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게임즈가 지난 2017년 출시한 '호라이즌 제로 던'은 고도로 발전된 동물형의 기계와 원시 부족 사회로 회귀한 인류라는 독특한 설정을 선보이면서 주목 받았다. 또한 흥미로운 소재뿐만 아니라 그 소재를 다양한 게임플레이 속에 녹여내면서 호평을 받았다. 주인공 에일로이가 다양한 동물형 기계들에 맞서는 과정에서 첨단과 원시적인 느낌이 섞인 도구들을 다채롭게 활용하면서 그때그때 다른 손맛을 느낄 수 있었고, 주변의 수많은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에서 신화적인 요소와 원시 사회, 오버테크놀로지가 섞이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2년 2월 출시한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는 제로 던 이후 6개월 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전작과 달라진 부분과 새롭게 추가된 부분들이 몇 차례 인터뷰와 게임플레이를 통해서 선행 공개되기도 했지만, '죽음의 문' 퀘스트 이후부터 유저는 전작과는 확연히 달라진, 포비든 웨스트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한 작품이 변화하는 기점이 되는 퀘스트를 설계하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을 때가 많다. 전작과 너무 달라지면 연속성이 떨어지고, 전작과 너무 비슷하면 발전되지 않았다고 비판받기 때문이다. 또한 새롭게 설계하는 과정에서 유저들의 반응이 개발진의 예상과 너무 달라질 여지도 있다. 게릴라 게임즈의 블레이크 르부쉐 수석 퀘스트 디자이너는 포비든 웨스트에서 그 밸런스를 어떻게 잡아갔는지 '죽음의 문' 퀘스트와 지하 벙커의 설계 과정을 통해서 제시했다.

※ 본 강연은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죽음의 문 퀘스트 및 이후 퀘스트와 관련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 블레이크 르부쉐 게릴라 게임즈 수석 퀘스트 디자이너


르부쉐 수석 퀘스트 디자이너는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에서 총 7개의 퀘스트를 주도적으로 디자인했으며, 그외 다른 퀘스트에서도 다른 디자이너와 협업 작업을 거쳤다. 그런 그가 강연에서 죽음의 문 퀘스트, 그리고 지하 벙커를 들고 온 이유는 간단했다. 지하 벙커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구시대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은 공간으로 기획했고, 그와 연계해서 새로운 탐사 요소와 퍼즐 그리고 환경 퍼즐 요소를 구현할 수 있는 포인트로 잡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만의 아트와 라이팅의 조화를 보여줄 새로운 지점으로 삼았던 것도 그 이유였다.

그는 그래서 페이퍼 작업에서부터 스켈레톤 퀘스트 등을 거쳐서 출시 전까지 죽음의 문 퀘스트를 꼬박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 과정만 진행한 것이 아니라 다른 퀘스트들도 병행했지만, 그만큼 이 파트가 포비든 웨스트의 중요한 핵심을 담고 있다고 강조한 것이었다.

으레 게임 개발 과정에서 첫 페이퍼 작업 단계가 그렇듯, 스토리의 시작과 내러티브의 요약을 담아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는 지하 벙커뿐만 아니라, 포비든 웨스트의 첫 시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제로 던 이후 얼마나 지난 시점을 담아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지하 벙커로 오게 되면, 그곳에서 겪게 될 이야기의 요약을 잡는 것이 필요했다. 이 과정은 시나리오 라이터뿐만 아니라 퀘스트 디자이너들도 다 같이 붙어서 논의했으며, 각자 맡은 파트를 연결해나가면서 조율을 해나갔다.

▲ 맨 처음은 으레 그렇듯 종이에 그리는 단계부터 시작됐다

스토리의 얼개가 짜인 뒤에는 종이로 프로토타이핑을 진행했다. 모눈종이에다가 간단하게 맵을 디자인하고, 그 맵에 들어갈 각종 요소들을 개괄해서 정리한 것으로, 이 단계에서 이미 지하 벙커의 각종 퍼즐 기믹이나 에너지 잠금 장치의 대다수의 큰 얼개가 정해졌다.

이 다음에 진행되는 스켈레톤 퀘스트는 말 그대로 퀘스트의 뼈대를 갖추는 작업으로, 종이 위에 적힌 프로토타입을 가장 간단한 단계로 구현해서 실제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오브젝트들은 최대한 간단한 형태를 구축했지만, 헤엄쳐서 지나가는 구간 등 중요한 구간은 일부 완성된 상태에서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검증에 나섰다.

