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끝냈다.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피할 수 없이 찾아온 체력적 한계 때문에 한 게임에 제대로 몰두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내가 생각해도 '간만에 집중했다'라고 느낄 정도로 높은 밀도로 플레이를 마쳤다. 그리고, 리뷰를 기획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솔직한 감상부터 말하자면, 내가 플레이한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는 좋은 게임을 넘어 훌륭한 게임, 아니 그 이상의 대단한 게임이었다. 내가 세상 모든 게임을 해 보진 않았기에 역대 최고의 자리까진 무리겠지만, 정상급 게임들을 모아 두는 박물관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대단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게임을 적게 한 편이 아님에도 내 인생 최고의 게임으로 두어도 아쉽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대단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어떤 게임도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 대단히 좋은 부분과, 적당히 좋은 부분, 별로인 부분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의 가장 좋은 부분이 하필이면 서사와 서사의 연출에 얽혀 있기 때문에 리뷰에서 다루기엔 퍽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자칫 삐끗하면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때문에 오늘의 리뷰는 나에겐 별로 만족스럽지 못할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할 수 있는 말은 극히 일부일 테니까. 오죽하면 한 2주쯤 뒤에 서사 분석에 대한 기사를 하나 더 쓸까 하는 욕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게임을 기다리는 게이머들에게는 오히려 이 편이 더 나을 거다. 이 리뷰에서는 이미 공개된 인터뷰나 트레일러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내용 이상의 스포일러는 없을 거다.

※ 최대한 소거했지만, 그럼에도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완벽히 새로운 게임 경험을 원하신다면 뒤로 가기를 누르시고 플레이 이후 다시 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게임명: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2. 11. 9.
리뷰판: 리뷰용 선행 빌드
개발사: 소니 산타모니카 스튜디오
서비스: SIE
플랫폼: PS5
플레이: PS5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서사의 정점

전작인 '갓 오브 워'의 서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 그리고 그 여행을 통한 갈등의 해소라는 기본적 플롯 안에 꽤 다양한 이야기가 얹혀져 있는 형태였다. 과보호의 끝에서 아들을 잃고 마는 프레이야나 갈등으로 사이가 멀어졌다 다시 결합한 드워프 훌드라 형제(브록과 신드리), 그리고 알프하임의 엘프 내전 등 여러 이야기가 곁가지처럼 얹혀져 있긴 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건 명백히 크레토스 부자의 모험과 관계 변화였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이 '곁가지'에 가까웠던 이야기들이 훨씬 강화되면서 일종의 군상극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프레이야의 이야기, 사이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서로에게 모든 것을 터놓지는 않은 훌드라 형제, 오랜 시간 갇혀 지낸 티르의 내적 변화, 그리고 명백히 적대 세력이라 볼 수 있는 토르와 오딘을 위시한 아스가르드의 등장 인물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 아들을 잃고 제대로 흑화한 프레이야

재미있는 점은, 이런 '사이드 스토리'들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의 이야기를 가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돋보이게끔 만든다.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의 갈등은 아직 봉합되지 않았다. 크레토스는 전작에서의 모헙 끝에 부정하던 과거를 인정하고, 아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지만, 이전의 모험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엿본 그는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아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여전히 규율과 통제를 강요하고, 다른 이들에게서 마음을 닫으라 가르친다.

아트레우스는 3년이 지나며 스스로를 지킬 정도로 강하고 빨라졌으나, 여전히 소년에 가까운 무모함과 모험심을 품고 있다. 그는 상황을 바꿀 만한 힘을 가진 아버지와 자신이 상황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아버지의 통제에 마지못해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라그나로크'로의 여정은 이들의 근본적 갈등이 봉합되고,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가는 전작과 동일한 흐름을 이어간다.

