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시장은 짧은 시간에 엄청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습니다. 하드웨어의 기술뿐만 아니라, 게임 엔진과 개발 툴도 발전하면서 2D에서 3D로 변화하고 VR의 시장까지 개척되며 이따금 가상 현실이라는 기술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게임은 시각적으로 큰 진화를 이루며 깊은 전달력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더욱 몰입감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들어서기 전 약간의 빌드 업이 필요하니 게임 역사의 초기를 짧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옛날 하드웨어의 성능이 그리 좋지 못한 시절엔 16비트의 몇 가지 안 되는 색으로 이루어진 게임부터, 비교적 다양한 색감 표현이 가능해진 32비트를 지나며 픽셀 그래픽은 발전을 이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1990년 후반, 본격적으로 가정용 3D 게임이 개발되면서 게임 시장에 새로운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보면 투박하기 그지없는 폴리곤 덩어리지만, 당시에 3D 게임을 가정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기에 전 세계 게이머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전 세계 게이머와 개발사는 3D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3D 게임이 게임 시장에서 자리 잡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와 함께 도트 그래픽의 시대는 점차 저물어 가기 시작했죠.

이렇게 도트 그래픽 게임은 수명은 다하게 될 것 같았지만, 도트 그래픽 게임은 현재까지도 탄탄하게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대형 게임 개발사에서도 도트 그래픽 게임을 선보일 정도로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습니다. 도트 그래픽만이 가진 감성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닙니다. 3D 그래픽뿐만 아니라 도트 그래픽도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 왔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죠.

서문이 길어졌습니다만, 이쯤 되면 눈치챘을 겁니다. 이 기사의 주제는 바로 도트 그래픽에 대한 것입니다. 도트 그래픽은 3D 시대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단순히 더 정교하고, 제한된 색상의 개수로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 경쟁 구도였지만, 이제는 3D 개발 툴에 도트를 접목하는 방법도 많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트 그래픽이란 어떤 것이고, 무슨 종류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고전 그래픽 표현법
본문에 들어가기 전, 기본적인 걸 짧게 알아봅시다.

도트 그래픽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부분 각진 네모가 형태를 이루면서 움직이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미리 입력한 이진법이 유저가 입력하는 버튼에 맞도록 이미지를 출력하면 캐릭터가 마치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전 도트 게임은 기기의 성능에 따른 해상도와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의 개수만 차이가 있었을 뿐, 방법은 모두 동일합니다.

이 방법은 개발자의 역량과 노하우가 더욱이 돋보이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하드웨어의 사양이 크게 발전하면서 큰 제약이 없다 보니 상관없는 얘기지만, 하드웨어의 성능이 좋지 않았던 초기 시절에는 소수의 색깔, 심할 때는 단 두 가지 색깔만으로 게임을 표현해야 했습니다.

소수의 색만으로 어떻게 다양한 사물과 인물, 배경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이 도트 그래픽에서만 엿볼 수 있는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글이 지루해지니 대략 '정해진 개수만큼의 색을 사용한 작은 네모 칸들을 합쳐 하나의 그림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네모 칸 안에서만 정해진 개수만큼의 색만 사용하면 됐기에 조금이나마 더 많은 색을 화면에 출력할 수 있었죠.

몇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네모들이 모여 하나의 화면을 꽉 채우면, 우리 흔히 아는 고전 도트 게임이 됩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제한이 없지만 그 감성을 살리기 위해 고의로 색을 적게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가장 대표적인 네 가지 방식을 설명하려 합니다.

▲ 마리오는 4개의 박스(스프라이트)가 합쳐져 출력된다는 것이 대표적 예시입니다.


1. 스프라이트 이미지
가장 기초적인 방법

고전의 방식과 의미가 달라진 용어지만, 통상적으로 부르는 방법입니다. 여러 움직임을 한 프레임 단위로 그려 순서대로 출력하면 캐릭터가 마치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배경, 오브젝트, 캐릭터 등 여러 장의 이미지를 원하는 위치에 출력되게 하거나 입력한 순서로 연속되는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겁니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하드웨어의 사양을 크게 먹지 않아 저사양 컴퓨터로 구동하기에도 부담이 없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또한 애니메이션이 앞으로 설명할 방법에 비해 고전 게임과 가장 흡사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표작으로는 메탈 슬러그나 던전앤드래곤이 있으며 최근에는 돌연변이 닌자 거북이: 슈레더의 복수에서도 이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 이런 폴짝폴짝 점프하는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 프레임별 이미지를 만들어 순서대로 출력되도록 합니다.

▲ 옛날 문방구, 오락실에서 했던 게임은 대부분 이 방식입니다.


2. 스켈레톤
이미지에 뼈대를 넣고 움직인다.

