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 충분, 그러나 아직 더 섞고 섞고 돌려야


6 VS 6의 하이퍼 FPS, 그리고 건담. 이 두 가지 요소를 가미한 '건담 에볼루션'이 지난 22일 글로벌로 출시됐습니다. 탁 터놓고 말해서, 건담이라는 요소를 제외하고 몇 년 전에 이미 그런 구성을 선보였던 타 게임이 있다보니 지금도 원래 제목보다는 '건버워치'라고 많이 불리고 있는 게임이죠. 지금은 다소 시들해졌다고 해도, 어쨌거나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두 가지 요소가 섞였다는 것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엔 충분합니다. 요는, 그게 잘 섞여서 맛을 내느냐 아니냐 그 여부겠죠.

게임명: 건담 에볼루션(Gundam Evolution)
장르명: FPS
출시일: 2022. 9. 22.
리뷰판: 1.0.0 버전
개발사: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PC, PS, Xbox
플레이: PC



건담을 하이퍼 FPS로 녹여내기 위한 고심, 그리고 한국어 더빙까지


이 작품은 FPS라는 장르에 앞서, '건담'이라는 IP도 핵심 포인트다보니 그쪽도 짚고 넘어가보죠.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프라모델 등 각종 산업 분야에서 족적을 남긴 IP고, 그러다보니 FPS에 관심이 없던 유저들도 '건담'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접근할 여지도 꽤 되니까요.

반대로 그만큼 건담이라는 IP의 역사도 깊고 여러 작품이 나온 만큼, 그걸 새로운 장르로 소화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난제도 있습니다. 그간 작품에 나온 모빌슈트들이 원체 종류도 많고 각 기체별로 무장도 시리즈가 지나면서 바뀐 것도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기체별 특징이나 약점도 제각각 다른데, 그걸 일일이 넣어버리면 팬들은 알아도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은 모르면 맞아야지 이런 상황이 되어버리니까요.

▲ 건담팬이라면 자쿠 콕핏은 가슴팍에 있는데 왜 헤드샷?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 이런 반응을 예측한 듯, 테스트와 달리 게임적 허용 정도로 넘어가달라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여태까지의 건담 기반 게임과 달리, 'e스포츠'를 본격적으로 노린 작품이라 더욱 고심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여타 메카와 차별화되는 건담만의 멋을 온전히 보여주자니 기체마다 격차가 너무 커지는 데다가 기존 FPS 장르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낯선 요소가 부각되서 e스포츠용으로 활용하기 어렵죠. 그렇다고 '건담'을 빼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되어버리니까요.

이미 지난 4월 테스트에서 이를 어떤 식으로 풀이했는지 답이 나오긴 했습니다. 각 모빌슈트들은 극중 선보인 주무장 중에서 주무기를 선택하고, 그 외에 서브 무기나 작중 트레이드 마크는 특수기 혹은 궁극기로 편성하는 식으로 최근 유행하는 하이퍼FPS 스타일을 접목한 것이죠. 그러나 최근 팀 기반 FPS가 역할군을 뚜렷하게 나눠둔 것과 달리, '건담 에볼루션'에서는 모빌슈트의 무장을 먼저 고려한 뒤 이를 팀플레이에 맞게 선택하거나 혹은 다른 모빌슈트와 겹치지 않게끔 배분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종종 "이런 무기도 있었나" 싶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원작에 한 번이라도 나온 것들을 선정해서 최소한의 맥락은 확보하는 식으로 조율했죠.

일례로 퍼스트 건담은 작중 주무기인 빔 라이플과 트레이드 마크인 건담 실드는 그대로 사용하지만, 특수기에는 또다른 주무기인 빔 사벨 대신 표준 장비로 채택되지 못하고 작중 두어 번 정도만 등장했던 건담 해머를 활용하는 식입니다. 빔 사벨은 세븐 소드라는 이명이 붙은 건담 엑시아의 주무기이자 스킬로 넘어갔고, 메이스가 특기인 발바토스와 함께 근접 딜러 및 암살을 맡는 식으로 역할이 배분됐죠.

최강의 건담 타입 모빌슈트로 불리는 턴에이 건담은 빔 라이플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빌 슈트와 겹치는 무기들이 특수기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래서 좀 허술해보이긴 하지만, 대신 핵심 기능인 나노스킨 자가수복과 트레이드 마크인 월광접으로 중거리에서 교전하다가 궁극기가 차면 진입해 주변의 적의 주의를 끌면서 광역 대미지를 주는 근-중거리 딜러 형태로 설계됐습니다.

