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기 게임 하나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일단 한 번 들어나 보시고 결정하세요. 아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방식의 성장 묘미가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요.

일단 게임의 목표는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 하지만 시작은 능력치부터 스킬까지 뭐 하나 보잘것없으니 차근차근 성장해나가는 걸 목표로 합시다. 플레이어는 일종의 교관이 되어 선수의 근력도 키우고, 속도도 높이고, 때로는 한계 상황에서도 제 힘을 낼 수 있는 근성까지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체력이나 컨디션에 따라 훈련이 실패하기도 하고 제대로 성과를 얻지 못할 수 있으니 적절한 휴식과 외출로 몸상태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죠. 여름 합숙 기간에는 훈련 능력치가 크게 올라 이에 맞춰 체력 안배를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성장할 시간이 마냥 주어지는 건 또 아닙니다. 성장에는 제한된 기간이 설정되어 있고 플레이어가 선택한 선수의 성장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경기들이 꾸준히 열리죠. 기간 안에 목표한 경기에서 승리라는 결과물을 내지 못하면 성장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게임이 종료되기도 합니다. 특히 육성 기간 막바지에 다다르면 1회 행동 여유가 주어질까 말까 할 정도로 경기가 빡빡하게 이어지는 연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성장에 불리한 요소만 있는 건 아니겠죠. 이미 보유한 선수 5명과 친구의 선수까지 최대 6명의 선수를 파트너로 설정하고 육성을 시작할 수 있는데요. 속도, 근성 같은 훈련 메뉴에 함께 등장해 성장치를 늘려줍니다. 때로는 특별한 이벤트로 새로운 스킬이 해금되기도 하고, 단순 능력치가 상승하기도 하죠. 이렇게 조금씩 파트너와 호감도를 쌓고 그게 최고치가 되면 훈련할 때 능력치 상승 효과가 배가되기도 합니다. 캐릭터마다 가지는 이벤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기도 하고요.

일반적인 게임, 특히 모바일 게임에서는 성장의 한계를 높게 잡고 계속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게임이 진행됩니다. 여기서는 정해진 기간이 끝나면 캐릭터 육성도 끝나죠. 육성이 완료된 선수는 PvP 콘텐츠에 쓰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아예 소모된 캐릭터가 되는 건 아닙니다. 얼마든지 다시 육성해 더 훌륭한 선수로 키워나갈 수 있죠. 그러기 위해서 카드 등급도 높이고, 레벨도 높이며 다음 육성을 준비하고요.

자, 어떤가요? 기존 게임과는 다른 성장의 재미가 느껴지시지 않나요? 네? 이거 딱 우마무스메 얘기 아니냐고요? 무슨 소리, 이 게임은 '신일본 프로레슬링 스트롱 스피릿'입니다.

▲ 우마무스메인줄 아셨나요? 땡, 틀렸습니다, 경마 아니고 프로레슬링입니다

▲ 육성 전에 서포터, 아니 파트너 카드를 준비하고

▲ 정해진 기간 훈련을 통해 능력치를 올려줍니다

▲ 다른 캐릭터와의 이벤트로 능력치가 상승하거나 새로운 스킬을 올릴 수 있고

▲ 스킬 포인트로 능력치와 주요 기술의 레벨을 올릴 수 있죠

▲ 여기에 경기는 자동 진행, 어때요 우마무스메랑 완전 다ㄹ...를 리가 있나! 핵심 육성의 방식은 거의 유사합니다



꽤 멀리 돌아 게임의 특색을 상세히 이야기한 만큼 육성 자체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육성 방식은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를 상징하는 게임 플레이를 완성하는 요소기도 하고요. 그걸 거의 유사하게 구현한 게임이 신일본 프로레슬링 스트롱 스피릿이거든요.

이렇게 기간을 한정해두고 플레이어의 성장 목표와 방향에 따라 다른 방식의 선수를 육성하는 게임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시리즈 30주년을 코앞에 두고 최근에는 실황이라는 타이틀을 빼버린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의 석세스 모드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프로 스포츠 게임의 핵심은 유명 선수들과 그들을 직접 조작하는 플레이에만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파워풀 프로야구는 고교 선수나 대학 리그 선수를 육성하고 결국에는 프로 지명 단계에 이르는 성장을 그립니다. 어떻게 선수를 키우냐에 따라 때리면 넘기는 슬러거가 될 수도, 어느 부분 빠지지 않는 호타준족 5툴 플레이어로 육성할 수 있죠.

그리고 이러한 성장 요소는 진행 방식이나 요소들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늘날 FIFA, NBA 2K, MBL 더 쇼 등에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았고요. 육성의 묘미는 스포츠 게임의 기존 모드들과 달리 성공과 실패에 플레이어의 역량이 담기는 데 있습니다. 큰 틀의 목표는 있을지언정 정해진 성장 방향의 가림막이 없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육성이 이루어지죠. 그 결과 역시 플레이어의 선택과 실력, 그리고 약간의 운에 달렸습니다. 플레이어마다, 또 새로운 육성마다 저마다 다른 드라마가 쓰인다는 거죠.

▲ 두근두근 메모리얼의 흥행에 육성 시뮬레이션 요소로 도입된 석세스 모드

꾸준히 개선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석세스 모드가 시리즈에 처음 도입된 건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3. 그러니까 1996년 작품에서였고 오늘날에는 다른 게임에서도 각자의 시스템, 유저 성향에 맞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성장의 틀을 갖춘 우마무스메를 눈여겨보게 되는 건 모바일이라는 플랫폼 탓입니다.