▲ 3년이 지나며 서로를 잘 알게 된 둘이지만, 아직 이해하진 못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들은 프레이야와 미미르, 브록과 신드리, 그리고 토르와 오딘을 접하게 되고 둘만의 고민으로는 해결하지 못해온 문제를 풀어간다. 하나하나 완성도는 높지만,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한 여러 사이드 스토리들이 모여 중심 서사를 더욱 강화하는 구조다.

여기에, 마치 작가들을 갈아넣은듯한 온갖 서사적 장치들이 더해진다. 스포일러를 피하면서 몇 가지를 소개하면, 전작의 크레토스가 그리스의 살육자이자 파괴자, 괴물이었던 '과거'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본작의 크레토스는 '미래'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는다. 이 미래는 자신의 변화일수도, 아들인 아트레우스일수도, 혹은 우연히 보게 된 예언일 수도 있다.

▲ 끊임없이 내면의 갈등을 겪으며 조금씩 변화하는 크레토스

동시에, 이번 작의 서사는 크레토스의 고향인 그리스의 비극들과 너무나 유사한 모양새를 띈다. 운명에 저항하려다 결국 그 운명에 잡아먹히거나, 이를 재촉해버리는 그리스 서사의 주요 패턴은 이번 작품의 주요 서사 소재다. 자신의 행동이 오히려 예언을 재촉하는 결과가 아닐지 불안해하는 아트레우스와, 자신의 죽음을 엿봐 혼란스러우면서도 이를 부정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고 믿는 크레토스(과거 크레토스는 그리스에서 운명의 세 여신을 몽땅 해치운 바 있으며, 운명론을 매우 싫어한다)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직접 알아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기서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몇몇 곁가지 이야기의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다는 점 정도일까? 다만 이 부분도 추후 말할 '원 샷' 연출로 소화하기에 부적절한 내용들이기에 열린 결말로 놔두기 부족함은 없고, 그만큼 크레토스 부자를 중심으로 한 주 서사에 힘을 더 준 모양새이기에 충분히 납득 가능한 수준이다.

이렇듯,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의 서사 구조는 너무나 훌륭하게 짜여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이 훌륭한 게임인 이유는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탄약이 아무리 많아 봐야 총이 없으면 쓸모가 없고, 아무리 풍성한 식자재가 있어도 조리기구가 없으면 요리는 나오지 않는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의 서사가 이렇게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만큼 이 서사를 전달하는 연출 또한 훌륭하기 때문이다.

▲ 게임을 진행하며 겪는 많은 이야기들이 이 부자를 조금씩 바꿔나간다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 조형과 '원 샷'연출

이 연출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캐릭터'이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의 캐릭터 조형은 지금껏 본 게임 중 최고 수준인데, 무턱대고 화려하거나 멋지다기보단, 게임에서 이 캐릭터가 맡은 역할과 성격에 너무나 걸맞게 만들어져 있다. 이전에 이슈가 되었던 두 캐릭터를 예로 들어 보자.

트레일러에서 공개되면서 화제와 논란이 함께 되었던 '앙그르보다'는 게임 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요툰(거인)중 한 명으로, 요툰 어머니를 둔 아트레우스가 요툰의 정체성인 '로키'로서의 자신을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인물이다. 전작에서 요툰은 이미 몰살당한, 미지의 종족에 가까웠던 만큼 앙그르보다도 신비하고 환상적이며, 약간은 동떨어진 느낌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데, 이 이미지를 너무도 잘 드러낸다.

▲ 앙그르보다의 전투 장면은 볼 때마다 웃음이 날 정도

▲ 한바탕 싸우고 나면 스플래툰이 따로 없다

게임 상에서 볼 수 있는 앙그르보다의 전투 장면은 세상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인종 관련으로 이슈가 있긴 했지만, 사실 게임을 하다 보면 이런 건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애초에 뱀도 요툰인 마당에 따지는게 의미가 있겠냐만은.