▲ 사정상 원작의 무기 대부분이 커트당하고 나노머신 수복에 엉성해보이는 던지기가 남은 턴에이 건담

▲ 원작 못지 않게 절륜한 위력의 월광접 때문에 그런 걸지도

이렇게 딜러 포지션을 놓고 보면 어찌저찌 원작 내에서 커버가 가능하지만, 문제는 건담 에볼루션이 지향하는 팀 기반 하이퍼FPS는 딜러뿐만 아니라 탱커, 힐러 등 역할군이 뒷받침되는 유형이라는 점이죠.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미 유저들에게 익숙한 스타일을 벤치마킹했으니 그 스타일에 어느 정도는 맞춰줄 필요는 있었죠. 그런데 원작이 탱커나 힐러 개념이 희박한 시리즈다보니, 그걸 어떻게든 보완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짐, 돔 트루퍼, 건탱크, 메타스를 비롯해 이번 정식 출시 때 유료 재화인 EVO 코인이나 게임 내 포인트로 구매 가능한 유니콘 건담에 원작에 나온 스킬을 어떻게든 비틀어서 회복 및 지원에 관련된 패시브나 스킬을 채워넣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수리용 수류탄처럼 원작에 없던 것들도 추가했죠. 실드를 장비한 모빌슈트는 원작처럼 실드를 들어서 막아내거나, 혹은 일부 돌진기에 전방 사격 무시 판정을 넣는 식으로 적 전열을 흐트러뜨리거나 빠르게 자리를 이탈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역할을 맡게끔 했습니다.

▲ 짐이 원작에서 양산형이긴 하지만 게임에서까지 양산형은 아니라서 상당히 잘 막는다

▲ 사이코 프레임을 광역 힐로 해석, 지원가가 되어버린 유니콘 건담

아무래도 원작 자체가 팀 FPS 형태가 아니라 모빌슈트들과 각종 병기들이 동원된 전쟁을 그려낸 작품이고 모빌슈트들은 그 전장에서 핵심으로 자리잡다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모빌슈트들을 파괴하러 다니는 딜러쪽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긴 합니다. 그 안에서 어찌저찌 원작과 다른 해석을 하고 게임 내에서는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단서도 붙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허전한 건 어쩔 수 없었죠. 어쨌거나 아군을 보호하고 협동한다는 느낌보다는 각각 파일럿의 재량에 맡기는 구도가 좀 더 강했거든요.

그래서 배틀로얄류에서 자주 나오는 기절-사망에 해당하는 중파-대파 구도를 도입, 중파한 아군 기체를 수리해서 다시 전장에 투입하는 식으로 협력 구도를 더 강화시켰습니다. 다른 팀 기반 FPS와 달리 역할군이 뚜렷하진 않고 서포터의 힐이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메타스처럼 원거리에서 중파된 아군을 수리하거나 건탱크처럼 수리 속도가 빠른 기체도 있어서 그들이 수리하는 사이에 실드를 든 다른 아군이 잠시 막아주는 또다른 팀워크 플레이의 기틀이 마련되어있었죠. 핑 시스템도 에이펙스 레전드 이후 최근 슈팅 게임이면 다 채택하는 유형을 갖고 와서, 말이 안 통해도 빠르게 소통이 가능했고요.

▲ 어그로 끄는 사이에 파괴병기 해체 성공, 훌륭하다는 채팅이 바로 나오게끔 한 센스까지

게임플레이뿐만 아니라 모드의 규칙도 그에 맞춰 변주를 했습니다. 점령전은 거의 그대로지만 포인트캡쳐는 점령해서 포인트를 얻을 곳이 주기적으로 교환되기 때문에 각 시간대마다 전장이 달라지죠. 디스트럭션은 리스폰이 자유로운 하이퍼 FPS에서는 잘 채택하지 않았던 폭탄 해체룰을 재해석, 그에 맞춰서 시도나 해체가 여러 번 이루어지는 가운데 폭탄 설치 구역과 입구 주변에서 처절한 싸움이 벌어지게끔 유도했습니다.

