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참 귀엽다. 야옹야옹하는 소리도, 기분이 좋을 때 그르렁거리는 울림도, 귀여운 핑크빛 젤리도, 가끔 기분이 좋을 때 다가오는 애교도, 그리고 가끔 기분이 나쁠 때 내려치는 펀치도 하나같이 참 귀엽다. 그래서일까, 고양이를 소재로 한 게임들은 항상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고, 어느 정도 흥행이 보증된 만큼 다양한 고양이 게임들이 꾸준히 출시되어 랜선 집사들의 마음을 흔들곤 했다.

고양이와 스프는 그 중 무려 2천만 명에 달하는 랜선 집사들에게 간택된 게임이다. 게임 속에는 동화책에 나올 것만 같은 보들보들한 잔디밭 위에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사르르 녹는 고양이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두 손으로 열심히 당근을 캐서 스프를 만들고, 나무에 기대 음악을 듣는 고양이들은 보고 있자면 시간이 언제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참 사랑스럽다.

놀랍게도 이 귀엽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힐링 게임을 개발한 건 그동안 묵직하고 하드코어한 게임을 만들어 온 하이디어의 김동규 대표다. 그는 편안한 게임을 만들게 된 데에는 가족들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특히 당시 7살이었던 딸의 의견과 시선이 고양이라는 소재를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수많은 랜선 집사들을 사로잡은 고양이와 스프는 이제 네오위즈와 손잡고 IP 확장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키티포포라는 전용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고, 실제로 50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확보할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다. 글로벌 2천 만 다운로드를 달성한 고양이와 스프, 그 시작은 무엇이고, 또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하이디어 김동규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하이디어 김동규 대표



출시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무려 2천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아마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 같다. 소감이 궁금하다.

"기분이 좋다(웃음). 다운로드 숫자가 게임이 정말 좋다는 것과 완전히 직결된다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더 좋은 게임들이 많다. 사업이나 마케팅팀 덕분에 좋은 성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거라고 예상은 못 했다. 게임 자체의 호흡이 길긴 하지만, 또 빠르게 끝내려면 금방 끝낼 수도 있는 게임이다. 주로 하는 게임을 하면서 간간히 시계 들여다보듯 하는 게임이라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아서 놀랐다."


직접 개발한 입장에서, 본인의 게임이지만 고양이와 스프의 어떤 점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이끌었다고 생각하나.

"비주얼을 비롯해서 게임의 첫인상이 편안하게 느껴진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편안한 그래픽과 좋은 그래픽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펙트가 강해서 보고 나면 머릿속에 계속 남는 그런 충격적이고 좋은 비주얼의 게임은 아니지만, 봤을 때 호감이 생길 수 있는 첫인상이 좋은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래픽이 좋다고 칭찬을 해주시지만, 정말 좋은 게임들, 훌륭한 게임들이 많다."


고양이와 스프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하다. 딸의 영향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계기는 정말 많지만, 일단 쉬어가는 게임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주변의 추천이나 제안을 받아보기도 했다. 이전에 만든 게임들이 조금 하드코어 하다 보니 심신이 피로하고 지쳤었다. 그러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하면서, 다음에 만들 게임은 좀 더 편안한 게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이들과 낮에는 같이 놀고 밤에는 작업하고, 그러면서 좀 더 편안하고 감성적인 게임을 만들게 됐다. 소재를 고양이로 선택한 건 딸의 영향이 컸다."

▲ 지난 5월, 2천만 다운로드를 돌파한 고양이와 스프


개인적으로는 워낙 아트가 뛰어나서 어떤 장르로 냈어도 흥행했을 것 같다. 방치형 장르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힘을 빼고 만들기 좋은 장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이들이 있는 상황에서 게임을 제작한 것이 영향을 많이 미쳤다. 제작 과정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게임도 보여주고 하면서 나름의 피드백을 얻었달까. 7살짜리 아이는 화면에 뭔가 나타나면 일단 누르고 보지 않나. 그래서 아이들도 마구 눌러도 되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 만들 거라면 아트, 비주얼이 가장 눈에 띌 수 있는 장르의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방치형 게임 특징 중 하나가 화면 비주얼에 영향을 많이 받는 거라 생각한다. 전략 게임의 경우엔 효율성이 가장 중요하고, 액션 게임이나 피지컬을 요구하는 게임은 화면에 등장하는 뭔가를 볼 새도 없이 조작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방치형 장르는 아무래도 화면을 많이 보고 있어야 하는 게임이기에 비주얼이 정말 중요하다."


