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게임 시리즈가 있습니다. GTA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던 일명 '짝퉁 GTA'중 하나라 멸시받았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독보적인 발전 방향을 잡아 결국 GTA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으로 거듭난 게임. 바로 '세인츠 로우' 입니다. GTA가 자유로운 오픈월드를 배경으로 진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정극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면, '세인츠 로우' 시리즈는 오픈월드를 무대로 온갖 깽판과 미친 짓을 일삼는 정신나간 플레이를 주력으로 삼았죠.

그러나 2013년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 출시된 이후로는 한 번의 확장팩 이후 영 소식이 없었습니다. 게임 산업이 발전하면서 세인츠 로우 시리즈의 매콤함도 옛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보다 더 미친 게임, 더 자극적인 게임들이 날뛰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잊혀져갔죠.

그랬던 세인츠 로우가 넘버링과 복잡한 부제를 떼 버리고 딱 다섯 글자. '세인츠 로우'라는 이름만 남긴 채 리부트되었습니다. 이제 중요한 건 두 가지입니다. 리부트될 '세인츠 로우'가 전작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만큼의 독립적 완전함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동시에, '세인츠 로우'라는 희대의 시리즈물을 대변할 정도로 여전히 미쳐있는지 말이죠.


먼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은 온라인 MMORPG에서는 너무나 흔하고 당연한 기능이지만, 싱글 플레이 위주의 오픈월드 게임에서는 의외로 보기 힘든 기능입니다. 실제로 유명한 오픈월드 게임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나 GTA, 레드 데드 리뎀션, 위쳐 등의 게임들은 모두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뚜렷한 캐릭터와 명확한 스토리라인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비교적 최근 출시된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 중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도입된 게임은 '사이버펑크' 정도입니다.

▲ 커마부터 드러나는 자유로움... 하트와 모자이크는 게임 내 자체 기능이다

하지만, '세인츠 로우' 시리즈는 처음부터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 존재했는데, 시리즈 초기엔 그저 차별화 요소 중 하나 정도로 여겨졌으나,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미친 게임'의 빌드를 타기 시작한 3편 이후로는 나름 미래를 내다본 선구안적 시스템 도입이 되어버렸습니다. 성격과 특징이 명확한 캐릭터가 느닷없이 정신 나간 행동을 하면서 깽판을 치고 다니면 그 자체로 캐릭터 붕괴가 일어날 테니, 아예 게이머가 직접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더 알맞겠죠.

그리고, 이번 작품의 커스터마이징은 제가 커스터마이징이라는 시스템에서 처음으로 대충격을 받았던 사이버펑크 못지 않은 흉악함을 자랑합니다. 물론, 유럽제 게임의 자유분방함을 넘어서진 못했기에 사이버펑크가 보여주었던 패기 넘치던 '덜렁'까지는 아니지만, 타 게임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독보적인 오픈 마인드를 보여줍니다. 절대 아이들 있는 데서 할 만한 게임은 아니죠.

▲ 앗...

재미있는 건, 이 커스터마이징이 언제 어디서든 상관없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게임 내 곳곳에 위치한 옷가게나 옷장에서도 가능하며, 심지어 핸드폰을 열면 커스터마이징 메뉴가 있습니다. 캐릭터 설정은 게임 도입부에 하지만 이후로는 옷만 갈아입는 다른 게임들과 달리, 이 게임은 길바닥에서도 성별과 목소리는 물론, 피부색과 몸매를 완전히 바꿔버릴 수 있습니다. 왜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요.

▲ 그냥 아무데서나 열면 나오는 커스터마이징 메뉴

여튼 그렇게 게임을 시작하면, 역시 이전까지와는 완전 다른 새로운 무대가 기다립니다. 이전까지의 세인츠 로우 시리즈는 솔직히 수습이 안 될 정도로 판이 벌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시리즈 초기는 평범한 갱단 간의 세력 다툼과 암투를 그렸지만, 3편과 4편에 이르러 대통령이 되고 외계인이 쳐들어오는가 하면, 가상 현시에 갇혀 초능력을 쓰는 등 이걸 누가 다 정리하나 싶을 정도로 막무가내가 되었거든요.