그게 '건담'이라기보다는 기존의 하이퍼 FPS, 톡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오버워치와 다른 팀 기반 FPS를 건담에 맞춰서 짜맞춘 것이 잘 돌아간다는 게 어찌보면 좀 아쉬울 순 있는 부분일 겁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보면 대체로 건담의 소위 찐팬이면 찐팬일수록 아쉬움을 표하는 비중이 높았거든요. 왜 시드쪽에서는 돔 트루퍼만 나왔냐는 라인업에 대한 아쉬움부터 일부 기체를 제외하면 콕핏 위치가 보통 가슴에 달려있는데 헤드샷 판정이 있는 것에 모빌슈트의 빠르면서도 박력이 느껴지는 기동이 잘 표현되지 않았다 등등, 이런저런 말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게임플레이하다보면 '건담'이라는 타이틀을 단 것치고는 모빌슈트의 기동이 조금 엉성하게 느껴지긴 합니다. 그나마 돌진기나 변신기가 있는 기체면 좀 다르긴 하고, 스텝을 잘 활용해서 엄폐물 사이사이를 누비면서 반격하는 재미가 있긴 한데 점프나 호버링은 스스스 떠다니는 움직임에 비해서 갑자기 무겁게 느껴져서 언밸런스한 느낌이긴 합니다. 건탱크나 자쿠2 사격장비 등 일부를 빼면 빔 무기 위주로 편성이 되어있어 사운드는 다소 빈약한데 반동과 탄퍼짐을 일괄 적용해버려서 연습 모드에서 쏠 때는 좀 엉성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아쉬움은 있긴 한데, 그런 리스크를 감안하고서 원체 잘 짜인 틀을 여러 가지로 변주하면서 건담이라는 요소를 녹인 과감한 선택은 꽤 잘 들어먹히긴 했습니다. 치고 받고 싸우는 와중에 마무리를 못한 아군을 바로 부활시켜서 한 끝 차이로 적을 밀어내고 파괴병기를 설치한다던가, 반대로 파괴병기를 해체하는 아군을 노린 적의 공격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 시간을 벌고 그 사이에 아군 발바토스가 기습으로 후방을 박살내는 등 팀 기반 게임의 드라마틱한 재미는 확실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보이스팩'입니다. 테스트 때는 없었는데, 이번에 정식 출시되면서 각 기체별로 자기가 원하는 성별과 연령대 그리고 성격의 목소리를 고를 수 있었거든요. 특히나 한국어 보이스도 지원해서 핑 소리를 듣고 바로 반응하기도 더 쉬워졌죠. 아직은 샤아나 아무로, 키라 야마토나 아스란 자라 등등 그간 건담 시리즈의 주역들의 목소리를 따로 팔거나 하지는 않지만 보이스팩을 이렇게 처음부터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게 해둔 걸 보면 시즌이 무르익고 나면 한 번쯤은 기대해봐도 될 듯합니다.

▲ 특히 발바토스로 적을 끊어먹는 플레이는 심장이 쫄깃한 스릴이 있다

▲ 아직은 공용 보이스팩밖에 없지만, 나중에 유료 상품으로라도 캐릭터 보이스팩이 나오기를




불안정한 서버와 기능, 그리고 밸런스까지 관리 능력 검증 과제가 남았다


이렇게 얘기하긴 했지만, 건담 에볼루션의 현재 스팀 평가는 '복합적'입니다. 다소 부족한 점이 보이기도 하고 벤치마킹과 오마주를 좀 과하게 한 느낌이 있긴 해도 재미는 있다고 말한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평가죠.

싱글플레이 게임이었다면 그냥 재미있었다, 게임플레이가 나쁘지 않다 정도만 해도 무난하게 넘어갈 법합니다. 그렇지만 멀티플레이 게임, 특히 팀 기반 게임은 팀이 무사히 게임을 마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있나 등등 다양한 전제조건이 갖춰져야만 그 문장이 참이 될 수가 있죠. 막말로 팀원이 탈주하고 트롤하고 허구헌날 노콘테스트가 뜨는데 게임플레이를 즐겁게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출시 초 건담 에볼루션은 상당히 혼파망이었습니다. 일단 EVO 코인 충전에 문제가 있어서 24일 11시 이후부터 시즌패스를 구매 가능한 건 그러려니하겠는데, 그동안 캐주얼 매치도 튕기거나 매치가 갑자기 중단되고 서버가 에러나는 현상이 여러 차례 발발했거든요. 물론 그렇게 에러가 자꾸 뜨는 와중에도 계속 플레이하거나 방송을 진행한 사람들이 있는 걸 봐서는 지역이나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 느낌이긴 한데, 어쨌든 초기에는 서버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 캐주얼 매치에서도 난입을 지원 안 한다니, 이 무슨 말이오

