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만큼은 순한맛 세키로


소울라이크 장르를 탄생시킨 프롬소프트의 작품 중에서도 블러드본과 세키로는 조금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기존에 선보였던 소울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문법으로 게임 플레이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세키로는 묵직한 전투보단 호쾌하고 빠른 공격과 체간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패링 전투를 강조하며, 단순히 막고 피하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해줬다.

대만의 인디 개발사 오버보더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티메시아'는 세키로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듯한 게임이다. 스테미나 시스템 없이 진행되는 날렵한 전투 시스템과 패링이 적의 무력화보단 갉아먹기에 특화되었다는 점 등 큰 틀에서 보면 유사한 부분을 꽤 엿볼 수 있었다. 다만, 있는 그대로 베끼기보단 티메시아만의 특별함을 첨가해 차별화를 갖추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매우 긍정적의 스팀 평가를 받는데 성공했다.


게임명: 티메시아(Thymesia)
장르명: 소울라이크
출시일: 2022.08.19
리뷰판: 1.0.0
개발사: 오버보더 스튜디오
서비스: 팀17
플랫폼: PC, PS, Xbox, Switch
플레이: PC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이독제독, 역병을 다루는 역병 의사 나가신다

17세기 근대 유럽에는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독특한 복장을 한 역병 의사를 볼 수 있었다. 마치 까마귀를 연상케 하는 가면과 위험한 역병 지대에서 주로 활동한 탓에 죽음의 의사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지만 사실 이들은 역병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아닌 치유하는 자들이었다. 티메시아는 이러한 역병 의사의 설정을 따 게임에 녹여냈으며, 게임의 바탕을 이루는 핵심 키워드로 전달한다.

게임의 주요 배경은 연금술의 과다 사용으로 알 수 없는 역병이 퍼진 헤르메스 왕국으로 플레이어는 역병 치료제의 비밀을 알고 있는 주인공 코르버스를 조작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역병의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 보통 게임 속 역병 의사는 힐러로 자주 등장한다. 역병을 치유하는 설정을 살려 디버프를 해제하거나 혹은 죽음과 타락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흑마법을 사용하는 예도 있다. 반면, 티메시아 속 역병 의사는 역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역병 그 자체를 다루는 존재로 그려냈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 덕분에 다른 소울라이크 게임과 차별되는 티메시아만의 독특한 전투 시스템이 탄생했다.

▲ 역병 치료 방법? 역병의 원인을 제거한다

티메시아에서 역병은 일종의 능력 혹은 무기와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역병에 걸려 괴물이 된 자들은 각자 역병 무기라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주인공이 이를 약탈해 스킬로 사용할 수 있다. 역병 무기라고 하니 무언가 특이한 것을 떠올릴 수 있는데 그냥 검을 들고 있는 적은 검 역병 무기를 갖고 있고 활을 쏘는 적은 활 역병 무기를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사용하는 무기 그 자체가 역병이라고 보면 된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일반 공격과 달리 스킬 개념으로 사용하는 역병 무기는 그만큼 강력한 피해와 각종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적의 능력을 약탈하고 이를 스킬처럼 사용하는 방식만 두고 본다면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미 다른 게임에서도 종종 등장하곤 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티메시아가 한순간의 실수에도 유다이로 이어질 수 있는 소울라이크 장르라는 점과 약탈의 리스크, 그리고 일회용으로 사용된다는 것 때문이다.

▲ 적의 역병 무기를 빼앗고 사용하고 견제하라

먼저, 역병 무기는 약탈 후 단 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이 존재한다. 대신 역병을 약탈하기 위해서 특별한 아이템을 요구하거나 과정이 복잡하진 않았는데 검에 이어 또 다른 일반 공격인 발톱을 차지해서 적을 맞추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약탈의 방식보단 동작에서 오는 리스크가 꽤 크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티메시아는 한방의 공격만 허용해도 치명타로 이어질 수 있는 소울라이크 게임이다. 대부분은 적의 공격을 의식해 짧게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전투를 이어가며, 선후딜이 긴 기술은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발톱 차지 공격은 선딜과 후딜이 굉장히 길어 전투 중에 막무가내로 내지를 수 없는 기술이다. 즉, 강력한 기술을 쓰려면 먼저 내 목숨을 걸고 딜레이가 큰 기술을 적중해야 하는 셈이다.

▲ 일단 쓰면 확실히 효과는 좋다

역병 무기를 사용해야만 반드시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라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다면 약탈을 하지 않고 일반 공격으로만 적을 상대해도 상관없다. 다만, 강력한 슈퍼 아머와 범위 공격을 내지르는 특정 적을 대상으로는 해당 적이 가진 약탈 무기가 효과적으로 쓰일 때가 많았다.