이 단계에서 검증한 것은 에너지 잠금장치를 풀고, 수영을 해서 랩실을 지나치면서 탐험의 느낌을 즐길 수 있느냐 여부였다. 포비든 웨스트에서 새로 생긴 기능 중 하나가 수영, 특히 잠수 기능이었던 만큼 이를 강조하면서도 그 즐거움을 유저에게 어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 종이에 그린 것을 입체화하고 프로토타이핑하면서 디자인을 검증해나갔다

또한 잠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유저가 체험하는 과정도 중요하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상자가 물에 잠기면 열리지 않게끔 설계했기 때문에, 그 공간의 물을 어떻게 빼고 퍼즐을 풀어나갈지 유저가 고민하게끔 유도하기도 했다.

이 단계에서는 일단 상호작용 가능한 오브젝트가 제대로 메커니즘대로 적용되고 서로 연결이 잘 되나 확인하는 것이 우선인 만큼, 해당 오브제트들은 최대한 밝은 색으로 표시했다. 또한 컷씬이 출력되거나 스토리가 진행되는 부분은 요약문을 스크린에 띄우는 것으로 대체, 대략적인 얼개를 잡았다. 지하 벙커의 거미 보스는 그 단계에서 대략적인 요소만 설정됐기 때문에 세부 디자인은 하지 않고 토폴로지식으로 구축했다. 다만 거미를 물리친 이후, 바닥이 무너져서 오래된 비밀이 숨어있는 보일러실과 스펙터가 등장하는 구간으로 간다는 그 구조는 당시에도 이미 갖춰진 상태였다.

스켈레톤 퀘스트로 큰 틀을 잡은 뒤에는, 게임플레이의 기틀을 잡아가는 첫 플레이어블 빌드 구축 단계로 들어갔다. 이 단계에서는 텍스트 박스로 처리한 시네마틱이나 스토리도 실제 플레이에 맞춰 구현해야 하고, 유저들을 대상으로 외부 테스트를 진행할 준비도 하는 만큼 대충 훑어봤던 퀘스트의 동선을 다시 한 번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지하 벙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퍼즐 요소를 시험하는 장소로 기획했던 만큼, 최초 지하 벙커에 출입한 뒤 3개의 콘솔을 작동해서 문을 여는 단계부터 에너지를 충전해서 문을 열고 박스를 끌어당겨서 발판으로 삼는 그런 기믹들을 추가했다. 또한 연구실과 거주 구역은 동굴 다이빙을 하는 느낌을 구현, 포비든 웨스트에 새롭게 마련한 '잠수' 기능의 재미를 심화하고자 했다. 실제로 그 당시 기획에서는 에일로이가 들고 있는 라이트에 의존해서 침수되어 암전된 연구실의 물길을 뚫고 가는, 그 미지의 느낌을 살리는 것에 주력했다.

거미뿐만 아니라 보스 '에릭'을 이 단계에서 삽입해서 테스트를 진행했으나, 테스터들이 에릭을 안 보고 거미만 잡는 문제가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보스 이름이 확정되지 않았고, 그 기믹을 큰 틀에서 마련하긴 했지만 보스를 신경 쓰면서 거미를 추락시킨다는 최초의 기획과는 틀어졌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해야 만족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첫 플레이어블 단계에서 연구실은 동굴 다이빙을 참고해서 설계됐다

실제 테스트를 진행했을 때는 보스 파트 외에도 초반부도 여러 피드백이 왔었다고 설명했다. 우선 에너지를 충전한 뒤 물에 닿으면 에너지가 방전되어버리는 기믹을 선보였는데, 처음 프로토타입에서는 얕은 물로 설정한 상태라 의식도 잘 안되고 느낌도 잘 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울러 헤엄치는 구간에서도 여러 차례 피드백이 오갔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수심을 깊게 하는 과정을 거쳤고, 이 부분에서 아트팀이 개입해서 느낌을 살리기 위한 재설계를 진행했다.

통상 아트팀이 스테이지 설계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하게 되면 플레이 경험이 다소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지적사항 대부분이 분위기와 관련된 문제였던 만큼 이번에는 과감하게 아트팀이 개입했다. 실제로 아트팀이 스테이지 디자인에 개입하다보니 실험실 천장이 20m보다 높아지긴 했지만, 유저들은 그런 요소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안 썼기 때문이었다.

보스를 무시하고 거미만 치는 것은 보스에 '실드' 기믹을 활성화하고 이 기믹에 거미의 약점을 연결하는 식으로 수정했다. 거미의 다리와 벽의 연결 부위는 평소에는 단단하지만, 에일로이가 보스를 공격해서 에너지 실드가 한 번 크게 발생하면 그 여파로 연결 부위가 약해지는 식으로 설계한 것이다.

