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아타리가 주도하던 북미 가정용 게임 시장은 저열한 수준의 게임 난립, 게임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던 제조업체들의 게임 개발 합류, 게임기기 보급에 맞춘 과도한 출하 계획 등이 맞물려 몰락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게 닌텐도였습니다.

닌텐도는 엔터테인먼트를 강조한 NES, 패미컴을 앞세워 북미 시장에서의 영역을 넓혔고 이는 일본 게임 산업 자체의 성장까지 이끌었습니다. 여기에는 재미에 집중한 수준 높은 게임 타이틀의 성공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죠. 이러한 성공을 뒷받침한 많은 영업 전략과 마케팅도 주목받았는데 그 중심에는 피터 메인이 있었습니다.

▲ 1996년 닌텐도64 발표 당시의 피터 메인과 그를 바라보는 하워드 링컨 전 대표

1987년 닌텐도 아메리카의 마케팅 부사장으로 취임해 북미 지역에서의 가정용 게임을 부활시킨 피터 메인이지만, 게임에 대한 지식은 많지 않았습니다. 닌텐도 합류 전까지 식품업에 종사해왔던, 기성 산업의 인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출신이 게임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게임 작품을 마치 하나의 영화로 본 것이죠. 그는 과거 -시장에 널리 팔린 '게임기'에 꽂을 카트리지-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게임기로 플레이하는 '게임'-에 주목했습니다.

영화관이 아니라 영화에서 중요한 게 영화의 만듦새이듯, 피터 메인은 고품질 게임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멋진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또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멋진 이름이 필요하다고 봤죠. 그 생각에서 출발한 게 비교적 역사가 짧은 게임 업계에서도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 격언입니다.

"게임의 이름이 곧 게임이다"




좋은 게임 제목, 어떻게 만들까

회사 주도의 물량 배분, 서드파티 배제 등으로 독점적 지위를 견고히 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피터 메인은 격언과 같은 접근 방식을 핵심 기조로 삼아 닌텐도 마케팅을 이끌었습니다. 1989년에는 다수의 언론으로부터 한해 최고의 마케팅 담당자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콘텐츠 중심의 게임 시장이 자리를 잡아가며 제목이 가지는 중요성을 등한시 한 시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해야 좋은 게임 제목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체계화되기 시작했죠.

다만, 이미 존재하는 영화, 드라마의 제목 부류와는 다른 형태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좋은 게임 제목을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제목을 만드는 법칙들이 홍보 업체 등을 통해 공유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내용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① 독특하게

이는 굉장히 단순하지만 중요한 법칙이기도 합니다. 스팀이나 구글 플레이, 앱스토어에서 게임을 검색했는데 비슷한 이름의 게임이 여러 개 뜬다면, 우리 게임이 그중 가장 나은 게임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또 비슷한 게임이 이미 상위권에 자리를 잡고 있다면요?

비슷한 제목의 게임이 더 나은 성과와 평가를 받고 있다면 제목 하나로 이미 지는 싸움을 시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독창적인 제목은 결국 경쟁 수위를 낮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② 적당한 길이로

해외에서는 20자, 최대 25자를 넘지 않는 길이를 좋은 제목의 기본 요소로 꼽습니다. 25자라니 정말 긴 것 같지만, 영문자로 25자. 즉 3개 정도의 단어 조합으로 이루어진 제목을 만들 수 있는 거죠.

물론 이 숫자를 전부 채워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일부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첫 화면에 표시되는 글자 수에도 제한도 있죠. 그래서 최근에는 제목 중에서도 앞의 10자 정도를 더 중요하게 지어야 한다는 어려움도 더해졌고요.

특히 글로벌 서비스가 기본이 되는 오늘날 한국어만 고려해 한국어 제목을 지었다간 영문자 길이가 맞지 않아 새로운 제목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게임 제목만 3줄, 이러면 못 외웁니다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강한 검이나 갑옷을 얻자.
죽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강해지자.
용사대가 마왕을 쓰러뜨릴 그날을 믿어요'


③ 검색이 잘 되는

그렇다고 짧은 제목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너무 짧은 제목은 첫 번째 법칙인 독특한 제목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더 중요한 이유도 있는데 짧은 제목으로는 인터넷 검색이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일반적인 명사나 표현을 제목으로 하면 검색 결과창에 게임 내용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결과물이 나올지 모릅니다. 특수문자가 제목에 많이 들어간 작품도 비슷하고요. 영상, 리뷰, 뉴스 등 온라인을 통해 이용자가 직접 게임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요즘, 검색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건 게임 홍보에 스스로 불이익을 안고 출발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게임의 제목이 사이트 URL 주소를 구성하기 쉽게 만들어졌다면, 별다른 설명 없이도 공식 홈페이지로 이용자를 유도하기 쉽습니다.

▲ 우리 게임 제목이 판타지라면? 검색으로는 절대 못 찾을 겁니다


④ 말하기 편하고 줄여 쓰기 편하게

평소 쓰지 않는 독특한 표현을 이어 붙인다고 좋은 제목인 건 아닙니다. 게임의 제목을 쉽게 소리로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죠. 말로 하기 편한 제목이 뭐가 중요할까 싶지만, 과거에는 게임을 매장에서 직접 구매했기에 타이틀이 있는지 잘 물어볼 수 있는 이 요소의 중요성이 높았습니다.

