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담아낸 고딕 로망의 진한 첫 향과 씁쓸한 피니시



2014년 지스타에서 첫 공개 이후 8년이 지난 올해 9월 27일, '블랙 위치크래프트'가 8년만에 출시됐습니다. 마녀 리지아가 대마녀 레노어의 부활을 저지하기 위해 어셔 가의 저택으로 향한다는 소개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에드거 앨런 포의 영향을 진하게 받은 작품이죠. 그 내용을 빚어내는데 콘솔 세대가 PS4에서 PS5로 바뀌고도 몇 년이 지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 기간 동안 '고딕'과 '고전'에 대한 열망으로 이리저리 빚어낸 만큼 특색이 진하게 묻어난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이리저리 만들다보니, 다소 엉킨 구석도 많이 보였고요.

게임명: 블랙 위치크래프트(Black Witchcraft)
장르명: 횡스크롤 액션 RPG
출시일: 2022. 9. 27.
리뷰판: 1.0.0 버전
개발사: 콰트로기어
서비스: 크레스트
플랫폼: PC
플레이: PC



메트로배니아와 로그라이크와는 다른, 고전적 하이스피드 횡스크롤 액션


아무래도 이제는 인디, 2D 횡스크롤 요소가 포함되면 자연스럽게 로그라이크 혹은 메트로배니아를 떠올리게 됩니다. 오래도록 다른 패턴으로 즐기거나 이것저것 탐험하면서 파헤쳐가면서 즐기는 이른바 '가성비'가 뒷받침되는 게임이기도 하고, 개발자 입장에서도 코스트 대비 효율도 좋으니까요. 여기에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패턴이 가미되거나 소울류처럼 한 땀 한 땀 빚으면서 나아가는 전투 시스템이 갖춰지면 플레이타임도 확보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묘미, 한 번 죽을 때 다가오는 페널티에 대한 긴장감까지 더해져서 시너지가 일어나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구도긴 하죠.

그래서 사전 정보 없이 '블랙 위치크래프트'를 처음 접하게 되면 다소 낯설 겁니다. 로그라이크도 그렇다고 해서 메트로배니아도 아니니까요. 아마 로그라이크는 아닐지라도 고딕 스타일, 그리고 고성을 탐색한다는 테마 때문에 메트로배니아를 기대했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맵에 고저차를 활용하거나 지형지물 사이에 숨겨진 요소를 탐색하는 요소도 없이 단순히 이동하고 전투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죠.

거기다가 제한된 스태미나나 여러 요소 때문에 한 번의 액션도 신중해야 하는 묵직한 스타일이나 빠르게 움직이다가도 한 번 암초에 걸리면 답도 없이 맞거나 혹은 즉사해버리는 하드코어한 유형도 아닙니다. 오히려 빠르게 고속으로 치달으면서 콤보를 연사하고 스킬로 적을 도륙내고 전진하는 스타일이라 오딘스피어나 초창기 테일즈 오브 시리즈처럼 고전적인 횡스크롤 액션 RPG에 가깝죠.


▲ 맵에 발판 등 특별한 지형지물은 없이

▲ 점프와 각종 스킬로 콤보를 빠르게 이어나가면서 적을 소탕하는 고전 횡스크롤 RPG 스타일을 채택했습니다

그 관점에서 '블랙 위치크래프트'를 살펴보면 조금 단순하긴 해도 그 고전적인 틀을 잘 갖춘 게 보입니다. 일반 공격과 간단한 커맨드 조합으로 스킬을 활용해 콤보를 이어가는 맛이나 출현하는 적에 따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스킬 세팅으로 대응하는 맛은 확실하기 때문이죠.

Z축이 없는 만큼 점프와 회피, 대공기와 낙하기로 적절하게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고 대처하는 짜임새가 갖춰져야 하는데, 일단 적의 패턴은 엘리트급도 몇몇 종류를 빼면 패턴은 하나만 갖추는 식으로 단순화했습니다. 대신 적의 조합을 그때그때 다르게 또 다양하게 배치해서 대응 순서나 패턴이 달라지게끔 유도했죠.

그래서 가끔은 패턴이 정말 단순할 때도 있지만, 가면 갈수록 공중과 지상 원거리 그리고 근접 공격과 자폭까지 한꺼번에 섞여서 나오는 터라 속도를 늦추면 까다로워지긴 합니다. 그래도 레벨을 착실히 올리면서 스탯을 올리면 어느 정도 대처는 되고, 파밍한 걸로 무기 스킬이나 잠재능력을 해금하면 성장이 체감되는 RPG식 설계가 뒷받침되니 부담감은 확실히 덜합니다.