게임 내에는 21종의 역병 무기가 등장하며, 기술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어 이를 활용해 전투를 이끌어가는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역병 무기마다 성능 차이가 꽤 컸고 특정 역병 무기는 일반 공격보다 효율이 떨어지기도 해 밸런스 측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 강화할수록 약탈보다 효과가 좋아지지만 그만큼 노가다를 해야 한다

한편, 역병 무기는 적에게 약탈해서 사용하는 것 외에 적을 죽이고 얻은 파편을 통해 영구적으로 획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습득한 역병 무기는 추가로 파편을 모아 강화할 수 있으며, 일정 수치 이상으로 강화하면 특별한 모션이 추가돼 약탈해서 사용할 때보다 더욱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직접 습득한 역병 무기는 강화도 할 수 있고 일회용이 아니라 어찌 보면 약탈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 능력의 강화가 이뤄지면 약탈보다 더 자주 쓰이긴 하지만, 일단 약탈하면 제한 없이 쓸 수 있는 것과 달리 에너지라는 특수한 자원을 사용하므로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맞으면 회복하는 것은 플레이어뿐만이 아니다

티메시아의 전투는 굉장히 빠르게 흘러간다. 더 정확히 말하면 쉴 새 없이 적을 몰아쳐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 세키로처럼 스테미나 시스템이 없어서 무한으로 공격하고 피할 수 있다는 점도 스타일리쉬한 전투로 진행되는데 한몫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바로 상처 시스템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적을 때리면 체력이 줄어들며, 0이 된다면 사망한다. 반면, 티메시아에선 적을 때리면 피해량만큼 상처가 남게 되고 체력이 0이어도 상처 게이지가 남아 있다면 적은 죽지 않는다. 상처는 일정 시간 동안 피해를 당하지 않으면 서서히 회복하므로 일종의 간이 체력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즉, 적을 완전히 죽이려면 체력뿐만 아니라 상처 게이지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체력과 상처 게이지가 0이 된다고 해서 바로 죽는 것도 아니고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 역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한다.

▲ 일반 공격 혹은 역병 무기로 적의 체력을 깎고

따라서 적을 완전히 쓰러트리기 위해선 3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첫 번째는 일반 공격 혹은 역병 무기로 적을 타격하거나 적의 공격을 패링해 체력을 깎아야 한다. 이후 상처 게이지에만 피해를 주는 발톱 공격을 사용해 상처를 회복하기 전 게이지를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결국 체력이 0이 되면서 무기력 상태에 빠지는데 이때 처형이라는 특수한 공격으로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다.

적들 역시 이러한 시스템에 맞춰 공격 모션마다 경직을 무시하는 슈퍼 아머 상태를 기본으로 깔고 가며, 일정 피격 수치를 넘기면 반격하거나 피하거나 튕겨낼 수 없는 치명적인 공격을 가해 아무 생각 없이 공격 일변도만 이어가는 플레이를 지양하게 하였다. 특히, 공격 모션이 짧거나 한 박자 쉬고 때리는 변칙 공격이 많으므로 상대를 계속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 발톱 공격으로 상처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자

한방 한방이 뼈아픈 소울라이크 장르에서 적들의 공격이 매섭게 날아들면 자연스럽게 소극적인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다. 큰 공격을 연타로 성공하기 보다 작은 틈이 보일 때마다 틈틈이 때려 피해를 축적하면서 서서히 갉아먹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신중하게 플레이하면 되레 적이 상처를 회복할 기회만 주는 꼴이라 결국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선 계속해서 상처를 만들고 상처를 치료하기 전에 게이지를 없애야 한다.

쉴 틈 없는 이러한 전투 플레이는 플레이어 입장에서 큰 부담으로 느껴진다. 기껏 힘들게 때렸는데 적이 체력을 채우는 걸 본다면 그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한편으로 체력 회복하는 꼴 보기 싫어서 열심히 때렸는데 공격에 열중한 나머지 날아드는 무기를 피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날에는 괜히 힘만 빠져버린다. 결국, 티메시아가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게임을 만들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적의 공격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야 했고 개발사는 이에 대해 세 가지의 답을 내놨다.

▲ 급한 마음에 공격만 퍼부으면 이렇게 당해버린다

잡몹은 체력이 적으므로 반격하기도 전에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지만, 엘리트 몬스터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체력도 월등히 많고 공겨력도 높아서 잡몹을 상대하던 것처럼 싸우면 금방 유다이를 만나게 된다. 결국, 계속 때리는 와중에 적의 공격을 피해 없이 넘길 필요가 있는데 가장 쉽지만 페널티가 있는 막기부터 대쉬로 피하기, 가장 어렵지만, 효과적인 패링 등 세 가지의 방법으로 이를 대처할 수 있다.

막기는 피해 대부분을 흡수하지만 완벽한 막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피해가 누적돼서 쓰러질 수 있으므로 정말 회피에 자신 없는 초보자에게 권장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피하기는 스테미나가 없다는 점 덕분에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적의 공격 범위만 미리 파악한다면 좌우 혹은 백대쉬로 손쉽게 피할 수 있고 여차하면 반격도 가능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마지막 패링은 가장 효율이 높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큰 방법이다. 패링에 성공하면 적의 체력을 일정 부분 깎을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그대로 맞을 수 있으므로 정말 자신 있는 패턴이 아니라면 피하는 게 상대적으로 좋았다.

