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 시리즈'에서는 급변하는 세태와 외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철학에 의거하여 우직하게 외길을 걷는 국내외 게임 개발사들을 만나봅니다.

이번에도 동인 게임의 하위분류로 구분되며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일본의 인디 업계를 조명했습니다. 다섯 번째로 만나본 개발사는 캐주얼 어드벤처 게임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 시리즈로 국내 모바일 업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은 인디게임 개발사 'hap Inc.(이하 햅)'입니다.

햅은 일러스트부터 기획, 프로그램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고 있는 1인 게임 개발사입니다. 그간 약 20종에 달하는 게임을 출시했으며, 앱의 누계 다운로드 수는 이미 1억 건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홀로 인디 게임 개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그의 노하우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햅의 대표이자 단 하나 뿐인 구성원인, 1인 개발자 이시모토 유사쿠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를 만든 1인 개발자, hap Inc.

▲ hap Inc. 이시모토 유사쿠


Q. 먼저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햅(ハップ)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게임 크리에이터입니다. 기획부터 일러스트, 디자인, 프로그램까지 전부 혼자서 만들고 있습니다.


Q. '햅'을 모르는 한국 유저들을 위해, 어떤 게임을 만들고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 게이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가 있습니다. 이처럼 유머와 참신한 게임성을 동시에 지닌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게임 개발사가 아닌 웹 디자인 회사였지만, 시험 삼아서 만들어본 앱이 큰 인기를 얻어서 결국 게임 개발사가 되었습니다. 일단 법인으로 등록된 기업이지만, 활동하고 있는 것은 저 혼자입니다.


Q. 어딘가 정겨운 손 그림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햅 게임 특유의 스타일입니다. 이러한 아트 스타일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 처음엔 프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부탁할 심산으로 직접 러프 일러스트를 적당히 그려 게임의 모의 빌드를 만들고 있었는데, 계속 보니까 점점 그림에 애착이 생기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젠 스스로 다 그려버리지 뭐'라는 느낌으로 만들게 됐습니다.

▲ 만화의 콘티처럼 가볍게 그렸던 일러스트가, 이젠 '햅'의 게임을 대표하는 비주얼이 됐다


Q. 햅의 대표작인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에 대한 질문입니다. 게임을 숨긴 부모님, 그리고 부모님 몰래 게임을 되찾으려는 아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게임의 형태로 만들게 됐는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실제로 부모님께서 게임을 숨겨두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의 경험에서 게임의 아이디어를 얻게 됐죠. 게임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2016년 무렵엔 탈출 게임 방식의 게임이 유행하고 있었고, 탈출 게임을 베이스로 '짧은 스테이지 방식, 게임 오버, 목표 물건을 발견하면 클리어'라는 새로운 규칙을 추가하여 게임을 완성하게 됐습니다.



Q.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 시리즈에 등장하는 가족들, 그리고 캐주얼한 게임의 엔딩을 통해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토리가 참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는지, 게임의 디테일에 대해 더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 게임 속에 등장하는 가족은 실제 저희 가족을 베이스로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경우 '할아버지'로 변경했는데, 이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를 그리는 것이 더 애틋한 그림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말씀하신 게임의 엔딩입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반전 결말'이 있는 영화나 소설을 매우 좋아합니다. 영화라면 '혹성탈출'이나 '유주얼 서스펙트', 소설이라면 '호시 신이치'의 작품처럼 마지막에 모든 것이 확 뒤집혀버리는 스토리를 동경하고 있었고, 게임에서도 이런 엔딩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 역시 가족애를 이면의 주제로 삼고 있으며, 게임을 접하는 게이머의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저마다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의 마음, 그리고 게임 제작자 스스로가 게임 내에서 게임을 부정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기에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의 엔딩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해준 유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서 제 게임에는 꼭 이러한 '반전 결말'과 메시지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 "단순한 캐주얼 게임을 넘어, 반전과 메시지가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Q. 이젠 너무나 친숙해진 주인공 소년의 환호성, 언제나 흥이 넘치는 누나의 목소리 등등 햅 게임 속 성우 연기는 게임에 감칠 맛을 더해주는 주요 요소가 됐습니다. 각 캐릭터의 목소리는 어떻게 녹음되는지 궁금합니다.

= 인터넷으로 의뢰할 수 있는 세미 프로 성우분들께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원고, 혹은 직접 연기한 보이스 파일을 성우분들께 전달하고, 이후 녹음된 음성 데이터를 받는 형식입니다. 그래서 사실 직접 만나본 적도 없네요.


Q.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라는 게임이 이처럼 전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으리라고 예상하셨나요? 게임을 처음 출시했을 당시의 감상, 그리고 게임의 인기 덕분에 경험할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 대충 그린 러프 일러스트로 테스트 빌드를 만들었을 때부터 상당히 반응이 좋았고, '어머니가 게임을 숨기는 것' 자체가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기에 일본 외의 국가에서도 분명히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언어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그림과 움직임만으로 전달될 수 있는 소재, 혹은 전개가 되도록 처음부터 신경 써서 제작했습니다. 발매 당시에는 많은 미디어에서도 거론되어 텔레비전 출연 의뢰 등 여러 제안이 있었지만,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거절해버렸습니다.

