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폰이치류 던전도는 재미에 얄팍하고 괴상한 조리법 투하


니폰이치 소프트웨어, 이곳은 한때 빠져들면 나올 수 없는 악마의 게임 개발사로 이름 높은 곳이었다. 오죽하면 그 옛날 PS2 시절, 마계전기 디스가이아의 방대한 파고들기 요소에 자유로운 육성에 빠져든 사람들이 제작사가 미는 밈인 '사상 최흉 게임'에 이어 '본격 폐인 양성 게임'이라는 별칭까지 붙여줬을까.

물론 지금 콘솔 세대가 3세대는 더 지났고 강산도 두 번은 변했으니, 옛날 같은 맛이 날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잘 보관된 술처럼 숙성되어 천상의 맛을 낼 거라 기대할 법도 하겠지만, 그러기엔 최근 라인업이 낙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번 파고들기 시작하면 시간은 충분히 죽이고도 남는 SRPG류를 지속적으로 뽑아낸 그 짬밥은 어디 안 갔으니, 한 번씩은 신작 리스트를 훑어보게 만들 만한 회사이긴 하다.

'콥스 이터 모험가의 밥상'이라는 뭔가 괴상한 작명 센스의 신작을 고른 이유도 어찌보면 신뢰(?)의 증거였다. 늘 먹던 니폰이치류 SRPG, 던전 크롤러에 요리와 크래프팅이 본격적으로 추가되면 어떤 물건이 나올까 호기심이 들었던 것이다. 또 적어도 기본은 하는 회사니까 한 번 좀 트랜스가 되면 잠시 신작이 비어있는 공백기를 너끈히 버텨줄 수 있겠지 싶기도 했고. 하다보면 그 특유의 파고들 요소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뭔가 묘한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느낌이다.

게임명: 콥스 이터 모험가의 밥상
(Cadavers for Dinner)
장르명: 서바이벌 SRPG
출시일: 2022. 6. 30.
리뷰판: 1.0.0 버전
개발사: 니폰이치 소프트웨어
서비스: 세가퍼블리싱코리아
플랫폼: PS4, Switch
플레이: Switch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죠" 괴식에서 미식(?)으로 바뀌는 탐사의 맛

▲ 제목이 콥스 이터인 이유.jpg

영어판 제목은 살짝 다르긴 하지만, '콥스 이터'라는 제목을 듣고 설마 싶은 사람도 있을 거다. 시체를 먹는다는 말을 사냥해서 잡아온 걸 먹는다고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거지만, 그 당연한 걸 굳이 제목으로 붙이면 무언가 뒤가 구리기 마련이지 않나. 동글동글 귀염상인 캐릭터들에 어울리지 않는, 고어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 든다. 심지어 처음 시작할 때 '표현 규제' 기능까지 붙어있기도 하다.

다소 불안할 유저들을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이 게임은 선을 넘어가는 작품은 아니다. 콥스 이터 뒤에 붙은 '모험가의 밥상'이라는 말이 메인 테마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서 유저는 어디론가 계속 이어지는 던전을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험가로, 그 생존 과정을 전투뿐만 아니라 요리와 휴식 그리고 식사라는 관점에서도 조명한 것이 이 게임의 특징이다.

▲ 이렇게 처절하게 시체를 뜯어먹으면서

▲ 던전을 탈출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 그렇게 해서 얻은 재료로 꾸준히 요리해서 칼로리와 수분을 보충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서바이벌 게임+SRPG의 구성이지만, 어딘가 하나씩은 뒤틀린 소재를 갖고 오는 니폰이치 소프트웨어답게 그 요리가 평범하지 않다. 아마 튜토리얼에서 마물의 시체를 허겁지겁 먹고 배탈이 났을 때부터 짐작을 했겠지만, 여기서 나오는 재료들은 작중에 등장하는 갖가지 마물들의 살과 내장과 각종 부위들이다. 그것뿐이면 오히려 점잖았을지도 모른다. 던전에 버려져있던 무기를 분해할 때 나무 사이에 숨어있었을지도 모를 법한 갖가지 벌레들과 그 가공물, 거기에 갖가지 무기물까지도 아낌없이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전투 중에 쓰러뜨린 마물의 시체를 조리도 없이 날것으로 먹어치워서 체력을 회복하는 생존전략도 눈에 띈다.

설명만 들으면 처절하고 치열한 생존기처럼 보이고, 그래서 꺼림칙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캐주얼 그래픽에 밝은 톤으로 그려내서 부담감은 덜하다. 마치 던전밥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그보다는 처음에는 돌도 씹어먹는다는 말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게 놀랄 따름이다.

