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MMO 오픈필드 컨텐츠
  • 강연자 : 안종옥 / 엔씨소프트 PD
  • 발표분야 : 게임 디자인
  • 강연시간 : 2022.11.18(목) 17:00 ~ 17:50
  • 강연요약: 모두와 공유하는 공간인 오픈필드에서 놀거리를 충분히 만든다는 것에 대한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쓰론 앤 리버티에서 시도한 여러 가지 오픈필드 컨텐츠 타입에 대한 소개와 시행착오 역시 소개했다.


  • ■ 쓰론 앤 리버티와 MMORPG 구현을 위한 오픈 필드

    쓰론 앤 리버티(TL)를 개발하는 안종옥 PD는 많은 개발자가 차세대 MMORPG, 혁명적인 게임성을 그리고 회사 역시 자신의 팀에 거는 기대가 이런 차세대 게임에 있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그런 거창한 수식어, 표현에 걸맞은 신기한 아이디어로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안 PD와 팀의 실제 목표는 게임을 만드는 자신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 어찌보면 소박한 목표였다. 하지만 개발팀은 약 200명 가까이 됐다. 그들 모두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면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모두를 위한 게임, 모든 지역에서, 모든 세대에서, 여러 성향의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게임. 어찌보면 차세대 MMORPG라는 목표보다 더 어려운 목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목표라고도 생각했다.

    게임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 안 PD는 게임을 창작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기에 거창하게 부풀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월드의 규모나 규칙들이 게임에 따라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훌륭한 게임은 대개 좋은 월드를 가지고 있다.

    TL 개발팀 역시 게임을 위한 좋은 월드 구성을 목표로 했는데 개발 초기 오픈 월드라는 코드가 광풍처럼 불러왔다. 그런 게임들을 플레이하고, 분석도 많이 했는데 똑같이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픈 월드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고 딱히 고정된 개념도 아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공통적으로 가진 게 바로 자유도다. 최소한으로 정의된 규칙들, 자유 법칙을 가지고 플레이어가 창발적으로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팀이 판단한 오픈 월드였다. 우리가 만든 MMO는 이것보다는 제약이 많이 필요했다. 사회에 사람이 많아지고 법이 점점 강화, 복잡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TL이 목표로 하는 세계는 오픈 월드보다는 조금 축소된 개념으로 제약이 있지만, 광활하게 개방된 세계라는 오픈 필드 위에 기반이 되는 핵심 내용을 쌓았다. 생동감 넘치는, 살아 움직이는 세계.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주기도, 받기도 하는 쌍방향 인터랙션이 있는 세계. 도전과 경쟁이 공존하는 세계. 이걸 목표로 잡았다.




    ■ 심리스 월드와 입체적 레벨 디자인이 만드는 오픈 필드

    오픈 필드를 구현하기 위한 기반 두 가지가 전제됐다. 하는 심리스 월드, 다른 하나는 입체적 레벨 디자인이다.

    심리스 월드는 분절 없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채널 구분이나 페이징 없이 서버의 모든 장소는 모든 플레이어와 공유되어 있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클래식한 MMORPG 모두 그렇게 만들어져있기도 하다.

    그러다 한 장소에 너무 과밀하게 사람들이 모여 플레이 경험이 저해되는 것들을 겪으면서 채널 등이 도입되기도 했다. 일부 그룹이 콘텐츠를 독점하는 형태를 막기 위해 인스턴스 던전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면에는 더 높은 그래픽 퀄리티를 선보이고자 하는 목표도 있었으리라. 거대한 월드 전체를 높은 퀄리티로 만들기는 어렵지만, 부각하고 싶은 부분만 세트장처럼 만들면 그게 가능하니 말이다. 불필요한 것은 안 하니 빨리 만들 수 있고 중요한 것만 하니 처리 속도도 빨라진다.


    이러한 시스템의 변화는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채널 구조는 경쟁을 회피하는 수단이고 인스턴스 던전은 필드를 텅 비게 만든다. 특히 엔드 콘텐츠가 인스턴스 던전으로 구현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커뮤니티의 단절로 연결됐다. 이는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는 MMORPG의 본질을 훼손시키게 됐다.

    결국, 심리스 월드의 구현은 TL 개발팀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다음은 입체적인 레벨 디자인이다. 새처럼 날 수 없고, 땅에서 움직이는 동물인 인간은 평면에 익숙하다. 비행기 조종사들처럼 Z축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게 아니라면 일반인들에게는 입체적 공간이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보통의 플레이어라도 부피에 대한 감각, 경사에 대한 공포 등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 감각은 중력이라는 거대한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팀에서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느낌을 주리라 판단했다. 생동감이라는 키워드를 살리기 위해 입체적인 레벨 디자인을 많이 사용했다.


    입체적 레벨 디자인을 위한 요소 역시 존재하는데 야성 변신과 로프 액션이 그 대표적 예다. 야성 변신은 플레이어가 동물로 변신하는 시스템이고 로프 액션은 도구를 사용, 인간의 육체만으로는 불가능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 이 불가능한 움직임이 중력이라는 힘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 쓰론 앤 리버티가 시간과 날씨를 다루는 법

    기반이 되는 두 가지 요소 외에 핵심요소가 되는 오픈 월드 필러 3가지가 TL의 세계를 구성한다.