게임이 이렇게 흥행한 뒤 혹시 다른 장르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나.

"다른 게임을 또 만들면 되니까 아쉬움은 없다.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보고 싶다. 아마 고양이와 스프를 어떤 장르로 제작했든, 다른 걸 만들고 싶을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랬다. 엄청 하드코어한 걸 만들고 나서는 편안한 걸 만들고, 그러다 손맛이 그리우면 또 무겁게 만들고, 그래 왔다."


그렇게 다양한 게임을 제작하는 게 어렵지는 않나. 장르가 자꾸 바뀌다 보니 쌓아온 경험을 활용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한 우물만 파는 게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계속 다른 게 끌리고 흥미가 생겨서 여러 장르를 개발하고 있는데, 좋게 보면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이지만, 전문성이 떨어진다거나 레퍼런스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손해도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장르를 개발하는 이유는 새로운 것이 재미있어서다. 기존 작품의 후속 시리즈를 이어가려면 상당한 인내와 정성을 갖춰야 한다. 난 그게 부족하다(웃음)."

▲ 전작들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고양이와 스프


혹시 고양이와 스프 개발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해프닝이 있나.

"뭔가 임팩트 있는 사건은 없었다. 게임처럼 개발과정도 잔잔했다. 일상처럼 계속 잔잔히 게임을 만들었던 것 같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게임에 넣는 것, 그 과정이 가장 임팩트 있었고 재밌었다. 예를 들어 바닥을 어떻게 처리할까, 잔디를 넣어볼까, 바람에 날리는 잔디를 해볼까, 이런 걸 고민하다가 구현했을 때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그 과정이 참 즐겁다.

게임 만드는 것 자체가 직업이기도 하지만 반쯤은 취미다. 개발을 안하면 뭔가 더 재밌는 걸 찾아야 하는데 아직 찾지 못해서 평소에 다른 취미가 없다."


그럼 게임을 개발하는 것과 직접 플레이하는 것 중에는 어떤 게 더 즐겁나.

"둘 다 좋다. 다만 하나의 게임을 엄청 오래 하지는 않는다. 초반에는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한다. 직업병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너무 잘 만든 게임은 부럽기도 하고 직접 제작해보고 싶기도 해서 오래 즐기지 못하는 편이다.

게임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그렇다. 잘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저 멋진 비주얼이나 영상미를 게임에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작품의 여운을 끝까지 즐기지 못하게 되더라."



고양이와 스프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고양이다. 고양이들을 디자인할 때 가장 신경 쓴 점이 무엇인지.

"모든 고양이를 한 번에 그리지는 않는다. 한 마리를 제작하고 거기에 프로그래밍으로 털의 길이나 체형, 골격, 꼬리 등 모든 걸 조정해서 다른 고양이를 만든다. 그러다 보니 기준점이 되는 골격을 완전히 탈피하는 고양이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려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고양이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우선 기존의 고양이들과 함께했을 때 이질감이나 기술적 문제가 없는가, 그리고 실제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이 봤을 때 거부감이 없을까에 대한 부분이다. 특히 후자는 혼자서 해결하지 못해서 여기저기 의견을 듣기도 한다. 실제로 고양이를 키우지 않다 보니 이해도가 부족한 곳은 피드백을 받고 수정한다."


고양이와 스프의 아트, 비주얼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D와 3D, 그 모호함 어딘가에 있는 그래픽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2D인지 3D인지 질문을 받을 정도로 고양이와 스프의 그래픽은 모호하다. 정지한 화면은 2D의 느낌이 강한데, 움직임에서는 2D로 구현할 수 없는 모션이나 앵글이 보이다 보니 독특하고 신기하다는 느낌이 있는듯하다."


고양이들의 모션이 정말 디테일하면서도 부드럽다. 하지만 과하지도 않다. 표현 방식에 있어 가장 고민하고 노력한 부분이 무엇인가.

