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앤슬래시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아마 한 번쯤은 이 게임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블리자드 출신 개발자들이 모여서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화제를 모았던, 디아블로의 배다른 형제 토치라이트 시리즈가 그 주인공입니다. 역시 블리자드 출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토치라이트 시리즈는 일부에서는 디아블로의 아류작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늘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싱글플레이 기반의 액션 RPG인 '토치라이트'는 멀티플레이 요소가 없음에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호평을 받았고 전작의 성공으로 멀티플레이 요소를 추가한 '토치라이트2' 역시 '디아블로3'라는 걸출한 경쟁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나름 준수한 성적을 거둔 바 있습니다. 그러나 토치라이트 시리즈의 영광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앞선 성공에도 불구하고 루닉 게임즈는 폐업했고 결국 그 공은 루닉 게임즈의 공동 설립자인 맥스 셰이퍼가 독립해서 세운 에크트라 게임즈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에크트라 게임즈가 개발한 '토치라이트3'는 전작들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습니다. 요는 전작과 큰 차이가 없다는 거였죠.

그렇게 토치라이트 시리즈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순간, 다시금 부활의 신호탄을 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의 XD입니다. 3차례나 개발사가 바뀐 토치라이트 시리즈의 최신작으로 '토치라이트: 인피니트'를 들고 온 거였죠. 현재 '토치라이트: 인피니트'는 9월 5일부터 19일까지 CBT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과연, 토치라이트 시리즈의 명맥을 제대로 계승할 수 있을지 테스트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이번 체험기에서는 스토리에 대한 부분은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핵앤슬래시로서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그리고 CBT에서의 완성도는 어땠는지를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CBT에서 완성도를 논한다는 게 다소 이를 수 있는 만큼, 최적화나 이런 부분이 아닌 게임을 하는 현재의 완성도와 그로 인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이하 UX)에 대한 얘기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첫인상이라고 한다면 그래픽 등의 비주얼에 대해 말해야겠죠. 이번 CBT는 PC로 체험했었는데 PC에서는 나름 준수한 그래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준수하다는 건 모바일과 PC 크로스 플랫폼 게임으로서 어느 플랫폼이든 상관없이 통일된 퀄리티를 보여준다는 걸 의미합니다. 실제로 '토치라이트: 인피니트'는 모바일 게임임에도 PC로 해도 딱히 수준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 PC보다는 모바일에 가까운 퀄리티지만, 딱히 수준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아닙니다

앞서 출시됐던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이모탈'이 다른 디아블로 시리즈와 전체적인 비주얼 결이 유사했던 것과 흡사합니다. 시리즈에서 이러한 비주얼 결이라는 건 예상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를테면 토치라이트 시리즈가 갑자기 실사 그래픽으로 바뀐다고 할 때, 대부분은 기대보다는 걱정을 할 겁니다. 그건 토치라이트의 특징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토치라이트: 인피니트'는 여러모로 시리즈를 잘 계승했다는 첫인상을 안겨줍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게임 플레이는 어떨까요. 핵앤슬래시 측면에서도 일단은 합격점을 줄 만합니다. 여러 스킬을 활용하고 난사해서 적들을 한 번에 쓸어버린다는 핵앤슬래시로서는 중요하다 못해 반드시 지켜야 할 요소를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그저 충실하기만 한다면 다른 경쟁작들과의 승부에서 이기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특히 호쾌한 맛이 특징인 핵앤슬래시는 더욱 그렇습니다. 특유의 손맛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요소이기에 이것 자체로는 특징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앞서 중요하다 못해 반드시 지켜야 할 요소라고 했지만, 이걸 지킨다고 해서 더 나아가는 것도 아니란 의미입니다. 사실상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죠.


▲ 핵앤슬래시의 핵심이랄 수 있는 손맛, 이른바 잡는 맛은 나름 괜찮은 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토치라이트: 인피니트'는 비장의 무기로 다양한 메타의 변화를 들고 왔습니다. 아마, 이쯤에서 그런 의문을 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핵앤슬래시에서, 아니 라이브 게임에서 메타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게임이 어디 있느냐고 말이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게임마다 다른 점은 분명히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디아블로3'와 '패스 오브 엑자일'이 같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토치라이트: 인피니트' 기본적인 아이템 빌드에 더해 일종의 스탯 시스템이랄 수 있는 재능과 다양하고 간편한 스킬의 조합을 무기로 내세웠습니다. 아이템 빌드, 메타에 대해서는 다른 게임들과 큰 차이가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대신 재능과 스킬 조합에 대해 좀 더 집중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 일반적인 스탯 시스템과 비교해서 여러모로 직관적인 재능 시스템

재능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종의 스탯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스탯과는 결이 좀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스탯이라고 하면 힘, 민첩, 지능 등의 능력치를 올리고 해당 능력치에 따라 물리 대미지, 마법 대미지, 체력, 방어력, 회복력 등이 오르는 형태인데 반해 '토치라이트: 인피니트'의 재능은 그보다 더 직관적입니다.