▲ 산토 일레소는 텍사스 남부-멕시코 풍이 섞인 도시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다시 깔끔하게 정리됐습니다. 게임 상에 등장하는 세력은 총 셋으로 북두의 권에서 빌런을 담당할 것 같이 생긴 '판테로스', 발광 가면와 야광봉을 들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무정부주의자들 '아이돌스', 그리고 사설 보안 업체인 '마샬'이 있습니다. 이 사이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갱단인 '세인츠'를 일궈내는게 이번 세인츠 로우의 주된 이야기죠.

물론, 체험 버전에서는 플레이 가능 영역이 정해져 있었기에 모든 얼개를 파악하긴 힘들었지만, 다른 갱단이라고 무조건 쳐부수고 굴복시켜야 하는 방향은 아니리라 짐작됩니다. 본작의 주인공은 나름 비싼 '산토 일레소'의 주택 임대료 때문에 세 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하는 중인데, 이 룸메이트 중 한 명은 판테로스고 다른 한 명은 아이돌스이기 때문이죠. 물론 해당 갱단원을 죽여도 룸메이트와 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며칠 정도 빨래를 대신 해 주긴 하지만요.

▲ 세기말 헬창 판테로스

▲ 네온범벅 무정부주의자 아이돌스

▲ 그리고 군사기업 마샬 까지가 주요 등장 세력


'미친 짓'은 여전합니다. 아까부터 '미친'이라는 워딩을 꽤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저도 사실 별로 땡기는 표현은 아니지만 달리 쓸 말이 없습니다. 이것 만큼 이 게임을 잘 표현하는 낱말도 없는 데다 개발사 측도 실제로 흔히 사용하는 단어기 때문이죠. 갱스터 주제에 인기인이라 은행 털다 잡히면 경찰이 사인을 해 달라고 조른다거나 성인용품과 촉수로 사람을 두들겨 패는가 하면 맞출 경우 강제로 덥스텝 춤을 춰야 하는 총이 존재하는 게임이 기존의 세인츠 로우 시리즈입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 또한, 이 몰상식을 넘어 무상식에 가까운 게임성이 게임의 주요 컨셉으로 작동합니다. 체험 범위가 좁은 관계로 얼마나 미쳐있는지는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자동차가 벽을 타고 달린다거나, 신입 채용 과정에서 툭하면 지원자가 죽어나가는걸 자랑스럽게 내건 '마샬'의 광고를 보다 보면 "아 이 게임도 범상치 않구나"싶은 감이 딱 오죠.

다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오픈월드 게임에서 미친 짓을 하는게 즐거운 이유는 다른 모든 세상은 정상인데 나만 미친 행동을 하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게임 속에 구현된 사회적 가치에 반하는 반사회적인 행동이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거죠. 때문에, 사회 전체가 애초에 반쯤 미쳐 있는 게임에서는 이런 짓들이 딱히 재미있지 않습니다.

▲ 이제 이 정도는 다른 게임에서도 다 하는 거라서

과거의 세인츠 로우 시리즈는 사회 전체가 반쯤 돌아 있었지만 이를 넘어서는 상상을 초월한 미친 짓을 만들어냄으로서 재미를 만들었습니다. 단순히 총 좀 쏘고 차를 훔치는 정도로는 택도 없으니 빛의 속도로 뛰어다니고 슈퍼 점프를 하는가 하면, 상대를 염력으로 날려버리는 능력을 만들었죠.

하지만, 본작은 이 미쳐있는 분위기를 은은히 만들어내면서도 주인공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꽤 평이합니다. 뛰고 싸우고 운전하는, 일반적인 오픈월드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정도죠. 물론 고간을 밟아 제압한다거나, 적의 팬티 속에 수류탄을 집어넣고 밀어버린다거나 하는 정도는 있지만, 이전처럼 틀을 깨는 미친 면모를 보여주진 않습니다.

