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상상한 것은 공감을 얻고 과장되어 도시괴담이 된다


잡히면 무조건 죽는 괴물이나 귀신의 존재. 혹은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공간을 집어삼키는 심리적인 고통. 그래픽, 혹은 연출 기법이 한층 세련되어지며 시각적 요소를 상상한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게임에서의 공포는 보다 직접적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인간, 혹은 입에서 입을 통해 옮겨가며 살이 붙어 마치 진짜처럼 느껴지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더 소름끼치는 법이다. 그것은 단지 화면 속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진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니까. 억지로 눈에 담아내지 않고도, 텍스트와 음악, 갑자기 펼쳐내는 일러스트 정도로 '신 하야리가미3'는 기존 작보다 더 깊은 공포와 섬뜩함을 전한다.


게임명: 신 하야리가미3
장르명: 공포/텍스트 어드벤처
출시일: 2022. 7. 28.
리뷰판: 1.00
개발사: 위저드 소프트/니폰이치 소프트웨어
서비스: 니폰이치 소프트웨어
플랫폼: PS4/NSW
플레이: PS5



과학으로 풀어낼 현실인가, 진실을 파헤칠 수 없는 괴이인가

이야기의 시작은 여느 도시괴담이 그렇듯 누군지 모를 다른 이들의 입에서 시작된다. '내 친구의 친구가 그러던데...'라는 말로 마치 누군가는 진짜로 그 일을 겪었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인다. 사실 이야기 자체는 허무맹랑하기 그지없지만.

냉장고와 벽 사이, 에어컨 바람이 새어 나오는 곳, 빽빽하게 꽂아둔 책장의 작은 공간 등 사람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공간에 숨어 서슬 퍼런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틈새녀.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 조금씩 머리가 자라는 악마의 인형. 목욕 중 죽은 사람의 몸이 마치 스튜처럼 녹아내린다는 인간 스튜 등은 분명 과학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과학적인 접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 하지만 경찰은 현대 사회에서 사건의 진상을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이유로 찾아내야 한다. 플레이어의 분신이 경시청 소속의 호죠 사키인만큼 플레이어의 역할도 선뜻 이어지지 않는 두 시점에서 함께 사건을 봐야 한다. 그리고 실제 게임 내 디자인 역시 그걸 유도하고 있다.

'특수'라는, 경시청에서는 한직쯤으로 여겨지는 곳이 플레이어의 소속인 점부터 보자. 외부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특수는 '특수 고객창구'의 약칭으로 과학적 해결이 불가능한 괴사건을 다루는 곳이다. 역할 자체가 마치 X파일이 떠오르는 곳이라지만 현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건을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야. 관료제의 정점에 있는 일본답게 서류 처리 역시 중요한 업무다.

그러니 단순히 영감이 좀 있고 오컬트 분야에 빠삭한 동료 세나가 음양사처럼 귀신을 제령해 문제를 해결하는 식의 전개는 없다. 누가 봐도 심령 현상에 가까운 사건을 과학적 수사와 오컬트적인 접근, 어느 쪽으로 다룰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선택은 전적으로 주인공인 사키. 즉, 플레이어의 몫이다.

▲ 오컬트와 과학, 사건은 두 가지 시선 중 하나로 접근할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지 못하고

크게는 이어지지만, 에피소드별로 구분된 시나리오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공통 루트를 시작으로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갈리는 분기 구조를 띤다. 여기서 괴이, 일명 오컬트로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갈지. 아니면 과학적 수사에 기반할지가 나뉜다. 물론 오컬트 파트라고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건 아니고, 과학 파트에서도 괴이 현상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 어떤 방식의 결말에도 의문은 남는다

공통되는 사건에 대한 다른 추리와 수사가 등장인물, 혹은 괴이와의 관계를 뒤바꿀 수는 있지만, 결국 이야기의 큰 틀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출시 전이니만큼 상세한 이야기를 다룰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괴이는 결국 도시괴담과 인간, 모두가 문제의 이유로 등장한다. 결국 플레이어는 사건의 진상을 어느 한쪽을 중심으로 불완전하게 바라보며 본질을 오독한다.