"고양이가 너무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고, 너무 동물처럼 보이지도 않는 그 중간쯤의 느낌을 주고자 했다. 손이 있어서 뭔가를 쥐고 움직일 수는 있는데 뛰어다닐 때는 고양이처럼 뛰어다니는 것처럼, 그 중간쯤에 있는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시점이 고정되어 있다 보니, 그 시점에서 보기에 가장 예쁘고 괜찮은 모션, 앵글을 설정했다. 처음부터 고양이가 스프를 끓일 때 어느 정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생각하고 만든 것이다. 거창할 것 없이, 아트를 하는 사람이 직접 게임을 개발할 때 편하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1인이나 소규모 개발사가 하기에 편한 방식이다."


게임을 구상하고 출시하기까지 어느 정도 걸렸나.

"일년 정도 걸렸다. 느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만든 것이기에 구상이랄 게 딱히 없었다. 따로 기획 단계를 거치기보다는 고양이를 그려놓고, 배치하고 그렇게 시작했다. 그래서 개발 초반이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다. 물론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도 즐거울 수 있지만, 1인 개발이기에 정말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정말 단순한 게임이다. 최근 방치형 게임들이 점점 더 조작이 많아지는 것과는 반대다. 이런 단순한 콘텐츠 위주의 게임을 발매하며 혹시 불안감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불안은 있었다. '이걸 과연 게임이라고 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었다. 유저가 조작을 비롯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게임으로 인식을 해줄까 걱정되더라. 주로 즐겨하는 게임 취향과도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보니 행사에 출품할 때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게 행사에 출품한 뒤 받았던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사실 고양이들이 과연 다른 사람의 눈에도 정말 귀엽고, 취향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정말 엄청 컸었다. 딸이 준 피드백은 7살의 피드백이었고, 실제 유저의 경우 연령층이 다양하지 않나. 비슷한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고양이의 모습, 그래픽, 색감 이런 게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고 두려웠는데, 그에 대한 좋은 피드백이 있어서 참 좋았다.

반대로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취약한 부분을 짚을 때는 역시 사람들의 생각이 비슷하다 싶더라. 업계에 20년 동안 있으면서, 일단 만들어 둔 결과물은 거기까지가 당시 능력의 한계라는 걸 느꼈다. 처음부터 어긋난 걸 뒤에 다시 바꾸더라도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더라. 노력을 하지 말자는 건 절대 아니다. 이렇게 경험을 쌓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달까."

▲ 구글 인디게임페스티벌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고양이와 스프


이미 꽤 지난 일이지만, 네오위즈와 함께하게 됐다.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었나.

"글로벌 런칭 후에 게임이 알려지고 유저 수가 급등하면서 모든 수치가 갑자기 크게 상승했다. 그게 혼자 감당하기에는 힘들 정도였다. 운영이나 마케팅 등등 모두 그랬다. 그 과정에서 네오위즈의 연락을 받고 고민하다 함께하게 됐다."


조금 이를 수 있지만, 혹시 차기작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몇 가지를 시도해보고 싶다. 일단 고양이와 스프 IP 게임을 하나 더 만들 생각이고, 완전히 다른 느낌의 액션 게임도 만들어 보려 한다. 일부는 시작한 것도 있다. 다음 고양이 게임의 경우, 소재와 IP가 같지만 다른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 "

▲ 고양이와 스프 IP를 활용한 키티포포 유튜브 채널


앞으로 어떤 게임 개발자로 남고 싶은지.

"10년 전쯤, 유저들의 평가나 반응이 신경 쓰였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똑같은 생각을 한다. 아직도 뭔가 기사나 커뮤니티 반응 등을 잘 보지 못한다. 그런 부분을 신경 쓰기 시작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엄청난 개발자 보다는, 죽기 전까지 게임을 만드는 과정이나 일하는 과정을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너무 심한 변곡대신 평균 이상의 행복감과 함께 게임을 계속해서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이들 덕분에 고양이와 스프라는 게임이 탄생했다. 혹시 다음 게임에 대한 의견을 내기도 했나.

"지금도 이런저런 게임을 만들어 달라거나, 새로운 고양이를 추가해 달라고 한다.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육아가 훨씬 어려운 것 같다(웃음)."

▲ "평생 즐겁게 게임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