▲ 이렇게 분해해서 얻은 재료들로 다시 제작을 하는 묘미가...잠깐 스톱, 뭔가 이상한 게 보이는데?

▲ 신경 쓰면 지는 거다. 주먹밥 재료의 출처는 묻지 말자

▲ 옛날 군대리아 패티 괴담이 생각나긴 하지만, 척박한 던전에서 이런저런 재료 구해서 만드는 것도 용하다

그런 괴식 테마를 잠깐 벗어던지고 생존 SRPG의 측면에서 보면,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그래도 각잡고 루틴을 만들기 쉽도록 만든 짜임새가 눈에 보인다. 근래 유행하는 서바이벌 게임들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풀죽 쑤어먹고 돌도끼나 휘두르다가, 각종 도구들을 만들고 조리법과 재료가 갖춰지기 시작하면서부터 힐링(?) 라이프로 가지 않나.

그런 흐름은 콥스 이터에서도 동일하고, 접근법도 어떻게 보면 더 간단하다. 사냥하고 던전에서 파밍해서 얻은 것뿐만 아니라, 갖가지 장비를 분해해서 나온 부산물들까지도 알뜰살뜰하게 크래프팅하는 순환 구조니 말이다. 장비 획득 후 교체, 기존 장비를 분해해서 얻은 부산물을 가공해 요리나 또다른 도구의 재료로 쓰는 체계는 단순하고 합리적이라 이해하기 쉽다.

물론 테마가 테마인 만큼 때로는 골때리는 요소가 곳곳에서 튀어나오긴 한다. 쌀을 어디서 얻을까 해서 봤더니 쌀벌레를 가공해서 만든다던가, 돌을 자르고 으깨는 것도 모자라서 굽고 삶고 튀기는 기이한 가공법을 일괄 적용하는 기행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냥 대충대충 만들었다라고 넘어갈 법한 부분이긴 하지만, 이 게임은 진지하게 따지면 태클을 걸고 넘어갈 부분이 수두룩하니 잠시 "왜"는 내려놓는 게 마음 편하다. 뭔가 이상한 던전에 와서 이것저것 먹고 가공하면서 살아남아가는 이야기, 이런 얼개로 구성되어있으니 말이다.

▲ 급할 때는 비기, 시체 뜯어먹기로 버틴다. 갓 잡은 신선한 고기라 괴상한 재료보다 이쪽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

그 정도로 느슨하게 세계관을 보면서 접근하면, 나름의 체계성과 플레이 루틴이 오밀조밀 짜여진 게 눈에 띈다. 그런 요리를 할 처지가 안 되면 탈이 날 것 같은 재료를 대충 가공해서 먹어치운 다음에 해독제가 되는 재료들을 먹는다거나, 칼로리나 수분이 떨어지면 결국 죽게 되니 이것만 모면하려고 탈이 나거나 스펙이 다운될 것을 각오하고 한 턴 벌기식으로 괴식을 먹어치운 뒤 휴식 타임 때 요리로 보강하는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생존 행동들이 저절로 나오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요리도 처음에는 말이 안 되거나 혹은 기괴하고 엽기적인 것들만 보이긴 하다. 그저 굶어죽지 않으려고 아둥바둥하는 그런 느낌이 강하지만, 그러다가 층을 돌파하고 재료들이 조금씩 다양하게 수집될 무렵부터 '모험가의 밥상'이라는 그 테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재료가 물론 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그 열악한 재료로 그럴싸한 요리들이 하나둘 만들어지는 걸 보다보면 "이번엔 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그냥 풀죽과 구운 벌레 정도만 먹고 때로는 발작에 걸릴 걸 알면서도 어쩔 도리 없이 만드라고라 열매도 먹일 수밖에 없던 초반을 넘기면 마물고기 or 내장으로 만든 햄버거, 내장볶음국수를 넘어 회 같은 미식을 즐기는 모습이 나오니, 어느 순간부터 그간 플레이한 보람이 조금씩 샘솟긴 하다.

더군다나 레벨업뿐만 아니라 그 요리들을 먹으면서 요리에 붙어있는 각종 효과들이 스펙에 반영되는 구조다보니, 이 캐릭터를 키울 때 어떤 요리를 더 먹이고 보강해야 할까 식단 관리까지 점차 신경을 쓰게 된다. 전투도 칼로리와 수분을 쓰는 구조다보니 종종 열량과 부족한 영양분을 체크해서 식단을 짜주는 트레이너의 마인드로 플레이를 설계하게 된다고 할까. "그 그래픽으로?" 라는 의문이 들지 모르겠지만, 그 관문을 넘고 나서 조금 하다보면 왠지 모르게 자꾸 붙들면서 식단 관리하고 스펙 체크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니폰이치 특유의 SRPG짬은 어디 가지 않아서 스펙 및 육성 관련 레벨 디자인은 잘 짜여져있고, 그걸 하나하나 파헤치면서 맞춰가는 재미를 전투가 아닌 '요리'와 '식사'라는 다른 영역에 풀어놨어도 여전히 존재감이 있기 때문이다.