이야기 자체의 진행 과정은 매끄럽다. 이 부분은 전혀 다른 부류의 게임으로 그려졌던 신 하야리가미1이나 본래 시리즈에 가깝게 그려진 신 하야리가미2에서의 아쉬움을 덜어낸 부분이다.

하지만 결국 '왜, 그리고 어떻게'에 관한 부분은 쉬이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스레 다른 루트로의 반복 플레이가 필요하다. 게임 안에서도 이 부분을 유도하고, 편의 요소 역시 다수 제공하고 있다.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가 단순히 로그를 돌려 기존 텍스트 이력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신 하야리가미3는 앞서 있었던 분기는 물론 장소, 사건까지 일종의 이벤트로 분리해두었다. 그리고 이를 언제든 자유롭게 확인하고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딱히 구간 저장하지 않아도 '결국은 사망'으로 이어지는 배드 엔딩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것도 분기 선택의 유연함 덕이다.

▲ 장소가 바뀔 때마다 분기 트리가 갱신되고 언제든 다른 분기로 되돌아갈 수 있다



시리즈 정통성에 맞춘 어울리지 않는 옷가지

분기 선택의 자유로움은 시리즈가 이어져 오며 계속된 시스템이다. 여기에 사키가 이른바 '말발'로 범인이나 다른 인물을 상대하는 라이어즈 아트. 조사를 통해 얻은 키워드로 인물들의 특징을 그려내는 추리 로직. 중요한 선택지에 용기를 발휘한다는 콘셉트의 커리지 포인트. 기존 정보를 종합해 스스로 추리와 조사 방향을 결정하는 셀프 퀘스천 등 이전 작품들에서 이어진 시스템도 여전하다.

하지만 편의성 측면에서 장점을 가진 분기 트리와 달리 타 시스템들은 그저 시리즈의 연속성을 위해 남아있다는 듯 그다지 어울리지 않게 겉돈다.

이번 작은 나아진 시나리오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추리 게임으로서의 특징이 더 옅어졌다. 텍스트만 잘 읽어도 대략 주어진 힌트로 추리 파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문제가 없다. 능동적인 대화 선택으로 이야기에 변화를 주는 라이어즈 아트는 게임에 정말 손에 꼽을 수준으로만 등장한다. 추리 어드벤처보다는 노벨류 게임에 더 가까워진 셈이다.

▲ 제한된 시간 안에 적절한 대사를 선택해 상대를 굴복시켜야 하는 라이어즈 아트

분기 파트의 편의성과 달리 내용 부분에서는 같은 사건을 다룬다는 한계가 있다. 과학과 오컬트라는 접근 방법이 달라져도 결국 중심이 되는 사건은 동일하다. 즉, 분기점을 되돌아가 이야기를 체험한다고 해도 결말이나 이야기 핵심에 대해서는 플레이어가 이미 알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분기가 갈라지기 이전 시기도 돌아가니 게임 속 인물들은 그 이전 정보로 극을 풀어나간다.

1회차에서야 긴장감과 함께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었겠지만, 이미 핵심 이야기를 아는 상태에서는 처음 맞이했던 공포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괴이라는 주제의 유연성 덕에 이야기도 일반적인 추리물과는 꽤 동떨어진 전개를 보여준다. 논리적 연출의 자연스러움으로 때로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말부를 뒤틀기도 하고, 허를 찌르는 전개를 펼치기도 한다.

과학 루트든, 오컬트 루트는 딱 맞아떨어지는 결말이나 분석이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추리의 약화가 오히려 매번 여운과 문제를 남기는 에피소드의 결말부로 이어지며 진위를 알 수 없는 도시괴담처럼 섬뜩함을 길게 남긴다.

