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개발부를 시작으로 소프트웨어 기획 개발부, 그리고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기획 개발부(Entertainment Planning & Development, EPD)로 이어지는 닌텐도의 개발 부서는 마리오, 젤다, 동물의 숲, 커비, 메트로이드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를 개발했습니다. 물론 매년 출시되는 수많은 신작을 직접 만들 수는 없으니 외주 개발사에 맡긴 게임도 있죠. 하지만 복잡한 외부 개발사와의 작업을 최소한으로 한 닌텐도는 본사 안에 하청 개발사를 입주시킨 적도 많고 닌텐도 게임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스튜디오와의 작업을 선호합니다.

2022년 닌텐도가 인수한 회사 SRD를 그동안 닌텐도 자회사인 줄 알고 놀란 사람이 많았는데요. 그도 그럴 게 SRD는 1982년부터 패미컴 게임의 프로그래밍을 30년가량 지원한 회사니까요. 같은 회사라 생각될 정도로 오랜 기간, 개발에 있어 깊은 관계를 맺는 겁니다. 하청 개발작에서도 닌텐도가 작업에 깊이 관여하며 특유의 철학을 드러내 닌텐도가 직접 개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내기도 했고요. 그래서 모바일 정도를 제외하면 외부 스튜디오 주도의 닌텐도 프랜차이즈 게임을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게임이 정말 독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닌텐도의 대표 프랜차이즈인 마리오를 활용하는 게임에 닌텐도 스위치 독점으로 출시되는 게임이면서 닌텐도의 관여는 최소화하고 유비소프트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엑스컴 방식의 턴제 전략 RPG가 마리오와 대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커 여러모도 기대와 걱정이 함께한 작품이었죠.

뭐, 그런 건 다 출시 전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후속작을 소개할 정도로 전작은 훌륭한 만듦새를 보여줬거든요. 그리고 오는 10월 20일, 우주를 배경으로 돌아오는 '마리오 + 래비드'를 지금부터 소개할까합니다.


유비소프트가 만든 가장 닌텐도스러운 마리오

3D 시대의 마리오가 보여준 몽글몽글한 캐릭터 디자인과 형형색색의 화려한 색감. 2017년 출시된 '마리오 + 래비드 킹덤 배틀'은 말 그대로 닌텐도가 아니면 쉬이 따라 할 수 없는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 플랫폼 액션을 선보이는 방식, 퍼즐 풀이 등은 3D 마리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소들이었죠. 레이맨에 등장해 이제는 유비소프트의 마스코트가 된 엽기토끼 래비드들이 아니었다면 유비소프트의 협업작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흔히 편의를 위해 엑스컴 스타일쯤으로 불리는 전투도 역시 그저 스킨만 마리오 게임을 씌운 게 아니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투 자체는 분명 엄폐 요소와 총기류가 존재하는 턴 방식의 택티컬 전투입니다. 하지만 99% 공격도 피하는 악랄한 운 요소는 줄이고 플레이어가 마치 퍼즐을 풀어나가듯 지형물과 기믹을 활용하도록 했죠.

사격 공격은 엄폐한 적과의 방향에 따라 무조건 맞거나 무조건 피하는, 혹은 50%의 공격 확률만 그립니다. 여기에 캐릭터를 적에게 이동시켜 이루어지는 근접 공격의 활용이나 동료를 밟고 더 먼 거리로 이동하는 팀 점프, 그리고 이걸 같이 활용하는 등 지형과 함께 고려할 요소를 많이 더했죠.

너무나 나약하게 나가떨어지는 캐릭터를 살리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캐주얼하지만, 너무 간단하지도 않은 전략을 마리오 시리즈답게 만들어낸 겁니다.



'찐 닌텐도 덕후', 유비소프트 디렉터 다비드 솔리아니의 꿈

너무나도 '마리오다운' 게임에 그간 여러 닌텐도 하청 개발 게임이 그랬듯 닌텐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이 당연해보입니다. 하지만 IP 활용의 설득 과정을 빼면 개발진은 몇번 닌텐도와 만나 개발 과정을 공유하고, 의견을 들었을 뿐입니다. 실제 게임 개발은 유비소프트 파리의 지원을 받아 유비소프트 밀라노가 주도해 진행됐죠. 즉, 킹덤 배틀은 여타 마리오 프랜차이즈 게임과 달리 온전히 유비소프트의 손에서 탄생한 게임이라는 뜻이죠.

▲ 닌텐도 미야모토 시게루와 유비소프트 이브 기예모 CEO. 이 조합으로 게임이 나오는데 오른쪽이 개발사라고요?