▲ 패링에 자신 없어도 특성만 잘 찍으면 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패링에 익숙해진다면 막기와 피하기보단 오히려 적의 공격을 유도해서 패링을 거는 편이 게임을 보다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었다. 세키로나 다크소울 시리즈처럼 패링에 성공할 때마다 적을 무력화시키고 치명타를 입히는 기술은 없지만, 체력을 야금야금 깎아내니 상처를 치유할 틈을 효과적으로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패링의 판정도 생각보다 널찍한 편이고 패링 이후 공격 모션으로 부드럽게 연결되니 생각보다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다. 여차하면 패링의 판정 시간을 늘려주는 특성을 찍고 연타만 해도 웬만한 공격은 전부 쳐낼 수 있었다. 참고로 막거나 튕겨낼 수 없는 적의 치명타 공격은 타이밍에 맞춰 깃털 날리기 공격을 통해 무력화시킬 수 있다. 블러드본에서 총을 사용해 패링을 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 모든 것을 극복해야 볼 수 있는 화끈한 처형의 손맛

대부분의 성장형 소울라이크 게임이 그러하듯 레벨업과 특성을 어느 정도 찍을 수 있는 중후반이 되면 패링 판정도 넉넉해지고 물약 외에 체력을 채울 수 있는 수단도 꽤 넉넉해지므로 난이도가 점점 쉬워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티메시아는 처음부터 난도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닌지라 성장에 따른 난이도 체감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편이다. 다만, 이러한 난이도의 체감이 게임의 흥미를 낮추는 결과보단 오히려 성장에 따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로 다가왔다.

이는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발판이 다양하고 그만큼 전략적인 방식으로 전투를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특성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전투 플레이가 달라질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조작감과 손맛 넘치는 타격감이 어우러져 난이도와 상관없이 전투 그 자체만으로 재미가 있었다.

▲ 확실히 치고 박고 싸우는 재미는 좋다





총평하자면 티메시아는 전투 시스템에 모든 개발 코스트를 집중한 게임이었다. 전체적으로 전투의 밸런싱이 잘 잡혀 있었고 상처를 활용한 체력 관리와 역병 그 자체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스킬 등 차별화된 시스템을 통해 짜릿한 손맛과 즐거움을 선사해줬다. 이는 반대로 전투 외에는 딱히 칭찬할만한 요소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선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은 충분히 잘 만들어둔 것 같은데 게임 속에서 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스토리텔링은 거의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진행이 매끄럽지 않았고 일지를 습득해 세부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해뒀지만 되려 스토리의 전개만 뒤죽박죽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게임 플레이만으론 주인공의 행동에 깊게 몰입하지 못했고 전투 외에 다른 콘텐츠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 결과를 일으켰다.

▲ 에... 그래서 어쩌라고요?

맵의 콘텐츠 밀도가 작고 짧은 분량도 빼놓을 수 없다. 티메시아는 총 4개의 맵이 존재하며, 각 맵마다 보스 몬스터가 등장한다. 맵은 선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구석구석에 숨겨진 아이템도 있고 숏컷도 있으므로 초반에는 자연스럽게 이곳저곳을 탐험하려고 했다.

그러나 숨겨진 아이템은 앞서 언급한 스토리의 편린을 읽을 수 있는 일지가 전부이며, 숏컷을 뚫어도 다시 되돌아갈 이유가 없으므로 굳이 맵을 탐험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원초적인 의문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 몰입하기 어려운 스토리 진행 방식은 아쉽게 다가온다

또한, 맵의 크기가 작아 꼼꼼히 탐험한다고 해도 생각보다 빨리 끝났으며, 엔딩까지 대략 5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었다. 엔딩 이후에는 이미 클리어한 맵에서 제공하는 서브 퀘스트를 깨는 것으로 플레이 타임을 늘릴 수 있었는데 서브 퀘스트는 주요 목표만 다를 뿐 맵의 구성은 메인 퀘스트와 동일하게 제공됐기 때문에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는 없었다.

굳이 서브 퀘스트 외에 플레이 타임을 늘리고자 한다면 캐릭터 육성과 역병 무기의 수집을 꼽을 수 있는데 성장시킨다고 해서 따로 게임 내에 써먹을 수 있는 초고난이도 회차가 제공되는 것은 아닌지라 이 부분에서도 아쉬웠다.

그밖에 특정 보스 몬스터의 난이도가 급증해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도 살짝 아쉽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 모든 단점을 압도할 정도로 전투 자체가 꽤 재미있다. 따라서 본인이 딱히 스토리에는 관심 없고 전투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라면 티메시아는 아주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분위기와 전투만 보고 즐겨도 괜찮은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