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 오래도록 몸담은 개발자가 자신의 로망을 찾아 게임을 개발한다는 소식은 언제 들어도 눈길이 끌린다. 특히 오랜 시간 얘기가 없다가, 마침내 출시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 들려오면 더욱 그렇다. 고딕과 에드거 앨런 포, 콘솔 게임을 좋아한 개발자가 만들어낸 '블랙 위치크래프트'도 그런 케이스였다. 2014년 지스타 시연으로 특유의 고딕물 느낌 물씬 나는 게임을 처음 선보인 이후, 8년이 지난 올해 9월 중에 출시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8년이라는 세월 동안 과연 게임이 어떻게 다듬어지고 있었을까? 콰트로기어의 이석호 대표에게서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콰트로기어 이석호 대표



■ "블랙 위치크래프트, 8년간 로망을 원없이 푼 결과물"

Q. 소개 부탁합니다.

= 콰트로기어의 이석호 대표입니다. 98년에 게임 기자로 게임업계에 와서 2000년부터 게임 개발을 이어왔습니다. 썬 온라인, 라스트카오스, 블레이드&소울 등 이런저런 게임 개발에 동참했다가 큐라레: 마법도서관 개발팀을 마지막으로 홀로 독립해서 '블랙 위치크래프트'를 개발해왔습니다.


Q. 첫 공개 이후 8년 가까이 지나서 출시를 눈앞에 두게 됐는데, 소감부터 한 마디 하신다면?

= 2014년 지스타 때 처음 공개했으니, 정말 오래 걸렸죠(웃음).

그 전에 독립하게 된 계기부터 말하자면, 제가 2000년부터 게임 개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운이 좋았어요. 사실 게임업계에 들어가도 자기가 참여한 작품이 출시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저는 여러 번이나 그렇게 출시작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 이런저런 분들도 만나서 인맥도 넓힐 수 있었고요.

그러다보니 운이 좋게 기획팀장, 디렉터, PD도 하면서 어느 새 업계에서 지낸 시간이 15년이나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그 과정이 재미는 있었지만, 회사에서 게임을 만들면 대중성이나 상업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개발자 인건비나 생계도 생각해야 하고, 또 홀몸이 아니라서 다른 팀원의 생계나 사정 등 여러 가지를 따져야 하니까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15년 정도 개발하다가 돌이켜보니까, 많은 분들이 결국 그렇게 게임을 만들다가 업계를 은퇴하는 것을 봤어요. 또 예전부터 친한 분 중에 콘솔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던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걸 보면서 나도 언제 갈지 모르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상업성 신경 안 쓰고 내가 좋아하는 걸 자유롭게 한 번 만들고 싶다, 내가 질릴 때까지 만들고 싶은 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인디로 뛰어들게 됐어요.

그런데 그게 8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어요(웃음). 그래도 돌이켜보면, 썩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인디라고 하면 창업하는 것과 비슷해서 여러 가지로 치이기 마련이고, 비용 회수 등도 신경을 써야 하는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요. 그런 문제에서 자유롭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완성해낸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어요. 후련하다고 할까요? 업계에 있던 15년간, 쌓여있던 걸 다 풀었다고 생각해요. 15년에 8년 더 걸려서 자기 게임 낸 게 과연 효율이 좋을지 의문이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고 보통은 될 수도 없는 거였지만 저는 운이 좋았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지스타 2014에서 처음 공개된 '블랙 위치크래프트', 8년이 지난 올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Q.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서 8년이 걸리게 됐나 유저들이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간단히 언급하신다면?

= 개발 자체는 제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다보니 즐겁긴 했지만, 기다려주신 분께는 정말 죄송한 마음일 뿐입니다.

게임을 오래 만들긴 했는데, 만들고 안 쓴 거나 폐기한 애셋 분량이 정말 많아요. 게임을 서너 개 만들 분량 아닐까 싶죠. 현실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중간에 끊고 출시한 다음에 못한 걸 또 내는 게 맞는데, 그때는 그런 거 하기 싫다. 그냥 마음껏 만들고 부수고 될 때까지 해보자, 속이 풀릴 때까지 해보자 이런 생각이라서 길게 끌게 됐어요.

