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블루 아카이브를 비롯해 페이트/그랜드 오더 등 서브컬쳐 게임에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등급 분류 재조정을 권고하면서 각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됐다. 페이트/그랜드 오더를 서비스하는 넷마블은 9월 30일에 게임물등급분류 신청 절차를 거쳐서 명확한 이용 등급을 판정받겠다고 공지했으며, 블루 아카이브의 개발사인 넥슨게임즈는 10월 4일 기존 버전의 연령 등급을 올리되, 리소스를 수정한 틴 버전을 따로 출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간 국내에 서비스되는 게임들 중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연령 등급 상향 혹은 리소스 수정을 권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유저들의 반발은 어느 때보다 거세다. 민원 빅데이터 집계에 따르면 10월 5일 기준으로 블루 아카이브와 넥슨 게임즈 권고 조정 신청 안건이 당일 이슈 1순위로 꼽혔으며, 오늘의 키워드와 급증 키워드에도 각각 3위, 1위에 꼽히는 등 민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반복되는 민원을 삼가해달라는 공지를 할 정도였을까.

유저들이 반발한 이유는, 여초 커뮤니티에서 주기적으로 남성향 서브컬쳐 게임에 대한 민원을 제기한 것 때문에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조치를 취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9월 25일 한 여초 커뮤니티에서 블루 아카이브를 비롯해 페이트/그랜드 오더, 소녀전선, 명일방주, 백야극광 등 여러 게임에 연령 등급 재분류 민원을 신청해서 조치가 진행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인증글이 올라왔고, 그 전부터 해당 커뮤니티에서는 남성향 서브컬쳐 게임의 연령 등급 재분류 민원을 넣는 챌린지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 뒤에 9월 30일, 그리고 10월 4일 페이트/그랜드 오더와 블루 아카이브의 연령 등급 재분류 관련 공지가 올라왔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이와 관련해서 "민원뿐만 아니라 자체 모니터링 결과도 포함된 것"이며 "옷차림뿐만 아니라 언어, 분위기, 콘텐츠 전체를 보고 파악한다"고 답변했지만 유저들의 불신은 가시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예전 큐라레: 마법도서관이나 소녀전선 검열 이슈가 나올 때와 달리, 라스트 오리진이나 사이버펑크2077 등 사례를 통해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그간 유저들이 생각한 것보다 성인 콘텐츠에서는 기준이 느슨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상황인데도 그렇다.

유저들의 현재 인식은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게임을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않고 민원에 휘둘려서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비단 블루 아카이브만의 문제가 아니다. 맥을 짚고 올라가다보면 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에서도 유저들의 민원 인증글이 올라온 이후 일부 곡이 한국 서버에서 제외되고 연령 등급도 12세 이용가에서 직권 재분류로 청소년 이용불가까지 가기도 했다. 이후 재심의를 거쳐 15세 이용가로 조정됐으나, 삭제된 곡이 다시 추가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해당 콘텐츠들이 미성년자들이 보고 듣기에 부적합한 면이 있으며,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조치가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일례로 프로젝트 세카이의 삭제된 곡들의 가사에는 부적합한 단어가 있었으며, 블루 아카이브에서는 이즈미(수영복)의 메모리얼 등 일부 콘텐츠에서 문제의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일부 유저들이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이즈미(수영복)이 위원회 검토에서 예시로 언급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의심의 여지는 남을 수밖에 없다. 이즈미(수영복)은 추가된지 이미 6개월도 더 지난 상황이고,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블루 아카이브 관련 민원은 블루 아카이브 출시 초부터 계속됐다. 그 사이에 어떤 의사 결정이 일어났나 유저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한참 뒤에 갑작스레 닥친 결과만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유저들이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민원 인증글이 올라왔으니 민원이 있었고, 권고 조치가 이행됐으며, 그래서 리소스가 수정되거나 혹은 등급 분류가 변경된다는 것뿐이지 않나. 그 사이에 어떤 논의가 있었으며, 전반적으로 어떤 기준을 거쳐서 해당 게임의 콘텐츠를 검토했나 알 수가 없이 통보만 받아드는 실정이다. 문의를 하면 상담원들이 게임 내에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리소스들만 사례로 언급하고 있으니, 유저 입장에서는 과연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그 게임을 전체적으로 보고 있나 의심이 가는 것도 당연하다.

