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른건 몰라도 '손맛' 하나는 왕이라네


'워해머 40K'는 너무나 유명하고 동시에 두터운 팬덤을 가진 IP이지만, 애석하기 짝이 없는 주홍글씨도 함께 달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내면 망한다'

참 요상하게도, 진짜 워해머 IP를 기반으로 한 비디오 게임은 엄청나게 많이 나왔지만, 그 수에 비해 흥행한 작품은 몇 개 없습니다. 그나마 '워해머 판타지'는 토탈워 시리즈의 성공과 '버민타이드' 시리즈의 흥행으로 죽어버렸던 미니어쳐 게임이 부활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워해머 40K'는 그저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던오브워'시리즈가 인기를 끌긴 했지만, 야심차게 출시한 3편이 '없는 게임' 취급 받는 수모와 함께 사라지면서 '배틀플릿 고딕'이나 '배틀섹터'등 몇몇 작품만 겨우 살아남았죠.

'워해머 40K'를 배경으로 한 협동 슈터도 있습니다. '스페이스헐크: 데스윙'이라는 작품인데, 크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이 게임은 제 팬심을 시험할 뿐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크게 주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제 '스페이스헐크'는 잊어도 됩니다. '버민타이드'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르며 워해머 판타지를 살려낸 개발사 '팻샤크'가 각잡고 만든 '워해머 40K 협동 슈터'인 '워해머40K: 다크타이드(이하 다크타이드)'가 출시되었으니까요.

게임명: 워해머 40K: 다크타이드
장르명: 협동 슈터
출시일: 2022.12.01
리뷰판: 1.11
개발사: Fatshark
서비스: Fatshark
플랫폼: PC
플레이: PC



'협동'은 폼으로 붙은 단어가 아니다

게임의 개요부터 봅시다. 인류 제국의 외곽인 뫼비안 구역의 행성 '아토마 프라임'의 하이브 시티 '테르티움'에서 카오스 컬트가 봉기했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임페리얼 가드 군단까지 이들에게 감화되어 반란군이 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습니다.

사실 '워해머 40K' 세계관의 인류 제국이라면, 이 정도 반란은 스페이스 마린 몇 분대 보내주거나 행성 자체를 말살하는 익스터미나투스 한 방에 해결이 되겠지만, 일단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건 해 보는게 도리입니다. 그래서 선택된 방법이 이단심문소의 죄수들을 형벌 부대로 차출해 파견하는 거였고, 게이머는 이 형벌 부대의 일원이 되어 4인 1팀으로 테르티움에 파견되는 것이 게임의 시작입니다.

▲ 대충 죄수가 되어 형벌부대로 파견되는 이야기

게이머가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는 총 네 종류. 흔한 '병사1'에 해당하는 베테랑 가드맨과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싸울 줄은 아는 초능력자 '사이커', 광신으로 무장한 '질럿', 그리고 순박하고 멍청하지만 피지컬 하나는 좋은 아인종 '오그린'입니다. 대충 한 소개만 봐도 알겠지만, 원거리 공격수, 원거리 지원가, 근접 공격수, 근접 탱커로 구분되는 클래스죠.

게임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미션을 하지 않을 때는 로비 역할을 하는 감옥선에서 정비하고, 임무에 투입되면 네 명이 열심히 싸우며 길을 열고, 임무를 완수해 새로운 전리품과 경험치를 챙기면 됩니다. 그렇게 캐릭터가 점점 강해지고 예뻐지면, 또 다른 임무를 반복하는 형태죠. 솔직히 말하면, 협동 슈터 게임의 왕도에 가까운 디자인이고, 이게 답니다.

▲ 로비 역할을 하는 감옥선. 여기서 정비와 임무 수주를 진행한다

조금 더 본격적으로 말해보자면, 개발사의 전작인 '버민타이드' 시리즈에 대해 살짝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멸망을 눈앞에 둔 '엔드타임'에서 미친듯이 몰려드는 쥐 인간들과 싸운다는 컨셉의 '버민타이드'는 장르 상 협동 슈터로 분류되지만, 사실 '슈터'라고 할 정도로 뭘 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판타지라는 세계 컨셉에 맞게 대부분의 전투가 근접전이기에 1인칭 핵앤슬래시에 가까울 정도로 피튀기는 근접전을 펼쳐야 하죠. 당연히 게임에서 실력의 척도도 흔히 슈터 게임에서 통용되는 '에임'이 아닌 근접 전투 센스로 분류됩니다. 언제 막고, 언제 피하고, 언제 때릴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결정하는 이 전투 감각이 곧 게임의 실력이 된다는 거죠.

▲ 언제 피하고 언제 때리냐가 실력의 핵심

'다크타이드'는 '버민타이드'와는 다릅니다. 40번째 천년기가 무대인 만큼, 적 잡졸들도 총을 들고 나오고, 레이저를 발사하는 '라스건'과 실탄 화기 '오토건'을 포함해 굉장히 많은 총기들이 등장합니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도움만 있다면, 칼질 한 번 안 하고 총만 쏘면서도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을 정도죠. 하지만, '비교적' 원거리 싸움이 중요해졌을 뿐, '다크타이드'에서 근접전은 여전히 큰 역할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크타이드'가 다른 협동 슈터들과 차별화되는 모습이 도드라집니다.