▲ "전세계에 통용될 수 있도록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 '언어 요소 배제' 등 많은 고민을 반영했다"


Q.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 이후에 많은 아류작이 등장했습니다. 마치 햅의 차기작처럼 보이도록 구성부터 디자인까지 베낀 게임들도 많았는데요. 1인 인디 개발자로서 이러한 게임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궁금합니다.

= 처음엔 그래픽이나 사운드를 통째로 베낀 작품들을 찾아 스토어에 신고했고, 몇몇 작품에 합당한 조처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절 게임을 모두 찾아서 플레이하고, 직접 증거를 모아서 스토어에 제출하는 과정이 매우 큰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엔 스토어의 게임 순위도 쳐다보지 않게 되었고, 1년 정도는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는 시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의 작품만 마주하고 있습니다.


Q. 큰 히트를 거둔 작품 이후,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 같습니다.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 시리즈는 이후 4편까지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차별점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실제로 담아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는 하나의 작품으로 완전한 결말을 맺었다고 생각했기에, 시리즈로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후속작을 원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이에 부응하기로 마음먹게 됐죠. 시리즈가 늘어날 때마다 새로운 소재를 짜내기 위해 고생하고 있지만, 그 과정 자체도 즐기고 있으므로 즐거운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 외에도 재미있겠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실패하는 것에 겁먹지 않고, 적극적으로 출시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재미있는 소재가 있다면 계속해서 게임으로 만들 것"


Q. 아직 '햅'의 게임을 플레이해본 적 없는 한국 유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 역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의 모바일 버전을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인벤에는 특히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분들이 많을 것 같으니, 꼭 엔딩까지 직접 해보셨으면 합니다.



■ 1인 개발자 '이시모토 유사쿠'가 바라 보는 인디 게임

Q. 인디 개발자로서 게임을 만들고, 출시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다고 느낀 것이 있다면?

= 크리에이터로서 가장 힘든 것은 역시 반응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기획 단계에서 '이건 조금 약한데?'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만들다보면 재미있어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힘내서 끝까지 만드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이렇게 고생해서 만들었는데도 재미가 없으면 정말 괴롭죠. 그래도 시작한 작업은 끝까지 마무리해서 출시하는 것이 크리에이터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 다른 게임을 플레이하는 일도 많을 것 같습니다. 최근 재미있게 플레이한 게임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어몽어스'네요. 게임 개발자 친구들과 가끔 다 함께 플레이하곤 합니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마피아' 방식의 게임은 대체로 다 좋아합니다. 최근엔 '폴가이즈'도 재미있게 플레이했습니다.



Q. '인디 게임'의 정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자기 자신이 그 정의에 부합하는 인디 게임 개발자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 소수의 개발자의 '좋아해(好き)'를 담은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게임, 이것이 인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물론 이러한 게임을 개발하는 인디 게임 개발자라고 생각합니다.


Q. 일본의 인디 게임 개발자에게 있어서 일본의 인디 게임 시장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시장인지, 어떤 특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 대기업 게임에는 없는 참신함과 기발함이 있는 게임을 추구하는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저는 항상 새로운 것, 체험해보지 못한 것에 관심이 있고, 그 해답은 '인디게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생계 문제 등 여러 문제 때문에 인디 게임 개발의 꿈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일본에는 10년 이상 오랫동안 인디게임 개발을 지속하는 개발자나 팀이 많다는 인상이 있는데요. 일본 인디 게임 시장 특유의 움직임이나 지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고단샤나 슈에이샤 같은 대기업이 인디 게임 개발자들을 지원하고 있고,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도 인디게임 시장을 북돋아주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이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현재 준비하고 있는 신작이 있다면 어떤 게임인지 소개해주세요.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 시리즈도 앞으로 계속 개발할 계획이 있나요?

= 신작 게임으로 미니 게임을 몇 개 묶은 하나의 앱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저 스스로 더 부담 없이 게임을 출시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면 계속 추가해나가고 싶습니다. 물론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도 새 시리즈를 만들 예정입니다.

▲ 인터뷰 이후, 3개의 미니 게임이 포함된 신작 '도쿄 게임 뇌'가 출시됐다


Q. 도쿄게임쇼 등 오프라인 행사를 통해 신작을 소개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올해에는 오프라인 활동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의 인디 게임 개발자, 그리고 게이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자신이 만든 게임을 전세계에 공개하고, 누구나 쉽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은 인디 게임 개발자에게 있어 굉장히 풍족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분명히 전달되고, 그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게임을 만들자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한국의 게이머들에게는 꼭 햅의 게임을 플레이해봐 주시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