사실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선택이긴 합니다. 공개를 아예 안 하고 혼자 만들었다면 상관 없었겠지만, 공개를 해버렸으니 기다려주시는 분도 계셨을 텐데 그 분들께 기약 없이 기다리게 만들어버린 셈이니까요. 거듭 죄송할 따름입니다.

물론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팔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긴 했는데 이 작품만은 제 로망을 따라갔던 것 같아요. 수많은 여건이나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제가 만들고 싶다는 그 방향을 우선해서 계속 나아갔죠. 그게 인디다, 그런 것만 인디다 이런 말은 아닙니다. 사실 '인디'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보면 '사업'이니까요. 그렇게 보면 수익성, 대중성 이런 것을 신경 쓰는 게 당연한 일일 거에요. 그리고 인디로 대중적인 걸 만들고 싶어할 수도 있겠고요. 혹은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선택할 수도 있겠고요. 그 여러 선택에서 자기 길을 가기 위해 고민하고 고뇌하고 나아가는 그런 게 삶인 거 같아요.


Q. 처음에는 콘솔을 겨냥하고 개발하셨는데, PC 선출시로 변경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 원래 콘솔 게임으로 내겠다는 욕망으로 블랙 위치크래프트를 만들었는데, 개발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그 중간중간 5~10분씩 짬을 내면서 만든 '딥어비스'라는 게임이 있어요. 그게 2019년에 완성이 돼서 한국 PSN에 출시했습니다.

그 뒤로 콘솔 게임을 내겠다는 욕망이 어느 정도 충족된 거 같아요. 그래서 스팀이 출시 이후 대응이 편하다보니, 그쪽으로 먼저 내고 순차적으로 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원래는 2021년에 낼 생각이었는데, 퍼블리셔인 크레스트와 계약하게 되면서 그쪽에서 QA를 너무 잘 해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저랑 개발을 도와주신 분들 몇몇 테스트할 때는 안 보였던 버그들도 리스트를 꾸준히 받아서 수정했죠.

그냥 2021년에 내야지, 라고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QA를 하다보니까 좀 달랐어요. 그래서 이제는 버그 문제를 좀 안정적으로 잡았죠. 그래서 스팀에 낼 수 있겠다 싶었고, 콘솔로 적용할 때 또 어떻게 될지 몰라서 QA를 거치고 내게 될 것 같아요. 딥어비스를 PS4로 출시했을 때는 버그 이슈가 딱히 없었는데, 블랙 위치크래프트가 아무래도 좀 더 규모가 있는 게임이라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동시 출시는 준비할 것도 너무 많고, 예상하기 어렵기도 하니까요. 개발킷은 이미 다 있는 상황이니까, 일단 PC로 먼저 내고 콘솔을 뒤에 내는 걸로 최종 결정하게 됐습니다. 스위치, PS, Xbox 다 출시할 예정입니다.

▲ 처음엔 PS4 출시를 생각했지만, 출시 이후 QA 대응 등의 이유로 PC 선출시로 변경됐다


Q. PS4가 국내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개발을 하셨는데, 당시에 개발 환경과 지금의 개발 환경을 비교한다면? 또 어떤 점에서 많이 나아졌다고 보시나요?

= 2014년만 해도 온라인 다음으로 모바일이 대세였죠. 사실 그때도 이미 모바일이 규모가 가장 컸을 거에요. 그러다보니 국내 게임업계에서도 콘솔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아무래도 콘솔 시장 규모는 너무 작고, 모바일은 핫트렌드에 큰 시장이었으니까요.

지금은 8년이 지나니까, 모바일 시장이 엄청 경쟁이 치열해졌죠. 레드를 넘어서 블랙이 된 거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중국쪽도 치고 올라오다보니 스팀, 콘솔 등 여러 방면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면, 국내 개발자 중 콘솔 게임이나 스팀 게임을 만들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못했던 분들이 한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고요.