본작에서 크레토스의 숙적 역할을 맡게 될 '토르'도 너무 뚱뚱하고 경박한 옷차림이라는 논란이 있긴 했지만, 막상 게임 내에서는 굉장한 위엄을 보여준다. 튀어나온 뱃살은 엄청난 덩치와 합쳐져 '강함'이라는 개념의 이미지화로 다가오며, 대충 걸친 옷차림은 그의 대사나 행동거지와 결부되면서 그저 자신감으로 비쳐진다.

▲ 우리 주인공도 어디서 맞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 의외로 복잡한 내면 상태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단순한 악역이 아닌 굉장히 복잡한 내면의 갈등을 지니고 있으며, 이 갈등의 여파가 외모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도 토르의 캐릭터성을 고평가하는 이유. 한가지 더 말하자면 크레토스가 도끼를 회수할때 오른손을 번쩍 드는 것처럼 토르도 묠니르를 다룰 때 가볍게 핑거 스냅을 하는데, 딱 소리와 함께 묠니르가 튀어나가는 모습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풍같은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이렇듯, 잘 만든 캐릭터만큼이나 서사 연출에 큰 몫을 하는게 하나 더 있다. 전작부터 이어져 온 '원 샷' 연출이 바로 그것인데, 쉽게 설명하면 게임 중 카메라가 전환되는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보통 게임은 공간이 바뀌거나, 시점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카메라도 바뀌기 마련인데,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는 이 카메라 전환이 단 한 번도 없다.

▲ 개그부터 다큐까지, 모든 과정을 단 하나의 카메라로 담아내는 게임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길게는 50시간 가까운 여정 동안 게이머는 항상 같은 카메라로 게임을 바라본다. 심지어 이번 작품은 이전에 퍼졌던 소문대로 아트레우스를 조작하는 파트도 있는데, 이 파트로 조작되는 과정에서,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가 아예 다른 공간에 위치함에도 카메라 전환이 없다. 이걸 어떤 연출로 처리했는지는 게이머가 직접 보는게 더 나으리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의 서사 및 연출은 그저 완벽하다. 모든 캐릭터가 각자의 이야기와 복잡한 내면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에 걸맞는 행동과 언행, 생김새를 보여준다. 나아가 이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를, 단 하나의 카메라로 끊임없이 비춰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의 이야기는, 지금껏 존재한 그 어떤 게임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몰입을 준다.

▲ 달과 해를 쫓는 스콜과 하티, 원전의 이야기도 꽤 많은 부분에서 녹아 있긴 하다.



다변화된 전투와 넓어진 게임 무대

게임 내적인 변화로 들어가면, 가장 와닿는 부분은 게임의 핵심 중 하나인 전투에서의 변화다. 정확히는 전투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전투 환경이 매우 달라졌다. 그리고 이 전투 환경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는 '수직'과 '팀 업'이다.

전작의 전투는 대부분 폐쇄된 좁은 환경에서 치러졌다. 과거 난립하던 액션 장르의 전투 시퀀스 구성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일정 공간이 전투 공간으로 배정되고 전투를 마무리하면 경로가 개척되는 형태인데, 본작에서는 이 전투 공간이 훨씬 넓어지고, 더 많은 변수를 띄게끔 바뀌었다.

▲ 전투 환경이 꽤 다채로워진 편

전투 공간 내에 로프 액션이 가능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거나, 층이 구분되어 있어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공격해야 하는 경우가 존재한다거나, 아예 단절된 공간이 존재해 공격을 위해선 뛰어넘어 가야 한다거나 하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이에 맞춰 무기 스킬도 상당 부분 수정되었다. 온 힘을 모아 상대를 쪼개던 리바이어던 도끼의 R2 강공격은 상대의 복부에 도끼를 꽂아넣고 그대로 날려 폭탄처럼 쓰는 기술이 되었고, 위에서 뛰어내리며 광역 공격을 가하는 공격기가 더해졌다. 단순 평타 취급이던 블레이드의 원거리 약공격은 상대를 당겨 오거나, 상대에게 돌진할 수 있는 트리거 공격이 되었다. 또한, 이번작은 전작과 달리 모든 무기에 처형 모션이 존재한다.