더군다나 다른 부서인 여가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정작 인게임에 등장하지도 않는 2차 창작물의 이미지를 갖고 게임이 청소년에게 부적절하다, 야하다, 선정성이 과하다는 말을 꺼냈던 적도 있다보니 유저들의 정부 부처에 대한 신뢰도도 썩 좋지도 않은 상황이다. 특히나 갑작스럽게 일부 게임이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과 연루됐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등급 분류가 거부됐던 건에 대해서 유저들이 그 회의록이나 검토 과정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끝끝내 거부하고 흐지부지된 적도 있으니, 외풍에 영향을 받지 않고 게임 콘텐츠나 맥락을 보고서 등급 분류한다는 발언에 100% 유저들이 신뢰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고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악의 축이고 폐지되어야 한다는 과격한 이야기는 아니다. 바다이야기 같은 사행성 게임을 비롯해, 그에 못지 않게 여러 가지 편법적인 수단으로 부적절한 콘텐츠를 청소년에게 유통하려고 하는 불건전 게임물을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이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실제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 분류 거부 목록을 보면 바다이야기 같은 악성 사행성 게임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고개를 들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사례집이나 실제 압수한 품목을 보면 정상적인 게임이나 콘솔인 것 같아도 어느 순간 사행성 게임, 혹은 포르노나 불법 도박 사이트로 연결되는 게임의 사례는 수두룩하다.

그런 공이 있다고 해서 다른 게임물 관리 분야에서 잡음이 일어나는 것을 그냥 넘어가기는 어렵다. "전문성을 갖춘 위원들이 검토를 진행한 사항이며, 일반 대중들의 시각과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투명하게 전반적인 내용을 공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명확한 기준에 의거한 심의가 필요하다. 게임은 일부 계층의 문화가 아닌, 일반 대중도 다 같이 즐기는 문화다. 그런데 그걸 즐기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으면, 그 통보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고 또 알 권리에 해당하지 않겠나. 대중적으로 알리기 어려운 정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그런 것조차도 시원하게 이야기하거나 혹은 강하게 나서서 주장하지 않고 심사 위원의 투표 결과로 나왔다, 알리기 어렵다 이런 말로 넘어갔다.

여태까지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한 적이 거의 없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브리핑, 그리고 심사 위원의 다수결에 따른 투표 이후 갑작스런 통보나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민원 인증글 그리고 그 민원인의 냉소와 청천벽력 같은 조치만 뒤따라왔을 따름이다. 이제 유저들은 달라졌다. 트럭 시위와 마차 시위, 그리고 간담회 등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리고 지금의 급증가한 민원 사례로 이어졌다. 지속된 민원에 흔들렸다는 의혹으로 이런 상황이 벌어졌으니, 민원을 줄여달라는 공지는 유저들에게 와닿지 않는다.

그 의혹의 근간을 해결하려면,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공정성과 의사 결정의 투명함에 대해서 유저들이 믿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심의 및 재심의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하고,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서 단순히 파편적으로 대답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얼개와 기준까지 확고히 제시해서 신뢰를 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의도야 물론 아니었겠지만, '대중'과 '전문가'를 나눠서 대중에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예 꽁꽁 숨겨버리고 결과만 말한다면, 대중을 무시한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지 않겠나.

이 사태를 그저 한 순간의 일로 치부하면, 확증파괴의 연쇄고리에서 게임물관리위원회와 게임사 그리고 유저 모두가 피곤해질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일부 유저들은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보내는 민원을 마음에 안 드는 게임을 골로 보내버릴 병기로 인식하고 있고, 그 인식대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성인 등급이 비교적 표현의 자유가 널널해서 편해졌다고 하겠지만, 갑작스럽게 성인등급 판정을 의도치 않게 받아버렸을 때 유저들이 받는 정서적인 충격과 업체가 실질적으로 마케팅을 집행할 때 제약, 리소스 수정 및 대책 마련 등 타격이 꽤 크다. 그런데 그렇게 될 상황이 마음의 준비할 새도 없이, 그리고 제대로 기준에 의거한 공지 없이 덜컥 닥쳐오는 꼴 아닌가. 이미 그런 사태는 발발해버렸고, 대처하지 않으면 게임계 전반으로 확산될 여지가 크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오해'받기 싫다면 답은 간단하다. 지금이라도 등급 분류 기준을 명확히 잡고, 그에 의거해서 심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 의거해서 명확하게 등급 분류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관련 게임을 소개하는 브리핑을 진행한 이후 심사 위원의 투표로 등급 분류 심사가 진행되는데, 단순히 표를 던진 결과만 알리는 것으로는 어떤 근거로 그 게임에 해당 등급을 분류했나 명확한 심사 기준을 알기 어렵다. 왜 그렇게 심사했나, 그리고 어떤 기준에서 어떤 파트가 문제가 되고 어떤 부분은 문제가 안 되는지, 그걸 종합했을 때 등급 분류가 어떻게 나올지 명확한 기준을 두고 그에 의거해서 심사해야지 이를 똑바로 말하고 이해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과정 없이 표를 던진 뒤 권고, 그리고 당장 그 결과에 맞춰 일부 자극적인 사례만 들어서 "이런 게 있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고집피우기에는 시대가 바뀌었다. 이미 불씨는 피어올랐고, 유저들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이제 참지 않고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 민원에 대한 면피성 답변이 아닌, 명확한 기준과 근거로 유저들이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