물론 콘솔 게임에 대해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긴 합니다 가끔 학생들을 상대로 멘토링을 부탁받아서 가보면 콘솔 게임을 해본 친구들이 많이 없어요. 아직도 학생 입장에서는 콘솔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콘솔 게임을 하면서 로망이 생겨버린 제 입장에선 좀 아쉽기도 하고, 제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국내 여러 회사가 콘솔 게임 개발 소식을 전하고 있으니, 모두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Q. 8년이 지나면 아무래도 초창기 기획과 많이 바뀐 부분이 있을 텐데,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을 소개한다면? 또 이것만큼은 어떻게 해도 바뀔 수 없는 ‘블랙 위치크래프트’만의 정체성이라고 하면 무엇인가요?

= 하도 오래 만들다보니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버려진 게 어마어마했죠(웃음). 만들면서 즐거웠긴 합니다. 이런 거 저런 거 오만 거 다 만들었구나, 싶죠. 그런데 그게 다 내돈내산이라 웃프죠. 그래도 만들고 버려진 것들도 결국 다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라, 즐겁긴 했습니다.

일단 끝까지 유지된 거라면, 모티브 그리고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을 만든다는 제 생각이라 하겠네요. 제가 여러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특히나 만들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그 옛날 PS, PS2 시절의 액션 JRPG였습니다. 특히 오딘스피어나 테일즈 오브 시리즈 1, 2편은 정말 이런 거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들었었죠.

그 게임들의 특징을 보면 발판이나 구멍 같은 레벨 디자인이 없는, 지금 보면 캐주얼한 스타일이에요. 그 기조는 8년 동안 꾸준히 유지됐던 것 같습니다. 액션, 로그라이크나 메트로배니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지루할 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딱 괜찮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분야도 이제 가면 갈수록 시장성이 작아져서 안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런 사라져가는 것들을 채택해서 제가 생각한 대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잘 만들고 싶었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지금도 8년 동안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족하긴 합니다.

▲ 발판 없이 빠르게 콤보를 이어가는 고전 JRPG류 전투에 대한 로망이 '블랙 위치크래프트'의 핵심 중 하나다



■ "고딕물의 느낌 물씬 담은, 로망과 스피드가 있는 액션 RPG"


Q. 캐릭터 디자인부터 범상치 않은데, 좋아하는 스타일을 꼽자면? 또 그 스타일을 어떻게 게임에 녹여내려고 하셨나요?

= 사실 개발자라면 누구나 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 혹은 추구하는 스타일이나 구현하고자 하는 스타일을 게임 내에 녹여내기 위해서는 다들 많이 고민하실 거에요. 현실적으로 반영이 어려웠을 뿐이죠. 제가 업계에 다닐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다들 애착이 있으니까, 일부 조율되고 하더라도 계속 그렇게 작업을 하고 결과물을 만드시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면, '고딕'입니다. 전기 고딕, 후기 고딕, 그리고 그에 영향을 받은 빅토리아 양식 모두 다 좋아하죠. 그래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고딕 거리도 가보고, 쾰른 대성당도 가고 여러 고딕 건물들을 탐닉하다시피하면서 돌아다녔죠. 갈 때마다 사진도 엄청 찍었고요.

그리고 디럭스 에디션용으로 아트북도 만들었습니다. 대형 블록버스터 게임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만들면서 고민을 많이 했고 그간 어떤 식으로 만들어갔습니다, 이런 걸 보여드리는 셈이죠. 색감과 컨셉, 세계관 그 하나하나까지 고딕, 에드거 앨런 포, 마녀 이 키워드에 맞는 느낌을 찾아갔던 과정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원체 이 장르가 매니악합니다. 제가 2014년에 나와서 이런 게임 만들래, 하고 레퍼런스를 찾아봤는데 그런 배경은 잘 없었죠. 체감상 판타지 > 근현대 혹은 근미래 > SF >>>>>>>>>>>>>> 고딕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레퍼도 없어서 검증도 어렵다보니 회사 차원에서는 잘 못할 테고, 그러면 내가 직접 만들고 싶다, 그걸 보여주고 싶다 이런 생각에 이것저것 작업하고 넣고 추려내고 그랬었죠. 그런 과정의 일부라도 좀 더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 디럭스 에디션에 추가될 아트북, 캐릭터 컬러나 피부톤 같은 정보도 담겨있다


Q. 예전에 주인공이 안경을 쓰고 있던 메인 일러스트가 기억이 남는데요, 게임 속에서는 안경을 벗긴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밖에 캐릭터 디자인에서 추가로 변경된 점이 있다면?