FIFA나 NBA 2K 시리즈는 피파 얼티밋 팀과 마이 커리어의 VC처럼 인앱 결제를 통해 수익을 낼 콘텐츠가 존재하긴 합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만으로 기본 재화를 얻을 수 있고, 또 프랜차이즈나 리그 모드, 구단주가 되어 팀을 운영하는 등 다른 플레이 콘텐츠 역시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에 맞게 한번 구매하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Buy-to-Play(B2P) 형태로 게임이 판매되죠. 패키지 판매라는 형태로 수익을 낼 수 있고 그 기반도 게임 안에 탄탄히 갖춰진 셈입니다.

대부분의 모바일 부분 유료화(Free-to-Play, F2P) 게임은 다릅니다. 일단 게임은 무료로 제공되고, 인앱 결제를 통해 수익을 내죠. 비교적 짧은 플레이 시간을 목표로 제작되는 모바일 게임의 특성상 PC, 콘솔과 같은 다양한 콘텐츠가 담기지 않습니다. PvP든, PvE든, 콘텐츠의 이름이 다를 뿐 핵심은 캐릭터, 혹은 파티의 성장이죠. RPG나 워게임보다 게임 자체가 간단한 퍼즐, 미니 게임 중심의 모바일 게임이라면 이렇게 과금이 이루어지는 핵심 목표는 더 간단할 테고요.

성장에 대한 욕구가 인앱 결제, 즉 게임사의 수익이 되는 셈이니 성장 한계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높으면 뭔가를 키울 엄두조차 나지 않을 테니 충분히 눈에 보이는 성장 한계선을 그리죠. 그리고 어느 순간 성장 속도는 천천히 낮추고 업데이트로 성장 한계선은 높이는 방식으로 다음 성장을 그리도록 합니다. 이게 곧 수익이 되니까요.

즉, 석세스 모드처럼 플레이어에게 성장치를 제한하는 방식이 모바일 게임에 어울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이미 확고한 성공을 거둔 방식이 있으니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요. 그래서 우마무스메의 육성 방식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우마무스메가 이러한 육성 방법을 안착시키기 위해 구성한 여러 요소를 함께 살펴봐야 성공을 위한 노력이 제대로 보입니다. 우마무스메에서는 육성이 끝나면 획득하는 인자라는 요소를 다음 육성 시 이어갈 수 있는데 이게 게임의 출발점을 좀 더 앞으로 앞당깁니다. 분명 육성 자체는 매번 새롭지만, 마치 로그라이트처럼 반복 육성이 다음 육성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거죠.

여기에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특정 애니메이션 IP가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유사한 디자인을 제공하는 게임)으로서의 만듦새도 중요했습니다. 캐릭터 구현력, 그걸 충분히 활용한 박진감 넘치는 경주,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는 일본 경마 요소를 '모에화'한 캐릭터 연출력까지 분명 모바일 게임에서 보여주던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캐릭터에 애정을 담을 만한 게 추가되니 경쟁적으로 더 높은 상위 성장을 노리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생기기도 하죠.

그래서 우마무스메의 성장 시스템이 그저 골격만 남아 어울리지 않는 게임에 이식되리란 우려도 남습니다. 실제로 유사성 논란과는 별개로 조각 획득에 따른 캐릭터 완성을 그리는 도탑전기 방식이나 방치 요소를 성장과 엮어낸 게임들이 장르 특성, 형태와 관계없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앞서 소개한 신일본 프로레슬링 게임만 해도 경기와 육성, 도장 훈련 파트너 등 우마무스메와 굉장히 유사한 IP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주마 특유의 혈통에서 나온 인자처럼 프로레슬링에는 담아낼 수 없는 몇몇 육성시스템이 빠지며 꽤 밋밋한 반복 플레이가 만들어졌거든요.

문제는 인자와 같이 육성 단계에서 플레이를 통해 얻은 것을 활용할 수 있는 영향력입니다. 이게 떨어지면 게임의 성장은 반복 플레이 외의, 다른 요소 영향력의 상승으로 이어지죠. 실제로 우마무스메 역시 게임 내적인 육성 다양화를 구현하기는 했지만, 육성을 지원하는 서포터 카드의 영향력이 크기에 카드 뽑기가 주 수익 모델이 됐습니다. 그래서 먼저 서비스한 일본에서는 주요 업데이트에서 육성 과정을 바꾸는 방식으로 게임에 변화를 줬고요. 플레이로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 우마무스메보다 더 적어진다면 카드 뽑기, 혹은 플레이어가 돈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무언가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죠.


오늘날의 많은 모바일 게임이 겉으로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내부의 성장 틀은 큰 변화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매번 색다른 무언가가 나올 때마다 무료 플레이어도, 혹은 돈을 투자한 플레이어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게임이 나올 수 있을지 기대가 커지기도 하고요. 인상적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육성 시스템이 그랬듯, 우마무스메의 그것 역시 게임의 거대한 성공 이후 여러 모바일 게임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꽤 입맛을 가리는 우마무스메의 오늘날 성장 시스템이 다른 게임에서는 그에 어울리는 형태로 매끄럽게 바뀔지, 아니면 그저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며낸 똑같은 성장으로 퇴보할지는 지켜봐야 할 이야기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