▲ 매우 나쁜 짓

결과적으로, 게임의 전체적인 코믹함 때문에 피식피식 웃으며 게임을 할 수는 있지만, 무언가 충격적이거나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재미를 느끼진 못했습니다. 물론, 게임의 출시는 아직 한 달이 남아있고, 게임의 초반부만 잠깐 플레이했기에 미처 볼 수 없었던 것일수도 있으나, 일단 초반 플레이의 감상은 그렇습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일단 제가 볼 수 있었던 부분에선 그랬다는 거죠.

정리하면, '세인츠 로우'는 시리즈 고유의 미친 센스를 그대로 보전했지만, 게임 플레이보다는 컷씬이나 설정을 통해 이를 드러내기에 플레이 자체는 다소 평이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플레이 경험이 게임 초반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자세한 게임 평은 8월 이후 실제 게임이 출시되었을 때 리뷰를 통해 말할 수 있겠죠.

▲ 체험 단계에서의 플레이는 다소 평이했다


체험을 끝낸 이후, 이 정도 플레이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개발사에 몇 가지 질문을 전달했습니다.

Q. 세인츠 로우가 돌아왔다. 정식 후속작으로는 9년 만인데, 소감이 어떤가?

►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역대 최고급의 세인츠 로우, 새로운 세인츠 로우의 IP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이번 세인츠 로우를 준비해왔습니다. 약 6개월 가량 출시일을 미룬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한 결정이었죠.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공들여온 새로운 세인츠 로우를 마침내 공개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고 설렙니다.


Q. 이전까지 많은 넘버링 작품이 존재했음에도 부제를 떼고 리부트를 진행했다. 이유가 있는가?

► 저희는 역대 최고의 세인츠 로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작보다 나은 후속작은 없다’는 클리셰를 깨기 위해서 전작의 모든 설정을 버리고 캐릭터와 스토리, 도시, 심지어 세인츠로우의 상징과도 같은 메인 컬러까지 모두 바닥부터 새롭게 재창조했습니다. 때문에 시리즈 넘버링이 의미가 없게 되었죠.


Q. 이전 시리즈와 비교되는 본작의 새로운 요소나, 전작들로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고유 요소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 이번 세인츠 로우는 전작의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을 참고하거나 계승하지 않는 완전 새로운 게임이며 전작에서 이어진 요소는 오직 세인츠 로우 특유의 유머와 ‘미친 짓’을 권장하는 자유도뿐입니다. (물론 더 업그레이드했죠!) 다만 세인츠 로우 시리즈의 팬분들이라면 알아차릴 만한 소소한 반가운 요소들이 게임 곳곳에 숨겨져있습니다.

▲ 자유로운 캐릭터와 자유로운 경험이 목표


Q. 리부트된 세인츠 로우를 통해 게이머들에게 주고자 하는 게임 경험은 어떤 것인가?

► 전작의 세인츠 로우 시리즈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많은 유저분들의 특이하고 재밌는 플레이와 커스텀 덕분이었습니다. 유저분들이 맘껏 ‘Crazy’하게 노실 수 있도록 저희는 판을 깔아드렸을 뿐, 유저분들이 자유롭고 창의력 가득한 재밌는 놀이가 되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이번 세인츠 로우에서 과연 어떤 특이하고 재밌는 무기, 캐릭터, 플레이 커스텀들이 나올지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시리즈가 정신 나간 게임으로 유명하고, 실제로 꾸준히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인기를 유지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컨셉을 유지하기 위한 어떤 노력이나 비결이 따로 있을까?

► 저희가 세인츠 로우를 다시 쓰면서 세인츠 로우에서 가장 사랑받는 ‘Crazy’한 요소는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나간 모습은 바로 ‘자유도’에 있다고보고 그 자유도를 극대화시킬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아쉽게도 많은 분들이 애타게 기다리실 전작의 ‘딜도 방망이’ 아이템은 갖고오지 못했지만… ‘딜도 방망이’보다 더 재밌고 독특한 무기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의 세인츠 로우 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가?

► 한국 게임 유저분들께 역대 최고의 세인츠 로우를 선보일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며 저희가 사랑하는 한국 게임 유저분들의 창의력과 스킬을 마음껏 발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산토 일레소(Santo Illeso)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