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부터 15일, 광복절 연휴 기간 동안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보드게임콘 2022에서 한 가지 더 눈에 띄었던 것은, 비디오게임은 물론 각종 IP를 활용해 출시된 보드게임이 정말 많았다는 점입니다. 넥슨의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부터 쿠키런 킹덤 등 국내 게이머들에게 친숙한 게임부터, 누구나 좋아하는 마블 IP를 활용한 보드게임,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끈 '오징어게임' 보드게임도 확인할 수 있었죠.

이처럼 여러 IP를 활용한 보드게임이 더욱 다양해진 점에 대해서, 국내 보드게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 중 하나인 '코리아보드게임즈'의 관계자와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을 맞이하던 이상민 코리아보드게임즈 하비게임본부장은 국내 보드게임 시장이 지난 20년간 꾸준한 성장을 보여 왔지만,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 코리아보드게임즈 이상민 하비게임본부장


■ 대면 마케팅이 중요한 보드게임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

Q. 먼저 코리아보드게임즈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지난 2004년 설립된 회사입니다. 우리나라에 보드게임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하고, 보드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2002년도 부터니까, 한국에 보드게임이 들어온 것과 거의 동시에 설립된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는 110명 정도의 임직원이 모여 보드게임의 개발은 물론, 유통과 수출을 맡고 있으며, 보드게임에 한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회사라고 자신합니다.

Q. 외국의 다양한 보드게임을 들여오고, 국내 게임을 수출도 하시는 만큼 현지화에 대한 노하우가 상당하실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보드게임의 현지화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 기본적으로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영문 버전을 토대로 현지 회사가 각각 현지에 맞는 로컬라이징을 하는 편입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영문 버전을 베이스로 현지에 맞게 한국어판으로 만들어 판매하게 됩니다.

특히, 인쇄물인 보드게임은 온라인이나 모바일게임과 달라 버전에 문제가 있다고 패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현지화를 하는 과정에서 신중하게 작업을 진행해야 하죠. 현지화를 해당 지역의 문화나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게 되면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어서, 주로 해당 지역에서 현지화가 이뤄지는 것이 기본적입니다.

▲ '위쳐' 보드게임의 현지화도 도맡아 진행하고 있는 코리아보드게임즈

Q. 해외 보드게임을 국내에 선보일 때, 주로 어떤 게임을 선정하는지 궁금합니다. 국내 보드게임 이용자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장르가 있나요?

=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인기 있을 것 같은 것'을 가지고 오려고 하죠(웃음). 모든 보드게임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전제는 해외에서 인기가 있었던 제품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드게임 산업에서는 아무래도 한국이 후발주자인 만큼, 이미 해외에서 출시되어 좋은 판매고를 기록한 게임들이 뒤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 외에는 회사 내부적으로 쌓아가고 있는 국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외에서의 성적과 비교해서 제품을 선정하기도 합니다. 간단한 것만 말씀드리면, 국내에서는 추리 게임이나 엔진 빌딩 장르의 게임이 비교적 인기가 많습니다. 반대로 인기가 없는 장르도 있는데, 주로 너무 성인향이 강한 게임은 인기가 없고요. 이런 통계를 참고해 소싱을 진행하고 있지만, 소싱을 담당하는 사람의 능력이나 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보드게임 시장 또한 COVID-19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국내 보드게임 시장의 변화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 앞서 우리나라에 보드게임 산업이 첫 발을 뗀 지 20년 정도 되었다고 말씀드렸는데, 지금까지 시장 자체는 한 번도 멈춘 적 없이 꾸준히 성장해왔습니다. 물론 코로나는 어느 산업에나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요인 중 하나일테지만, 실제로 최근 보드게임 시장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입니다.

보드게임은 특히 서로 만나서 즐기는 측면이 강하다 보니 대면 마케팅이 굉장히 중요한 산업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행사가 제한되다 보니 근 2년 사이에 출시된 신작들의 성적이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밖에 나가는 시간이 줄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보드게임에 대한)전체적인 수요는 증가했습니다.

