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과 MMORPG의 결합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지금까지 게임 업계에서는 블록체인을 게임에 접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화제가 됐던 NFT와의 결합을 선보인 바 있는 P2E(Play to Earn) 게임 역시 그러한 시도 중 하나다. 다만, 아직도 블록체인과 게임의 결합은 가야 할 길이 멀다. 무엇보다 어떤 형태가 될지, 이러한 변화가 업계에 어떤 파문을 불러올지 쉽사리 예단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1세대 개발자로서 바람의 나라, 리니지, 그리고 아키에이지를 개발한 엑스엘게임즈의 송재경 대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8일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개최 중인 '코리아 블록체인 위크 2022(KBW 2022)'에서 'MMORPG와 블록체인: 유저의 것을 유저에게'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송재경 대표. 그는 블록체인과 MMORPG의 만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그리고 그걸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그의 강연을 들어봤다.

▲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

송재경 대표가 추구하는 웹3.0 MMORPG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송재경 대표는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첫 번째 MMORPG는 게이머라면 모두가 알 그 게임. 바람의 나라다. 지금에는 최초의 그래픽 MMORPG로도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용어도 없었다. 그렇기에 내부에서도 그래픽 머드 게임이라고 했을 정도. 이후 이런 게임들은 울티마 온라인을 개발한 리차드 게리엇에 의해 MMORPG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그는 1998년 두 번째 MMORPG 리니지를 개발했다. 바람의 나라에 이어 리니지까지. 국내 온라인 게임 역사상 굵직한 족적을 남긴 송재경 대표지만, 그는 이 둘을 단순한 게임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리니지를 개발할 때는 더욱 그러했다. 지금은 수많은 게임, 장르가 출시되었기에 여기저기서 레퍼런스를 얻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리니지의 레퍼런스를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찾았다.


이에 대해 송재경 대표는 "리니지를 만들 당시 게임을 만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현실의 세계를 모방한 가상 세계를 만든다는 생각이 더 컸다"라며, 당시를 회자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당시 리니지는 충분한 콘텐츠를 가진 상태로 출시된 게 아니었던 만큼, 부족한 콘텐츠를 유저가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 만나는 유저마다 PK를 한 어떤 유저가 있었는데, 그 유저가 현실에서의 셀럽처럼 취급되는 경우도 있었다. 현실을 레퍼런스로, 게임보다는 가상 세계를 만들고자 한 개발팀과 그조차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개발팀이 예상치 못한 일은 또 있었다. 지금은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아이템 현거래는 개발팀에게 여러모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이에 여러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계정에 있는 아이템을 몰래 팔 때 절도죄가 성립하는지였다. 이와 관련해 공중파 뉴스를 탔을 정도. 당시를 회상하며 송재경 대표는 "지금 생각해보면 NFT의 시초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로 게임사는 아직까지도 아이템의 현금 가치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여러 신선함을 안겨준 리니지였지만, 송재경 대표에게 있어선 다소 아쉬운 게임이었던 것 같다. 그는 "현실을 모방해서 만들었기 때문인지 리니지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 것 같다"라며, "나중에 다른 게임을 만들 때 그런 점들에 대해서 반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엑스엘게임즈를 설립하고 만든 아키에이지는 리니지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좀 더 자유로운 요소를 추구한 게임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그는 리니지가 힘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 것에 늘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아키에이지에서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상위 유저와 하위 유저의 격차를 줄이고 리니지를 개발할 당시 여건상 넣지 못했던 그런 아이디어들을 넣었다.

단순한 하우징 시스템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토지라는 개념을 넣어서 텃밭을 일구고 농사를 해서 작물을 수확하게 하거나 그렇게 수확한 특산품을 먼 지역에 팔 수 있도록 한 무역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공성전에서도 이런 힘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세심히 고민했다. 길드장 혼자서 모든 걸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공성전에 대비해서 수성에 유리하도록 타워나 성문 등을 길드장이 배치하면 길드원이 재료를 모아서 완성하는, 하우징의 길드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능을 구현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설명한 요소들이 기존의 시스템을 좀 더 확장한 느낌이라면 배심원 시스템은 아키에이지의 특색이라고 할만하다.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으로 유저들이 직접 배심원으로 나서서 평결함으로써 게임 속 사회에 영향을 끼치도록 한 것이다.


이후로도 송재경 대표는 많은 게임을 개발했다. 실패한 것도 있고 성공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송재경 대표는 MMORPG의 본질이 무엇인지 나름의 답을 찾았다. 바로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가상의 세계야말로 그가 추구한 진정한 MMORPG의 모습이었다.