▲ 점검 후에는 거의 없었지만 출시 초에는 이런 메시지가 꽤 잦았습니다

그렇게 서버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팀이 꾸려지다가도 중간에 연결이 끊기는 경우도 많은데, 그에 대한 대책이 그저 노콘테스트 혹은 패배로만 처리하는 불완전한 방식이라 김이 샐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오버워치 얘기를 꺼냈으니까 오버워치를 예로 들어보죠. 오버워치에서는 캐주얼 중간에 누가 튕기면 매칭 대기 중인 유저 중에 하나를 바로 난입으로 들여보내서 인원 공백이 최대한 안 생기게 하죠. 물론 랭크 매치에서는 오버워치도 난입이 없긴 한데, 캐주얼 매치에 해당하는 빠른 대전은 그렇게 해서 게임이 찝찝하게 끝나는 일은 최소한으로 줄였죠. 때로는 난입해서 들어온 사람이 캐리해서 역전한 경우도 몇 번 있다보니, 으쌰으쌰해볼 수도 있었고요.

그런데 건담 에볼루션은 처음에 매치 시작할 때 누가 탈주하거나 연결이 끊기면, 중간 난입 없이 몇 초 내로 게임을 노콘테스트로 처리해버립니다. 게임플레이 중간에 팀에서 한 명이 탈주하면 그 게임이 노콘테스트 처리되고, 절반 이상이 탈주하면 몰수패가 됩니다. 탈주 페널티도 있긴 하지만 하다보면 탈주 페널티고 뭐고 그냥 기분 나빠서 탈주하는 유저도 꽤 되는 데다가 서버 오류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누가 탈주하거나 나가지는 상황도 꽤 잦고, 그 순간부터 게임이 아예 정상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김이 팍 새버리죠.

▲ 물론 이길 가망이 없긴 했는데 그냥 단체 탈주해서 몰수패 당할 줄이야

앞서 보이스팩에서 조금 희망회로를 돌린 소리를 하긴 했지만, 결국 그건 희망사항인 거고 현실의 BM은 스킨과 시즌패스, 그리고 일부 기체 판매가 주 포인트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에이펙스 레전드와 유사한 스타일이죠. 그 BM 자체야 세계적으로 검증된 방식이니까 별 문제는 없는데, 게임플레이로 주어지는 재화 자체가 매판 한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라 미션을 클리어하면 소정의 재화를 선물함에 받는 구도라 판수를 늘렸을 때에도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게 굉장히 적습니다.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더라도, 게임플레이하고 끝난 뒤에 결과창을 볼 때 아쉬운 부분 중 하나라고 할까요.

또 한 가지 아쉬운 거라면, POTG와 비슷하게 MVP 제도를 채택했는데 정작 그 하이라이트를 캡쳐해서 보여주는 기능은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왜 그 유저가 MVP를 받았나 의문일 때도 있고, 자기 하이라이트를 보고 싶은데 보지도 못해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죠. 가뜩이나 적은 보상에 하이라이트창도 완성됐다가 만 듯한 느낌이 드니, 허전함은 배가 됩니다.

▲ 여기 중간에 뭔가 나와야 할 거 같은데 빠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거기다가 건담 에볼루션이 짊어져야 할 삼중고, 즉 기체 밸런스나 라인업 그리고 고증이 초창기부터 발목을 상당히 잡는 모양새입니다. 일단 라인업과 고증에 대해서는 반다이남코에서도 인지해서 모빌슈트 설명란에 원작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해두는 식으로 처리하긴 했지만, 밸런스는 다른 문제죠. 물론 1 대 1이 아닌 팀 기반 FPS라 양산형 짐과 사자비를 동등한 스펙으로 맞춰줄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기대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팀 내에서 녹아들 수 있냐 또 조합에서 시너지가 얼마나 나느냐 등등 다양하게 고려해서 스펙과 스킬 구성을 할 필요가 있는 셈입니다.