▲ 어느 정도 생존 짬이 쌓이면 레시피를 모아서 스펙 관리를 위한 미식을 챙기는 재미도 있다



노가다 SRPG의 장인이 보여주는 속도감 있는 반복플레이


이 게임을 처음에 볼 때 그래픽이 꺼려지다가도 막상 하게 되면 잘 신경을 안 쓰게 되는 두 번째 이유는, 한 번 아차하면 다시 처음부터 가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오토 세이브나 거점 세이브를 지원하는데다가 수틀리면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트라이해볼 수 있으니 로그라이트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긴 하다.

파티가 전멸한 뒤 다시 시작할 때 레벨이 1부터 시작하고 요리를 먹어서 강해진 스펙들은 죄다 초기화되는데다가 던전의 구조도 매번 바뀌긴 하지만, 그간 쌓아둔 장비가 거진 소실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으니 더더욱 이름붙이기 모호한 상황이다.

아마 그런 구조를 취한 이유는, 그간 니폰이치 소프트웨어가 미덕으로 삼아왔던 '반복 플레이'를 더 빠르고 쉽게 이어갈 수 있도록 한 것 아닐까 싶다. 실제로 전투만 봐도 반복적인 작업을 빠르게 처리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실시간 탐사에서 인카운터를 통해 SRPG로 넘어가는 구성인데, 보통 SRPG는 이동한 다음에 공격 or 방어, 대기 명령 2단계에 걸쳐서 진행되지 않나. 그런데 콥스 이터는 공격 명령을 걸고 그 범위에 적이 올 때까지 캐릭터를 바로 이동시키는 건 물론이고, 단축키 배치를 통해서 대기나 공격 스킬 명령을 굳이 그 창으로 안 들어가고 바로 선택할 수 있다.


적의 행동도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것만 바로 진행하는 데다가, 스킬 연출도 최소화해서 전투의 템포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다. 실제로 투닥거리고 전리품을 챙긴 뒤, 각종 재료들이나 보물상자들을 까고 어두워지기 전에 다음 층으로 가는 출구로 가서 캠프를 치고 휴식하는 그 루틴이 숙달되면 한 층에 몇 분 내로 처리가 가능하다.

그에 반해 그 층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면서 캐릭터를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까, 또 칼로리와 수분을 어떻게 보충해나가야 할까 파고드는 요소는 비교적 시간이 걸리긴 하다. 어떤 요리를 만들고 먹여야 할까가 캐릭터를 키울 때 더 중요한 포인트니, 그쪽에 조금 더 비중을 뒀다고 보면 될까. 물론 전투에서도 어떤 스킬을 주로 쓰고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서 육성 포인트가 갈리니, 이래저래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속도감 있게 플레하다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곤 한다.

▲ 특히 마법사는 주로 키우고 싶은 계열 마법이 있다면 그걸 자주 써야 관련 스킬이 생긴다

더군다나 전투 페이즈가 빠른 만큼 가면 갈수록 아차하는 순간에 캐릭터가 위기에 처하는 일도 많아지니, 몇 번 겪고나면 그렇게 키우는 순간 하나하나가 허투루 넘어가지는 않는다. 물론 숙달되면 이조차도 빠르게 넘어가겠지만, 그렇게 숙달되기까지 반복하는 동안에 지루하게 느껴질 구간들이 여럿 있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콥스 이터는 불필요한 부분들을 최대한 쳐내고, 단순화하면서 가볍게 계속 반복해서 플레이하는 루틴에 최적화된 게임플레이를 만들어가고자 했다.

▲ 시간을 너무 들이면 재료가 상할 뿐만 아니라

▲ 밤으로 넘어가는 순간 몬스터들이 흉악해지니 주의하자



가볍게 이것저것 넣다 파고들기의 '디테일'을 놓쳐버린 실책


그렇게 파고들기에 빠져드는 시나리오는 결국 이 게임을 어느 정도 맛볼 의사가 있을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니 과연 그만한 첫인상을 줄까,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일단 그래픽부터 마음에 걸린다. 고전부터 JRPG류를 쭉 즐겨왔던 유저라면 딱히 문제 삼지 않을 부분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유저에게는 좀 과장하자면 2000년대 초의 폴리곤 그래픽이 떠오를 법한 퀄리티다. 그 그래픽으로 캐릭터나 맵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감각은 나쁘지 않지만, 퀄리티 자체가 뒷받침이 되지 않으니 성에 차기 어렵다고 할까.