일반적으로 협동 슈터는 총을 위시한 '투사 무기'를 기본으로 합니다. 근접전은 상대가 눈앞까지 들이쳤을 때의 자구책 정도로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죠. 반대로 개발사의 전작인 '버민타이드'의 경우 근접 전투가 메인이며, 원거리 공격은 멀리서 강력한 적을 저격하거나, 위험한 변수를 미리 차단하는 용도로 활용됩니다.

▲ 상황에 따라 근접전과 사격전을 번갈아 수행해야 하는 게임

그리고 '다크타이드'는 딱 이 중간에 있습니다. 원거리 적들은 베테랑과 사이커가 담당하고, 근접 라인 배틀은 질럿과 오그린이 담당하지만, 원거리 적들이 쏟아질 때는 모두가 원거리 대응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반대로 호드 웨이브가 몰려올 땐 모든 캐릭터들이 근접전 태세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듯 게임 상황에 맞춰 전투 방식을 물 흐르듯 바꿔내고, 최적의 대응책을 찾아내는게 다크타이드의 게임 플레이죠.

그 외에도, 다크타이드는 여러 면에서 동종 장르의 다른 게임들과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 미션 받아 나가고 돌아오고 하는 건 꽤 흔한 시스템이다.

가장 먼저 도드라지는게 일정 거리 안에 팀원이 있을 때 버프와 강인함(일종의 보호막) 재생을 주는 '단결'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 때문에 최적의 전투 효율을 내려면 팀원 간 간격 유지가 필요하며, 고립된 플레이어를 무력화하는 트래퍼와 하운드의 존재 때문에 팀과 동떨어지게 되면 극도로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단순히 '함께 해야 편하다'의 개념이 아닌, 시스템적으로 협동을 강요하는 수준이죠.

게다가, 한 번 플레이어를 인식한 적들은 대부분의 경우 게임이 끝날 때까지 플레이어를 쫓아옵니다. 때문에 적을 무시하고 목적지까지 달리는 일명 '러너'플레이가 봉쇄되고, 게임이 의도한 대로 팀워크를 맞춰 가며 차근차근 나아갈 수밖에 없죠. 왜 이 게임의 장르가 '협동'으로 분류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동료와 함께 해야 버프&회복이 유지되는 시스템. 혼자 가는 건 자살이다



BGM과 그래픽의 접시위에 올라선 '손맛'이라는 이름의 만찬

게임 시스템에 대해 설명했으니, 조금은 다른 시선에서 다크타이드를 말해 봅시다. 근접, 원거리 싸움을 균형있게 배치한 게임 디자인, 그리고 협동을 강요하는 게임 시스템은 다크타이드를 꽤 성숙한 모습의 협동 게임으로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이 다크타이드라는 게임을 단순히 '잘 만들어진 게임'을 넘어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어내는 건 또 다른 요소들입니다.

먼저, 다크타이드의 비주얼 수준은 매우 훌륭합니다. 여기서 '그래픽'이 아닌 '비주얼'이란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다크타이드의 화면 연출이 고퀄리티의 텍스처나 엄청난 사실성을 추구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솔직히 뭘 해도 예뻐지긴 힘든 게임

인물 그래픽이나 파티클 등의 사용에서 다크타이드의 그래픽 수준은 그냥 평범합니다. 다만 엄청나게 거대한 폐쇄 생태계인 '하이브 월드'를 표현한 아트 스타일, '다크 고딕 펑크'라는 게임 분위기를 만드는 조명과 광원, 그리고 무기 사용 이펙트와 피격, 연출 등이 게임에 딱 필요한 수준으로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음악과 효과음 또한 수준급입니다. 전투 긴장도에 따라 배치된 BGM은 누구나 만족할 만한 수준이며, 자칫 잘못 만들면 물총처럼 느껴지기 쉬운 '라스건'의 효과음, 그리고 작중 최강의 손맛을 자랑하는 '볼터'의 발사음과 피격 연출 또한 너무나 만족스럽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이 칭찬하고, 제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바로 '근접전'에서의 타격감입니다. '타격감'이란 개념은 사실 따로 존재하지 않고 효과음과 카메라 연출, 비주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공감각인데, 다크타이드는 지금껏 등장한 그 어떤 게임과 비교해 봐도 이 '타격감'이라는 분야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 체인웨폰의 손맛은 기존의 어떤 게임보다도 탁월

개발사의 전작인 '버민타이드'도 이 타격감에서는 꽤 알아주는 게임인데, 다크타이드와 비교하면 순식간에 쭈구리처럼 느껴질 정도죠. 기본 무장인 손도끼나 대검만 해도 끝내주는 손맛을 보여주는데 시동형 무기인 체인 웨폰(체인액스, 체인소드, 에비서레이터)이나 전기를 충전해 후려갈기는 썬더 해머, 포스 소드 등의 타격감은 비교를 불허합니다. 우렁찬 시동음부터 타격 시의 이펙트와 효과음까지 모든게 완벽에 가깝죠.

