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비뎀업 스타일의 멋진 부활


리젠트 헤어스타일의 불량배들이 서로 주먹다짐을 나누는 게임이 하나의 시리즈로 확립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 게임 시리즈 중 하나인 열혈 시리즈가 바로 그것이죠. 테크노스 저팬의 간판 게임이었던 열혈 시리즈는 주인공 쿠니오를 기준으로 액션 비뎀업부터 피구 게임 등 다양한 장르로 출시됐고 특유의 개그와 SD 캐릭터 디자인으로 꽤 흥행에 성공했었습니다. 하지만 테크노스 저팬의 몰락 이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열혈 시리즈는 서서히 잊혀 갔는데요.

아크 시스템 웍스는 열혈 시리즈의 35주년을 기념하는 최신작 '열혈삼국지'를 국내에 정식 출시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삼국 시대에서 관우가 된 쿠니오를 중심으로 황건의 난부터 적벽대전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를 담고 있죠. 열혈 시리즈의 근본이라 볼 수 있는 비뎀업 장르를 채택했으며, 삼국지의 주요 장수가 열혈 시리즈의 등장인물로 대체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최신 게임이라기엔 어딘가 낡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반대로 최신 게임에선 더는 느낄 수 없는 고전 게임만의 맛이 살아있는 게임이었습니다.


게임명: 열혈삼국지
장르명: 액션 비뎀업
출시일: 2022.07.21
리뷰판: 1.0.0
개발사: 아크 시스템 웍스
서비스: 아크 시스템 웍스
플랫폼: PC, PS4, Switch
플레이: PC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관우가 된 쿠니오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삼국지

열혈삼국지라는 게임 명답게 이번 작품은 소설 삼국지를 배경으로 합니다. 시리즈 대대로 주인공이었던 쿠니오는 이번 작품에서 관우의 역할을 맡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촉나라의 대표자인 유비가 아니라 관우를 맡았다는 점에서 다소 의아함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쿠니오가 보여줬던 모습을 생각하면 유비보다는 무력을 담당하는 관우의 모습이 더 어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설정을 개발사에서도 의식했는지 게임 중 고다(유비)가 왜 리더가 되어야 하는지 적절한 개그를 통해 풀어냈죠.

게임의 주요 콘텐츠는 스토리 모드로서 4단계의 난이도와 6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쿠니오를 조작해 삼국지의 다양한 이야기를 관우의 시선으로 겪을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죠. 1장부터 6장까지 구분되어 있어서 얼핏 옴니버스 형태로 진행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모든 장이 삼국지의 주요 스토리를 담고 있고 전체적인 내용과 성장 단계가 이어지므로 단순히 진행도를 구분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 [황]건적이라 [황]당한 상황에도 [황]에 집착하는 [황]건적

한편, 삼국지의 주요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삼국지를 모른다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 역시 삼국지의 대표적인 이야기 몇 구간만 알고 있을 뿐 모든 이야기를 다 알지는 못했으니까요. 또한, 이제는 고전 게임이 돼버린 열혈 시리즈인지라 캐릭터의 설정이나 시리즈의 특징 역시 기억하는 사람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즉, 기초적인 부분에서 게임의 진입 장벽이 생길 수 있는 셈이죠.

개발사는 이 점을 꽤 영리하게 풀어냈습니다. 삼국지를 몰라도 게임의 주요 스토리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만 콕 집어서 보여주는 방식인데요. 황건적의 난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양인 전투와 계교 전투의 사정 등 깊게 들어가면 오히려 복잡해질 수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서 나레이션으로 보여주고 스토리의 주요 흐름만 메인 퀘스트 방식으로 풀어내서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 차가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고 오겠소!

A와 B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면 오직 A와 B에만 집중하는 스토리 전개로 구성했기 때문에 딴 길로 세지 않고 삼국지의 기초적인 흐름에 대해서 몰입감 있게 빠져들 수 있죠. 개성 넘치는 열혈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인 덕분에 각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우지 않고 캐릭터의 모습만 보고도 장면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를 통해 삼국지의 세부적인 스토리에 관심이 생겼다면 스토리 진행에 따라 해금 되는 삼국지 도감 콘텐츠로 디테일한 정보를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도감은 꽤 자세하게 구간마다 어떤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지를 알려주며, 차례대로 해금 되기 때문에 하나의 장을 끝낸 이후 도감을 보면서 아쉬웠던 부분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열혈 시리즈의 팬이라면 삼국지와 캐릭터의 조합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 게임과 삼국지 공부를 한 번에 충족