▲ 적을 처치하면서 착실히 레벨과 스탯을 올리고

▲ 스킬을 조합하거나

▲ 숨겨진 스티그마를 해금해서 자신에게 맞는 빌드를 짜맞출 수도 있습니다

만일 무기가 한 종류이거나 하나의 클래스 같은 스킬 구도였다면 좀 질릴 수도 있을 텐데, 이 부분을 '마녀'와 마녀술이라는 작중 설정으로 훌륭히 커버한 모습입니다. 작중 리지아는 '기계술'의 마녀고, 처음부터 각종 기계 병기를 만들어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소개되는 만큼 어떤 무기를 꺼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각인이 되니까요. 그리고 리지아의 힘을 현재 100%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들렌이라는 소녀의 몸을 빌린 상태라 전투를 통해 새로운 몸에 익숙해지면서 자신의 힘을 끌어올린다는 세팅도 이해가 가게끔 했죠.

처음에는 대시나 회피기가 없어서 조금 애매하지만, 공중 대시와 회피기가 갖춰진 순간부터 그 설계가 확실히 눈에 띕니다. 종종 고전적인 아케이드 게임을 하다보면 흔히 찾게 되는 얍삽이 같은 것도 써먹을 여지가 있는, 다소 구멍 뚫린 얼개도 보이긴 하죠. 여타 횡스크롤 RPG는 대부분 적과 조우하게 되면 전투 구간이 제한되는데, 블랙 위치크래프트는 앞뒤가 막혀있는 게 아니라 원통처럼 빙 돌아오는 식입니다. 그래서 정공법으로 막히면 구석에 몰리는 일 없이 치고 빙 돌아서 쭉 빠지는 히트앤런식 꼼수로 깨는 등, 비교적 널널하고 유연하게 구성이 짜여있죠. 그렇게 해서 처치한 적들의 산물로 비전투 상황이면 물약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 최근 고난도의 횡스크롤 액션에 주눅이 든 분들도 비교적 가볍게 즐길 수 있습니다.

▲ 회피에 궁극기 무적 그리고 연타하다가 적이 뒤로 빠졌네? 니가와 드루와 블래스터빔

▲ 파밍해둔 재료들로 물약을 제조, 비축할 수 있으니 실수해도 안심



컨셉, 아트, 미스테리, 게임플레이의 4단 기어에 버그라는 돌멩이가 꼈다


그런 게임플레이가 처음부터 뚫리는 게 아니고, 점점 리지아가 힘을 되찾아가고 신체에 적응이 되면서 가능해지는 만큼 때로는 시원스럽게 때로는 얍삽하게 액션을 만끽하기까지 눈길을 끌 또다른 포인트가 필요해집니다. '블랙 위치크래프트'는 그 부분을 고딕물에 대한 개발자의 열정과 오마쥬, 그리고 이를 담아낸 아트와 게임 설계로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일단 시작부터 에드거 앨런 포의 '리지아'의 문구로 시작, 주인공 이름부터가 에드거 앨런 포에서 따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작중 무대가 되는 어셔 가, 갈가마귀, 검은 고양이 플루토까지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해서 한 번 그 맥락을 캐치하게 되면 회로를 돌려보게끔 구성이 되어있죠. 여기에 메인 무대인 어셔 가 저택은 고딕풍으로 디자인하고, 낮게 깔린 피아노 음으로 미스테리한 분위기도 살렸습니다. 전투 중에는 고딕 메탈 사운드의 BGM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고딕'이라는 테마에 충실해 일관성도 뚜렷했고요.



▲ 에드거 앨런 포 팬이라면 아, 할 것들이 게임 곳곳에 녹아들어있습니다

단순히 치고 달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고딕물하면 떠오르는 '미스테리'와 '퍼즐'의 구도도 살려낸 맵의 구성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메트로배니아처럼 맵 곳곳의 히든 포인트를 탐색하고 오브젝트나 지형지물 그리고 착시까지 포함해서 이런저런 기믹을 숨겨둔 건 아니지만, 아뮬렛이나 보드 혹은 마법진을 연상케 하는 맵에서 퍼즐식으로 이리저리 판을 돌려서 진로를 찾아가는 것도 봉인과 결계라는 소재에 어울리는 구도였으니까요. 배경만 있고 쭉 평면식인 맵 디자인은 단조롭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스티그마를 다 모으고 진엔딩에 도전하는 과정 자체도 크게 어려움은 없습니다. 스피디하게 콤보를 이어가서 적을 격멸하고, 봉인을 풀고,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그 코어를 아주 심플하게 그러면서도 분위기 있게 짜내는 것에 선택과 집중을 잘했기 때문이죠.

왜 갑자기 마녀사냥꾼 집안이었던 어셔 가에서 갑자기 옛날에 봉인됐던 대마녀 '레노어'를 부활시키려고 하는 건지, 리지아는 그때 어떤 일을 겪었고 어셔 가와 봉인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등등. 그 구도 자체는 새롭지는 않습니다. 음산하고 어두운 비밀이 숨어있는 저택에서 과거의 미스테리를 한 겹씩 퍼즐 맞추듯 풀어가는 고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개니까요. 그만큼 왕도적인 소재라 분위기만 잡아두면 바로 익숙하게 빠져들 수 있는 구도인데, 그 부분은 아트로 확실하게 보조가 됐습니다. 일러스트가 엄청 뛰어나거나 아트가 미려한 건 아니지만, 분위기를 내기 위한 컬러의 선택이나 구도, 디자인, 소품, 그런 곳에서 고딕과 빅토리아풍을 잘 섞으면서도 고딕 스타일이 확고히 나게 조율해서 느낌을 살렸습니다.