= 저는 안경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리지아를 디자인했을 때, 안경이 어울릴까? 의문이 들었어요. 처음부터 안경을 낀 걸 상정하지 않았거든요.

안경을 안 쓰는 캐릭터에게 안경을 씌울 때의 로망, 좀 더 딥하게 말하자면 배덕감이라고 할까요(웃음). 그런 것들을 정말 좋아하긴 해요. 그래서 일러스트로 해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포스터에서는 안경을 쓰고 게임에는 안경을 벗기는 그런 식으로 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히로유키'라는 분이 있어요. 그녀도 여친 같이 하렘 개그물을 정말 잘 그리는 분인데, 그분 작품 중에 보면 안경을 들고서 막 씌우려고 다니는 캐릭터가 있어요. 리지아에게 안경을 쓰게 만드는 건 아마 그거랑 비슷한 욕망 아닐까 싶네요.

여담이지만 제 또다른 작품, 딥어비스에서는 오퍼레이터 세 명이 다 안경 캐릭터입니다. 안경을 On/Off할 수도 있죠. 안경 캐릭터의 안경을 벗기는 것도 매력이니까요. 딥어비스에서는 그 욕망을 한 번 분출해봤으니, 블랙 위치크래프트에서는 반대로 안경을 안 쓴 캐릭터에게 안경을 쓰게 만드는 욕망을 한 번 분출했다고 할까요? 그게 처음부터 상정을 안 해서 결국 게임 내에서는 쓴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지만요.

▲"안경 안 쓰는 캐릭터에게 안경을 씌울 때의 로망, 배덕감 때문에 포스터엔 안경을 씌웠습니다"


Q. 게임 소개를 훑어보면 ‘어셔 가의 몰락’이나 ‘리지아’, ‘애너벨 리’, ‘갈가마귀’, ‘검은 고양이’ 등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느낌이 드는데, 기획하시면서 가장 많이 보셨거나 참고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꼽자면? 또 에드거 앨런 포 외에 다른 고딕물에서도 영감을 받은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 에드거 앨런 포뿐만 아니라 여러 미스터리, 고딕물을 정말 좋아하긴 합니다. 그런데 너무 산만해질 수 있어서 일부러 에드거 앨런 포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래도 여러 가지로 보면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면, 우선 셜록 홈즈 시리즈 중 '바스커빌 가의 개'가 있겠네요. 고딕풍의 미스터리한 느낌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꼽겠습니다. 차기작으로 얘기했었던 '책과 마녀와 까마귀의 숲'은 프랑켄슈타인이 컨셉이고요.


Q. 횡스크롤 액션도 최근에는 탄막형부터 반격과 패링을 활용한 무거운 스타일까지 다양해졌는데, ‘블랙 위치크래프트’에서는 어떤 스타일의 액션을 선보이고자 하나 궁금합니다.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옛날 클래식한 JRPG식 액션이에요. 제가 만든 이유와도 겹치는 이야기긴 한데, 블랙 위치크래프트를 처음 만들어서 보여주니까 메트로배니아, 이렇게 생각하더라고요. 로그라이크라고 하는 사람도 많아지고요.

예전의 초창기 테일즈 오브 시리즈나 오딘스피어 같은 게임을 이제 아무도 안 만드니까, 그 상태로 10년도 넘어가다보니까 2D 횡스크롤 액션 = 메트로배니아, 로그라이크 이게 정석화된 느낌이에요. 이제 그 두 가지가 트렌드가 됐죠.

사실 트렌드가 될 법해요. 로그라이크가 인디에 정말 잘 맞는 장르니까요. JRPG식으로 하려면 스토리 베이스니까 이벤트씬도 많이 만들어야 하고 여러 가지 할 게 많으니까 노력대비 플레이타임 늘리기가 정말 어렵죠. 메트로배니아나 특히 로그라이크는 이런저런 걸 만들어둔 뒤에 랜덤하게 조합하는 형태다보니까 적은 리소스로도 매번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고, 그래서 플레이타임 늘리기가 비교적 쉽죠.