앞서 기체의 라인업, 고증을 하이퍼 FPS라는 틀에 맞춰서 어찌저찌 변조하면서 나름 맛은 살렸다고 했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몇몇 기체의 성능이 애매하거나 무조건 써야 하는 픽, 혹은 상황만 갖춰지면 오버파워로 날뛸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점이죠. 테스트 단계에서 검증을 거쳤는데도 여전히 날뛰고 있는 발바토스와 사자비, 반면에 부실한 방패에 가드 붕괴는 있지만 딜레이나 판정이 애매한 해머를 든 퍼스트 건담의 격차를 보면 테스트를 한 번 더 거쳐서 피드백을 받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또 이번에 추가된 유니콘 건담이 오버워치 초창기에 루시우처럼 서브힐러로 필수로 꼽히면서 탄속이나 장탄수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다른 지원형이 추가될 때 과연 어떻게 그 간극을 메울지 의문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밸런스가 안 맞는 이유 중 하나가, 누가 G매뉴버 즉 궁극기를 섰는지 몰라서 음성 브리핑이 잘 갖춰진 상황이 아니면 대처가 잘 안 된다는 점도 있습니다. 적 어떤 기체가 G매뉴버를 쓰던 간에 '적이 G매뉴버를 썼다' 이걸로 일괄 출력되는 식이거든요. 그래서 디코나 음성채팅으로 합을 맞춘 파티가 아니고서는 G매뉴버 체크가 늦고, 적이 숨어서 G매뉴버를 쓴 것에 대해서는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보니 G매뉴버 성능이 절륜한 턴에이 건담이나 건탱크 등이 판세를 뒤집기도 생각보다 쉽습니다. 반대로 전반적인 성능이 애매한데 G매뉴버도 딜레이 문제가 있는 퍼스트 건담 같은 기체는 더 설 자리가 없죠. 우스갯소리로 퍼스트 건담이 양산형 짐에 밀린다, 이런 소리까지 나올 정도니까요.





아직 출시 초, 시즌1이라 불안정하긴 하지만, 건담 에볼루션은 확실히 재미는 있는 게임입니다. 그 재미가 과연 건담 때문인지, 아니면 팀 기반 하이퍼 FPS라는 장르 자체의 재미 때문인지가 좀 모호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 두 가지를 섞어서 그럴싸하게 내놓긴 했거든요.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그런 연출은 게임 밸런스나 장르적 특성상 지양하고 특징도 좀 많이 죽여놔서 원작 팬이라면 섭섭하긴 하겠지만, 대중적으로 익숙한 맛에 맞춰 잘 구현한 모습이 곳곳에 보입니다. 팀 기반, 역할군 기반으로 만들기 어렵게 설계된 원작의 요소들을 과감하게 비틀고 새로운 걸 더해서라도 그 틀에 맞췄고, 중파-대파와 부활이라는 개념으로 전장에 변수도 더했죠. 룰도 그냥 단순히 가져온 게 아니라, 어레인지를 가해서 그 변화된 룰 안에서 치열하게 받는 재미도 한층 더 가미됐고요.


▲ BM도 FPS 유저면 친숙한 시즌패스와 캐릭터, 스킨 판매 위주로 설계됐습니다

그렇지만 재미와 별개로 완성도가 높냐고 하기엔 좀 어렵습니다. 일단 전반적인 게임의 골조 자체가 다른 게임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있어서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비교했을 때 어설퍼보이는 부분들이 꽤 많았으니까요. 더군다나 멀티플레이 기반 게임인데 매칭과 탈주, 난입 등 기본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니 게임플레이 코어를 아무리 잘 갖춰놨어도 유저들이 그걸 온전히 즐기기가 어렵죠. 메카닉 슈팅에서 기대하는 박진감 있는 플레이보다는 일반적인 하이퍼 FPS를 고스란히 메카로 대입한 구도라 원작 팬이라면 아무래도 싱겁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기도 하겠고요.

그냥 건담을 조금 알고, FPS도 코어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좋아하는 유저라면 지금의 건담 에볼루션으로도 만족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다이남코에서 지향하는 목표 중 하나가 '건담의 e스포츠화'고, 그 선봉에 설 타이틀이 건담 에볼루션인 만큼 더 냉정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담 코어팬, FPS 코어유저까지 전문적인 유저들에도 어필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더 높은 완성도, 혹은 원작 반영도를 기대하는 유저들에게 두 가지 맛이 다 완벽히 조화롭게 섞인 상태로 내놨다고 하기엔 지금으로선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라이브 서비스를 하는 게임인 만큼 앞으로 어떤 기체를 추가하고, 밸런스를 맞춰가고 패치를 진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여지는 충분하고. 잠재력은 충분히 있는 타이틀입니다. IP도 굳건하고, 참고한 양식도 정통파 스테디셀러니까 그 둘을 잘 조합할 때 정통파적인 시너지도 충분히 기대해볼 법하죠. 과연 반다이남코가 이 타이틀을 어떻게 유지보수하면서 그 단계로 나아갈지 지켜보면서 한 번 맛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겁니다.

▲ 건담의 편린이 곳곳에 보이지만, 이를 어떻게 더 발전시켜나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