고전 비뎀업 스타일 그대로 살린 전투와 재미를 더해주는 육성 시스템

최근에는 보기 힘든 장르지만 예전에는 오락실에 가면 비뎀업(진행형 격투 게임) 스타일의 게임이 정말 많았습니다. 비뎀업 게임만의 특징이라면 횡스크롤 액션에 주먹과 발차기로 전투를 벌이지만 맵에 드랍되는 무기를 주워서 싸울 수도 있고 파워 게이지를 모아 특별한 필살기를 사용할 수도 있죠. 적 다수를 상대로 무쌍 게임처럼 무턱대고 싸웠다간 금방 얻어맞고 게임 오버되기 십상인지라 전략적인 판단과 움직임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열혈삼국지는 이러한 비뎀업 스타일에 육성 시스템을 도입한 게임으로 옛날 고전 스타일의 감성을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1장에서 처음 만나는 쿠니오는 굉장히 약한 상태입니다. 기술이라곤 주먹과 발차기 한 번뿐이며, 무기도 단순히 한 번 휘두르는데 그치죠. 그러나 게임을 진행하면서 돈을 주고 배울 수 있는 기술서를 모으고 특정 기술을 조합해 만드는 필살기 등이 쌓이면서 점차 강력한 무인으로 변해갑니다. 어느 정도 육성이 끝난 중후반부터는 수십 명의 적이 몰려와도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것이 가능하죠.

▲ 화려하고 강력한 기술을 사용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게임은 성장할수록 눈에 띄게 강력해지는 단순하지만 재미있는 육성 시스템을 도입해 주먹과 발차기가 반복되는 비뎀업 스타일의 전투에 활력을 불어넣고 싸워야 하는 이유와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해뒀습니다. 기술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고 또 SP를 소모해서 사용하는 필살기와 특별한 기술인 계략도 10종류나 되니 기술을 모아서 나만의 콤보를 만들고 적들을 일망타진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육성에 다양성을 부여했다는 점도 육성 시스템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플레이어는 레벨업마다 펀치, 킥, 무기, 던지기, 지력, 운, 맷집 등에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어떤 항목에 포인트를 부여했는지에 따라 쿠니오의 주력 기술을 정할 수 있습니다. 가령, 펀치에 포인트를 부여했다면 펀치와 관련된 기술의 피해가 많이 증가하지만 반대로 킥과 던지기 등의 기술의 피해는 증가하지 않는 방식이죠.

▲ 계락 게이지를 소모하는 화려한 연출의 계략도 빼놓을 수 없다

필살기마다 스테이터스를 기반으로 하는 기술이 존재하므로 본인이 주력으로 쓰고 싶은 기술 위주로 스테이터스를 찍는 편이 좋았습니다. 만약, 중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리셋 아이템을 사용해서 초기화할 수 있으므로 스테이터스를 찍는 방식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었습니다.

초반에는 공격할 수단이 적기 때문에 전투가 밋밋하게 진행되지만 앞서 언급했든 어느 정도 기술을 갖춘 이후부터는 꽤 박진감 넘치는 전투가 가능합니다. 전투는 펀치와 킥, 던지기, 막기, 점프를 조합해서 진행하며, 검과 창, 너클과 부채, 도끼 등 다양한 무기를 주워서 전투에 활용할 수도 있죠. 필살기는 각 커맨드의 조합을 통해 발현할 수 있는데 무기의 종류마다 필살기를 설정할 수도 있어서 생각보다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은 편입니다.

가령, 어느 정도 적을 때리면 눕게 되는데 누운 적을 때릴 수 있는 기술과 공중에 뜬 적을 때리는 기술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여러 종류의 기술을 조합해 적을 무력화시킨 이후 나만 실컷 때린다거나 원거리에서 견제하는 것도 가능하죠. 타격음과 타격감, 이펙트도 깔끔하고 적 다수를 한 번에 때려눕히는 광역 기술도 존재하므로 단순한 조작 대비 준수한 전투 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호불호 갈릴 수 있는 레벨 디자인과 아쉬운 AI

