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가적 가상 기관. 통칭 SCP 재단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키 사이트 중 하나입니다. 주로 도시 괴담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평범한 삶의 이면을 관찰하는 미스터리한 세계를 구축해왔죠. 위키 사이트 중에서도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며, 그만큼 쌓여 온 방대한 자료는 단순한 웹 기록을 넘어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활발한 2차 창작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쥬 스튜디오에서 개발하는 'SCP: 시크릿 파일(SCP: Secret Files)'은 이러한 SCP 세계를 바탕으로 한 호러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SCP 재단 내에서도 유명한 개체 4개와 오리지널 개체 1개를 게임 속에 구현한 것이 특징이죠. 플레이어는 SCP 재단의 극비 문서를 관리하는 신입 연구원이 되어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사건과 조우해야 하는데요.

지금까지 SCP 재단을 베이스로 한 많은 게임이 출시됐지만, 그중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게임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편입니다. 아무래도 SCP 재단 자체가 대중적인 플랫폼과는 거리가 먼 탓도 있고 팬메이드 게임이라는 것에 집중해 설정 외에 게임 플레이의 완성도에서 아쉬움을 보여줬기 때문이죠. 특히, SCP 재단을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거든요.

SCP: 시크릿 파일은 기존의 선례를 뒤집고 SCP 재단만의 특징과 게임 플레이의 완성도를 동시에 채워줄 게임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는 9월 13일 출시에 앞서 데모 버전을 체험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에 게임을 천천히 살펴보고 느꼈던 플레이를 소감을 전해볼까 합니다.


앞서 SCP: 시크릿 파일은 5개의 SCP 개체를 게임 속에 구현했다고 했죠. 데모 버전에서는 그중 1개의 개체에 관련된 스토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첫 장면은 주인공은 침대에 누워있고 SCP 요원 두 명이 주인공을 추궁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SCP 재단은 개체의 격리를 위해 힘을 쓰는 한편, 격리에 실패하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항상 블랙박스를 준비해두는데요.

주인공의 역할이 바로 사건이 터진 격리 실험실에서 블랙박스를 회수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주인공은 블랙박스 회수에 실패한 것으로 보이죠. 반면, 주인공은 계속 본인은 블랙박스를 챙겨 SCP 재단에 넘겨줬다고 하는데요. 그 순간 시점은 격리 실험실에 들어가려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추면서 본격적인 게임 플레이가 펼쳐집니다.

게임은 3D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시점에서부터 전형적인 공포 어드벤처의 느낌을 풍기며, 조작감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죠. 그래픽은 확실히 팬메이드 게임보다 퀄리티가 높았는데요. 적당한 광원 효과와 현실적인 느낌을 주려는 텍스처 품질, 그림자 효과 등으로 게임 속의 음산한 분위기를 살리는 데 충분했습니다.



대부분의 공포 어드벤처가 그러하듯 SCP: 시크릿 파일 역시 선형 구조의 진행 방식을 보여줬습니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서 퍼즐을 풀고 숨겨진 길을 찾는 방식이었죠. 공포 게임 특유의 점프 스케어(일명 갑.툭.튀)도 꽤 빈번하게 나타났는데요. 길을 따라서 걷는 와중에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눈앞에서 마네킹이 갑자기 등장하는 등 여러 가지 연출을 가미해 느슨해진 긴장감에 탄력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약 50분가량의 데모 플레이 중 점프 스케어의 빈도를 따지면 꽤 자주 등장하는 편이었는데요. 무서운 연출과 분위기를 조성한 뒤 그에 맞는 점프 스케어 연출과 강약 조절을 잘해둬서 생각보다 짜증 나거나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공포 게임이 아니라 스토리를 포함한 어드벤처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에 맞춘 레벨 디자인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선형 구조의 공포 어드벤처 게임이라면 어느 순간 루즈해지는 구간이 찾아올 수 있는데 그때마다 미지의 괴물이 등장, 잘그락거리는 사슬 소리를 내면서 쫓아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도망치는 와중에 특정 키를 연타해서 빠르게 구간을 넘어가야 하는 기믹을 추가해두기도 했죠.



한편, 체험하면서 가장 관심 있게 봤던 점은 게임과 SCP 재단의 특징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느냐였습니다. SCP 재단을 베이스로 만들었는데 정작 게임 내에서 그러한 특징을 느껴볼 수 없다면 단순한 공포 어드벤처 게임 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요. 다행히 SCP: 시크릿 파일은 SCP 재단의 특징은 물론이고 SCP 개체의 특징까지도 게임 속에 잘 녹여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 플레이는 SCP 재단의 설정을 그대로 따르려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재단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도구 등을 게임에 적절하게 배치했고 이를 적재적소에 사용하기도 했죠. 아마 평소 SCP 재단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게임 플레이 이미지만으로도 어떤 개체를 모티브로 데모 버전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텐데요. 개체의 특징을 잘 살린 연출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내가 실제 요원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선사해줬습니다.

또한, 이 게임을 통해 SCP 재단을 처음 접하는 게이머를 위해 게임 곳곳에서 연구 일지와 SCP 개체의 주요 특징을 읽어볼 수 있는 문서를 남겨뒀습니다. 게임 진행에 필요한 퍼즐 요소는 아니고 단순한 수집품에 불과했지만 어떤 이유로 개체 격리에 실패하게 된 건지, 또 어떤 개체를 격리하고 있었는지를 점점 알아갈 수 있도록 해뒀죠. 한국어 번역 상태도 꽤 훌륭했고 문서에 정리된 내용도 중구난방이 아니라 소설을 읽듯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SCP 재단과 개체의 특징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SCP: 시크릿 파일은 전통적인 호러 어드벤처에 SCP 재단의 특징을 적절하게 잘 섞은 게임이었습니다. 꼭 SCP 재단을 알아야만 게임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반대로 SCP 재단의 팬으로서 설정의 완성도가 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게임 플레이가 완벽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퍼즐의 난이도는 너무 쉽고 단조로워서 있으나 마나였고 몇몇 설정은 아무런 설명이 없어 머릿속으로 "왜?"라는 의문을 들게 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게임 일부만 체험할 수 있는 데모 플레이였기에 본편에서는 어떻게 달라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데모 버전에서는 하나의 개체만 살펴볼 수 있었지만, 정식 버전에서는 개체마다 다른 아트 스타일이 적용된다고 하니 개체만의 매력을 더욱 잘 느껴볼 수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평소 호러 어드벤처를 좋아하거나 혹은 미스터리, 심령 등에 관심 있다면 SCP: 시크릿 파일을 통해 SCP 재단에 입문해보는 것은 어떠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