    첫 필러는 환경이다. 환경이라는 요소가 언제부터인가 게임을 위한 과대 포장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변수를 만들어 내기 이만큼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장치 역시 찾기 어렵다.

    환경의 변화에는 낮과 밤, 맑거나 비가 오는 날씨, 풍속과 풍향이 포함된 바람이 있다.


    시간의 변화는 낮이 4시간, 밤은 1시간으로 총 5시간을 기본으로 한다. 이 5라는 숫자는 하루를 나타내는 24시간으로 딱 나눌 수 없는 숫자기도 하다.

    만약 하루의 변화를 2시간, 혹은 4시간 등 24로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구현한다면 매일 똑같은 시간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같은 시간대 안에서만 게임을 즐기게 될 것이다. 안 PD는 많은 사람들이 늘 같으 시간대에 게임을 즐기고 게임 시간 역시 한두 시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5시간의 주기는 그들이 매일 똑같은 시간에 게임에 접속해도 매일 다른 시간대를 접할 수 있게 만드는 셈이다.

    맑은 날씨와 비가 오는 날씨의 비율은 8:2로 구현됐다. 그리고 바뀐 날씨는 최고 30분은 유지된다. 즉, 플레이어는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최소 30분 간은 비가 계속 내리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비가 정확히 언제 올 수 있지는 모를 테지만 말이다.

    풍속과 풍향의 요소는 초기 기획보다는 많이 축소된 상태로 적용됐다. 이는 낮과 밤, 맑은 날씨와 비가 내리는 날시가 비주얼 표현이 용이한 데 반해 바람의 요소는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서 직관적으로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UI를 통해 이를 구현하고 있고 활공 비거리나 투사체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달성됐다.

    TL에서 이러한 환경 요소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러 콘텐츠가 이 환경 요소의 영향을 미묘하게 받고 있다.


    우선 무기나 스킬이다. 플레이어의 특정 무기나 스킬은 밤에는 더 오랜 기간 활용할 수 있거나 추가 피해를 주는 식으로 구현된다. 번개 줄기를 쏘는 라이트닝 체인은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강한 피해를 주는 식으로 구현되고 비고 올 때는 여러 적에게 튕겨 복수 피해를 준다.

    특히 장궁 스킬인 록시 거스트는 화살의 방향과 풍향이 일치하면 확률적으로 추가 발사체를 날리는 패시브 기술이다. 특히 벡터를 미세하게 분배해 그 방향이 더욱 정확하게 일치할 경우 그 효과가 배가된다.

    이러한 형태의 공격 스킬 활용 요소는 일종의 예시로 실제 게임에서는 더 많은 스킬들이 환경 요소를 활용하게 된다.

    두 번째는 레벨 디자인이다. 길드가 소유하는 있는 필드를 중심으로 비가 내리면 주변에 물이 차오르게 된다. 물이 찬 공간은 수영으로만 이동할 수만 있어 전투가 불가능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생태 역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낮과 밤, 날씨에 따라 필드 NPC와 보스가 변화한다. 물에 젖은 식물이 재생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거나 경험치, 드랍 재료가 달라지기도 한다.

    늑대 인간 콘셉트의 필드 보스는 낮에는 인간, 밤에는 늑대 형태로 그려진다. 둘 사이 공략 방식, 아이템 드롭 테이블 모두 다르다.


    여기까지가 플레이어가 환경의 변화에 수긍해야 하는 형태라면 환경을 능동적으로 변화시켜 플레이 경험을 바꾸는 것 역시 가능하다.

    소수의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권능은 10분 간 하나의 환경 요소를 원하는 방식으로 제어할 수 있다. 환경 변화 스킬은 하루에 2회 정도만 사용할 수 있는 긴 쿨타임을 가지고 있으며 각종 랭킹을 기준으로 다른 요소가 주어진다.

    이 권한은 하루 단위로 갱신되는 랭킹을 기준으로 한다. 특정 던전이 비가 오는 시간에만 문이 열리는 경우도 있는데 맑은 날씨에도 비를 내리는 스킬을 사용한다면 강제적으로 던전 도전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즉, TL에서의 환경은 처음에는 적응해야 하는 요소로, 나아가서는 활용해야 하는 요소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제어하는 요소로 사용되어 플레이어는 점점 능동적으로 이 환경을 다루게 된다.



    ■ 모든 콘텐츠가 한 번쯤은 주목받도록

    두 번째 필러는 지역 이벤트다. 지역 이벤트는 짧은 시간 특정 지역의 콘텐츠를 완전히 변경시키는 사건으로 사냥 대회가 이날 강연에서 예시로 쓰였다.

    초반 평원 지역에서 발동되는 이벤트는 일종의 대회 형식으로 늑대를 사냥해 모은 꼬리 납품 순위에 따라 보상이 차등 분배되는 방식이다. 평소 필드에서는 플레이어를 공격할 수 없지만 경쟁 콘텐츠의 경우 PvP가 가능하다.