스플렌더, 카탄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대표적인 게임들의 판매량이 많이 올랐고, 공장들도 소위 말하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죠. 주문을 넣으면 생산까지 빠르면 두 달에서 세달 정도 걸렸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어나 6개월에서 1년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여태까지는 판매량이 증가해서 좋은 영향도 있었는데, 앞으로는 환율이나, 공장 상황에 따른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고, 공급망에 대해서도 걱정이 되긴 합니다. 또 코로나가 완벽히 종식된 것이 아닌 만큼 신작의 성과도 보장이 어렵고요. 이런 부분에서는 리스크가 존재하리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 영상 콘텐츠 등 보다 다양한 경로로 소비자를 만나려는 노력 또한 펼치고 있습니다

Q.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즐기는 게임이라는 제약이 저변 확대에 큰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업계 차원의 노력도 많이 이뤄졌을것 같아요.

= 그런 부분에서 조금이라도 더 소비자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 저희 회사에서는 보드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많이 찍기 시작했습니다. 영상 엔지니어, 콘텐츠 제작자 등으로 구성된 영상 팀이 별도로 존재해, 매주 몇 편씩 영상을 공개하고 있죠.

해외에서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노력하고 있는 사례가 있는데, 예를 들면 보드게임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도록 포팅하는 시도도 있었어요. 점수 계산이나 돈 계산을 자동으로 해 줘서 편한 부분도 있긴 한데, 아무래도 만나서 하는 것 만큼의 재미를 전달하는 것은 아직까지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요.

그밖에도 자체적으로 시연 행사를 기획하고 있고, 최근에도 하남 스타필드에서 보드 게임 체험 공간을 마련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것 말고도, 방과후 교실 등을 통해서도 어려서부터 보드게임을 접할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그밖에 국내 보드게임 산업 발전을 위해서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 행사장에서 느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보드게임 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이용자들이 양극화되어있다는 점입니다. 보드게임 중에는 '할리갈리'처럼 30초 설명하고 바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있는 한 편, 설명에만 몇십 분이 걸리고, 게임을 하는 데는 두세 시간씩 걸리는 헤비한 게임도 있잖아요.

가장 이상적인 것은 모든 스타일의 보드게임에 수요층이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일테지만, 국내 시장에는 중간이 없어요. 이쪽 끝(빠르고 간편한 게임)이나 저쪽 끝(깊이 있고 헤비한 게임)만 있죠. 중간이 있어야 산업이 발전한다고 생각해 업계에서도 저변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보드게임 산업에도 자신의 아이디어로부터 규칙과 스토리, 게임을 만드는 작가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카피 제품이 많은 것도 사실이죠. 저희 입장에서는 작가분들에게 로열티를 드리고 게임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품질이 떨어지는 카피 제품과는 가격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소프웨어같은 경우에도 20, 30년 전에는 당연히 카피해서 쓰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점차 바뀌어나간 것처럼, 보드게임 산업에서도 이러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보드게임도 작가와 아이디어가 존재하는 하나의 콘텐츠 상품인 만큼, 전반적인 인식 개선에 대한 노력도 많이 하고 있다는 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보드게임, 멀고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시도해 보시길"


Q. 최근에는 '위쳐', '갓 오브 워' 등 비디오게임 IP를 바탕으로 한 보드게임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보드게임의 트렌드에 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 보드게임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 트렌드인 것 같습니다. 뭐든지 그렇잖아요, 하나가 시장에 자리잡으면 IP를 활용한 상품들이 등장하니까요.

실제로 최근에는 '위쳐'나, 여기서 체험해 보실 수 있는 '카트라이더'같은 기존 게임을 활용한 제품도 있는 반면, 마블, 카카오프렌즈, 해리포터 등 여러 IP를 활용한 보드게임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세계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오징어 게임'도 보드게임으로 출시했고요.

