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일본의 메타버스 플랫폼 '클러스터(cluster)'가 다운로드 수 100만 건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내에서야 '제페토'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기에 쉽게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파편화가 심하게 이루어진 현재의 메타버스 시장에서 100만 건이라는 숫자는 꽤 의미 있는 지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해당 뉴스를 접하기 전까지는 '클러스터'가 무엇인지, 그 이름조차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일본 특유의 문화나 환경을 함께 살펴보니, 그제서야 파편화가 심하게 이루어진 현재의 메타버스 시장에서 클러스터가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메타버스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도 그간 클러스터가 보여준 행보를 통해 배울 점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현재 일본 시장에서 특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클러스터는 과연 어떤 정책으로 차별화를 내세우고 있는지, 일본 시장의 특수성과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클러스터(cluster)'란?


클러스터(cluster)는 '가장 가까운 메타버스'라는 독특한 컨셉을 내걸고 가상의 사회와 커뮤니티를 만드는 메타버스 플랫폼입니다. 자신의 3D 아바타를 만들어 VR 세상에 들어가고, 공개되어 있는 여러 월드를 돌아보거나 이벤트, 라이브 공연에 참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VR 헤드셋을 사용하면 더 높은 현장감을 맛볼 수 있지만, VR 헤드셋이 없더라도 PC와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누구나 쉽게 접속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메타버스로의 간편한 접속이 매력 포인트가 되어, 현재는 일본에서 다수의 기업, 지자체, 플레이어들이 VR 이벤트 회장이나 소통 공간으로 클러스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자체 관광 협회를 중심으로 개설된 가상의 세상인 '버추얼 시부야', 혹은 기업 단위의 행사인 '포켓몬 버추얼 페스트' 등 여러 행사들이 클러스터를 통해 개최된 바 있습니다.

▲ 일본에서는 클러스터 플랫폼을 활용한 여러 행사들이 개최된 바 있다

클러스터의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는 일본의 실제 거리를 VR 세상 속에 재현한 월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클러스터에서는 버추얼 시부야, 버추얼 하라주쿠, 버추얼 마루노우치, 버추얼 오사카 등 실제 대도시를 재현한 가상의 월드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일반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닌, 지자체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완성도 또한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일반 개인이라도 클러스터 내에 존재하는 '월드크래프트' 기능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관련 지식이 없더라도 나만의 월드를 쉽게 만들어볼 수 있기에, 현재까지 클러스터 내에 34,000개 이상의 오리지널 월드가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클러스터의 플레이어들이 월드크래프트 기능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월드를 구축하는데 이용한 시간은 6만 시간 이상에 달합니다.

▲ 오사카 시에서 직접 개설한 클러스터 속 가상 오사카. 꾸준히 갱신이 이뤄지고 있다


일본 시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 그리고 '가상 세계로의 몰입'

사실 가상의 세상에서 친구를 만나고, 이벤트나 라이브 콘서트에 참여하는 것은 오늘날의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도 흔하게 이뤄지고 있는 활동들입니다. 사실 이러한 활동을 지원하지 않는 메타버스 서비스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인데요. 클러스터가 다른 서비스들과 차별화를 보이고, 나아가 '100만 다운로드'라는 결실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 내수 시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일본 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일본에서는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화제가 되기 전부터, 이미 현실세계와 가상의 혼합을 다루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었습니다. 가상의 세상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키워드 중 하나인 비주얼 노벨 '소드 아트 온라인'의 경우,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인 2009년에 발간됐을 정도였죠. 몰입형 경험을 강조하는 일본 콘솔 게임들과 여러 비주얼 노벨 덕분에 일본의 유저들은 한발 앞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가상 세계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왔습니다.

▲ 오랜 노출로 일본 시장은 VR/AR 기술에 대한 일반 대중의 반감이 크지 않았다

지난 2021년, 일본에서 '코로나19 감염증이 가상의 커뮤니케이션을 가속했는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메타버스 서비스 이용자의 대다수가 10대와 20대이며, 이들 중 91% 이상이 자신의 실제 이름이나 목소리 대신 익명과 변조된 목소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결과가 공개된 바 있습니다.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바타를 생성하여 다른 이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자신을 내보이기보다 익명으로 존재하길 원하는 쪽의 수요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특징들을 종합해서 보면, 현실의 자신과는 다른 가상의 존재가 되어 활동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막연한 가상의 세상 대신, 정말로 몰입할 수 있는 세상에서 '내가 정말로 여기 있다'는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유저들의 욕구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클러스터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일본 시장에서 전개해나간 메타버스 월드의 기조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죠.

▲ 대다수의 유저들이 가상 세계 속에서도 '익명성'이 보장되길 원하고 있다 (출처: ねむちゃんねる)

클러스터는 100팀이 넘는 실제 가수들이 참여하는 라이브 공연인 '시부야 언더 스크램블'을 현실의 시부야 거리를 재현한 가상의 월드에서 개최하고, 유명 관광명소인 도쿄역 마루노우치 지구를 가상 세계에 구현했으며, 이외에도 기업과 지자체가 주최하는 여러 이벤트를 메타버스 내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월드와 이벤트에 참여할 때 나 자신을 특정하지 않아도, 성별과 외모를 자유롭게 설정한 나만의 가상의 아바타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메타버스와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한 플랫폼 구분, 현실의 나를 숨기면서 동시에 나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아바타 시스템, '가상의 나'라는 새로운 존재로 있으면서도 동시에 몰입감을 극대화시켜주는 현실 기반의 다양한 월드가 지금의 클러스터를 만든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장의 이해에서 시작되는 '메타버스'의 발전, 혁신은 멀지 않았다

사실 메타버스의 부흥과 발전은 플랫폼 개발사가 단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유저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노출하고, 이들이 플랫폼에 접근해서 즐길 수 있는 UGC 콘텐츠의 자유도와 접근성을 높이고, 기업과 지자체의 협력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보급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일본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 '클러스터'가 첫 런칭 이후 한순간의 붐에 그친 채 사라지지 않고, 2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의미한 기록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도 얼마 전에 '부캐'가 대세로 떠올랐던 적이 있었죠.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자아에 대한 수요는 비단 연예인들에 한정되지 않는 대중적인 개념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이러한 트렌드를 주목하는 것이 국내 시장에 대한 이해가 될 수도 있겠죠. 어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오프라인 전시장과 함께 '메타버스 공간'을 개설했다는 내용의 뉴스를 자주 듣게 되곤 하는데요. 이벤트성으로 짧게 치고 빠지는 단편적인 경험이 아닌, 유저들이 '부캐'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드나들고, 현실과 양립하고 싶게끔 하는 가상의 공간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도전 하나하나가 모여 메타버스를 키우고, 나아가 혁신을 만드는 발판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 현재 클러스터에서는 페이트/그랜드오더 5주년 행사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