위의 애니메이션 방법과 달리 움직임을 넣을 부분들을 한 조각씩 나누어 뼈대를 설정한 뒤, 어떻게 움직일지 설정해 부드럽게 움직이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미지에 뼈대를 넣어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그래서 스켈레톤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지요. 서브 컬쳐나 모바일 게임에 익숙하다면 Live 2D라는 것을 익히 들어봤을 것입니다. 이것을 일반 일러스트가 아닌 도트로 그린 그림에 적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개발자가 캐릭터의 움직임을 프레임별로 하나하나 그릴 필요가 없는 데다, 부드러운 움직임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크루세이더 퀘스트'나 가디언 테일즈'가 이 방식이라 할 수 있죠. 걷거나 팔을 굽히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등 웬만한 동작은 새로 그릴 필요 없이 뼈대에 애니메이션만 적용하면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미지로 교체해 역동적인 움직임도 표현할 수 있죠.

부드러운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깔끔하고 매끄러운 느낌이 든다는 점과 프레임별 움직임을 그릴 필요가 없으니 노동력이 많이 단축된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 스프라이트 방식보다 훨씬 부드러운 움직임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 프레임별로 무슨 뼈대가,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세세히 설정할 수 있습니다.

▲ 크루세이더 퀘스트를 비롯한 여러 모바일 게임에 많이 쓰이는 기법입니다.


3D 랜더링을 2D로 그리기
스프라이트의 응용 버전.

스켈레톤 애니메이션이 스프라이트보다 부드러운 움직임을 연출하는 것은 맞지만, 움직임이 큰 동작을 완전히 자연스럽게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프라이트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면서, 스켈레톤 애니메이션보다 다양한 자세를 표현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그 답은 사실 일찍이 나왔습니다.

이 방법은 3D 모델링의 연속된 움직임을 2D로 하나하나 덧대어 그려낸 것입니다. 실제 모델링을 토대로 그리는 것이므로 모든 복잡한 동작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한 프레임씩 그려야 하는 스프라이트 방식이니 노동력과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SNK의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는 이 방법을 오랫동안 고수해왔는데, 13을 마지막으로 개발비(인건비)가 너무 소모된다는 점으로 인해 이후로는 3D 모델링으로 바꿨다는 일화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 3D 모델링을 배경 삼아 그 위에 덧대 그리는 법입니다. 이 기법은 일러스트에서도 많이 쓰입니다.

▲ 캐릭터의 과격하거나 복잡한 동작도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3D 도트 그래픽
최근 가장 주목받는 방법.

도트는 분명 2D인데 갑자기 3D 그래픽이 나온다니 다소 갸웃거리게 될 겁니다. 하지만 최근에 발매되고 있는 도트 그래픽 게임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기술입니다. '혹시 마인크래프트를 말하는 건가?' 싶겠지만, 여기서 설명하는 3D 도트는 조금 더 재미있는 친구입니다.

예시로 엔터 더 건전과 옥토패스 트래블러를 들어보겠습니다. 두 게임 모두 얼핏 보면 평범한 2D 도트 게임이지만, 사실 이 게임은 3D로 구현된 게임입니다. 먼저 엔터 더 건전을 보면 아무리 봐도 이 게임에 3D로 구현된 부분은 없어 보이는데 어디가 3D라는 건지 알아채기 힘들 것입니다. 사실 이 게임은 모든 부분이 3D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엔터 더 건전은 도트 그래픽처럼 보이는 텍스쳐를 만들어 3D 공간에 적절히 배치해 고정된 시점에서 확인하면 2D 게임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것이죠. 이 영리한 방법 덕분에 대부분의 유저는 게임을 끝낼 때까지 3D 게임이라는 것을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 보기에는 2D 도트 게임인 것 같지만

▲ 사실 3D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럼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어떨까요?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기본적으로 3D의 틀을 가지고 있으며, 캐릭터와 적, 배경 등의 텍스쳐를 도트 이미지로 연출한 것입니다. 배경은 3D지만 건물이나 NPC 등 모든 오브젝트를 도트 텍스쳐를 적용하고, 정면에서 보듯 카메라를 고정해 옛날 2D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구현한 것이죠.

3D 그래픽은 주변의 효과나 광원의 효과를 더욱 쉽게 삽입할 수 있는데, 이를 똑같이 적용해 다른 도트 그래픽과 비교했을 때 화려한 비주얼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개발에 드는 시간과 노동력을 절약할 수 있다는 큰 강점도 있고요. 최근에는 이 방법이 많이 대중화되어 인디 게임에서도 많이 애용하고 있습니다.

▲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한 장면. 자연스러운 광원과 그림자 효과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 현재 개발 중인 더 라스트 나이트도 광원에 따라 주변 오브젝트가 영향을 받습니다.

옛날의 도트 그래픽은 하드웨어의 한계로 인한 표현법이었지만, 이제는 특유의 감성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실과 흡사한 AAA 급 그래픽 사이에 투박한 모습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더 눈길이 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풍미 가득한 크리스피 치킨을 먹다보면 이따금 달짝지근한 양념이 꾸덕꾸덕 발린 옛날 양념통닭이 당기듯이 말이죠.

거기서 멈추지 않고 현재의 그래픽 기술을 접목해켜 이전과 비슷하면서도 새롭게 발전된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도트 그래픽의 매력에 흥미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이참에 평소 주위에서 갓겜이라고 추천받았거나, 스팀에서 인기 순위에 있는 도트 그래픽 게임으로 입문해보는 건 어떨까요? 전혀 상상도 못 한 눈속임을 찾는 재미가 있을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