더군다나 반복플레이에서 거추장스러운 걸 치워버리는 나머지, 안 그래도 그래픽이 안 좋은데 연출도 생략이 되어버려서 모양새가 썩 좋지는 못하다. 마법은 속성 차이만 빼면 거의 똑같은 모션에 특수 효과를 돌려쓰는 게 눈에 보이고, 검술이나 창술은 모션을 일부 돌려쓰거나 재활용하는 그런 티가 난다.


물론 게임에 익숙해져서 스펙업, 육성에 치중할 때면 스킬 연출이나 그래픽은 크게 신경 안 쓰게 되는 때가 있긴 하다. 일례로 모바일 게임에서는 유저들이 자동 반복 전투할 때 시간을 왕창 잡아먹는 스킬 연출을 오히려 스킵해달라는 말이 종종 들려오곤 하지 않던가.

그래서 스킵을 지원하는 게임도 있긴 하지만, 스킬 연출이 아예 처음부터 없는 게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연출은 나중에는 불필요하다고 여겨져도, 그 스킬의 위력을 직감할 수 있는 패러미터이자 쓰는 캐릭터나 클래스의 특색을 나타내는 수단 더 나아가 게임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껏 새로운 스킬을 배웠는데 이전에 쓰던 스킬과 거의 차이가 없으면 김이 새지 않겠나. 대미지가 올라가고 스펙 숫자가 올라가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간과한 듯하다. 즉 반복 플레이 자체는 쉽게 만들었어도, 그 반복 플레이를 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얻고 강해질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부족해져서 그 의미가 없어지는 이른바 주객전도가 벌어진 셈이다.

그렇게 디테일이 부족한 건 전투뿐만이 아니다.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는 과정이나 육성의 과정 모든 면에서 보다보면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다. 표현을 규제하는 옵션이 있어서 실물 요리도 그렇게 그로테스크하게 나올까 싶었지만, 내장이나 눈알이 보이는 건 일러스트만이고 나머지는 거진 다 빈그릇으로 나온다. 허공에 대고 수저를 휘적거리다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허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 괴식을 줬으니 그런 반응은 이해하지만, 아예 허공에 포크질을 할 줄이야

실제로 벌레가 꿈틀거리는 요리를 보고 싶은 사람은 드물긴 할 테니,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신경이 안 쓰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벌레 꿈틀거리던 요리만 만들다가 먹음직스런 햄버거를 만들어냈을 때의 성취감을 느끼려면 실물이 보여야 하지 않을까. '모험가의 밥상'이라는 타이틀을 걸었고, 무언가를 만들어서 먹는 행위 자체가 육성의 핵심 포인트인데 그 디테일이 너무 빠져있다.

궁극적으로는 머리를 조금 비우고 육성트리를 타기 위한 노가다에 몸을 맡기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게 니폰이치류라지만, 콥스 이터에는 그렇게 분위기를 일신할 요소가 없다보니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오너캐라던가, 기상천외한 스토리나 엉뚱한 전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캐릭터와 분위기 등등 그간의 니폰이치 소프트웨어의 작품에는 유저들이 경계를 풀고 접근할 법한 장치들이 마련되어있는데 콥스 이터는 이전의 작품과 비교해도 그 부분이 상당히 부족하다. 스토리는 최후반까지 가야지만 의미가 있고, 캐릭터는 다 유저가 커스터마이징하는 아바타에 가깝다보니 대화나 인터랙션 요소가 거의 없다. 보스전 공략의 묘미도 후반에 가야 느낌이 있고, 그 전까지는 그저 복붙한 적들의 물량 공세와 그거 처리하다가 밤이 오는 것만 무서운 단일 패턴의 연속이다.

▲ 광역 스킬 배우기도 전에 이렇게 몰려오시면 곤란합니다

그나마 분위기는 처음에 시체를 뜯어먹고 이리저리 빈곤한 처지에서 어찌저찌 극복해 미식 탐사를 하는 맛을 살리긴 했다. 그런데 그 원툴만으로 쭉 시선을 끌기엔 앞서 말한 디테일의 부족이 발목을 잡는다. 심하게 말하자면 밥이 빠진 모험가의 밥상이라고 해야 할까.

