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명: 던전 오브 나흘벅
장르명: 턴제 RPG
출시일: 2020.09.17
리뷰판: 1.5.0
개발사: Artefacts Studio
서비스: Dear Villagers
플랫폼: PC
플레이: PC

흔히 판타지 세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현대의 과학과 전혀 다른 방식의 마법이 존재하며, 엘프, 드워프, 오크 등 다양한 종족이 살아가는 곳. 비현실적이기에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판타지 세계는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에서도 배경으로 자주 사용되면서 꽤 친숙한 느낌을 주곤 한다.

'던전 오브 나흘벅' 역시 판타지 세계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턴제 RPG다. 마법이 있고 오크와 고블린, 언데드 등의 몬스터와 엘프, 드워프 등의 이종족도 존재한다. 거의 정통 판타지 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 다만, 여기에 블랙 코미디를 살짝, 아니 꽤 듬뿍 끼얹은 게 특징이랄까.

주인공 일행은 평범한 인간과 초보 마법사, 도적, 엘프와 드워프에 바바리안과 오거 등 꽤 독특한 조합으로 등장한다. 게임은 이들이 어떻게 만나서 함께 다니는지를 조명하진 않는다. 게임 플레이는 어디까지나 이들이 나흘벅이란 던전에 입장에서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집중한다.

▲ 돈 밝히고 욕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드워프와

자잘한 히스토리를 싹 날리고 던전에 입장한 순간을 조명했기에 게임은 첫 장면부터 강렬하게 다가온다. 다소 경박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비속어를 섞어서 대화하는 드워프가 동료의 만류에도 딱 봐도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문을 망치로 내려찍으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된 주인공 일행.

조별과제로 치자면 팀원끼리 인사하는 순간부터 어딘가 잘못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이 게임 역시 앞으로의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플레이어에게 심어주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게임을 하는 내내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처음에 당당해 보였던 우리의 주인공 일행은 어느 순간 틈만 나면 서로 헐뜯기 바쁜 엘프와 드워프, 오직 살육만을 부르짖는 바바리안과 도망치고 싶어하는 겁쟁이 도적, 음식 얘기만 꺼내는 오거 등 엉성하기 그지없는 오합지졸 파티로 변화한다.

▲ 평화를 사랑하지만 드워프만 보면 성격이 달라지는 엘프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답답하고 분노를 유발하기보단 반대로 가식 없는 웃음과 즐거움만 선사해준다. 처음에는 이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쌓여가는 내러티브와 유대감 덕분에 이들의 행동에 몰입하게 된다. 스토리를 풀어가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과격하지만 꾸밈없는 모습을 한결같이 유지하면서 유저들의 호응을 얻어낸 셈이다.

한편, 복잡하게 꼬기보다 직관적인 관계 설정과 무식한 설정, 과감한 대사 등으로 웃음을 자아낸 스토리와 달리 전투는 생각보다 치밀하고 잘 짜인 게 이 게임의 반전 요소 중 하나다.

전체적인 흐름은 일반적인 턴제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행동력에 따라 캐릭터의 턴 순서가 정해지고 각자 행동 포인트를 소모해서 공격과 이동을 한다. 기본적인 전략 요소인 회피와 막기, 엄폐물을 활용한 보호 및 방향에 따른 측면, 후면 공격 보정 등 턴제 게임으로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다.

▲ 인터페이스와 편의성 역시 충실하다

보통 턴제 게임에서 공격의 실패는 빗나감뿐이다. 공격에 실패한다는 생각 자체는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게임은 확률에 따라 공격이 빗나가는 것을 넘어 실패할 수 있으며, 만약 공격에 실패하면 능력치 디버프부터 스스로 피해를 보는 등의 꽤 큰 페널티를 받게 된다.

공격 실패의 가장 큰 특징은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마치 현실처럼 방심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이러한 공격 실패는 솔직히 짜증 나는 시스템이 분명하다. 한 대만 때리면 끝나는 상황에서 공격 실패 탓에 역전당하는 상황에 부닥치면 정말 온갖 욕을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공격 실패가 있기에 게임을 할 때 더욱 신중해지고 진지하게 임하게 된다. 턴제 게임은 전투에 변수가 많으므로 결코 쉬운 난이도의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초반에 한정되며, 대부분 턴제 게임은 후반으로 갈수록 게임이 쉬워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캐릭터 육성을 진행하며, 전략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즉, 후반으로 갈수록 게임의 변수가 적어진다.

▲ 후반에 가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는 아이템이 존재하지만 확률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반면, 이 게임은 통제할 수 없는 공격 실패라는 변수가 게임의 후반에도 끝까지 남아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준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 보니 플레이어는 똑같은 전략으로 반복적인 전투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공격 실패를 주의하면서 전략을 짜야 한다. 사소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실제 게임을 해본다면 변수의 차이가 불러오는 전투의 재미가 꽤 크게 체감될 것이다.

공격 실패는 스토리와 엮여 단순히 아군의 실수가 아니라 저주에 의한 것이며, 실패에 따른 페널티를 감소하고자 추가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함께 제공해줘 때에 따라선 오히려 실수를 바라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선 분노를 유발할 수 있는 통제 불가능의 시스템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후반부 전투의 밋밋함을 일정 부분 없애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괜찮은 장치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스마일게이트 스토브에서 공식 한글화 버전을 출시하기도 했으니 언어 문제는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오랜만에 복잡한 생각 없이 즐겁게 웃으면서 플레이한 게임이다. 턴제 전투가 어느 정도 취향에 맞는다면 예측할 수 없는 친한 친구들과 TRPG를 하는 듯한 느낌으로 푹 빠질 수 있으리라.

▲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파티 조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