또 게임의 제목을 쉽게 소리로 내지 못한다면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가 친구에게 게임을 소개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최근에는 게임 소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스트리밍 크리에이터나 영상 제작자들도 게임에 대한 언급을 줄일 테고요. 소리 내는 내용이 글로만 읽은 것 이상으로 기억하기 용이하다는 연구 결과도 말하기 쉬운 단어의 중요성을 키웁니다.

줄여 쓰기 편하게 제목을 짓는 것도 중요합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워크래프트 월드였다면 월앤워, 월워처럼 쉽게 줄여 쓰기도, 발음하기도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목은 WoW, 와우로 영어로도, 우리말로도 쉽게 줄여 쓸 수 있죠.

여기에 텍스트 기반 소통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이 줄여 쓰기의 중요도도 더 높아졌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영화 제목, 그리고 멋

이렇게 이미 성공한 게임들, 그리고 게임의 마케팅 요소를 고려해 짜인 나름의 법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목 방식이 모든 매체에 통하거나 항상 정답인 것만도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가 영화입니다. 앞서 보았듯 게임이 판매와 입소문을 타기에 용이한 제목 구성을 추천하는 반면 영화는 이어지는 내용의 첫 페이지 역할을 더 강조합니다.

물론 게임처럼 영화도 마케팅이 흥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검색하기 쉽고, 잘 기억되는 독특한 제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대신 플레이어가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게임과 달리 정해진 이야기를 따라만 가는 관객이 대상인 만큼 뒤이을 내용, 작품 전체의 주제와 상징, 혹은 그걸 나타낼 수 있는 대사나 장소 등을 제목으로 쓰기도 합니다.

과거의 흑인 문화, 빈곤 문제와 성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달빛(Moonlight) 아래서 흑인 소년은 파란색으로 보인다'는 대사와 함께 아름다운 색감으로 빚은 영화 문라이트. 문라이트는 비교적 짧고, 간단한 제목을 만든 동시에 이러한 영화 전체와 엮이는 의미를 제목에 담아냈죠.


이런 영화적인 방식의 제목 사용과 함께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제목 설정 법칙은 게임의 제목 설정을 더 어렵게 만드는데요. 그건 바로 '멋'입니다. 영어로 'Cool'은 영화나 게임의 이름을 팬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다만 어느 정도 공식화할 수 있는 기존의 법칙과는 달리 멋은 수사학적 영역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멋에 집중해, 혹은 그걸 잘못 파악해 다른 법칙을 무시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어려운 길을 가는 넥슨, 승부는 제목이 아니라 게임으로

최근 정식 타이틀을 공개한 넥슨의 게임 신작들은 이런 법칙과 고민이 상충한 결과물을 보였습니다. 프로젝트 매그넘은 '퍼스트 디센던트(The First Descendant)', 프로젝트 D는 '베일드 엑스퍼트(VEILED EXPERTS)', 프로젝트 SF2는 '아르젠트 트와일라잇(Argent Twilight)'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변경됐습니다.

아무래도 프로젝트 타이틀로 오랫동안 불려온 만큼 새로운 이름이 쉽게 입에 붙지 않을뿐더러 영화적인 제목 선정이라기엔 이게 게임의 어떤 부분을 상징하는지 쉽게 유추되지 않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평소 쉬이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 멋을 낸다고 착각하지는 않았을 테고요.

분명한 건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던전앤파이터, 서든 어택 등 넥슨이 서비스하고 있는 대표 타이틀처럼 직관적이거나, 게임 요소 하나를 제목으로 꺼냈던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제목을 구성했다는 겁니다. 프로젝트 MOD에서 '메이플스토리 월드'로 공식 명칭을 확정한 것과는 결이 다르네요.


돈을 붓는 마케팅이 가능한 대형 게임사의 경우 비교적 제목 설정에서 자유로운 자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제목이 직관적인 의미, 혹은 맛이 사는 멋을 전해주지 않더라도 잘 만든 게임 자체를 영상이나 쇼케이스, 홍보 매체를 통해 충분히 알릴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아무런 의미 없는 제목을 고르지는 않습니다. 갓 오브 워처럼 직관적인 의미를 전하는 게임 타이틀을 가진 SIE지만, 호라이즌 제로 던은 제목만으로는 그 의미를 쉽게 유추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결말부에 등장하는 핵심 요소 자체가 게임 제목인 작품입니다. 코지마 히데오는 데스 스트랜딩이라는 제목에 집단 폐사라는 원뜻과 작품 속 철학과 주제, 상황을 심리학적 표현인 strand와 함께 활용해 중의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즉,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게임의 제목을 이해하게 되는 거죠. 앞서 말했듯, 게임사가 제목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게 아니라 게임의 내실로 사람들을 붙잡고 제목을 이해시키는 방식인 겁니다.


넥슨이라는 타이틀로 관심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재 넥슨 신작의 이름은 여전히 낯섭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손꼽을 대형 게임사인 넥슨 역시 물량전이 충분히 가능한 기업입니다. 지금 당장 입에 붙지 않는, 혹은 그 뜻이 게임 플레이 전인 지금 바로 와닿지 않아도 플레이할 만한 유저들을 끌어들일 힘이 있다는 거고요.

무엇보다 제목의 뜻이 무엇이라 설명해도 그걸 모두가 확인하고 이해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목보다는 게임이 더 중요해진 거죠.

지금 제목을 플레이어들이 만족스러운 플레이와 함께 되뇌며 입에 붙는 제목으로 만들지. 탄탄한 이야기로 그 뜻을 모두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 아니면 제목도 기억 안 나는 과거의 어떤 작품 정도에 그칠지는 출시될 작품의 만듦새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넥슨 역시 지금의 제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을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