▲ 다 큰 아들 덕에 합체기(?)도 쓸 수 있게 됐다.

'팀 업'은 말 그대로 전투를 돕는 조력 캐릭터의 변화다. 전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트레우스가 이 역할을 담당했지만, 본작은 게임 진행에 따라 이 '조력자'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굉장히 많다. 약 8명 정도(사람이 아닌 경우 포함)의 캐릭터가 전투의 조력자로 등장하며, 이중 비중이 높은 일부는 무기 업그레이드나 방어구 교체, 스킬 레벨업도 가능하다. 이들은 모두 고유의 기술과 전투법을 지니고 있으며, 일부 조력자는 오히려 플레이어보다 훨씬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이들의 역할은 조력이기에 전투 중 조작 캐릭터를 변경할 수는 없다.

그 외에 전투에서의 변화는 맨손 스킬 탭이 삭제됨에 따라 기존 맨손 전투에 있던 스킬들 다수가 나뉘어 여러 개의 방패에 배정되었다는 점과 궁극기인 '스파르탄의 격노'가 여러 형태로 나뉘어 용도에 맞춰 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신규 시스템인 '힘 모으기'와 '해방'의 추가다.

▲ 맨손 스킬은 없어지고 아예 아트레우스 스킬 트리가 생겨버렸다

'힘 모으기'는 △ 버튼을 꾹 눌러 무기에 일회성 버프를 부여해 다음 공격을 강화하는 시스템이며, '해방'은 피해를 입지 않고 공격을 이어가 게이지를 모은 후 'L1+△'를 눌러 발동하는 임시 버프기이다. 일정 시간 동안 블레이드는 사슬과 칼날이 화염에 휩쌓여 강한 화염 누적치를 주며, 리바이어던 도끼는 공격 시마다 충격파가 날아가 넓은 영역을 커버할 수 있게 바뀐다. 그 밖에도 화염 상태이상의 적에게 도끼 피해가 늘어난다거나, 반대로 얼어붙은 적에게 블레이드 피해가 늘어나는 등 무기 교체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스킬도 새로 생겨났다.

또다른 게임 내적 변화는 게임의 주 무대가 되는 맵 구성의 변화다. 이번 작품은 전작에서 갈 수 없었던 바나헤임과 스바르트알파헤임, 아스가르드를 포함해 9개 영역 모두를 탐험할 수 있는데, 이 모든 영역이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몇몇 영역은 무시 못 할 정도로 거대하다.

▲ 건재한 보트 타임과

또한, 대부분 미드가르드에 모여 있던 사이드 퀘스트가 이 아홉 영역에 균형있게 배치되면서 게임 도중 여러 영역을 오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만 몇몇 영역은 지나치게 길이 복잡해 숨겨진 요소를 찾기 매우 힘들 뿐만 아니라(세 시간을 헤매고 상자를 못 찾은 경우도 있다) 인터페이스에서 지원하는 지도가 너무 거시적으로 그려져 탐험 난이도는 꽤 높은 편이다. 너무 상세한 지도는 탐험 욕구를 떨어트리니 호불호가 갈릴 만한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디테일한 지도가 존재했으면 하긴 했다.

이 아홉 영역 중 여러 영역에 전작의 '보트 타임'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 존재한다는 것도 좋은 변화. 전작에서 보트를 타고 돌아다니는 시간은 게임 내에서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배경 설정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배, 혹은 썰매를 타고 다니며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새로 생긴 썰매 타임

재미있는 건, 앞서 말했던 '팀 업'의 개념으로 인해 같은 퀘스트를 하더라도 함께 다니는 동료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퀘스트를 수행해도 아트레우스와 함께 다닐 때, 그리고 다른 동료와 다닐 때 대화의 내용이 완전히 다르고, 이 대사들은 각 캐릭터가 지닌 성격에 의거해 쓰여졌기에 사실상 다회차를 하지 않고는 게임 내에 등장하는 모든 잡담과 캐릭터 멘트를 들을 수가 없다. 아쉽게 느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재미있게 다가온 부분이다.