그런데도 이렇게나 마리오스러운 게임이 나온 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다비드 솔리아니의 역할이 컸습니다.

1999년 레이맨의 게임 디자인과 레벨 디자인 등을 작업하며 업계에 뛰어든 그는 어릴 적부터 닌텐도의 팬이었습니다. 2002년에는 고향인 밀라노에 미야모토 시게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날 며칠을 그가 묵은 호텔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기도 했죠. 시게루가 묵은 호텔을 찾은 이후에는 사인 한 장 받기 위해 호텔 밖에서 10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기다리기도 했을 정도고요.

이러한 열정은 닌텐도 게임에 대한 해석과 IP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습니다. 미야모토 시게루까지 감동시켰을 정도로요. 그는 마리오에 대한 개발진의 높은 이해도, 마리오와 엮어낸 장르적 특성의 재해석, 그리고 다비드의 열정을 게임 개발에 있어 놀라운 점으로 꼽았습니다.

유비소프트의 E3 2017 쇼케이스에서 게임이 처음 공개됐을 당시 미야모토 시게루가 직접 게임 소개를 위해 스테이지에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마리오와 래비드의 유머러스한 결합, 플랫폼 액션을 활용한 인상적인 전투 등 게임 플레이 감상을 전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비드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 E3 2017 유비소프트 쇼케이스 당시 카메라에 잡힌 다비드 솔리아니 디렉터

미야모토 시게루가 직접 자신을 언급하며 게임 플레이의 인상을 전하자 다비드는 감동한 듯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야모토 시게루를 만나기위해 비를 맞으며 10시간을 기다렸던 젊은 개발자가 이제는 그에게 인정받는 개발자가 된 순간이었으니까요. 이 장면은 E3 2017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공한 덕후'의 애정이 마리오 + 래비드 킹덤 배틀을 성공시킬 힘이 됐던 거고요.


버섯 왕국? 무대는 이제 우주로

5년 만에 출시되는 후속작 '마리오 + 래비드 반짝이는 희망'은 우주를 모험의 장소로 삼았습니다. 전작은 물체 둘을 하나로 합치는 기계를 통해 마리오 세계관과 래비드들이 섞이고 마리오 세계로 들어가는 세계관 설정 부분부터 시작했죠. 이번에는 다른 세계와의 융합보다는 마치 마리오 게임 한편을 플레이하는 듯한 구성에 더 가깝게 게임이 표현될 예정입니다.


전작은 버섯 왕국 중심의 고전적인 마리오를 떠올리는 모습을 다수 보여줬습니다. 이번에는 다채로운 세계가 공존하는 우주를 배경으로 삼은 만큼 슈퍼 마리오 갤럭시 어드벤처 시리즈와 유사한 월드 구성과 추가 캐릭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슈퍼 마리오 Wii 갤럭시 어드벤처를 통해 처음 등장한 로젤리나에 신비한 별 종족인 치코 역시 래비드와 합쳐진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마리오, 피치, 루이지 등 래비드와 융합한 녀석들과 원래 캐릭터가 모두 게임에 등장하니 로젤리나의 등장도 기대할 만하고요.

이번 작품의 주 적은 은하계 전체의 에너지를 흡수하려는 보라마녀입니다. 보라마녀는 치코와 래비드가 융합해 태어난 스파키들이 가진 특별하고도 신비한 힘을 노리고 있죠. 마리오 친구들은 스파키를 구하는 동시에 보라마녀와의 사투를 펼치며 은하를 지켜나가게 됩니다.

보라마녀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또 다른 악당인 쿠파의 부하들까지 잠식했습니다. 전작에서는 보스로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준 쿠파지만, 성을 지킬 부하들이 사라진 쿠파는 보라마녀를 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적의 적은 동료라지요. 전작에서는 치열한 싸움을 펼쳤던 쿠파가 플레이어와 한 팀이 되어 보라마녀를 상대할 예정입니다.

▲ 다양한 능력을 가진 스파키와

▲ 항상 피로와 싸우는 현대인, 래비드 로젤리나

든든한 동료들과 함께하는 여정은 우주라는 새로운 배경만큼 전작보다 더 크고 넓게, 그리고 자유롭게 구현됩니다. 필드를 돌아다니며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요소는 한층 늘어났고 래비드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는 다양한 캐릭터들도 만날 수 있죠. 이들과의 교류는 게임이 강조하는 유머를 전달하는 용도로도 쓰이지만, 때로는 특별한 임무에 세계를 탐험을 위한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3D 오픈 필드 마리오의 장점인 퍼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탐험 요소는 한층 강화되는 셈이죠.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마리오와 친구들로서 다양한 은하계 속 이야기에 좀 더 깊이 빠져들 수 있게 됩니다.

