득 격차 등에 합리적 소비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는 24시간 PvP가 이루어지는 전쟁 게임에 쓰는 돈은 아깝지만, 흔히 서브컬쳐로 불리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특정 애니메이션 IP가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유사한 디자인을 제공하는 게임) 속 캐릭터를 얻기 위해 뽑기 수십 회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추구하는 게임의 성향은 플레이어마다 다르다. 그리고 자신의 성향에 맞는 게임에는 그 기준이 한없이 관대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간 시장은 업계의 자정을 기대해왔다. 해외에서는 단기적인 복지(아이템 획득이나 분배), 공정성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F2P와 인앱 결제에서의 윤리적인 판단 필요성은 모바일 시장 활성화와 함께 일찌감치 이야기됐다. 하지만 결국 자율적인 규제 방안은 게임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그게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자 규제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먼저 나오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규제와 진흥을 투트랙으로 다루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있지만, 제대로 된 분석 없이 이루어진 법안의 폐해는 기업과 그 기업의 게임을 이용할 게이머들의 몫이 된다. 또,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지만, 당쟁에 당내 파벌 싸움까지 국회 개원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무리 뜻 맞는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어도 민생 논의조차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게임 관련 법안의 신속 처리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어려운 문제다. 게이머의 기호, 기업의 영리, 규제와 진흥, 그리고 경계가 사라지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움직임까지. 어느 한 곳에 맡겨두다간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을 분위기다. 여기에 쉽게 줄이라고 하지 못할 정도로 인앱 결제를 통한 시장 회전은 이미 오랜 기간 이어졌다. 수많은 개발자, 관련 종사자들이 그 순환 안에 있다.

그렇기에 바꾸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이라도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 쉽게 바뀌지 못하는 체질이 되었다고 불만이 커진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다간 어느 순간 순환해오던 컨베이어의 벨트가 끊어져 버릴 지도 모른다.

규제에, 개혁에 대한 미진한 움직임에, 부적절한 소비 등으로 성장 동력을 잃고 제자리걸음을 한 문화 콘텐츠, 여러 국가의 예는 심심치 않게 들린다. 더 늦기 전에 기업, 유저, 정치권 간에 어느 한 곳이 주도하는 변화와 요구가 아니라, 상생할 수 있는 소통과 움직임이 있어야 글로벌 시장에서의 주도권과 함께 게임 시장의 퇴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