그래서 코스트 대비 플레이타임도 많이 뽑고, 사람들도 좋아하고, 인디 개발사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맞아요. 아마 제가 '로망'을 달성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면 저라도 그랬을지 모르죠. 그렇지만 저는 처음부터 '로망'을 잔뜩 넣은 게임을 만들겠다고 나선 거였으니까요.

매니악하고, 덜 팔리고, 사람들이 덜 좋아하더라도 그 로망을 충족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냥 발판도 없이 빠르게 공중도 왔다갔다하면서 스킬도 넣고 콤보 이어가는 그 옛날 고전 게임을 제 식대로 해보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Q.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듀라한’이라는 무기를 특색으로 내세우셨는데, 대략 몇 종류의 형태로 전투를 벌이게 되나 궁금합니다. 또 리지아가 강적들과 맞서싸워나가는 과정에서 ‘마녀’라는 컨셉을 살리기 위해 어떤 점을 가장 중점적으로 보셨나요?

= 엄청 많은 건 아니고 10여종 정도입니다. 대부분은 그때그때 기술 쓸 때마다 일시적으로 바뀌는 것이고, 변화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싸우는 그런 유형은 많지 않아요.

처음 시작할 때 가방이 변하는 걸 만들고 싶었는데, 그게 데빌메이크라이라던가 여러 작품에서 이미 나온 것이라서 제가 그렇게 만들었을 때 반응이 과연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반신반의하면서 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죠. 그 뒤로 여러 가지 변형을 추가하긴 했는데,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닌 거죠.

일단 작품에서 주로 나오는 게 '마녀'인데 보통 이 단어는 중세 시대의 마녀를 생각하잖아요. 뾰족한 모자이에 지팡이, 빗자루 타고 다니는 그런 거 말이죠. 그런데 블랙 위치크래프트에서는 그런 유형의 마녀는 하나도 없어요. 과연 이게 마녀일까? 라는 생각이 들죠.

다들 정통파 마녀를 떠올릴 때, 좀 다른 마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통파적이지 않은, 그러면서도 세계관에서 자연스럽게 마녀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존재 말이죠. 뭐 블랙 위치크래프트에서 나오는 등장인물들이야 주인공을 비롯해 다른 마녀를 보고서 '마녀다'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 보기에도 그랬으면 좋겠다 싶었죠.

'베요네타'를 보면 주인공이 마녀인데, 정통파 마녀랑 거리가 있죠. 그런 것처럼 저는 제 나름대로 생각했던 마녀의 느낌을 '고딕'과 어울리게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빅토리아 시대를 떠올리니까, 빅토리아 시대 -> 기차 -> 기계술, 이런 게 연상이 되더라고요. 기차가 또 고딕물, 미스터리에 많이 나오는 소재라 그런 게 떠올라서 보다보니까, 그 느낌이 마녀와 조합했을 때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리지아는 작중 이명이 '기계술의 마녀'입니다. 테크노 마녀, 기계술의 마녀, 이런 식으로 컨셉을 잡고 작업한 거죠. 그게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보통 기계하면 떠오르는, 21세기적이거나 현대적인 요소는 다 쳐버리고 캐릭터 디자인할 때도 미니멀리즘하지 않게 작업했죠. 이런저런 장식을 막 달아주면서요. 그러면서도 로코코식이 아니라 고딕풍으로 절제된 색채, 톤으로 저만의 마녀를 만들어냈습니다.




Q. 고딕물이라는 흔하지 않은 소재를 채택했는데, 아무래도 그런 분위기를 몰입감 있게 내려면 비주얼뿐만 아니라 사운드도 중요할 거 같습니다. 어떻게 작업이 진행되고 있나요?

= OST는 대부분 한 트랙에 1분 정도로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이상 트랙이 길어지면 좀 늘어지지 않나, 특히 전투 때는 더 그렇지 않나 이렇게 생각해요.

