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할 때 고압세척기를 돌린다



도둑, 노숙자, 조립, 청소 등등.. 저마다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시뮬레이션 게임들 중에는 종종 입소문을 타고 많은 인기를 누리는 작품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오랜 시간 얼리액세스를 끝으로 지난 14일 출시된 '파워워시 시뮬레이터'도 그 중 하나로, Xbox 게임패스에 입점한 이후 빠른 시간 안에 게임패스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되는 게임 중 하나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죠.

항상 게임 제목에 충실한 시뮬레이터 게임 답게, 이 게임은 고압세척기를 이용해 집, 정원, 기차역은 물론 화성 탐사 로봇까지 청소하는 한 청소부의 삶을 그립니다. 그 어떠한 패널티도, 제약도 없이 그저 묵은 때를 깨끗이 씻어 내기만 하면 되는 게임을 하고 있자니, 어느 샌가 복잡했던 머릿속도 한층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느낀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게임명: 파워워시 시뮬레이터(Powerwash Simulator)
장르명: 시뮬레이션
출시일: 2022.07.14
리뷰판: 1.0.0
개발사: Futurlab
서비스: 스퀘어에닉스
플랫폼: PC, PS4, Xbox
플레이: PC(Xbox Game Pass)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귀찮은 것 없애고, '세척' 하나에만 집중한 시뮬레이션


파워워시 시뮬레이터는 고압세척기를 이용해 무언가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행위 자체에만 충실합니다. 예를 들면 커리어 모드의 기반은 청소 회사를 시작하고, 여러 의뢰를 해결해 가며 돈을 버는 것 위에 설계되어 있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제반 업무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플레이어는 그저 주어진 고압세척기와 여러 노즐을 활용해 더러운 것들 구석구석 청소하기만 하면 됩니다. 집 전체에 고압세척기를 쓰는 데 물을 너무 쓴다고 수도 요금 청구서가 날아오는 것도 아니거든요. 게다가 청소를 잘못했다고 보수가 깎이는 것도 없고, 수압이 너무 높다고 창문이 깨지는 일도 없이 정말 마음 놓고 청소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게다가 실제로 고압세척기를 활용해 청소를 할 경우, 바닥으로 흐르는 뗏국물을 고려해야 하기에 가장 높은 곳부터 아래로 세척하는 것이 기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그런 귀찮은 것들은 과감히 제외됐습니다. 넓은 마당의 어느 부분부터 청소할 것인지, 어떤 노즐을 쓸 것인지는 모두 플레이어의 손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 게임의 목적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고압세척기로 모조리 청소하는 것이죠

게임의 메인 콘텐츠가 되는 커리어 모드에서는, 의뢰를 받은 장소를 모두 청소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보상으로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금액은 청소 회사를 이끌어 갈 때 필요한 비품과 장비를 사는 데 주로 이용됩니다.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세척기도 꽤나 준수한 성능을 보여주지만, 한푼 한푼 모아 다음 등급의 세척기를 구매하면 더욱 효과적인 세척이 가능해 집니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여러 종류의 노즐 외에도, 비누 세정제를 사용할 수 있는 노즐이나 회전하는 0도 노즐 등 장비를 추가적으로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비누 세정제 노즐은 넓은 부위의 오염을 빠르게 세척할 수 있지만, 사용할 때마다 세정제를 필요로 해 추가 비용이 늘어납니다. 기본 노즐로 하면 조금 더 시간이 많이 들 뿐, 지우지 못할 얼룩은 없기 때문에 온전히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장비를 선택하면 됩니다.

노즐은 기본적으로 물을 분사하는 각도에 따라 네 개가 주어집니다. 가장 각도가 넓은 노즐은 한번에 더 많은 면적에 물을 분사할 수 있지만, 대신 수압이 약해 얼룩을 지우는 성능은 떨어집니다. 반면 한 점으로 물을 분사하는 노즐일수록 수압이 강력해지고요. 자신이 세척해야 하는 물체에 따라 노즐의 종류와 각도를 조절하며 물을 분사하는 것은 이 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다양한 노즐과 세척제를 사용하면 보다 편하게 청소할 수 있습니다

물체가 얼마나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확인하는 방법도 상당히 간단하게 구성됐습니다. 스테이지마다 청소해야 할 부분은 저마다 일종의 더러움 게이지를 가지고 있으며, 화면 오른쪽 위 UI를 통해 손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울타리 하나도 기둥이 있고, 받침대가 따로 각각의 더러움 게이지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한 부위의 게이지를 모두 없애면 특유의 효과음과 함께 해당 부위가 완전히 깨끗해지는데, 스테이지 내의 모든 부분을 이렇게 완벽히 청소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 청소를 마치고 나면 어느 구역에 세척이 더 필요한지 한눈에 확인하기 힘든 순간이 옵니다. 특히 청소 수준이 99%에 다다를수록 이런 현상이 더 많아지는데요, 이럴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오염된 부분을 하이라이트해주는 버튼을 지원하는 것도 게임의 특징입니다.