여기에 말도 안 되는 개그 파트가 분위기를 헤치던 전작의 문제점도 개선됐다. 개그 요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게 의도적인 B급 유머라기보다는 인물들과의 대화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말장난이나 행동 정도에 그친다. 오히려 적당히 환기된 분위기에 마음을 놓았다가 갑작스레 끼얹어진 공포 요소에 심장이 더욱 얼어붙는 식이다.




늘였다 조였다, 적막함의 소름

신 하야리가미3는 꽤 적막한 게임이다. 글 중심의 노벨류 게임에 주인공 혼자 떠들 땐 배경 화면에 텍스트만 나열될 뿐이다. 여기에 인물들의 음성도 없다.

그런데 이 적막감이 플레이어의 상상력과 결합해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는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맛이 사는 건 소리다. 기존 시리즈에서 들어봤다 싶은 BGM을 포함해 분위기에 안 맞게 너무 경쾌한 악곡은 이번에도 더러 이어졌다.

▲ 음성도 없이 배경과 텍스트로 내용을 채운 게임. 하지만 효과음으로 적막을 깨며 분위기를 살린다

하지만 때때로 버그인가 싶은 정도로 BGM을 툭 끊어놓은 구간이 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신시사이저로 때리던 음악은 온데간데없고 적막이 찾아온다. 마치 동굴 안에 있는 듯 울림소리가 들리는 빈 헤드셋. 그리고 그 너머로 끼득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단순히 게임 속이 아니라 불 꺼놓고 게임과 함께 밤을 지새우는 등 뒤로 스산함이 느껴질 정도다.

대사 한마디 목소리로 전하지 않고 배경 하나 바뀌지 않는 화면 안에서 오롯이 텍스트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완벽히 몰입된 그 상황에서 등 뒤에서 들리는 쿵 소리 하나에 털이 빳빳이 곤두서게 된다.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오히려 적은 수의 효과음이 상황에 딱 맞는 순간 귀를 때리니 그 효과는 한없이 커진다. 대사가 없는 부분의 아쉬움을 적절한 긴장과 이완으로 조율하는 셈이다.

여기에 1편보다 한결 나아진 2편의 분위기를 이어가는 일러스트는 이번에는 움직임을 더했다. 그저 카메라를 확대, 축소하고 팔꿈치를 움직이는 등 역동적인 움직임과는 거리가 있지만, 때때로 극의 분위기를 높이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다.





신 하야리가미 시리즈는 국내에는 꽤 독특한 출발점에서 시작했다. 2000년대 PS2 시절 시작된 하야리가미 시리즈 세 작품 이후, 새로운 이야기를 그린 신 시리즈가 PS Vita로 국내 처음 공식 한국어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중심에서 어떤 분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개그물이 되기도 하고 좀비가 세상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같은 등장인물도 피해자가, 혹은 살인자가 된다. 루트에 따라 완전 평행 세계를 그리는 카마이타치의 밤과 같은 시스템이었다.

국내에서는 이 작품으로 먼저 시리즈를 접하니 오히려 원작으로의 복귀를 선언한 2편이 낯설게 느껴졌을 법도 하다. 한국어화와 함께 국내에 서비스된 1편. 시스템의 회귀와 함께 기존 작품의 성향을 띈 2편. 그리고 이번 3편은 전작에서 만들어진 시스템 테두리 안에서 넋 나간 개그나 어이없는 전개를 줄이고 공포라는 근본적 요소에 집중했다.


어찌 보면 도시괴담이라는 주제에 가장 걸맞은 작품인 동시에 그간 너무 다양한 이야기와 요소를 담아내려 중심을 잡지 못하던 분위기와는 다른 모양새다. 그리고 확실히 나아지고 있고.

물론 미친 듯이 몰아치는 괴물과 점프 스케어에 심장 치이길 원하는 플레이어에게 적합한 공포는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 꺼림직하고, 어딘가 진짜 있을 것만 같은 괴담을 찾는다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