거기다가 빨리빨리 진행하게 만드는 편의성은 갖췄어도, 세부적인 정보를 파악하고 신중하게 플레이할 때 필요한 편의성이 미흡하다보니 게임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의문이 들게 된다. 물론 니폰이치의 노하우는 어디 안 가서 각종 속성 및 특성, 스탯 구조나 버프 디버프 구조는 촘촘히 잘 짜여져있긴 하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니폰이치 게임을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것이고, 처음 접하는 유저라고 가정하면 이만큼 답답한 게임도 없다. 지각 확장이나 불건강 같은 효과가 대체 무슨 효과인지 알고 싶어도, 그걸 제작할 때 바로 확인을 못하는 그 갑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 않겠나. 이럴 때만큼은 자기네 게임의 용어를 계속 돌려쓰는 니폰이치의 나태함이 반갑다고 해야 하나.

▲ 이거만 봐선 무슨 효과가 발동하는지 알 수가...

단순해보이는 외견 안에 이것저것 다양하게 넣으면서 복잡하게 엮어내고, 그걸 차근차근 풀어가면서 반복플레이로 공략해나가는 게 니폰이치 게임들의 매력이긴 하다. 이번 콥스 이터도 여러 소재를 넣고 기존의 복잡다단한 SRPG 구조를 짜맞추면서 반복플레이로 극복해나가는 재미를 살린 전략은 체감이 된다. 그런데 그 코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다 얕게 준비해놔서 매너리즘이 느껴진다. 마치 "너 나 알지?" 이런 느낌이랄까.





콥스 이터 모험가의 밥상은 어찌보면 니폰이치 소프트웨어의 기본기와 고질적인 문제점 둘 다 안고 있는 전형적인 게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기자기한 캐릭터를 데리고 잠시 생각을 내려놓은 채 던전을 쭉 뺑뺑이 돌거나, 막히면 그 다음에 뭘 해야 할까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만지작거리는 재미 자체는 있다. 그것만큼은 니폰이치 소프트웨어가 그 옛날부터 쭉 노하우를 다져온 것이고, 로그라이트라는 새로운 문법을 도입했어도 그 뼈대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 뼈대 위에 덧붙인 것들이, 재료가 좀 오래된 느낌이 들거나 혹은 관리가 잘 안 되서 상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게 문제다. 그래픽이야 어지간히 큰 일본 개발사가 아니고서, 아니 심지어 몇몇 큰 개발사에서도 때로는 이슈가 나오곤 하는 문제니 차치해두자. 문제는 그 그래픽과도 따로 노는 효과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카메라워크, 미흡한 연출 그리고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에러다.

▲ 그냥 뺑뺑이 돌며 하기엔 나쁘진 않다고 하지만

▲ 수리키트 만들 때마다 튕기는 거 각오해야 하면 어떡하란 말이오

그래픽이나 카메라는 그러려니해도, 연출 그리고 유저의 관심을 끌고 나아갈 어떤 '요소'를 구축하는 것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게 이번 콥스 이터 모험가의 밥상의 큰 실책이다. 캐릭터를 자유롭게 육성하기엔 그 깊이도 얕고, 그렇다고 해서 캐릭터별로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난관을 어찌저찌 극한의 재료 관리와 루트 그리고 전투 설계로 돌파하는 방식에만 치중해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도 니폰이치 소프트웨어의 주요 무기 중 하나라지만, 나머지 요소가 미흡해서 결국 원툴로만 싸우는 양상이 되어버렸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모바일 게임식이다. 재료를 모아서 각양각색의 모험밥을 만드는 로망이나, 캐릭터마다 제각각 다른 반응이라던가 그런 거 없이 던전을 쭉 뺑뺑이 돌고 수집하는 것에만 집중한 모양새가 딱 그렇지 않나. 물론 과금으로 하이패스를 만들어주는 모바일 게임식 BM이나 그런 건 없지만, 그 옛날 유저들이 파고들게 만들었던 니폰이치 소프트웨어 특유의 '깊이' 요소에 대한 고찰 없이 이전 것을 편하게 답습한 뒤 이것저것 붙이지 않았나 의심이 들 정도다.

하다못해 풀프라이스가 아닌 하프프라이스였다면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졌겠다. 하프프라이스 게임이라고 가정했면 이 게임은 꽤나 짜임새도 있고, 던전 돌파하고 계속 반복하면서 어찌저찌 파고드는 그런 요소는 충분히 갖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꼬박꼬박 풀프라이스를 받아가면서 그에 못미치는 값어치를 심지어 자기 주 전공인 SRPG에서도 자꾸 보여주는 니폰이치 소프트웨어다보니 쓴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재미 요소를 어줍잖게 내놓는 것만으로 인정받기엔, 풀프라이스 패키지 시장은 결코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