고딕 분위기를 낼 때 클래식은 너무 진부하다 싶어서, 고딕 메탈을 추구했어요. 그래서 외주 업체에 말씀드렸는데 아무래도 국내는 게임쪽에 맞춰서 메탈 곡을 전문으로 작업해주시는 분이 적어요. 거기서 고딕 메탈로 넘어가면 더더욱 적죠. 그래서 고딕 '판타지' 메탈 이 정도 톤으로 되지 않았나 싶은데, 그래도 엄청 만족스러워서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그 외에도 크레스트에서 타이틀 OST도 따로 만들었는데, 그것도 좋아서 작업할 때마다 OST, 타이틀곡을 무한반복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 OST는 디럭스 에디션을 구입하시면 아트북과 함께 특전으로 제공됩니다(웃음).


Q. 아무래도 횡스크롤 액션하면 최근에 어려웠던 게임들의 인상이 남아있는 장르다보니 난이도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할 텐데요, 소위 ‘매운맛’은 어느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 그 옛날 클래식 JRPG 정도로 보고 있다가도, 그걸 좀 더 낮췄어요. 크레스트에서 QA를 할 때 여러 가지를 수정하다보니 그렇게 되기도 했고, 또 저 혼자만 개발했을 때 제가 생각한 것과 전혀 안 해본 사람이 해보고 생각한 게 판이하게 다르더라고요. 저는 그냥 이 정도면 됐지, 싶고 또 이건 다 알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었죠.

또 이 부분은 좀 더 난이도를 낮춰야 진입이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나왔었고, 이 부분은 좀 더 어렵게해도 되겠다 등 여러 가지로 피드백이 왔었습니다. 이미 당시에는 제가 만들고 싶었던 만큼 다 만들었던 상황이라서, 거기서 조금 더 다듬어간다 생각하고 피드백을 받아서 이리저리 손을 봤죠. 아마 횡스크롤을 처음 하신 분들도 하다보면 그냥 무난히 적응해서 엔딩까지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수집하는 요소로는 주로 포션, 스티그마가 언급됐는데 그 외에 또다른 아이템 수집 요소들이 있나 궁금합니다. 또 미스테리 어드벤처처럼 숨어있는 무언가를 찾는 요소도 기대해봐도 될까요?

= 저희가 소규모로 작업하다보니까, 스티그마는 게임 내 30종류 정도입니다. 그걸 다 모으면 숨어있는 무언가가 해금되는 정도죠. 그런데 엄청 막 규모가 큰 걸 만들진 않았어요. 아이템 제작 시스템도 있긴 한데, 그냥 필요한 아이템만 만들어주는 정도죠.

제 개인적으로도 아이템이 수천 수백 가지 있는 걸 좋아하고 여러 가지 탐사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블랙 위치크래프트는 이런 걸 지향한 게임이 아니에요. 나중에는 제작이나 탐사에 특화된 게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있지만, 지금은 그걸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제작은 3D 프린터를 보고 나서는, 듀라한을 3D 프린터처럼 사용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면 재미있겠다 싶었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트레일러에서 잠깐 선보였는데, 이것도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죠. 맵에 숨어있는 요소도 몇 개 있긴 하고, 또 엔딩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해금 조건이 각각 다르긴 한데, 그 루트를 찾는 조건이 그리 어렵진 않아요. 편하게, 그저 애정 있게, 로망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냥 편하게, 어렵지 않게 그 분위기에 빠져들면서 갈 수 있는 그런 게임 말이죠.




▲ 성장도 레벨업뿐만 아니라 스티그마, 물약 등으로 '마녀'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


Q. 블랙 위치크래프트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 회사에 다닐 때 하지 못했던, 저만의 로망의 표현이라고 할까요? 대중성이나 상업성을 이유로 못했던 고딕 캐주얼 액션, 그래서 시장에 안 나오겠지만 그렇기에 하고 싶었던 것을 모아서 만든 로망의 결정체, 로망의 폭발이라 하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유저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 독립하기 전 그 오랜 시간 동안 회사에서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게임을 만드는 것도 즐거웠지만, 자유롭게 제가 어떤 대외적인 것에 대한 생각 없이 제가 오롯이 하고 싶었던 걸 집중해서 만든 8년은 행복했습니다. 행운이었죠. 그런데 너무 기간이 길어져서 유저들을 기다리게 한 점, 거듭 죄송합니다.

이제라도 완성해서 출시하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게임은 아니라고 보지만, 저와 취향이 같은 분은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