▲ 주황색으로 빛나는 부분이 모두 오염된 곳이라는 뜻

▲ 99% 완료됐을 때 숨은 1%를 찾기가 정말 힘드니 돌 틈을 구석구석 닦아줍시다



이 게임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방법

▲ 처음엔 막막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 고민을 내려놓고 물을 뿌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개운해집니다

사실, '파워워시 시뮬레이터'의 핵심 게임플레이는 위에서 설명한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어무런 패널티며, 운영 요소도 없는 청소 회사를 운영하면서, 제한 없이 물을 써가며 오롯이 청소만 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스팀에서 2만 명이 넘는 게이머로부터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이머들이 스팀에 남긴 평가를 보면, 대부분이 게임을 통해 '힐링'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리액세스 시점부터 수백 시간을 플레이한 사람들부터, 정식 출시 이후 이제 막 게임을 접한 사람들까지 모두 스트레스를 해소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데 좋은 게임이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잠이 잘 오지 않는 새벽에 방 불을 끈 채로 이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이런 '힐링'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고압세척기가 내는 물소리를 벗삼아 집이든, 놀이터든 청소를 하는 것이 의외로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이 스트레스를 조장하는 것들을 줄이고,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청소 도중 전달받는 의뢰인의 메시지도 소박한 즐거움을 줍니다

커리어 모드의 소소한 스토리 또한 게임 특유의 치유되는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그저 사람들의 의뢰를 받고 장소를 청소해 주는 것이 전부인 게임 특성상 스토리가 큰 부분을 차지하진 않지만,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어쩌다가 집 꼴이 이지경이 되었는지, 또 주인공의 청소 실력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친다고 해서 게임플레이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임 진행에 있어 큰 힌트가 되는 것도 아닌 정말 소소한 이야기들이지만, 게임은 이를 통해 주인공의 청소 행위에 동기를 부여하고, 또 조금이나마 다음 의뢰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사실, 게임 내내 혼자서 청소를 해야 하니 이따금씩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때 친구나 의뢰인으로부터 오는 뜻밖의 메시지가 외로움을 떨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

배경음악이 없다는 점은 물을 뿌리는 데 온전히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BGM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압세척 소리가 너무 커 잘 들리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밤 늦은 시간, 조용하게 게임을 즐길 때는 BGM이 없다는 점이 장점처럼 다가오기도 했고요.

하지만, 아예 게임 내에서 BGM을 지원하지 않는 것 보다는 이용자가 취사선택할 수 있게 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현 시점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을 노동요처럼 함께 틀어놓고 게임을 즐기는 것 밖에는 배경음악을 즐길 방법이 없다는 점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네요.





'파워워시 시뮬레이터'는 다른 거의 모든 류의 시뮬레이터형 게임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게이머들에게 공통적으로 추천할만한 게임은 되지 못합니다. 고압세척기로 오염된 벽을 한번에 씻어 내리는 만족감은 분명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의미 없이 청소만 해야 하는 게임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유튜브를 통해 고압 세척 영상을 보고 쾌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 게이머에게, 그리고 머릿 속의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상당히 만족스러운 시간을 꽤나 단순한 방법으로 제공해 줍니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좋지만, 최대 6인까지 함께 할 수 있는 협동 콘텐츠도 존재해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청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죠. 좀 더 도전적인 것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제한 시간 내에 청소를 완료해야 하는 모드 등 콘텐츠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편이기도 하고요.

특히, 정식 출시 이후로는 Xbox 게임패스를 통해서도 이용할 수 있기에 게임패스를 구독하고 있다면 큰 부담 없이 한번 쯤 즐겨볼 수도 있습니다. 요 근래 부쩍 심해진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고 있다면, '파워워시 시뮬레이터'로 고민과 걱정을 쓸어내려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