▲ "리니지의 집행검 NFT를 다른 게임에서 쓸 수 있어야 진정한 메타버스"

그렇다면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웹3.0 MMORPG의 핵심은 무엇일까. 무엇이 게임을 가상의 세계로 만드는 걸까. 그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로 두 가지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상호운용성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게임이 있다고 했을 때 같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프로토콜을 따른다면 A 게임의 NFT 아이템을 B 게임으로 옮겨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송재경 대표는 "리니지의 집행검 NFT를 다른 게임에서 쓸 수 있어야 진정한 메타버스"라고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게 바로 디지털 에셋 소유권(Digital Asset Ownership)이다. 현재 웹2에서는 이러한 데이터의 소유권은 게임사에 있다. 유저는 게임사가 제공하는 게임의 이용권만을 가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송재경 대표는 "웹3 메타버스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다. 유저에게 소유권을 넘기고 그로 인해 생기는 수익 역시 유저에게 분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역설했다.

▲ "웹3의 핵심은 데이터의 소유권이 유저에게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상호운용성과 디지털 에셋 소유권이 유저에게 넘어간다고 했을 때 과연 MMORPG가 어떤 형태로 변할지에 대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온라인 게임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있어 유저들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사실상 게임사가 만든 콘텐츠를 유저는 즐기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저들의 역할이 없던 건 아니었다. 송재경 대표는 "유저들이 플레이하고 즐김으로써 그 콘텐츠는 확장되고 완성된다"며, 유저가 콘텐츠에 기여하는 부분 역시 크다고 설명했다. 즉, 그러한 기여분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보상이랄 수 있는 디지털 에셋 소유권이 유저에게 전환됨으로써 생길 변화에 대해 송재경 대표는 "혼자서 즐기고 싶은 유저, 다른 유저에게 뽐내고 싶은 유저, 돈을 쓰고 싶은 유저, 돈을 벌고 싶은 유저 등 다양한 유저들이 하나의 가상 세계에서 공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상호운용성으로 인해 게임의 생태계 역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블록체인에 기록됨으로써 단순히 하나의 게임에 머무르는 게 아닌 바깥세상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는 만큼, 신규 유저들이 유입되고 그 결과 기존 유저들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렇게만 보면 유저에게만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게임사에게도 이점은 있다. 무엇보다 게임 내에서 중요한 아이템이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생겨났는지 투명하게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만큼, 유저들이 게임에 대해 높은 신뢰를 하게 된다.

▲ 아키월드의 핵심 원칙 다섯 가지

오는 8월 출시 예정인 '아키월드'는 이러한 송재경 대표의 생각이 녹아든 블록체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사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유저는 그 안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구조다. 유저들이 게임에 들인 노력은 NFT로 만들어져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블록체인 MMORPG는 이제 막 본격적인 첫걸음은 내딛으려고 하는 상태다. 송재경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탈중앙화 자율 조직)라고 해서 유저들의 결정이 게임의 개발 방향이나 운영 방향에도 영향을 끼치는 형태가 되는 걸, 그런 미래가 오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Q. 유저에게 소유권을 돌려준다고 했는데 해당 게임의 서비스가 종료되면 결국 무용지물이 아닌가.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해도 NFT와 에셋은 다른 블록체인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 블록체인에 모든 히스토리가 기록되어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해서 다시 게임 서버를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게임 소스를 오픈 소스화해서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회사가 없어지더라도 블록체인과 NFT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 존재하도록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Q. 돈을 벌고 싶은 유저, 크리에이터가 게임 내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걸 주요 포인트로 삼고 있는 게 맞나.

'아키월드'에 당장 그런 기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돈을 벌고 싶은 유저는 결국 돈의 가치가 중요한데 매크로나 외부 요인으로 토큰 가격이 하락하면 그런 유저가 안 오지 않겠나.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게임 외적인 요인에 의해 토큰 가격이 오르내리고 빙하기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장기적으로 보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창작 욕구를 가진 분들을 위한 금전적 보상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보상이 없더라도 다른 유저가 즐기는 것 자체가 보상이 될 수 있다. 로블록스의 경우 금전적 보상이 있지만, 마인크래프트의 경우에는 그런 금전적 보상이 없음에도 잘 돌아가고 있지 않나.


Q. 디지털 에셋 소유권을 유저에게 넘겨준다는 건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로 보이기도 한다. 매출 효율이 낮아진다는 걸 의미하는데, MMORPG처럼 콘텐츠 업데이트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경우 어떤 가능성을 보고 있나.

대표적인 형태로는 유저가 가진 NFT나 에셋을 거래할 때마다 일정량의 수수료를 회사가 얻는 걸 생각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수익이 급감하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게임이 아닌 다른 서비스를 생각하면 플랫폼으로서의 비즈니스 대부분이 초기에는 수익이 안 좋고 적자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유저가 굉장히 많이 늘어나고 그 결과 수익도 나는 만큼, 비슷하게 갈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