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해군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잠수함, U보트는 전쟁 초기 어마어마한 숫자의 연합군 배들을 바다 밑으로 빠뜨린 장본인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1,100여 척 건조된 독일의 U보트는 연합군의 군함은 물론, 보급 물자를 실은 상선을 5,000여 척 가까이 침몰시켰습니다. 침몰한 함선들의 배수량을 합하면 거의 2,200만 톤에 달한다고 하니, 잘 상상이 가지 않는 규모이긴 합니다.

물론, 빠르게 발달한 기술을 바탕으로 잠수함을 상대하는 방법이 늘어난 이후 U보트는 전쟁 초기와 같은 공을 세우지 못하게 됐지만, 한때 연합군을 공포에 떨게 했던 U보트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바다 속의 암살자 U보트와 이를 상대하는 구축함 간의 긴장감 넘치는 전투는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는데요, 1981년 제작된 독일의 영화 '특전 U보트(Da Boot)'는 잠수함 관련 전쟁 영화의 바이블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아이언 울프 스튜디오에서 개발하고, 데달릭 엔터테인먼트에서 유통하는 게임, '디스트로이어: U보트' 헌터는 바로 이 U보트를 상대로 연합군의 호송선단을 지키는 구축함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 세계대전 초기 연합군의 호송선단을 공포로 몰아넣은 독일의 잠수함 'U보트'

▲ 이들에게도 천적은 있었으니, 구축함은 잠수함들의 저승사자라고 불렸습니다 (영화 '특전 U보트' 中)

영화 '특전 U보트'는 실제 U보트에 탑승했던 종군기자의 경험을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구축함에 대한 잠수함 승조원들의 두려움이 영상 전반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기술력으로는 아직 잠수함은 열악한 상황이었고, 폭뢰에 공격당해 어디 한 곳이라도 고장나 떠오를 수 없게 된다면 살아나갈 방법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이 게임은 제목 그대로,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는 연합군의 호송선단을 호위하는 구축함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하던 '경찰과 도둑' 놀이에서 경찰을 맡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슬금 슬금 호송선을 파괴하기 위해 다가오는 U보트의 위치를 특정하고, 폭뢰를 통해 격침시키는 것이 게임의 목표입니다.

말로 설명하기에는 이보다 간단한 목표가 없지만, 시뮬레이션 요소를 상당히 강조한 게임이기 때문에 해전에 대해 생소한 분들이라면 튜토리얼이 필수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게임을 실행 직후 메인 메뉴에 튜토리얼을 따로 만들어 둔 것도 개발사측에서 중요하게 여기도 있다는 뜻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튜토리얼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구축함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부터 방향을 바꾸는 법, 그리고 격침해야 할 표적인 U보트를 탐지하는 법과 교전하는 법 등을 차례대로 알려줍니다. 텍스트와 함께 하나둘씩 클릭해보는 형태라 진행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실제 게임의 모든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 번의 튜토리얼만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 저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여러 지시 시설을 이용하는 게임 특성 상, 다소 정적인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U보트와의 전투를 진행하는 흐름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먼저, 호송 선단 인근의 해수면을 탐지하는 레이더에 U보트의 신호가 잡히면, 구축함은 호송선단을 지키기 위해 해당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해 진 시점까지 다가간다면 함포를 이용해 공격할 수 있지만, U보트들은 이 쯤 되면 대부분 잠항을 시도합니다. 이때부터 게임의 핵심인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것이 시작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물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항법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때 잠수함들은 평상시에는 수면 위에서 항해를 하고, 교전 시 잠항을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상황에 맞춰 게임에서는 U보트를 탐지할 수 있는 두 가지 수단이 제공되는데, 크게 해수면을 탐지하는 '레이더'와, 해저를 탐지하는 '소나' 두 가지입니다.

레이더를 통해 U보트의 위치를 파악하고, 해당 위치로 구축함을 이동하고 있다 보면, 레이더 관측병이 신호를 잃었다고 보고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U보트가 그동안 이동해 온 방향과 마지막으로 발견된 위치를 계산해 소나를 활용하면, 대부분의 경우는 어디쯤에서 잠항을 하고 있는지 맞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 본 경과 이것은 '디스트로이어: U보트 헌터'에서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였습니다. 잠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동 경로를 예상하고, 타이밍에 맞춰 폭뢰를 투하해 격침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 잠수함을 탐지하는 방법은 두 가지, '레이더'와 '소나'가 있습니다

사실, 튜토리얼에서 배운 함내의 다양한 기능들은 바로 이 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초심자에게는 대단히 까다롭고,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알기가 어렵지만 말입니다. 구축함의 소나는 잠항하는 U보트를 탐지하는 것 외에 아주 인접한 잠수함의 세밀한 움직임을 관찰하는 기능 또한 하는데, 관측병이 하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잠수함이 이동 경로를 바꾸었다든지, 또는 강한 프로펠러 소리가 들린다든지 하는 것으로 소리에 의존해 U보트의 위치를 확인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게임은 '보이지 않는 상대'에 맞선다는 핵심 콘텐츠에 충실하고, 또 당시 고증에도 어느정도 부합하도록 '소리를 듣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영화 '특전 U보트'에서는 U-96 U보트 승조원들이 구축함의 추격을 피해 물 속에서 잠항하는 동안 숨소리 조차 내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게임에서는 그들과 반대로 구축함의 편에서 잠수함의 소리를 들어내야 하는 것이죠.