게임을 이루는 모든 요소의 조화

게임을 이루는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해보자. 먼저, 이 항목에서 가장 먼저 말하게 되는 '그래픽'은 크게 말할 부분이 없다. 그저 완벽하다. 30FPS의 퀄리티와, 60FPS의 퍼포먼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통스러움은 피할 수 없지만, 원하는 바를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전작도 그래픽이 좋은 편이었지만, 이번 작품의 비주얼은 좋음을 넘어 한계에 가까운 지점에 닿아 있다는 느낌. 4K로 큰 화면에 연결해 게임을 할 때의 시각적 카타르시스는 너무나 훌륭하기에 60FPS를 포기하고 할 가치가 충분하다. 물론, 그렇다고 60FPS의 퍼포먼스 모드가 모자라는 건 아니다. 광원 표현이나 반사 처리 등에서 약간의 손해는 보지만, 이 모드에서도 웬만한 게임은 비비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수준을 보여준다. 참고로, 이번 기사에 쓰인 스크린샷은 모두 60FPS의 퍼포먼스 모드에서 촬영했다. 그리고 두 모드 모두, 단 한 번도 프레임이 밀린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 그냥 중간에 대충 찍은 스크린샷(누르면 커진다)

▲ 막 찍어도 컨셉 아트 같아서 좀 재밌기도 했다

그리고, 이 비주얼 측면의 개선이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인물의 심리 묘사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의 모든 컷신은 앞서 말한 '원 샷' 연출이 용이하게끔 실시간 렌더링으로 이뤄지는데, 이 컷신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표정 묘사가 해당 인물의 심리를 너무나 완벽하게 보여준다. 작중 크레토스는 끊임없이 내면의 갈등을 겪으며 차츰 변화하는데, 이를 표정만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그려진다.

▲ 크레토스의 표정은 꽤 먹먹하게 다가오는 부분

그래픽만큼이나 '사운드'도 완벽에 가깝다. 사운드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놀란 건 BGM의 능수능란한 배치인데, 서사 진행 상 게이머가 느끼게 될 긴장의 정도와 감정의 온도에 딱 맞는 BGM을 적재적소에 완벽하게 배치해 두었다. 게임이고 뭐고 BGM이 너무 좋은 그런 형태의 좋음이 아닌, 자연스럽게 게임에 몰입해 게임 플레이 자체를 살려주는, BGM의 존재 의미에 딱 걸맞는 형태의 음악이다.

유일하게 '이 음악 좋다'하고 느낀 건 진 엔딩 크레딧(이번 작품 또한 전작과 마찬가지로 약식 크레딧과 진짜 크레딧이 따로 존재한다)이 나올 때 들을 수 있는 가사가 있는 곡인데, 게임을 마무리하면서 듣기에 딱 좋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좋다.

자칫 그냥 넘어가기 쉬운 문서 항목의 변화도 게임의 서사를 보충하고 몰입을 돕는 훌륭한 변경점이다. 전작의 문서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아트레우스가 자신의 공책에 여행을 기록하는 형태로 꾸며져 있어 대부분 아트레우스의 시선에서 서술되었는데, 이번 작품의 문서들은 크레토스가 본인의 사견을 담아 작성한 내용도 꽤 많이 들어 있다.

▲ 크레토스 시점에서의 서술은 꽤 새롭게 다가온다.