마리오 + 래비드 킹덤 배틀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그랜트 키르코프에 가레스 코커, 시모무라 요코 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작곡가들이 게임의 세계를 완성하는 음악 작곡에 참여합니다. 그랜트 키르코프는 동키콩 랜드, 반조 카주이 등 30년 가까이 게임 음악을 만들었고 가레스 코커는 오리와 눈먼 숲, 오리와 도깨비 불로 주요 시상식에서 작곡 부문을 휩쓴 인물이죠. 스트리트 파이터2, 마리오 RPG, 킹덤하츠 등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곡을 다수 써온 시모무라 요코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야말로 드림팀이 마리오 + 래비드 반짝이는 희망을 위해 모인 셈입니다.



마리오의 핵심과 엑스컴보다 진한 전략의 맛

다비드 솔리아니 디렉터는 이번 게임의 핵심을 전투로 꼽았습니다. 한층 개선된 그래픽이나 월드 콘텐츠, 세계관 등 바뀌는 부분에 신경 쓴 요소도 많지만, 전투에 그것들 이상으로 많은 공을 들였단 이야기겠지요. 그런 약속처럼 실제 게임에서 그려지는 전투 부분에서의 변화도 눈여겨볼 것들이 많고요.

엄폐를 활용해 적의 공격을 피하고 근접 이동 공격과 팀 점프, 무기들을 활용하는 전투 구성 자체는 전작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사각형의 각진 그리드 대신 캐릭터의 이동, 공격은 원형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동 거리, 사거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행동에 자유로움이 더해졌습니다.

▲ 자유롭게 이동하고 이동 후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자유도가 높아진 전투

전작에서는 한 턴 내에 순서에 따라 이동 명령을 내리고 공격 명령을 내리는 식의 커맨드로 전투가 진행됐죠. 하지만 이번에는 이동 구획을 따로 지정하지 않고 자신의 턴 안이라면 캐릭터를 자유롭게 조종해 플레이할 수 있죠. 명령 실수나 전략적 실책이 발생할 여지는 줄이고 상황에 맞게 능동적으로 전략적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된 거죠.

토관이나 팀 점프를 이용해 눈에 보이는 이동 거리 이상을 움직이는 전략적 행동은 여전합니다. 터지기 직전의 폭탄병을 집어 적에게 수류탄처럼 던지는 등 기믹을 살리는 전투도 가능하죠. 여기에 캐릭터에 따른 고유한 능력은 어떤 캐릭터로 전투를 진행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전략과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냅니다.

마리오는 두 자루의 쌍권총을 들고 있어 적 사이로 파고들어 동시에 적에게 피해를 주는 게 가능하죠. 이동 경로에 있는 적을 직접 버튼을 눌러 밟을 수도 있습니다. 활을 사용하는 루이지의 백발백중 스킬은 멀리 떨어져있는 적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스킬입니다. 엄폐 요소가 적은 공간이라면 멀리서 적을 제압하기 위해 루이지를 전투 파티에 넣을 수 있겠죠.


스파키 역시 전투에 한 역할을 하는 요소인데요. 스파키들은 외형은 비슷하지만, 색도 다르고 표정도 다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능력으로 전투를 지원하죠. 붉은 스파키는 적을 불태우는 화염 공격을 가능케 하고 노란 스파키와 함께 이루어진 공격은 적을 감전시키기도 합니다. 캐릭터마다 하나의 스파키를 붙일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스파키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인 플레이 형태만큼은 비슷했던 캐릭터들. 이번에는 캐릭터 개개인에 개성이 담긴 무기 구성과 특수 능력을 더하고 추가적인 스킬, 스파키의 활용으로 보다 전략적인 요소가 더해졌는데요. 접근 자체는 캐주얼하면서도 파고들수록 다양한 변수와 전술이 가능한 플레이는 다채로운 전투 구성과 플레이를 그려낼 것으로 보입니다.

한층 전략적으로 성장한 전투에 마리오와 래비드 캐릭터들의 유머, 우주로 더 커진 세계, 쿠파와 새로운 동료들까지. 새로우면서도 마리오 시리즈보다 더 마리오다운 전략 RPG 마리오 + 래비드 반짝이는 희망은 오는 10월 20일 닌텐도 스위치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