그렇게 느낌있게 구성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낸 것까지는 좋았지만, 해상도 조절 문제나 '버그'라는 악재를 미처 피하지 못한 게 좀 컸습니다. 초기에 해상도가 잘 적용이 안 됐던 문제는 빠른 패치로 해결했지만, 버그들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거든요. 물론 소소한 버그야 어느 게임에나 다 있는 거지만, 블랙 위치크래프트는 게임플레이 진행까지 안 될 정도로 심각한 것들이 종종 발견되서 문제가 컸습니다. 제가 겪은 것만 해도 갑자기 멈춰서 진행이 안 되는 버그나 입력이 안 먹히는 버그, 이동키만 안 먹히는 버그 등 여러 가지가 있었죠.

게임패드나 키보드를 할 때 나름 조작법은 체계가 잡혀있긴 한데, 키 변경도 없고 게임패드를 연결한 상태에서 키보드로 넘어가면 갑자기 키보드나 게임패드 둘 다 안 먹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게임패드 연결 부분은 옵션에서 키보드로 되어있는 상황이면 키보드에 우선권을 확실히 주고, 패드로는 메뉴를 열고 닫는 정도로만 우선순위를 설정해 오류가 해결되긴 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버그가 지속적으로 수정이 되고 있긴 한데, 모든 버그가 다 조치가 된 건 아니라서 조금 더 지켜봐야 할 필요는 있을 듯합니다.

▲ 스티그마 다시 모으려고 초반 지역 갔다가 이동키만 안 먹혔던 버그에 걸릴 줄은





8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서 나온 '블랙 위치크래프트'는 개발년수만 단순히 따져서 생각하면 실망스러울 수 있는 게임입니다. 8년에 걸쳐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볼륨이 상당히 작고, 안정성도 꽤 떨어지는 편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그 8년간 오로지 개발자 자신의 '로망'을 채울 작품을 위해 여러 차례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했다는 내막을 들었긴 했지만, 그런 내막은 결국 '게임' 그 자체에 대한 평을 내릴 때는 부수적인 것인 요소죠.

중요한 건 게임플레이, 그리고 게임의 구성과 완성도인데 그 부분에서 '블랙 위치크래프트'는 좋은 평가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게임플레이는 그래도 고전적인 하이스피드 횡스크롤 RPG의 스타일을 '고딕'과 '마녀', '기계술'이라는 컨셉에 맞춰서 잘 구현했고, 전반적으로 그 컨셉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서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잘 유지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패턴은 단조로운 편에 페널티도 그다지 없어서 루즈할 수도 있고, 이동 시간이나 로딩 시간 등도 꽤 긴 편이라 루즈함은 더한 편이죠. 거기다가 중간중간 버그까지 나오다보니 더더욱 무언가 걸리는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블랙 위치크래프트는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고전 양식을 특유의 분위기에 맞춰 스타일리시하게 녹여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하게 평가를 받아야 할 작품입니다. 고전 명작에 비할 바도 아니고 모션은 좀 엉성하긴 하지만 고속의 콤보와 스킬 조합으로 적을 소탕하는 맛은 확실하고, 쭉쭉 성장하고 단서를 찾아가면서 저택의 미스테리 그리고 마녀들의 비밀을 풀어가는 얼개도 잘 잡혀있습니다. 스킬 빌드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것저것 바꿔서 여러 스타일로 플레이해보는 맛도 있고요.


그렇게 플레이하는 하나하나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각종 오마주와 디자인부터 시작해 '고딕'이라는 느낌을 각인시키는 요소들은 충분하다못해 넘칠 정도로 게임 내에 가득합니다. 그게 단순히 그냥 흩뿌려져있는 것이 아니라, 고전적인 게임플레이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서 몰라도 되지만, 알면 알수록 개발자의 고딕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것저것 풀고 싶었던 보따리들이 하나하나씩 드러나게끔 했죠.

에드거 앨런 포의 문구들과 함께 이어지는 이 게임은 마이너한 취향이라서 조금은 난해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다보면 가감 없이 자기가 만들고 싶은 그대로 만들었다는 그 '로망'을 오랜만에 만끽할 수 있죠. 당장 즐기라고 하기엔 아직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지만, 조금 더 안정화가 되었을 때는 한 번 눈길을 주는 것도 좋은 선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래도록 가슴 한 구석에 잠들어있는 '로망'을 깨울 수 있는 저력은 있는 게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