사실상, 이 '다크타이드'라는 게임의 최대 장점이 이 '손맛'입니다. 원거리 무기의 리스크가 근접 무기에 비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게임 내에서 먼 거리의 적에게 총을 쏘기보단 돌격하는 플레이어들이 있는 이유가 아마 이 때문이겠죠. 오죽하면 베타 기간이 끝나고 정식 발매까지 하루 간 서버가 닫혔을 때, 앓았던 금단증상의 핵심이 이 타격감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체인액스로 적을 갈아버리는 상상을 하며 잠들었거든요.

▲ 마법마저 손맛이 맛있다



하지만 타격감에 너무 힘을 준 걸까?

다크타이드는 매우 좋은 게임입니다. '협동'이라는 장르를 잘 살려내는 게임 시스템에 전투는 재미 그 자체라 볼 수 있으니 나쁠 수가 없죠. 하지만, 모든 게임이 완벽할 수는 없듯, 다크타이드 또한 완벽한 게임일 수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육각형 평가 도구 위에 게임을 올려두면, 한 쪽으로 꽤 거세게 뻗어나간 모습에 가까울 겁니다. 잘 짜인 시스템과 유래가 없을 정도로 강렬한 손맛에 비해, 게임의 전체적인 구조에서는 아무래도 아쉬운 모습들이 보이거든요.

가장 눈에 띄는 불편함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명확하지 않은 UI입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건 무기의 설명 UI인데, 쪼개기 대미지는 뭐고, 기교는 뭐고, 파쇄기는 또 뭔지 별도로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는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름 무기의 액션부터 특수 능력까지 표기는 해 뒀는데 솔직히 봐도 이해가 안 되서 그냥 실전에서 써먹어 보는게 더 빠를 정도죠.

▲ 저 아이콘이 다 의미가 있는데 찾아보기 전까지 모른다

그리고 정식 출시가 됐음에도, 약속했던 '커리어 시스템(하나의 병종에서 나뉘는 세부 병종)'은 아직 구현되지 않았으며, 아이템 가공 시스템도 많은 부분이 잠겨 있습니다. 베타 때는 베타라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정식 출시 후에도 풀지 않는건 뭔가 문제가 있는 건데 말이죠.

그런가 하면, 번역 상태도 엉망진창입니다. 몇몇 특성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못 번역되어 있는데다 음역과 의역이 혼용되어 있어 아마추어스럽다는 느낌도 듭니다. 이 때문에 몇몇 고행(업적 시스템) 달성이 너무나 어려워 확인해보니 완전 다르게 하고 있던 적도 있었죠. 몇몇 오역 정도야 그냥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우면 문제가 됩니다.

▲ 정식 출시 후에도 닫힌 콘텐츠가 있는가 하면

▲ 상식적으로 이럴 수가 없는데 뭔가 번역이 잘못된게 틀림없다

이 오역이 참 거슬립니다. 이전에 '버민타이드2'에서 게이머들이 자체적으로 한글 패치를 만들어 공식 모드로 인정받으려 할 때 팻샤크는 여러 핑계를 대가며 이를 반려했는데, 공식 한글화가 이뤄진 다크타이드의 번역 상태가 이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개발사는 유료 재화를 판매하며 스킨을 팔고 있습니다. 라이브 게임에서 스킨팔이 정도야 뭐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저도 샀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적어도 게임 요소들은 완성을 시켜 주는게 도의적으로 옳은 일 아니겠습니까? 이전에 공개했으나 아직 구현되지 않은 무기도 있는데다, 무기 가공 시스템은 대다수가 잠겨 있는 마당에 유료 스킨 판매를 버젓이 추가했다는 건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부분입니다. 차라리 유료가 아니라 게임 내 재화로 팔았으면 모르겠지만요.

▲ 팔기전에 다른거부터 좀 하지

그럼에도, 저는 이 게임을 계속 하긴 할 것 같습니다. 개발사가 눈꼴시어서 그만두기엔 인질이 너무 강력합니다. 타격감을 인질로 잡다니. 그만두자니 이만한 손맛을 주는 대체제가 없고, 또 게임 자체는 너무 재밌으니 욕하면서도 한다는게 아마 이 게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크타이드는 그런 게임입니다. 부족한 점도 많이 보이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으며, 개발사가 왜 이럴까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체 불가능한 재미를 주기에 미워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게임. 모질게 끊고 싶어도 팬심 때문에 어쩔수 없이 켜게 되는 게임. 원 툴 게임인데 그 원 툴이 너무나 매력적인 게임이 바로 '다크타이드' 입니다.

▲ 그럼에도 도무지 끊을 수 없는 재미