    즉, 직접 사냥을 통해 모은 늑대 꼬리를 조금씩 납품할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효율성을 높여 한 번에 많은 수의 늑대 꼬리를 모아서 납품할지 판단해야 한다. 위험에 처한 사냥꾼을 구하거나 개체 수가 많은 늑대 무리를 공략할 수도 있다. 물론 늑대 꼬리를 모으는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해 그걸 뺏을 수도 있다.

    이러한 지역 이벤트는 3시간마다 발동되며 플레이어는 이걸 스케쥴 표로 확인할 수 있다.

    3번째 필러는 메모리얼이다. 메모리얼은 플레이어의 행동으로 월드를 바꿔나가는 방식으로 처음부터 모든 콘텐츠가 오픈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서버 전체가 같이하는 일종의 퀘스트를 수행하면 콘텐츠가 순차적으로 해금되는 식이다. 늑대 사냥 같은 지역 이벤트도 이런 메모리얼을 통해 해금되는 데 모든 서버의 인원들이 검은 평원의 늑대를 일정 수준 잡은 후에야 주기적으로 오픈된다.

    메모리얼은 세 가지 이점을 가진다. 우선, 플레이어와 월드와의 인터랙션으로 플레이어가 직접 월드를 변화시킨다는 느낌을 부여할 수 있다.


    또한, 보통은 게임 중간에 거쳐 가는 수준에 그치는 콘텐츠들도 순서대로 열리기에 최소 한 번씩은 집중적으로 조명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모든 콘텐츠가 특정 시점에서 서버의 최종 콘텐츠가 되는 셈이다.

    보통 게임을 '달린다'라고 표현하는 일부 플레이어의 보상 독식 역시 속도를 조정해, 완급 조절을 가능케 한다.

    여기까지가 세계를 동작시키는 메커니즘의 핵심이다. 개발팀은 앞서 설명한 기반과 필러들을 통해 게이머에게 익숙한 여러 콘텐츠 타입을 정화하고자 했다.



    ■ 인스턴스 없이 필드 위에서 이루어지는 보스 공략

    점령전은 지역 이벤트와 함께 경쟁 콘텐츠로서 길드가 소유할 수 있는 오브젝트를 통해 쟁탈전을 펼치는 PvP 요소다. 수많은 점령 오브젝트가 존재하고 한 번 주인이 결정되면 며칠간은 보호 상태가 유지된다. 보호가 해제되는 순간 주변 지역은 플레이어가 서로 공격할 수 있는 분쟁지역으로 변경된다.

    점령전보다 더 큰 규모의 공성전 자체 개념은 MMORPG를 즐겨온 유저라면 익숙한 요소다. 다만, 앞선 TL의 특징, 혹은 몇 가지 차별점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공성전은 공성보다는 수성 쪽이 유리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성 골렘을 사용할 수 있는데 플레이어가 직접 변신하는 공성 골렘은 성문 공격, 혹은 성벽 공격에 특화되거나 성문 위를 돌아다니며 수비 측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역할을 한다.


    하수구를 통한 비밀 통로 역시 존재하는데 이곳을 잠입해 성안으로 침입할 수 있다. 대신 비가 내리는 시간에는 물이 들어차 이 하수구를 통한 공격은 불가능하다. 수비 측에서 이 하수구까지 방어 병력을 배치할 여유가 없다면 날씨를 바꾸는 스킬을 통해 비가 내리도록 한다면 수비가 더 수월해진다.

    인스턴스 던전 대신 필드 위에 존재하는 보스 역시 특징이다. 필드 위에 존재한다는 의미는 얼마나 많은 플레이어가 모여 공략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래서 너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도전하는 사람이 많다고 무작정 쉬어지지는 않게 하는 조정이 필요했다.

    예시로 소개된 퀸 블렌디는 주기적으로 유충을 발사하고 이 유충은 플레이어에게 붙어 폭발을 일으킨다. 플레이어들이 밀집된 곳에 유충이 설치된다면 그 피해는 훨씬 커진다. 여기에 주기적으로 모래 속으로 파고들어 플레이어를 빨아들이는 공격도 감행하는데 만약 이 중 유충을 달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좁은 공간에 모인 적들 사이에서 터질 폭발이 줄 피해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다.

    이러한 패턴은 실제 게임에서는 더욱 많은 형태로 구현될 예정이다.

    기간트리테라는 거대 비행체도 존재한다. 하늘을 나는 고래인 기간트리테는 지하철 노선을 순환하듯 비행하는 생명체다. 기간트리테 위에 올라타면 평소에는 갈 수 없는 곳에 다다를 수 있으며 시스템상으로는 일종의 지형으로 구현되어있기에 이곳을 노리는 전투 역시 발생할 수 있다.



    오픈 월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를 설명한 안종옥 PD는 출시 되지도 않은 게임이 강연을 듣는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가늠하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날의 강연이 조그마한 파문이 되어 무언가를 깨달을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