게임 진행에는 크게 관계가 없는 플레이버 텍스트이지만, 한 번씩 읽어 보면 게임을 즐길 때의 몰입이 더해지는게 느껴지는 정도. 여담으로 크레토스의 시점은 꽤 살벌하면서도 복합적인데, 길가다 만난 트롤을 두고 '안 그래도 추웠는데 몸 덥히기에 딱 좋은 상대'라 말하거나, '고마워서 죽였다'라며 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자신의 기쁨을 서스럼없이 적어 두기도 하는 등 과거의 크레토스를 기억하는 게이머들은 다소 놀랄 만한 부분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건, 이 그래픽과 사운드, 본문엔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완벽한 '듀얼센스' 컨트롤러 지원 요소들, 그리고 게임 서사의 이해를 돕는 플레이버 텍스트들은 모두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절대 게임의 집중을 흐트러뜨릴 정도로 튀지 않는다는 점이다.

▲ 그래픽도, 사운드도, 결국 이들의 이야기를 더 좋게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서 존재한다.

내가 '갓 오브 워'가 정말 좋은 게임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게임이 게이머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매우 명확하며, 게임을 이루는 굉장히 많은 요소들 또한 모두 이 이야기의 전달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때문이다. 사실 BGM만 따로 따놓고 보면 다른 게임이 더 좋을 수도 있을 테고, 그래픽 수준도 더 세밀한 게임이 존재하겠지만, 이 게임만큼 모든 요소가 똘똘 뭉쳐 게임 서사로의 몰입을 돕는 건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이 게임이 말하는 바는 당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리뷰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처음 말했던 '서사' 파트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해볼까 한다. 일단 확실히 해야 할 것이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는 원전인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와는 꽤 많이 다르다. 이쪽은 잘 살고 있던 신들의 세계가 망하고 황금의 시대가 열리는 이야기가 아닌, 게임 속 세계에서의 모든 갈등이 봉합되는 큰 이벤트로서의 '라그나로크'를 그린다.

때문에, 원래의 북유럽 신화와 배경 면에서도 다소 차이가 있다. 전작에서도 여러 수단을 통해 드러났듯 아스가르드의 최고신 오딘은 대항할 수 없는 파괴자인 토르의 힘과 조언자인 미미르의 지혜로 다른 영역들을 수탈하고 억압해온, 이 세계 내의 절대 권력이자 악에 가깝게 묘사된다. 여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원전과는 너무 다른 흐름 때문에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테다.

▲ 오랜 기간 오딘의 수탈이 이어져 온 드워프들의 영역 '스바르트알파헤임'

하지만, '갓 오브 워'라는 시리즈가 그리스 사가 때부터 신들의 패악질을 견디지 못한 크레토스가 똑같이 패악질로 갚아준다는 것이 핵심이니만큼, 이 설정만 적당히 알고 있다면,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는 그간 어떤 게임에서도 느끼기 어려웠던 너무나 강력하고 훌륭한 서사로의 몰입을 준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 서사가 어디까지나 정말 재밌고 잘 짜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게이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쁜 놈은 벌을 받는다'라는 지극히 단순한 권선징악의 메시지마저 이 게임에는 없다. 게임의 서사는 오로지 등장 인물들의 내적, 외적 갈등 과정과 이를 풀어내는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한 여파만 개연성 있게 보여준다. 나쁜 놈에게는 나쁜 놈의 사정이 있고, 좋은 놈도 때로는 나쁠 수 있으며, 좋은 놈끼리도 생각이 맞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에겐 좋다고 생각되는 일이 또 누군가에겐 나쁘게 느껴질 수도 있다.

▲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지만,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의 온도.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는 이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약 50시간 가까이 게임을 하면서, 나는 꾸준히 이 게임의 주제 의식이 무엇일지, 게임이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아마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화해, 이해, 사랑, 상실, 분노, 성장, 변화, 결별 기쁨과 슬픔, 그리고 죽음과 삶에 대한 자세까지.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가 게임 속에 담겨 있고, 이를 접할 게이머들이 느낄 감정과 전달받을 메시지도 아마 제각각일 거다.

때문에, 이 게임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직접 찾아내길 바라는 바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플레이해보기 전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만한 수수께끼로 리뷰를 마치겠다.

"덜어낼 수록 더 커지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