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인디 개발팀에서 아트를 통해 여러 가지 리소스를 확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전문 영역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게임 개발 자체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개발팀마다 상황과 여유가 다르기에 누군가의 경험이 100% 확실한 방법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다른 개발자들이 진행했던 방법이나 의사 결정의 과정을 공유하는 건 다른 개발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금일(28일), 2일차를 맞이한 언리얼 서밋에서 이러한 인디게임 개발팀의 아트 개발 방향과 파이프라인을 공유하는 강연이 열렸다. 터틀크림의 이규영 아트디렉터는 'RP7의 아트 디렉션과 그래픽 파이프라인'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블리자드에서 오랜 세월 개발에 참여하던 이규영 아트디렉터는 현재 배경아티스트로 일하면서, 파트타임으로 밤에는 터틀크림에서 아트디렉터를 맡아 인디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터틀크림에서 개발 중인 RP7은 슬롯 머신과 오토배틀러를 합친 RPG로, 슬롯을 랜덤하게 돌리면서 캐릭터가 죽지 않도록 회복을 하면서 몬스터와 전투하면서 성장도 하면서 보스를 물리치는 던전 크롤러다. 이규영 디렉터는 RP7의 아트 디렉션과 파이프라인을 다듬는 과정에서 느낀 것들과, 이를 통해 인디 개발자들이나 소규모 개발팀에게 유용한 팁들을 강연을 통해 풀어냈다.

이규영 디렉터는 터틀크림에 아트 디렉터로 합류한 이후, 고민에 부딪혔다. 본인이 익숙한 파이프라인과 아트 디렉션 방향을 잡을지, 아니면 기존 방식을 고수할 지다. 기존 방식으로 유지한다면 1년 동안 쌓인 리소스가 있지만, 확장과 버그 대처가 어려운 상황. 그는 그래서 출시 기간도 남아있고, 만들어진 에셋보다 훨씬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아트 디렉션과 파이프라인을 잡기로 했다.



그렇게 새로운 방향이 잡힌 이후, 가장 먼저 컨셉을 결정했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스케치를 거듭한 이후, 복셀 느낌과 장난감 느낌이라는 두 가지 후보가 남았다. 이규영 디렉터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게임아트를 작업할 때 중요시하는, '게임 플레이를 돕는 것'이라는 시선으로 돌아봤다. 복셀은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지만 실루엣 등이 한정적이다. 그렇기에 실루엣이 곡선으로 잡힌 장난감이 좀 더 게임 경험에 낫다고 결론을 내리고, 빠르게 컨셉을 '장난감' 같은 방식으로 결정했다.

이후 바로 캐릭터 디자인에 돌입했다. 장난감 컨셉으로,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실루엣을 위해서 고전 픽셀 게임들을 참고했고 이보다 더 심플하게 RP7의 캐릭터의 방향성을 결정했다. 팔, 발, 목도 전부 과감히 삭제하고 무기와 소품, 그리고 방패와 모자 정도만 남기기로 했고, 상당수의 캐릭터에 있던 입과 코도 전부 빼버렸다. 그렇기에 캐릭터 구조가 매우 단순해질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 작업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나왔다. 캐릭터가 워낙에 단순하다 보니 완성도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다양한 레고의 질감을 참고했고, 이를 위한 텍스쳐 테스트를 많이 진행했다. 테스트 끝에 기본 텍스쳐와 디테일 테스쳐를 언리얼로 합치는 방식의 작업물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언리얼의 매터리얼로 디테일 텍스쳐를 합성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여기에 색상도 심플하게 쓰려고 노력하면서도, 캐릭터를 강렬하게 보여주면서 잘 구분되도록 유도했다.

이후 애니메이션 작업도 용량을 줄이고자 최소 프레임으로 작업하되, 픽셀 게임을 참조해 간단한 움직이지만 특유의 박자감과 박력감을 살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픽셀 애니메이션처럼 매우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도록 타이밍을 다르게 하면서 소품에 대한 미묘한 변화를 주면서 단순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애니메이션이 완성됐다.

▲ 기존 익숙한 방식은 너무 오래 걸려서 파이프라인을 바꾸기로 했다.