또, 예전에는 TV쇼 '지니어스'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저희가 자문을 해드린 적도 있고, 방영된 게임을 실물로 만들어 판매했던 적도 있습니다. 다양하게 (IP를) 활용하고 있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트렌드로는, 최근 들어 숙련자 분들이 즐겨 찾는 게임들 같은 경우 테마와 스토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보드게임의 메커니즘이나 시스템을 테마와 스토리가 보조하는 느낌이 컸는데, 요즘은 그 중요도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메커니즘보다 더 중요해지는 스토리 기반 게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2017년 쯤에 등장한 '레거시 게임'이라는 게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보드게임은 한 번 놀고 집어넣어 두었다가 다시 즐기는 게 일반적인데, '레거시 게임'은 첫 플레이에 따른 결과가 다음에 즐길 때 영향을 미치는 식이에요. 장소에 무슨 일이 발생했다면 해당 지도에 스티커를 붙여놓고, 카드에 문제가 생겼다면 찢어서 버린다든지 하는 거죠. 1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진행하는 게임인데, 1월에 진행했던 결과에 이어서 2월에서 플레이하는 형태의 레거시 게임도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면, 스토리 자체가 점점 중요해 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합니다.

또, 우리나라 한정으로는 협력 게임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도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는 10여년 전 쯤부터 유행하던 장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줄곧 인기가 없던 장르이기도 했거든요. 때문에 예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승부욕이 강해서 협력게임은 잘 안 해'라고 생각하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최근 들어 해외에서 상을 받은 협력 게임들이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추세입니다.

Q. 그리고 오늘 행사장을 한 바퀴 둘러보니, 상자부터 내용물까지 정말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장식용으로 집안에 두어도 좋을 정도로요.

= 맞아요. 보드게임의 외형이 중요해진 것도 있고, 미니어처를 활용하는 것 뿐 아니라 그래픽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저희가 출시한 '캔버스'같은 게임은 미술을 테마로 정말 예쁘게 만들어졌거든요. 그런데, 보통 보드게임은 어떤 방식의 게임인지 알 수 있는 타이틀이 달려 나오는데, 이 게임은 그림으로만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점이 또 문제가 되더라고요(웃음). 온라인 판매 외에 다른 유통 과정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어 투명 테이프로 타이틀을 붙여 두고, 소비자가 직접 뗄 수 있도록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이번 보드게임콘에 출품한 작품들 중 입문자, 숙련자에게 각각 추천할만한 게임을 하나씩 꼽는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하나씩만 꼽는 게 더 힘든 것 같지만... 일단, 쉽게 할 수 있는 게임들 중에는 신작으로 출시된 '무지개 해적단'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러미류 게임이라고 부르는, 아시는 분들에게는 익숙한 스타일의 게임인데, 파티게임스러운 면모도 잘 갖춘 빵 터지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라비린스'는 어린이용이지만 상당히 괜찮은 게임입니다. 제가 보드게임에 빠지게 된 계기 중 하나고요. 해외에서는 정말 많이 팔린 게임인데, 전세계 2천만 개 이상 팔렸어요.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소개되지 못 했는데, 저희가 유통을 맡아 개인적인 사심을 담아 추천드립니다.

헤비한 게임들 중에는 '마블 챔피언스 카드 게임'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협력 게임으로, 어떤 빌런을 상대로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음모를 저지하고, 악당을 때려 부수는 게임이에요. 마블 IP를 활용한 만큼, 딱 봤을 때 혹하는 비주얼이 정말 매력적인 게임이기도 합니다.

두 개만 꼽으라고 하셨는데 결국 세 종류의 게임을 말씀드렸네요 (웃음).

Q. 마지막으로, 이번 보드게임콘 2022에 참여하신 소감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항상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공간이 참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체험 테이블이 꽉 차서 게임도 하지 못하고 기다기거나, 결국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코엑스는 항상 대관이 어렵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5~6년 전부터 많은 공간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해드리지 못 해 아쉽습니다. 또, 스토어 공간도 더 넓었다면 이렇게까지 많이 줄 서 계시지 않도록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행사 기간동안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어서 내심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도 많은 분들이 현장을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면 항상 힘이 들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아야 기운이 나는 것 같아요. 또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와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여태까지 해 온 일들이 그래도 성과가 있구나,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정말 많이 있지만, 보드게임은 보드게임 나름의 맛이 있습니다. 멀고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한 번쯤 편하게 시도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