재능에 따라 공격력, 공격 속도, 치명타 확률, 체력, 이동속도, 그리고 캐릭터 쓰는 스킬의 속성 등이 어떻게 강화되는지 한눈에 알수 있으며, 여기에 더해 언제든 초기화할 수 있어서 성장에 대한 부담도 없습니다. 언제 어느 때고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서 특화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만큼, 빌드의 변화에도 한층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스탯에 해당하는 건 재능만이 아닙니다. 비슷한 요소로 계약이 있습니다. 원소 저항을 높여주는 등 재능을 보조하는 형태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 재능이 기본적인 스탯 시스템이라면 계약은 이를 보조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능이 캐릭터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라면 스킬은 본격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치라이트: 인피니트'의 스킬은 액티브, 보조, 패시브 스킬 크게 3종류로 구분되는데 핵심은 보조 스킬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게임과 마찬가지로 액티브, 패시브 스킬 자체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를 만드는 건 바로 보조 스킬입니다. 패시브, 액티브 스킬에는 각각 3개의 보조 스킬 슬롯이 뚫려있는데 이를 통해 스킬을 플레이어의 입맛대로 강화하거나 바꿀 수 있습니다.

빙염술사 젬마의 기본 스킬인 스플릿 파이어볼을 예로 들자면 보조 스킬로 스플릿 파이어볼 자체의 화염 대미지나 공격 속도 등을 강화해 한발만 날아가지만, 공격력을 강하게 할 수도 있고 보조 스킬에 투사체의 수량을 늘리는 스케터링을 장착해 한번에 여러 발이 날아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 취향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스킬을 조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보통 이처럼 스킬의 특색을 바꾸는 시스템은 전투 중에는 불가능하다든가 하는 등의 제약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토치라이트: 인피니트'는 다릅니다. 정신없이 전투하는 와중에 일일이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마을에 가지 않고도 언제든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잡몹들이 많다면 스케터링같은 다수의 적을 처치하는데 유리한 보조 스킬을 붙이면 되고 보스전을 앞뒀다면 스킬 자체의 공격력 등을 강화하는 보조 스킬을 붙이는 식으로 바꾸면 됩니다.

부제인 인피니트가 의미하는바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재능과 스킬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빌드가 사실상 무한대(Infinite)에 가깝다는 걸 의미하죠. 핵앤슬래시에 있어서 손맛 그다음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메타가 무한하다는 것으로 재미의 깊이 역시 그 못지않다는 소리입니다.


다만, 아직 '토치라이트: 인피니트'는 완벽하진 않았습니다. CBT여서 당연하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UX 측면에서는 'CBT인데도 아직도 이정도 수준인가?' 싶을 정도로 부족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로컬라이징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어화에 대한 얘기로 번역이 어설픈 부분이 더러 보일 뿐 아니라 간혹 존대와 반말을 섞어서 쓰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UI와 관련된 부분도 있었죠. 레벨업을 하고 새로운 시스템이 개방되면 간단한 가이드를 해주는데 문제는 이때 개방된 시스템을 가리켜야 할 커버가 엉뚱한 부분을 가리키는 경우를 꽤 자주, 아니 거의 항상 볼 수 있었습니다. 그냥 넘길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너무 대놓고 보일 정도였죠.

▲ 단순한 존댓말 정도가 아니라 마치 동료가 말하는 것처럼 묘하게 친절하게 오역을 한 모습

▲ 한 번도 테스트를 안해본듯 위치가 크게 어긋난 걸 볼 수 있습니다

컷신에 대한 아쉬움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번 CBT에서 '토치라이트: 인피니트'에는 어떠한 음성도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게임을 할 때, 마나가 부족하든가 하면 그에 따른 캐릭터의 음성이 출력되곤 했지만, 딱 그 정도였죠. 컷신에서는 전혀 어떤 음성도 들어가 있지 않을뿐더러 이렇다 할 사운드도, 심지어는 BGM도 없어서 그냥 영상만 출력되는 수준이었습니다.

CBT라는 걸 고려한다고 해도, 한국어 더빙도 아니고 아예 어떠한 사운드도 들어가 있지 않다는 건 UX 측면에서 너무 급하게 CBT를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동료 NPC가 함께하면서 하는 말들이 화면 중앙에 너무 작게 텍스트로만 출력되는 점 역시 못내 아쉬웠죠. 사소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런 요소들이 한데 모여 게임의 몰입도를 올려주는 요소가 되는 만큼,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 더빙은커녕 어떠한 사운드도 들어가 있지 않아 전혀 몰입되지 않는 컷신

결국, CBT에서의 결론을 내리자면 '토치라이트: 인피니트'는 딱 절반만 완성된 느낌입니다. 핵앤슬래시로서 각종 시스템은 충실한 편이지만, UX 측면에서 전체적인 완성도가 부족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럼에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 번, 그리고 다른 핵앤슬래시와 비교했을 때 눈에 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여러모로 '토치라이트: 인피니트'가 가진 차별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CBT였습니다.

남은 건 이제 완성도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어색한 부분은 다듬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넣는 일만 남았죠. 오는 10월 완성될 모습으로 돌아온 '토치라이트: 인피니트'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금의환향할 수 있을지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