앞서의 과정으로 아트디렉션 방향성이 잡힌 이후로 이규영 디렉터는 기존에 본인이 사용하던 파이프라인대로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지만 파트타임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열흘이라는 시간이 에셋 제작에 걸려서 파이프라인을 다시 잡기로 했다. 그동안 사용하던 ZBrush로는 디테일에 집착하면서 작업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는 점을 깨닫고 이를 최소화하기로 했으며, 3D맥스와 VR의 그라비티 스케치를 활용하기로 했다. 두 작업물은 섬세하지는 않지만, 게임이 선택한 아트디렉션 방향에서는 충분한 퀄리티를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를 냈다.

그리고 가장 작업이 오래 걸렸던 리토폴로지 작업이나 텍스쳐 작업은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작업속도를 빠르게 하는 방법을 찾았고, 여기서 '자동화'를 선택하게 된다. 이규영 디렉터는 이 작업에서 서브스턴스 디자이너와 후디니를 적극 활용했고 이를 통해 2~3시간 걸릴 작업을 몇 분 만에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얻었다. 후디니 역시 좋은 작업 도구였지만, 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VEX를 사용하고 파이썬도 알아야 진가가 발휘된다. 그래서 배우기 힘들다는 언질과 함께 서브스턴스 디자이너를 충분히 익힌 이후 후디니를 공부해볼 것을 추천했다.

그는 이렇게 자동화를 적용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앞둔 그래픽 작업자들에게 '논리적 접근'을 많이 하라고 강조했다. 본인 역시 아트만 했기에 직감적으로 풀어나가던 일을 논리적으로 접근하기가 힘들었다고 했고, 그래서 글쓰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글로 구체적인 작업을 써보고 글에 써진 내용을 하나씩 구현하다 보면 금방 논리적인 접근법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도 조언했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자동 툴 역시 처음부턴 완벽할 수 없으니, 하나씩 만들고 하나씩 수정하면서 고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런 파이프라인 정비를 통해 RP7의 에셋 제작에 걸리던 10일이라는 시간을 2일로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 VR 그라비티 스케치는 멀티(못해봤지만)로도 작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 서브스턴스 디자이너를 먼저 쓰고 후디니를 사용할 것을 추천했다.

그가 소규모 개발자와 인디 게임 제작팀에게 에셋을 제작할 때 비주얼 프로토타입부터 만드는 방법은 매우 좋다고 전했다. 미니어처를 먼저 만들어서 아티스트의 비전을 간략하게 만들어보면서 새 에셋과 게임 플레이와 어울리는지 테스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케치는 가장 고전적인 비주얼 프로토타입이지만 반복을 통해 시행착오를 빠르게 가능한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제약을 미리 거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이다. 제약은 스테이지나 등장하는 캐릭터나 맵의 크기가 될 수가 될 수도 있다. 제약을 빠르게 걸면 작업량 자체가 줄면서 각 오브젝트에 투자할 시간이 늘어나 퀄리티가 늘어나게 된다. 또한 작업 시간 관리도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개발은 시간과의 싸움인 만큼, 이규영 디렉터는 구글 시트를 만들어서 팀원과 공유하면서 일정을 조절했다. 이 과정에서도 우선순위를 반드시 적는 걸 추천했다. 그래야 출시 시점을 보고 선택과 집중을 명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면 언리얼 마켓 플레이에서 에셋을 돈으로 구입하는 게 더 저렴하고 좋을 때도 있다고 한다.

강연의 끝에서 그는 언리얼 엔진에서 애니메이션 커브 기능과 블루프린트 기능이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애니메이션 커브는 특정 타이밍에 파티클을 넣는다거나, 매터리얼 수치를 변경할 수 있는 기능인데 이를 활용해 애니메이션을 조절하거나 연출을 만들 때 편리하게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는 간단한 비주얼 스크립팅을 할 수 있기도 해서 블루프린트는 아티스트와 프로그래머가 협업하기에 정말 좋은 기능이라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현재 이규영 아트디렉터와 터틀크림이 작업중인 RP7은 2023년 PS, Xbox, Swtich, PC 플랫폼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 파이프라인의 정비로 작업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됐다.

▲ 비주얼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때 스케치도 좋은 방법이다.

▲ 제약을 걸어서 작업을 수정하거나, 퀄리티를 올리는 시간을 잘 쓸 수 있다.

▲ 반드시 우선순위와 날짜를 기입할 것을 추천했다.

▲ 터틀크림의 RP7은 2023년 출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