열혈삼국지는 1장 황건의 난부터 6장 적벽대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장마다 주요 보스가 등장합니다. 플레이어는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보스를 쓰러트리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죠. 게임의 초반에는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적은데 한 번에 많은 수의 적이 몰려드니 펀치에 맞아서 쓰러지고 잡아서 던져지는 등 온갖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 어느 정도 기술이 갖춰진 중반 이후부터 필살기를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아무리 적의 수가 많아도 꽤 쉽게 전투를 풀어갈 수 있게 되죠. 또한, 적절한 돈 노가다를 통해 좋은 장비와 회복 아이템을 갖췄다면 맷집 스테이터스에 많은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아도 쉽게 죽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게임의 중반으로 들어가는 시점이 되면 오히려 처음보다 게임이 쉽게 느껴질 수 있죠.

▲ 게임 장르상 난전이 많은편

이는 일반적인 게임의 레벨 디자인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게임이라면 난이도의 곡선을 후반으로 갈수록 가파르게 설정합니다. 그래야 유저들이 게임의 재미를 계속 유지하면서 도전 의식을 불태울 수 있기 때문이죠. 이와 반대로 열혈삼국지는 성장의 폭이 게임의 난이도를 뛰어넘어서 오히려 게임이 쉬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성장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또 성장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각 잡고 노가다만 한다면 굉장히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는 게임의 정체성과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라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갈린다고 볼 수 있는데요. 적 다수를 호쾌하게 쓰러트린다는 점에서 이러한 레벨 디자인은 오히려 전투의 쾌감을 더해주는 장치가 될 수 있으니까요. 게임 내에서도 의도적으로 필살기와 계략 등 다수의 적을 상대로 효과가 좋은 기술을 배치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비뎀업 스타일을 가장한 무쌍 게임처럼 느끼게 해주는 셈이죠. 반대로 극한의 컨트롤로 적을 상대하던 초창기 비뎀업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서브 퀘스트를 통한 육성도 가능하다

한편, 적들의 AI가 비교적 단순하다는 점도 난이도에서 아쉬운 점 중 하나입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AI가 단순한 편은 아닙니다. 플레이어가 가드를 올리고 있으면 잡기로 대응하고 펀치와 킥, 무기도 적절하게 사용하기 때문이죠. 다만, 적으로 이를 상대할 때 패턴을 유도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가까이 가서 때려야 가드를 올리니 적당한 중거리에서 원거리 공격으로 대응하거나 혹은 페이크를 섞어가면서 특정 패턴을 유도한 뒤 눕혀서 때리면 끝입니다.

혹은 적당히 이동하면서 적을 뭉쳐놓고 필살기로 때려눕힌 이후 점프 기술로 농락할 수도 있죠. 적 대부분은 대공 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점프 공격만 반복해도 일반적인 적은 쉽게 쓰러트릴 수 있었습니다. 보스는 조금 더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고 공격력도 높은 편이지만, 이 역시 정해진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패턴을 유도하면서 싸우기 쉬웠습니다. 어려워질수록 적들의 체력과 공격력이 높아질 뿐 AI가 크게 달라지는 수준은 아니므로 결국 캐릭터의 육성과 별개로 AI의 단순함은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 대부분의 보스는 넒은 광역기 혹은 빠른 즉발형 기술을 탑재한 편





전체적으로 열혈삼국지는 신경 써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 게임입니다. 열혈 시리즈와 삼국지를 적절하게 융합시키기 위해 스토리와 게임 내 설정 곳곳에서 자연스러운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했으며, 덕분에 무거운 분위기의 삼국지 게임이 아니라 열혈 시리즈 특유의 가벼운 분위기의 개그와 타격감을 가진 게임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삼국지와 열혈 시리즈를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대 4인 멀티 플레이를 지원하고 또 하나의 컴퓨터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게임을 즐길 수도 있는데요. 메인 스토리 외에 보너스 게임으로 제공되는 모드는 관우 외에 다른 캐릭터를 선택해 옛 고전 비뎀업 스타일의 게임 플레이를 즐겨볼 수도 있으니 파티 게임으로도 나쁘지 않죠.

참고로 PC에서 플레이할 때 키보드는 약간 조작감에서 불편할 수 있으니 게임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꼭 게임패드로 플레이해보길 바랍니다.

▲ 본편 못지 않게 재미있는 보너스 게임

▲ 스토리 모드는 관우로만 할 수 있지만 보너스 모드는 주요 캐릭터를 직접 플레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