▲ 스켈레탈 퀘스트에서 보스를 무시하고 거미를 치는 현상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 무시하기 어려운 패턴에, 에릭을 쳐야만 약점이 활성화되게끔 바꿔서 초기 의도를 달성했다

그렇게 작업이 진행되던 와중에, 코로나19 판데믹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코로나19로 업무 체계에 변화가 생겨서 공백이 발생한 이후, 다시 벙커의 구성을 본 여러 팀원들이 디자인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을 했기 때문이었다.

주로 온 피드백은 벙커에서 포비든 웨스트에 새로 추가된 기능을 훨씬 더 다양하게 활용해보는 방향으로 설계하자는 것과, 최종 목표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줄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기획팀뿐만 아니라 아트팀 및 개발팀도 동의한 사항이었고, 그래서 여러 요소가 더 추가됐다. 여러 가지 시스템을 집어넣고 응축하는 과정에서 '잠수'의 경험은 이전 퀘스트에서도 어느 정도 어필했다고 판단, 연구실 구간에서 잠수로 이어지는 기나긴 구간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 그가 최초에 의도했던 동굴 다이빙 느낌을 살리는 부분은 기각됐다

보스전에서는 약점을 더 잘 보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맨 처음에는 거미의 콘솔을 조작하는 과정도 없앴다. 대신 페이즈를 나눈 뒤에 시네마틱도 추가해서 긴장감을 높이고, 에일로이가 위기에서 해법을 찾아나간다는 느낌을 강조했다. 그 뒤에 거미의 몸체에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하나하나 잘라가는 것에서 몸체의 큰 파이프라인을 공략하는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끔 유도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서 새롭게 종이로 프로토타이핑을 거친 뒤, 맵과 기믹을 수정하고 다시 짧게 지난 과정을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지하 벙커의 또다른 주요 개체인 '스펙터'에 대한 설계도 재고됐다. 처음에는 얼굴에서 빔이 나가는 형태로 디자인했지만, 그것으로는 긴박감을 주기 어렵다는 피드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차례 디자인 수정을 거쳐서 현재의 모습으로 나왔고, 그 모션 변화는 애니메이션팀뿐만 아니라 AI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수정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큰 얼개를 잡은 뒤, 마지막 수정 단계에서는 실제로 유저가 어떻게 플레이를 하게 될 것인지 초점을 맞춰서 여러 번 테스트를 거치고 이 결과를 반영하는 것에 주력했다. 물론 유저가 지하 벙커라는 공간을 봤을 때의 첫 인상도 중요하니 아트도 굉장히 중요했지만, 플레이를 원활하게 이어갈 수 있나 여부도 유저 경험에서 빠질 수 없는 포인트였기 때문이었다.

르부쉐 수석 디자이너는 실제로 더 광범위하게 테스터로 선정된 유저들의 플레이는 개발진이 생각한 것과 상당히 달랐고, 그 때문에 여러 차례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퍼즐을 이리저리 맞추고, 그래플건으로 오브젝트를 당겨서 발판으로 삼는 그런 것보다 유저들은 단순히 점프해서 올라가는 그런 유형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플레이가 연속해서 이어지지 않으면, 종종 매달린 상태에서 □키를 누르면 아래로 내려간다거나, 뒤로 점프해서 다른 오브젝트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까먹는 유저도 있었다.

▲ 개발진의 생각과 달리, 테스트하던 유저 일부는 한동안 안 쓰던 조작법을 잠시 잊는 일이 있어서 툴팁을 넣었다

▲ 원래는 점프한 이후 대각선 위로 올라가는 방식이었지만, 직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바로 수정됐다

그래서 중간중간 팁을 넣는 한편, 발판이 될 법한 오브젝트에는 노란색 표시를 해서 가시성을 높였다. 또 옆쪽으로 점프해서 매달리길 원했던 오브젝트 구성도 일부 유저들이 자꾸 헷갈리는 상태가 발생하자 매달리는 곳 바로 위쪽으로 옮기는 등 기초적인 설계 일부도 변경했다. 때로는 문 위에 그래플링 훅 구간을 캐치하지 못하는 유저도 있어서 오브젝트 표시뿐만 아니라 카메라 워크도 수정해서 문 위에 난 출구를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트리플A 게임에서 퀘스트, 그것도 게임의 코어를 강조하는 퀘스트와 그 구간을 설계하는 것은 이렇듯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다른 작업도 병행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 퀘스트가 완성하기까지 4년이 걸린 것이 그 방증이기도 했다. 르부쉐 수석 디자이너는 그 과정을 한 마디로 요약하는 건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요약하는 것 같이 복잡다단하다고 언급하면서, 결국 최대한 많이 뿌리되 최종적으로 유저 경험을 우선해서 설계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려면 일단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이디어는 마치 부메랑 같아서 멀리 갔다가 어느 순간 돌아와서 큰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