▲ 실시간으로 측정되는 적 잠수함의 위치를 살펴보며, 폭뢰를 떨어뜨릴 타이밍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행히,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잠수함의 프로펠러 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헤드폰을 꼭 착용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함 내 장교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상황에 맞는 명령을 빠르게 하달하는 것이 플레이어의 역할입니다. 음탐장, 전탐장 등은 잠수함의 위치에 따라, 그리고 레이더의 탐지 시간에 따라 주기적으로 여러 정보를 보고합니다. 잠수함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움직였는지, 자함과의 거리는 어느정도인지는 물론, 어뢰 발사구가 열리는 소리까지 보고할 정도죠.

이러한 보고를 받은 플레이어는, 구축함 내에 여러 장소들 (함교, 전투정보실, 음파 탐지실, 함포 조종실 등)을 활용해 잠수함을 발견하고, 추적하고, 최종적으로 격침할 수 있도록 발빠르게 명령을 하달해야 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틀어야 하는지, 항속은 얼마에 맞추는지는 기본이며, 상대 잠수함이 잠항을 한다면 어느 방위의 음피를 탐지할 것인지, 폭뢰의 수심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모두 결정해야 하죠. 거의 다 잡았다 싶은 잠수함의 신호를 놓칠 때면 이따금씩 이 게임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 접근해 오는 잠수함의 위치를 표시해 주는 화면,
맨 아래 점선과 일치하는 사선이 나타날 때가 폭뢰를 떨어뜨리는 타이밍입니다

▲ 이건 그러니까... 잠수함을 놓쳤다는 뜻입니다

정말로, 쉬운 게임은 아닙니다. 적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떨어뜨린 폭뢰가 잘 맞았는지조차 불분명한 게임입니다. 가끔 운이 좋다면 폭뢰에 맞은 잠수함에서 새어 나온 기름이 바다 위에 보인다는 보고가 들려올 때도 있지만, 적어도 제가 경험한 바로는 폭뢰 자체를 맞추는 것부터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폭뢰 발사 이후 신호가 없어진 잠수함이 침몰한 것인지, 아니면 잠시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인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한동안 신호가 없어 침몰한 줄 알았던 잠수함이 갑자기 호송선단 밑에 나타나, 아군 함대를 불바다로 만드는 모습을 보게 되면 지체 없이 게임을 재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U보트와 구축함 사이의 긴장감과, 이런 종류의 해전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이 게임은 색다른 재미를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함 내 여러 공간을 오가며 상황판만을 봐야 하는 플레이는 다소 정적이지만, 시시각각 보고가 들어오는 전황에서 발빠르게 명령을 하달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박진감과 몰입감을 갖추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탐지 도중 놓쳐버린 잠수함의 예상 위치를 빠르게 찾아야 할 때의 압박감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기도 했습니다.

▲ 가끔 볼 수 있는 외부 시야로는 멋들어진 구축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런 장면은 보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호송선아 미안해!

다만, 이 게임은 이제 막 얼리액세스 단계로 출시된 만큼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입니다. 중간중간 해수면 위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외부 시점이 게임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바깥 그래픽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인데, 아군 호송선이 파괴되어 불바다가 일어날 경우 급격한 프레임 드랍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최적화 문제는 개발 과정에서 최대한 다듬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현재로서 게임은 호송선과 호위 함대의 규모에 따라 다른 커스텀 전투만 진행 가능하지만, 이후 개발사는 다양한 임무와 전시 상황이 주어지는 캠페인 미션을 추가한다고 밝혔습니다. 스팀 상점에 적혀 있는 문구에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생존자를 구출하는 기능이나, 다양한 성격으로 자신만의 전략을 구사하는 U보트 선장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잠수함과의 전투를 실감 나게 구현한 '디스트로이어: U보트 헌터'는 정가 39,000원에 스팀 상점을 통해 구입할 수 있으며, 현재 얼리액세스 출시 기념 10%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배경의 해전과, 구축함에 대한 로망이 있는 분에게는 권할만 하지만, 좀 더 많은 콘텐츠가 추가된 이후에 게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